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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계(逐界)-쫓겨난 이들의 세계-137화 (137/309)

축계(逐界) - 쫓겨난 이들의 세계 - 3장 - 6. 의식의 분열(3)

그러며 장군 보살을 쏘아보며 다시 앙칼지게 얘기를 했다.

- 신부정도 되면 나를 받을 수 있지.

장군 보살은 그 말에 우뚝 멈춰 섰다.

- 한울님을 담을 그릇은 없습니다. 다만 미천한 육신에 내려 오...

장군 보살의 공손한 말투에도 지수는 여전히 냉소적인 모습이었다.

- 네 년이 이 년을 죽이려는구나.

장군 보살은 그 말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방 안으로 들어오는 순간부터 자신의 이성이나 자신이 모시는 신이 끊임없이 위험하다는 걸 알려왔으나 어찌할 수 없었다. 이러다가는 신 내림은커녕 목숨을 부지하기에 급급할 것 같았다. 더구나 자신의 의지가 아니라 상대의 의지로 인해 표준어를 쓰게 되고 상대의 의지로 인해 자신의 행동이 정해지는 일을 겪자 장군 보살은 저도 모르게 몸이 떨렸다.

- 제가 비록 미천하지만 한울님을 저 육신에 뫼시도록...

- 으하하하. 신부를 데리고 와라.

장군 보살은 몸서리를 치며 말했다.

- 부디 노여움을 푸시고 제가 성심성의껏 한울님을 뫼실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장군 보살의 몸이 뒤로 물러났다. 장군 보살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도 모두 놀라서 장군 보살의 손을 붙잡았다. 그러나 밀어내는 힘이 어찌나 강한지 나머지 사람들이 모두 같이 밀려났다. 하지만 장군 보살은 여전히 공손한 태도를 잃지 않았다.

- 한울님 노여움을 푸시고...

- 닥쳐!

그 과정을 밖에서 지켜보던 석호가 안으로 뛰어들며 외쳤다.

- 그만 하세요!

석호의 외침에 장군 보살은 몹시 당황하며 말했다.

- 여.. 여기는 오면 안 된다니까.

하지만 석호는 그 말을 애써 무시하고 안으로 들어와 지수 앞에 섰다. 그러자 지수는 만족한 듯이 말했다.

- 그래. 네 놈 정도는 되야 나를 감당하지. 어디 네 놈이 이 년 몸 안에 날 잘 갈무리해 줄 수 있겠나?

지수의 말에 석호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 저는 사제입니다. 강신을 도와드리는 일은 할 수가 없습니다.

석호의 말에 지수가 큰소리로 웃으며 말했다.

- 네 놈이 피가 시키는 일을 부정하는구나. 하하하하하.

석호는 그 말에 눈을 감았다. 그리고는 낮은 목소리로 대답을 했다.

- 피가 시키는 일 따위는 없습니다. 모두 의지의 문제입니다.

하지만 지수는 크게 웃으며 말했다.

- 네 놈은 네 놈의 운명을 다 알고 있어.

석호는 그 말에 고개를 저었다.

- 운명을 알고 태어나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지수는 과도하게 표정을 일그러뜨리면서 말했다.

- 거짓말을 잘 하는구나. 네 놈이 그런 운명을 몰랐을 턱이 없어. 네 어미가 극진하지만 않았어도 너는 급살을 맞아 뒈졌을 거야.

지수의 말에 장군 보살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아무리 영험한 신을 모신다고 사람의 내밀한 부분이나 세세한 부분까지 알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었다. 특히나 경험을 통해 알고 있는 자신이나 알만한 것을 얘기한다는 것은 아무리 능력이 뛰어난 만신이라도 불가능했기 때문이었다.

- 저... 저그...

장군 보살이 원상태로 돌아와 두 사람에게 얘기를 하려고 했다. 그러나 석호는 여전히 냉랭하게 지수를 바라보며 얘기를 했다.

- 급살을 맞지 않아 지금까지 잘 살고 있지만 저희 어머니에 대한 건 잘못 아셨군요. 제 어머니는...

석호는 말을 끊고 생각에 잠겼다. 지금 상황에서 자신의 얘기를 털어놓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 고민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 순간 지수가 온몸을 부르르 떨기 시작했다. 그 떨림은 단순히 그녀의 몸만 떨리는 게 아니라 그녀와 가까이 있던 물건들도 떨리기 시작했고, 그 진동이 석호와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느껴졌다.

- 이것이 뭐당가?

장군 보살은 당황하여 지수와 석호를 번갈아보았다. 그러나 석호는 그런 떨림이 크게 중요하지 않은 듯 지수만 노려보고 있었다.

- 대단한 놈이로구나.

