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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계(逐界)-쫓겨난 이들의 세계-135화 (135/309)

축계(逐界) - 쫓겨난 이들의 세계 - 3장 - 6. 의식의 분열(1)

6. 의식의 분열

다음 날 세현은 차를 몰고 내키지 않는 길을 갔다. 왠지 이 길로 가면 또 다시 자신에 대한 무언가가 밝혀질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세현이 골목 앞에 차를 세우고 골목 안으로 들어가 초록색 대문 앞에 섰다. 2년이나 지났지만 변한 게 하나도 없어 보이는 골목과 대문이었다. 세현은 호흡을 가다듬으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리고 CCTV를 향해 인사를 하며 초인종을 눌렀다. 그러자 인터폰으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 안녕하세요. 저... 일전에 찾아왔던...

세현이 말을 하자 기계식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대문이 열렸다. 세현은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가자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아주머니 한 분이 밖으로 나왔다.

- 안녕하세요. 지난번에...

세현이 여기까지 말하자 아주머니는 고개를 끄떡이더니 말을 했다.

- 세현 씨죠? 보살님께서 오실 거라고 얘기를 했었거든요.

세현은 이 할머니가 그냥 허튼 점쟁이는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 안에 계신가요?

아주머니는 안으로 세현을 들이며 말을 했다.

- 지금은 안 계세요. 주왕산에 들어가셨거든요.

- 아.. 그래요?

세현은 그 말에 조금 실망을 했다. 그러나 아주머니는 갑자기 메모장을 꺼내 세현에게 건네주었다. 거기에는 주소가 하나 적혀 있었다.

- 이게 뭐죠?

- 주소에요.

세현은 주소를 내려다보며 피식 웃었다. 누가 주소인지 모르나 하는 표정으로 아주머니를 쳐다보자 아주머니가 조금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 세현 씨가 오면 주라던 주소에요. 보살님이 치성(致誠)을 드리느라 산으로 들어가신지 벌써 2년이 다 되었어요. 그 때 세현 씨가 오고 난 그날로 들어가셨죠.

세현은 그 말에 몹시 놀랐다. 지난 2년간 치성을 드리러 산에 들어가서 내려오지 않은 것도 놀람이었지만, 그 타이밍이 자신이 다녀간 이후라는 것이 더욱 놀라웠다. 또 자신이 다시 올 걸 알고 주소를 남겼다는 것도 놀라운 일이었다.

- 그럼 주왕산에 들어가신지 2년이나 된 거에요?

세현의 말에 아주머니가 고개를 끄떡였다.

- 아무튼 보살님께서 거기서 기다린다고 하셨으니까 가보세요.

세현은 아주머니에게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와 석호에게 전화를 했다.

- 시간이 조금 걸릴 것 같아요.

세현이 자초지종을 설명하자 석호가 알겠다고 대답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세현은 그 길로 주소를 내비게이션에 찍고 장군 보살을 찾으러 주왕산으로 향했다. 주왕산으로 가는 길은 세현의 생각보다 멀었다. 다섯 시간을 달려 주왕산 근처에 도착하자 이미 날이 저물고 있었다. 세현은 5월의 푸름이 서려 있는 주왕산 자락을 보자 마음이 탁 트이는 것 같았다. 멀리 보이는 주왕산 봉우리는 서기(瑞氣)가 서린 듯이 보였고, 그 아래로 안개가 끼어 있는 것이 마치 신선이 사는 세상처럼 보였다. 이미 어둠이 내리고 있어서 그런지 산행객들이 하산을 하고 있었다. 세현은 그들과 반대로 안쪽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주소에 적혀 있는 대전사(大典寺)가 보였다. 세현이 절 안으로 들어가자 스님 한 분이 세현에게 다가와 말을 했다.

- 관람 시간이 끝났습니다.

세현은 스님에게 인사를 하며 말을 했다.

- 그게 아니구요. 장군 보살님을 만나 뵈러 왔는데요.

세현의 말에 스님이 이상하다는 듯이 세현을 쳐다보았다.

- 장군 보살님이요? 글쎄요. 저희 사찰에는 그런 무속인께서 안 계시는데요.

스님은 세현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세현 역시 절에 무당이 있다는 것이 의아하기는 마찬가지였지만, 주소에 적힌 곳이 그 곳이었기에 세현은 무턱대고 찾아온 것이었다. 전화번호도 없었기에 세현은 스님의 말을 듣고 실망하여 발걸음을 돌렸다.

- 뭐지? 하긴 처음부터 이상했어.

이렇게 대책 없이 찾아온 스스로가 못나게 여겨졌다. 그리고 주차장 쪽으로 천천히 걸어가고 있는데 뒤에서 아까 만났던 스님이 헐레벌떡 달려오며 세현을 불렀다.

- 시주님! 잠깐만요!

