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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계(逐界)-쫓겨난 이들의 세계-136화 (136/309)

축계(逐界) - 쫓겨난 이들의 세계 - 3장 - 6. 의식의 분열(2)

장군 보살은 석호를 보자마자 손사래를 치며 돌아섰다. 아무 영문을 모르는 세현과 석호는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 왜 그러세요? 그냥 신부님...

세현이 민망해하며 말을 하자 장군 보살은 마치 몹시 불쾌한 일을 당한 것처럼 퉁명스럽게 말했다.

- 아따, 그것이 신부가 아니라 신부 할애비가 와도 저짝은 아니랑께.

장군 보살은 그러면서 몸을 휙 돌렸다.

- 이 신부님은 신내림이라 그런 걸 부정하는 분이 아니세요.

세현이 장군 보살에게 말을 하자 장군 보살은 버럭 소리를 쳤다.

- 그란 게 아니랑께. 신부라서가 아니라 저짝이라서 안 된당께.

장군 보살의 말에 석호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 저라서 안 되는 이유가 있나요?

석호의 물음에 장군 보살은 몹시 당황한 표정이 되어서 말을 했다.

- 그건 그짝한티 내가 말할 수 없는 것잉께...

장군 보살의 완강한 태도에 세현은 조금 당황하며 말했다.

- 무슨 이유 때문인지 모르겠지만요 이렇게 무작정 안 된다고 하시면...

세현의 말에 장군 보살이 오히려 답답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 그랑께 나가 지금 말을 혀면 천기누설잉께, 그라고 이 일랑게 그리 호락호락하질 않어. 동티라도 나믄 모두 위험허당께.

장군 보살의 말에 석호가 제안을 했다.

- 일단은 같이 가시고 제가 밖에서 기다리죠.

그러나 석호의 제안도 일언지하에 거절을 했다.

- 지금만 혀도 부정 탔는디 같이 간다고? 난 그러코롬은 못 허것소.

장군 보살의 말에 석호가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 그럼 두 분이서 출발하시죠. 저는 따로 가겠습니다.

석호의 말에 세현이 한숨을 쉬며 석호에게 조심스럽게 말했다.

- 안 그러신 분인데 이상하네요.

세현의 말에 석호가 빙그레 읏으며 말했다.

- 예수쟁이한 부정탄다는 말은 여러 번 들어서 상관없습니다. 그런데...

석호의 말에 세현이 고개를 들어 석호를 쳐다보았다. 석호는 세현의 눈을 보며 말을 했다.

- 예수쟁이 때문에 같이 있는 게 싫은 게 아니라 그냥 저 때문에 그렇다고 하시는 걸 보면 뭔가 석연치 않은 게 있어서요.

세현도 장군 보살의 말에서 뭔가 위화감을 느꼈는데 그 이유가 무엇인지 감이 오지 않았다가 석호의 말을 듣자 크게 고개를 끄떡였다.

- 그런 것 같아요. 무슨 일일까요?

세현의 말에 석호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말을 했다.

- 말 해달라고 해서 하셨다면 이미 말씀하셨겠죠. 차근차근 풀어가면 되겠죠.

석호의 말에 세현은 고개를 끄떡였다.

- 일단 저가 장군 보살님이랑 같이 갈게요. 신부님께서는 뒤따라 오세요.

세현이 석호와 얘기를 마치고 장군 보살 옆으로 다가가자 장군 보살이 조금 못마땅한지 툴툴거리며 말했다.

- 저짝하고 어울리믄 신상에 안 좋당게. 저짝이나 이녁이나 너무 세.

장군 보살의 말에 세현이 웃으며 말했다.

- 더 센 남자가 하나 더 있어서 괜찮아요.

세현의 말에 장군 보살이 눈이 커다래지며 말했다.

- 더 센 눔이? 허따 두 사람도 여럿 잡아먹을 상인디...

장군 보살의 말에 세현의 표정이 조금 흐려졌다. '여럿 잡아먹을 상'이란 말이 가슴을 후벼 팠다. 세현이 잠시 멍한 표정이 되자 장군 보살이 한 마디 했다.

- 얼른 가장께. 나같은 팔자가 안 된 것만으로도 괜찮응건께.

장군 보살의 말을 듣고 세현은 깜짝 놀라며 차에 시동을 걸었다. 세현의 차가 떠나는 걸 지켜보던 석호는 다소 굳은 얼굴이었다.

- 어쩌면 저 장군 보살이..

석호는 그러다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 조급해지지 말자. 일단 가보면 알겠지.

석호 역시 차에 올라 시동을 걸었다. 그런데 평소 그렇지 않던 차가 갑자기 덜덜거리며 시동이 꺼졌다.

