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계(逐界) - 쫓겨난 이들의 세계 - 3장 - 5. 운명의 순환(5)
- ?某的?子也? (장 씨 아들도 그렇다면서?)
철구는 그 목소리에 어디론가 몸을 피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건물 뒤편 길이어서 앞길보다 인적이 더 드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뒷길에서 누군가를 만날 줄은 몰랐기에 철구 역시 크게 당황했다. 철구는 가까이 보이는 덤불 쪽으로 몸을 옮겼다. 최대한 발소리를 죽여 덤불 속에 바짝 몸을 숨겼다.
- ?多, 把好?.. (돈을 많이 줘서 좋은데...)
두 사람은 철구가 숨어 있는 덤불 앞을 지나치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철구는 그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자세히 알지는 못했지만, 육감적으로 두 사람이 이 길을 지나가는 것은 단순히 어디를 가기 위한 것이 아니라 순찰의 의미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두 사람의 모습이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것을 확인한 후에 철구는 덤불 앞에서 빠져 나왔다. 철구는 빠른 걸음으로 건물들을 지나쳐 자신이 세워둔 차 앞으로 다가갔다.
- 짱깨 나라는 무섭군. 아무튼 빨리 벗어나야겠는데..
철구가 세워둔 차 근처로 갔을 때 갑자기 어떤 목소리가 들렸다.
- ?住了!(붙잡아!)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리자 차 주변으로 몇 사람이 떼로 몰려들었다. 철구는 그들끼리 뭐라고 얘기하는 소리를 들었지만 알 수가 없었기에 무력으로 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 What are you doing here? (여기서 뭐하고 있었나?)
누군가가 철구에게 영어로 물었다. 철구는 영어로 물어본 이를 쳐다보며 말했다.
- It was during a walk. (그냥 걷는 중이었는데.)
철구의 대답에 영어로 물은 이가 비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 This is not tourist destination. (여긴 관광지가 아닌데.)
- Whatever I do, my mind. (뭘 하든 내 맘이지.)
철구 역시 빈정거리며 말을 했다. 그러자 영어로 얘기하던 이의 얼굴이 일그러지면서 주변 동료들에게 소리를 쳤다.
- 除掉! (없애 버려!)
그러자 주변에 있던 남자 두 사람이 철구에게 슬금슬금 다가왔다. 철구는 그들을 보며 피식 웃었다. 철구의 웃음을 본 두 사람이 소라를 치며 철구에게 주먹을 내뻗었고, 철구는 주먹을 피하며 구둣발로 상대의 명치를 걷어찼다. 그리고 옆에서 어정쩡하게 들어오는 녀석에게 몸을 돌리고는 두 다리를 걷어차 넘어지게 했다. 그리고 정강이 부근을 발로 밟았다. 밟힌 녀석의 정강이에서 우두둑 소리가 났고 바로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철수가 순식간에 두 명을 제압하자 나머지 놈들이 철구에게 달려들었다.
- 별 것도 아닌 것들이...
철구는 달려드는 놈들을 향해 주먹을 내뻗었고, 그들은 철구의 주먹을 맞고 한참을 밀려나 쓰러졌다. 그 때 한 놈아 철구의 허리를 부여잡으려 달려들었다. 철구는 달려드는 놈을 향해 몸을 솟구쳐 올렸고 오른발이 놈의 턱에 정확하게 가서 맞았다. 철구에게 가격을 당한 녀석은 그 반동으로 몸이 뒤로 젖혀지며 바닥에 머리를 들이받고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 때 뒷목 쪽으로 무언가 내려치는 느낌이 들어 몸을 피했지만 반응이 조금 느렸는지 어깨 쪽에 몽둥이가 그대로 내려 꽂혔다. 철구는 화끈거리는 어깨를 한 번 돌리고는 몽둥이를 든 녀석을 향해 몸을 날렸다. 몽둥이를 든 녀석은 철구를 향해 다시 몽둥이를 휘둘렀지만 철구는 그 몽둥이를 피하며 발로 낭심을 걷어찼다. 그러자 게거품을 물며 쪼그려 앉았다. 철구는 눈에 살기를 띠고 다른 녀석들도 하나씩 제압해 나갔다. 팔이 부러진 녀석도 있었고 머리가 깨진 녀석도 있었다. 철구는 영어를 쓰는 녀석이 이들의 책임자라고 생각했다. 다른 녀석들을 제압하는 동안에도 도망가지 못하게 그 놈을 곁눈질로 살폈다. 바닥에 낑낑대며 쓰러져 있는 녀석들을 놔두고 철구는 몸을 날려 아까 그 놈에게 다가갔다. 철구가 데리고 온 놈들을 모두 제압을 하자 영어로 얘기한 녀석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 Let's talk seriously. (진지하게 얘기해 볼까?)