세현은 차에 오르려다가 뒤를 돌아보았다. 스님이 세현에게 앞에서 숨을 고르며 말했다.

- 헉헉.. 큰 스님께서 뵙자고 하십니다.

세현은 일면식도 없는 절에 있는 큰 스님이 왜 자신을 보자고 하는지 궁금했지만, 그 스님을 따라 사찰 안으로 들어갔다. 마당 앞에 있는 탑을 지나 안에 있는 작은 사찰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그 안에는 큰 스님이라고 불린 노스님 한 분과 장군 보살이 앉아 있었다.

- 아! 보살님.

세현이 장군 보살을 보고 아는 체를 하자 장군 보살이 노스님에게 말을 했다.

- 이 분랑게요.

노스님이 장군 보살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떡였다. 세현은 노스님 앞에서 주춤주춤했다. 앉으라는 말도 그렇다고 다른 말도 없이 장군 보살과 노스님이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것이 멋쩍었다. 노스님은 그런 세현을 보며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 앉으시오.

노스님의 낮고 무거운 목소리에 세현은 저절로 노스님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장군 보살은 그런 세현을 보며 말했다.

- 뽀짝 붙어브랑께.

세현이 장군 보살을 보며 그녀 앞으로 조금 다가가자 장군 보살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 나헌티 말구 스님한티 뽀짝 붙어 앉으랑께.

세현은 그 말에 스님 쪽을 쳐다보았다. 스님은 눈을 반나마 감은 것처럼 지긋이 세현을 쳐다보았다.

- 맞지라? 내 말이.

스님이 무언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떡였다. 그러며 다시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 시주님께서는 강한 분입니다. 저 주왕산에 있는 기암(奇巖)도 자연과 어울리면 아름다움이 됩니다.

스님의 알 듯 모를 듯한 말에 세현은 고개를 조아리며 말했다.

- 큰스님의 말씀 감사합니다.

큰스님은 장군 보살을 보며 말했다.

- 행자(行者)님께서 고생하셔야겠네요.

큰 스님과 장군 보살의 말에 세현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도대체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 것인지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가 없었다. 큰 스님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밖으로 나갔다. 큰 스님이 밖으로 나가자 장군 보살이 세현을 보며 말했다.

- 올 줄 알았당께.

세현은 장군 보살의 말을 들으며 도대체 무슨 영문인지 몰라 물었다.

- 2년 동안 여기 계셨다고 들었는데요.

세현의 말에 장군 보살은 특유의 얼굴 찡그림을 하고 말을 했다.

- 아가씨랑 만나봉께 나가 할 일이 아직 남았더라구. 그래가 내 여그로 온 거제.

- 그런데... 제가 올 줄 아셨다는 말은 무슨 말이죠?

세현의 말에 장군 보살은 잠시 눈을 감았다 뜨며 말했다.

- 나가 이 짓으로 밥 먹고 산 지가 50년이여. 아가씨를 봉께 은제고 나랑 한 번, 아니 여러 번 엮일 운명이드라고. 그란디 평소랑 다르게 암만 생각혀도 당췌 알 수가 웂었제. 그랴가지고 아직 나가 신력이 부족한갑다 싶어 주왕상에 옹께 그날 딱 기운이 오능겨. 아무 날에 아가씨랑 엮일텡께 준비하라고. 그라지 않으면 나가 어찌 알았당가?

세현은 이런 상황에 익숙지 않아 그냥 고개만 끄떡이다가 자기가 찾아온 이유에 대해 얘기를 했다.

- 신내림이라고? 그랑 건 준비도 많이 필요허고 손도 많이 타는디...

그 말에 세현은 조금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 병원에 있는 사람이에요. 어떻게 안 될까요?

장군 보살은 고개를 끄떡이다가 세현을 뚫어지게 보았다.

- 신을 뫼시는 사람이 한 사람 있제? 그 사람이 방법을 알틴디...

세현은 그 말에 깜짝 놀라 얘기를 했다.

- 뭐 다른 의미이지만 신을 모시는 분이 한 명 있어요. 신부님인데...

세현의 말에 장군 보살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말을 했다.

- 신부건 목사건 신을 뫼시는 건 같응께 걱정 말고... 그란디...

장군 보살이 눈을 가느스름하게 뜨고 세현을 보며 말했다.

- 그 뭐당가... 할머니 모습이 조금 약해졌구만. 아가씨도...

장군 보살의 말에 세현은 흠칫 놀랐지만, 특유의 부드러운 미소로 대답했다.

- 그 동안 일이 많아서요. 아무튼 조만간 제가 연락을 드릴 게요. 그 때 오셔서 꼭 좀 도와주세요.

세현의 말에 장군 보살을 크게 고개를 끄떡이며 말했다.

- 아따 나도 이제 서울로 가야지라. 여그서 맨날 불공만 들여 싸고 기도만 했더니만 좀이 쑤셔가 몬살겠당께. 나도 조만간 서울로 올라갈팅께 필요할 때 걱정말고 부르랑께.