- 응?

다시 시동을 걸었지만 이번에는 플러그 튀는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  뭐지?

석호는 다시 시동을 걸었지만 여전히 시동아 걸리지 않았다.

- 오지 말란 말인가?

석호는 차에서 내려 도로 앞 쪽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멀리 보이는 택시를 향해 손을 들었다.

- 더 부딪혀 보고 싶군.

석호는 택시에 올라타 병원 쪽으로 향했다. 석호가 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원호와 세현이 실랑이 중이었다. 자신이 저 실랑이에 끼어들어 봤자 이득이 될 게 없다고 판단한 석호는 그냥 로비 끝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 이번이 마지막이야.

원호는 답답하다는 듯이 말했다.

- 이건 중대한 의료 규정 위반이에요.

원호의 말에 세현이 원호의 팔을 잡으며 말했다.

- 그러니까 내가 다 책임진다니까.

세현의 말에 원호가 조금 격앙된 목소리로 말했다.

- 원장님은 지금 많이 이상해요. 뭔가.. 저 환자의 병을 치료하고자 하는 게 아니라 저 환자를 통해 뭔가를 알아내려는 것 같아요.

원호의 말에 세현이 표정을 바꾸며 말했다.

- 내가 생각할 땐 오히려 원호 씨가 이상해. 병원 규정이나 방침보다 환자의 안위가 우선 아니었어? 아니면 저 환자가 특별해?

세현의 말에 원호가 조금 화가 난 표정으로 말했다.

-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저에게 환자는 다 같습니다. 오히려 원장님께서 저 환자를 더 특별하게 생각하시는 것 같은데요?

원호의 말에 세현은 크게 말했다.

- 특별해. 저 환자의 딸도 특별하고. 난 그 불쌍한 딸한테 정상적인 엄마를 보내주고 싶을 뿐이야.

세현의 말에 원호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 사연이 안타깝다고 이러는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세현은 주먹을 쥐었다. 평소 자신의 신념과 반대되는 행동을 해야했기 때문이었다. 세상 무엇보다 의료적 행위가 우선이어야 하고, 어떤 경우에도 사적인 감정을 개입하여 치료에 임해서는 안 된다는 지론을 지금 깨야 했기 때문이었다.

- 치료는 꼭 의학적인 게 최선이 아닐 수도 있어.

세현의 말에 원호는 당황하며 말했다.

- 워.. 원장님.

- 그동안 내가 내 아집에 사로 잡혔던 거야. 다른 수단을 이용해서 개선될 수 있다면 이용하는 게 올바른 거였어.

세현의 담담한 말투에 원호는 오히려 크게 당혹스러웠다.

- 그건 아닙니다!

원호의 말에 세현은 힘없이 고개를 저었다.

- 나도 그렇게 믿고 살았어. 그런데 최근 몇 년 사이에 생각이 바뀔 만한 일을 겪었더니 내 생각도 많이 바뀐 것 같아.

원호는 언제나 냉철했던 세현이 왜 저렇게 바뀌었을까 궁금했다.

- 정태 선배가 치료를 잘못하고 있나 보네요.

원호가 조금은 냉소적으로 말했다. 세현은 정태 얘기가 나오자 마음 한 구석이 서늘했다. 네덜란드로 공부를 하러 떠난 정태가 갑자기 그리워졌다.

- 글쎄. 정태 씨도 나의 이런 결정에 찬성할 거야. 세상에는 믿을 수 없는 일이 워낙 많으니까. 그건 원호 씨도 잘 알 거 아냐?

무언가를 짐작하는 듯한 세현의 말에 원호는 당황하며 고개를 저었다.

- 제.. 제가... 저는 그런 일은 잘 모릅니다.

세현은 원호가 당황한 걸 짐짓 모른 척 하며 얘기를 꺼냈다.

- 우린 의사잖아. 물론 내가 하려고 하는 짓이 비과학적이고 상식에 어긋난다는 걸 알아. 하지만 환자를 치료할 수 있다면 그보다 더한 것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해.

세현의 부드러운 말에 원호의 표정이 누그러졌다. 하지만 입에서는 여전히 부정적인 말이 나왔다.

- 보호자의 동의도 없고 또 아직 저 스스로도 확신이 들지 않아서요.

세현은 원호를 뚫어지게 보며 말했다.

- 보호자의 동의가 긴급을 요하는 치료보다 우선하지 않아. 그리고 이 병은 확신으로 치료를 할 수 없잖아.

원호는 세현이 자신을 그렇게 쳐다보자 마치 옷을 모두 벗고 그녀 앞에 선 것처럼 부끄러워졌다. 원호는 입을 꾹 다물고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가 뭔가를 결심한 듯이 말을 꺼냈다.