지수의 뜻밖의 반응에 장군 보살은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도무지 감을 잡을 수 없어 눈만 껌뻑였다. 자신이 50년을 넘게 이 방면에 있었지만 이런 일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아니 인력으로 어떻게 주변 사물을 떨리게 하고 사람을 떨리게 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러나 석호는 그런 일에 익숙한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 당신이 더 대단하군요. 이런 일까지 할 수 있는 줄은 몰랐습니다.

지수는 그 말을 듣더니 갑자기 미친듯이 웃었다.

- 생명줄을 깎아먹으면 더한 것도 할 수 있지. 네 놈이야말로 대단하구나.

석호는 주먹을 쥐며 분노를 참았다. 지수는 의도적으로 자신의 어머니와 같은 모습을 보이고 같은 말을 해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 당신이 이런다고 내가 당신에게 굴복하지 않습니다. 이제 전 그리 어리지 않으니까요. 당신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석호의 말에 지수의 표정이 심하게 일그러지다가 돌연 구슬픈 표정이 되더니 낮은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 엄마가 섬그늘에 굴 따러 가면...

석호는 그 순간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석호의 얼굴에 처음으로 당황하는 표정이 어렸다. 장군 보살 역시 석호의 표정이 의미하는 바를 읽었는지 경악의 눈이 되었다.

- 신부님.. 안 되겠어라. 싸게 싸게 나가불자구요.

하지만 석호는 장승이 된 것처럼 멍한 표정으로 지수가 부르는 노래를 듣고 있었다. 석호의 머릿속으로 불현듯 무언가 불쾌하면서도 무서운 기억이 밀려들어왔다. 석호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러다가 눈을 감고 주기도문을 읊기 시작했다.

-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그러면 그럴수록 지수는 더욱 구슬프게 섬집 아이를 불렀고 석호는 몸이 경직된 채 주기도문을 외고 있었다.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는 장군 보살은 가 사람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기괴한 기운에 자신도 모르게 몸서리를 쳤다.

'이거이 뭐당가... 당췌 이 사람들은...'

장군 보살은 석호를 쳐다보며 애써 고개를 저으며 생각했다.

'한울님이 두 분이당가? 아니여. 그란 일은 읎제.'

- 에미를 잡아먹은 놈!

그 순간 석호의 표정이 심하게 일그러졌다. 석호의 얼굴은 분노를 참느라 붉게 달아올랐다. 장군 보살은 지수를 향해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 아니당게요. 즐대로 그란 일은 읎었당게요.

장군 보살의 말에 석호가 장군 보살을 쳐다보았다.

- 그게 무슨 말씀이죠?

석호의 말에 지수가 크게 웃으며 말했다.

- 네 놈의 에미가 누구 때문에 그렇게 살다 갔는지 저 여자는 잘 알고 있지.

지수의 말에 장군 보살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여전히 공손한 태도로 지수에게 말을 했다.

- 이쟈 그만 그 분 놔주시구...

장군 보살의 말에 지수가 분노하듯이 소리를 질렀다.,

- 네가 감히... 그 주둥이 다물지 못할까?

곁에서 지켜보던 원호는 심각한 표정이 되었다. 저들 사이의 인연 관계가 문제가 아니라 이 안에서, 아니 평생 다른 삶을 살아온 지수가 어떻게 저들의 삶을 알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 무병은...

원호가 세현에게 말을 걸려고 했으나 세현은 다소 넋이 나간 표정으로 그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세현의 표정을 보고 원호는 입을 다물었다.

- 당신이 무엇을 알든, 당신이 누구든 당신은 지수 씨가 아니니까 이제 그녀를 놔주시기 바랍니다.

석호가 지수 앞으로 한걸음 다가서자 지수가 미친 듯이 웃으며 말했다.

- 놔주라고? 내가 놔주면 이 년은 죽어.

이번엔 장군 보살이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 그간 그 몸띵이가 증성이 부족해서 많이 노하셨는가 본데, 지가 치성을 들여...

장군 보살의 말에 지수가 날카로운 표정으로 장군 보살을 노려 보며 말했다.

- 하. 네깟 게 무슨 재주로. 저 신부가 작두를 탄다면 모를까.

지수의 말에 장군 보살이 화들짝 놀라며 말했다.

- 그란 일은 읎구만요. 즐대로...

장군 보살이 석호의 앞을 막아서며 말했다. 석호는 장군 보살이 자신에게 왜 이렇게 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막연하게 자신의 과거와 닿아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지만 지금은 그걸 물을 상황이 아니라는 판단에 지수에게 집중했다.

- 내가 작두를 탄다는 게 무슨 말입니까? 저는 신부입니다.

석호의 말에 지수는 뭐가 우스운지 큭큭대며 웃었다. 그러다가 석호를 노려보며 말했다.

- 네 놈 안에 흐르는 피를 네 놈이 언제까지 막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네 놈이야 말로 대단한 피를 타고 났지.

장군 보살은 몸을 부르르 떨며 지수에게 소리쳤다.

- 아니랑께!