세현은 장군 보살에게 인사를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장군 보살은 대전사 밖으로 나가는 세현의 뒷모습을 보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 월맨코롬 고생을 더 햐야 업보에서 벗어난당가... 신령님도 무심하시지... 다 늙은 나가 뭔 심이 있다고 저런 소용돌이로 밀어 넣으시는지..

얼마 후 세현이 전화를 하자 장군 보살은 한달음에 서울로 올라왔다. 오면서 미리 작은 보살에게 신내림 준비를 해 놓으라고 전화를 했기에 신당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만반의 준비가 끝난 상태였다.

- 은제 시작헌당가?

장군 보살의 전화를 받은 세현은 조금 난감했다. 원호가 워낙 완강하게 반대를 하고 있었고 지수의 남편에게도 아직 동의를 구하지 못한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 조금 시간이 걸릴 것 같아요. 죄송해요. 제가 미리부터 설레발을 쳐서.

세현이 미안해 하자 장군 보살은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 아니랑께. 이때쯤 나도 올라고 혔응께 그리 걱정 마드라고.

- 네. 제가 준비되면 바로 연락을 드릴게요.

세현은 장군 보살과 전화를 끊고 지수의 남편 연락처로 전화를 걸었다. 지금까지 전화한 것만도 수십 차례였지만 아무 반응이 없었다. 문자 메시지도 남겨보고, 음성 메시지도 남겼지만 아무 응답이 없자 세현은 답답하고 초조했다. 그 때 석호에게서 전화가 왔다. 세현은 얼른 전화를 받았다.

- 지수 씨 남편 말입니다.

석호가 얘기를 하자 세현이 변명하듯 말을 꺼냈다.

- 계속 연락을 해 보는데 안 되네요.

하지만 석호에게서 의외의 대답이 들려왔다.

- 철구 씨 사무실에 지수 씨 남편 행방을 의뢰했는데요... 지금 행방불명 상태랍니다.

- 네?

석호의 말을 들은 세현은 자신도 모르게 크게 반문을 했다.

- 제가 엑소시즘을 할 때 가족의 동의룰 얻어야 하기 때문에 철구 씨랑 같이 일하시는 한수 씨께 의뢰를 해 놨었거든요. 그런데 오늘 연락이 왔습니다. 벌써 실종된 지 6개월이 넘었다고 그러더라구요.

그 순간 세현은 심각한 표정이 되었다.

- 그렇다면 원호 씨의 말이 거짓말이겠군요.

세현의 말에 석호는 침묵을 했다.

- 그럼 소라 양은 어떻게 된 거죠? 치료비가 만만치 않을 텐데요.

세현의 말에 석호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대답을 했다.

- 저도 그게 궁금했는데, 소라 양한테 보험이 들어져 있더라구요. 유전병에 대한 보험이. 금액도 무려 10억 원이나 되더라구요.

석호의 말에 세현은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다.

- 10억 원이요? 아무리 돈이 많아도 그렇게 보험을 들지는 않잖아요.

석호 역시 그 말에 동의를 하며 말을 했다.

- 그렇죠. 아마도 지수 씨나 남편이 소라 양에게 유전병이 발병할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는 얘기겠지요.

세현은 그 말에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떡였다.

- 남편이 고위직 공무원이었고 집에 재산도 어느 정도 있으니까 보험 회사에서는 당연히 그런 보험을 처리해 준 거겠지요.

석호의 말에 세현은 더욱 마음을 굳혔다.

- 신 내림을 받도록 하죠.

세현의 말에 석호가 잠시 침묵을 하다가 말을 꺼냈다.

- 음... 알겠습니다. 안 되면 위력이라도 써 봐야죠.

석호와 전화를 마치고 세현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도대체 무병과 같이 원인없는 병을 앓고 있는 지수에게서 무엇을 알아내려고 그런 것일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아무리 생각을 해도 도무지 감이 오지 않았다. 세현은 생각을 접고 일단 부딪혀 보기로 했다. 며칠 후 세현은 장군 보살과 석호에게 전화를 해서 신 내림을 받자고 얘기를 했다. 두 사람은 일단 장군 보살의 집 앞에서 만나기로 했다. 세현이 장군 보살 집  앞에 도착했을 때 멀리서 석호가 오는 것이 보였다. 골목 안에서 장군 보살이 나오는 것을 본 세현이 가까이 다가가 인사를 했다.

- 서울로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어요.

세현이 장군 보살 앞으로 다가오며 말을 하자 장군 보살은 세현을 보고 반가워하며 다가왔다.  그런데 장군 보살은 세현을 보며 다가오는 석호를 보자마자 대번에 낯빛이 변했다. 그러더니 석호 쪽을 외면하면서 세현에게 말했다.

- 여그는 오능게 아니랑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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