- 알겠습니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이상하다면 바로 멈추셔야 합니다.

세현은 원호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 고마워. 어려운 결단을 내려줘서.

세현의 말에 원호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 그냥 결정한 게 아니라 저보다 권위자의 말을 믿고 결정한 겁니다. 만약에 이번에도 아무런 효과가 없다면 원장님께 실망할지도 모릅니다.

원호의 말에 세현은 같이 웃으며 말했다.

- 내가 하는 것도 아닌데 겁나는걸.

세현은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오며 장군 보살에게 전화를 했다.

- 올라오셔도 되요.

그리고는 석호에게 전화를 걸었다. 석호는 병실 앞에 서 있다가 세현의 전화를 받고 잠시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병실 안에는 지수가 넋을 놓고 누워 있었다. 석호가 들어오는 것도 인식하지 못한 채 그냥 누워만 있었다. 석호는 그런 지수 옆에 가서 무릎을 꿇고 기도를 올렸다.

- 이 불쌍한 여인을....

그런데 그 순간 지수의 손이 석호의 머리를 만졌다. 석호는 놀라서 고개를 들었다.

- 불쌍한 우리 아들...

지수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에 석호는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 어.... 엄마...

하지만 그 순간 석호는 악몽에서 깨어나듯 벌떡 일어났다.

- 넌.. 넌...

석호의 격한 반응에도 지수는 여전히 부드러운 표정으로 석호를 보며 말을 했다.

- 고생이 많지. 못난 에미 만나서...

석호는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쳤다. 가슴 속의 동요를 잠재우느라 석호는 눈을 감고 기도를 올렸다. 그러나 마음속에는 가서 안겨 울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하지만 석호는 이를 악 물고 참아냈다.

- 소... 소라 양을 위해서도 이겨내셔야 합니다.

석호의 말에 지수 역시 주춤했다. 그러다가 어느 샌가 정신을 차렸는지 석호에게 물었다.

- 우리 아기는 괜찮죠?

석호는 지수의 말에 고개를 끄떡였다. 지수는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 우리 아가는 신부님만큼 아픔이 많은 애랍니다. 잘 보살펴 주세요.

지수의 말에 석호는 강한 어조로 말했다.

- 지수 씨가 이겨내고 소라 양을 돌보셔야지요.

석호의 말에 지수는 힘없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 그거 아세요? 저는 제가 어떻게 될지 알고 있어요. 이런 결말을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어요. 그냥 알고 있죠. 어쩌면 신부님을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몰라요. 언제일지 모르지만 어떻게 될지는 아는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은....

석호는 지수를 측은하게 쳐다보았다. 그리고 오늘은 다른 때보다 지수의 성격으로 오랜 시간 있가고 생각할 무렵 지수의 앙칼진 목소리가 들렸다.

- 하하하하. 왔구나. 왔어.

석호는 지수의 눈이 뒤집히는 걸 보며 뒤를 쳐다보았다. 뒤에는 세현이 서 있었고 그 뒤로 장군 보살과 작은 보살, 원호가 뒤이어 오고 있었다. 석호는 세현을 보고 미소를 지으며 병실에서 나왔다. 석호가 밖으로 나가자 장군 보살과 작은 보살, 원호가 세현의 뒤를 따라 병실 안으로 들어왔다. 장군 보살은 병실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마치 번개를 맞은 사람처럼 몸을 떨었다.

- 신.. 신녀님...

작은 보살은 장군 보살의 모습에 당황하였다. 원래 접신을 하기 위해서는 치성을 드리고 여러 요식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지금은 그냥 병실 안으로 들어오는 것만으로 마치 강신한 것과 같은 반응을 보였기 때문이다.

- 재주가 있는 년이구만.

장군 보살은 정신을 차리고 지수 앞에 꼿꼿이 섰다. 그러다가 침대를 향해 무릎을 꿇고 공손히 절을 했다.

- 그간 고생이 심하셨습니다. 신녀가 장군님을 보시겠습니다. 오늘이 길일이니 한울님을 뫼셔도 되겠는지요? 그 부질없는 육신도 많이 괴로웠습니다. 장군님께서 자비롭게 죄많은 육신을 용서해 주시옵소서.

장군 보살 입에서 뜻밖에도 아주 정확한 표준어가 흘러나왔다. 장군 보살 특유의 억센 전라도 사투리가 하나도 섞이지 않은 말투였다. 세현이나 작은 보살은 모두 놀라운 표정으로 장군 보살을 쳐다보았다. 그러나 지수만은 몹시 불만스러운 듯이 얘기를 했다.

- 네 년은 그릇이 못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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