그러면서 장군 보살은 석호를 밀며 밖으로 나가며 말했다.

- 즐대 그란 일은 읎당께. 나가 그란 일은 즐대로...

지수는 그런 장군 보살과 석호를 보며 세현과 원호를 향해 말했다.

- 이 년을 죽이려면 그 년놈을 밖으로 내 보네.

그 목소리에 석호가 자리에 멈춰 서서 지수를 쳐다보았다. 그러자 지수가 석호를 노려보며 말했다.

- 마음 안에서 들끓고 있나? 네 놈이 이 년 몸 안으로 내가 들어가라고 하면 그렇게 하도록 하지.

석호는 주먹을 불끈 쥐며 말했다.

- 네가 원하는 대로 해 주마.

석호의 말에 장군 보살과 세현이 동시에 '안 된다.'고 소리를 쳤다.

- 안 되지라. 이건 한울님을 더 화가 나가 하는 일이랑께요. 즐대로 그랴서는 안 된당께요.

하지만 석호는 장군 보살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 저는 사람을 살리는 임무를 가진 사제입니다. 작두가 아니라 지옥이라도 갈 의향이 있습니다.

장군 보살은 석호의 말에 눈물을 주르르 흘리며 말했다.

- 시... 신녀님의 노력이...

석호는 그 내막 따위야 어떻든 지수를 살리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이라 생각했다. 사람의 목숨을 살리는 데 그것이 미신이건, 악습이건 상관이 없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한 몸을 희생을 해서 누군가를 살릴 수 있다면 그것으로 할 수 있는 모든 일은 다 할 수 있다고 믿었다.

- 자, 네가 원하는 게 뭔가?

지수는 깔깔대며 웃으며 말했다.

- 좋아. 아주 좋아. 네 놈은 당장 나가서 그 어울리지 않는 신부 옷 벗어버리고 무당복으로 갈아입고 와라. 그리고 네 놈의 몸 안에 들어 있는 신을 불러내서 나를 이 년 몸에 들게 해.

석호는 고개를 끄떡이고는 밖으로 나왔다. 세현이 석호의 옆으로 다가오며 말했다.

- 그건 안 돼요. 신부님, 차라리 이 일을 접어요. 나머지는 모두 제가 책임질게요.

세현의 말에 석호는 고개를 저었다.

- 이 일은 어쩌면 저의 정체성을 찾는 과정일지도 모릅니다. 저 역시 가끔 저에게 찾아오는 이질감을 알고 싶었습니다.

석호의 말에 장군 보살이 무서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 안 된당께요. 그건 신녀님이 즈보고 반드시 막으라고 혀신거랑께요.

장군 보살의 말에 석호가 장군 보살을 보며 말했다.

- 어떤 과거가 있는지 저는 잘 모르겠지만, 지금은 지수 씨를 살리는 게 우선입니다.

석호가 그 말을 남기고 가려고 하자 장군 보살이 나직하게 한 마디 했다.

- 으쩜 영원히 무당으로 살지도 모른당께요.

장군 보살의 말에 석호가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 무당이 아니라 천치(天癡)로 살아도 하느님께서 가라는 숙명이라면 기꺼이 감내하겠습니다.

석호의 말에 장군 보살은 자리에 주저앉았다.

- 으쩔까나... 우리 신녀님 불쌍혀서...

석호가 밖으로 나가자 세현이 장군 보살을 잡아 일으켰다.

- 장 신부님을 아세요?

세현의 말에 장군 보살은 힘없이 고개를 끄떡였다. 그리고는 구석으로 가서 석호의 과거에 대해 얘기를 했다.

- 즈 신부님은 보자마자 알것더랑께. 그 신녀님의 아들이라고. 베락을 맞은 것츠럼 정신이 읎었당께. 거기 이마에 작은 흉터... 그건 영원히 잊지 못한당께..

- 신녀님이요? 그리고 아들이요?

세현은 장군 보살에게 석호의 과거를 들을 수 있었다. 장군 보살이 새끼 무당일 때, 영험하다는 무당의 제자로 들어가서 그 수발을 다 들었다. 그 무당은 한울님이라는 영험한 신을 모시는 사람이었고, 그 사람이 석호의 어머니였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석호의 어머니의 미색(美色)이 남달랐기에 많은 이들이 석호의 어머니를 호시탐탐 노렸지만, 석호의 어머니는 그들을 모두 몰아냈는데, 어느 새벽 치성을 드리고 있을 때 알지도 못하는 이에게 겁탈을 당했다고 했다. 뜻밖에도 석호의 어머니는 임신을 하게 되었고, 아이가 태어나자 그것도 운명이라며 정성스럽게 키웠다고 했다. 그런데 아이는 보통 아이들과 다르게 항상 우울한 표정을 지었고, 가끔은 엉뚱한 행동을 해서 석호의 어머니 속을 썩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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