철구의 말에 녀석은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쳤다. 그는 철구가 알지도 못하는 중국어로 뭐라고 중얼거렸다. 그러나 철구는 그의 말에 귀를 후비며 말했다.
- 이 새끼, 뭐래는 거야?
철구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에 그는 화들짝 놀라며 말을 했다.
- 하.. 한국어 할 줄 아십니까?
철구는 오히려 그의 입에서 한국어가 나온 것이 놀라 물었다.
- 어? 너 뭐 하는 새끼야?
그는 갑자기 태도가 돌변하더니 인사를 했다.
- 한국에서 오신 분인 줄 모르고 죄송합니다. 저는 근처에 있는 똘마니가 들어온 줄 알고...
철구는 그 순간 그가 뭔가 자신에 대해 착각을 하는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하긴 이런 시골 마을 공장 지대에 한국인이 올 리 만무하기 때문에 하는 착각이라고 생각했다.
- 그렇다고 다짜고짜 공격을 하면 어떻게 합니까?
철구의 말에 그는 멋쩍은 듯이 뒤통수를 긁으며 말했다.
- 차도 허름하고 또 아무런 언질도 없으셔서...
철구는 그의 말에 어이없이 웃었다. 철구가 웃자 그도 슬그머니 얼굴에 웃음을 띠며 말했다.
- 어제 상부에서 연락을 받았는데 꽤 빨리 오셨네요.
철구는 그 순간 내부로 들어가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철구는 그가 정말 착각을 한 것인지 아니면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연극을 하는 것인지 확인을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 그런데 당신은 어디 소속입니까?
철구의 말에 그는 갑자기 생각이 났다는 듯이 주머니를 뒤지더니 명함을 꺼냈다.
- 아, 죄송합니다. 제 소개를 먼저 한다는 게 늦었네요.
철구는 그가 내민 명함을 쓱 한 번 보았다.
'신아메디컬 사업 본부 팀장 오경훈'
철구는 손을 내밀며 말했다. 철구는 '신아'라는 이름을 보자 자신도 모르게 눈이 가늘어졌다. 그러다가 이내 표정을 풀고 경훈을 보며 말했다.
- 반갑습니다. 공성수라고 합니다.
경훈은 철구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경훈은 뭔가 민망한 듯이 말을 꺼냈다.
- 제가 한국에서 오신다는 말씀만 들었는데, 어디서 오셨나요?
철구는 그 말에 조금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 맥컬리 병원에서 왔습니다. 저 말고도 또 누가 오기로 했나요?
철구의 말에 경훈은 고개를 끄떡이며 말했다.
- 본원에서 오셨군요. 톰슨 병원에서도 한 분 오신다고 해서요.
- 아, 그렇군요.
철구는 무심한 듯이 말을 했다. 그러자 경훈이 어디론가 전화를 했다. 철구는 조금 날카로운 말투로 얘기를 했다.
- 어디다 거십니까?
철구의 민감한 반응에 경훈은 조금 당황해서 말을 했다.
- 여기 상황을 정리하라고...
철구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 본원에서는 비밀 업무라고 하던데...
철구의 말에 경훈이 고개를 끄떡이며 말했다.
- 네. 오신 건 비밀로 부칠 겁니다.
철구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 비밀치고는 꽤 요란하군요.
철구의 말에 경훈이 전화기에 무어라고 짧게 얘기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는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 죄송합니다. 제가 착각을 해서... 그리고 밤에 이렇게 오실 줄은 몰랐기 때문에...
철구는 이해한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 그렇겠군요. 저는 급한 일이라는 말에 빨리 왔죠. 미리 연락하고 싶어도 공항에서 소매치기를 당하는 바람에...
철구의 말에 경훈이 크게 고개를 끄떡였다.
- 그러셨군요. 그래서 저런 차를...
- 네.
철구는 계속 거짓말을 하는 것이 어색해서 짧게 얘기를 끝내려고 했으나 경훈은 애초에 그럴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 싸움을 꽤 잘 하시던데요?
경훈의 말에 철구가 경훈을 흘끗 쳐다보고 말했다.
- 운동을 조금 했죠.
철구의 말에 경훈이 놀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 운동까지.. 저 같은 사람하고는 역시 차원이 다른 분이시군요.
철구는 경훈이 말이 많은 것에 미간을 찌푸렸다. 이런 상황에서 말을 많이 하는 것이 자신에게 결코 유리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경훈은 아까 다짜고짜 공격을 한 것이 미안했는지 연신 재잘거렸다.
- 일단 안으로 들어가시지요.
경훈은 철구를 이끌고 마을 안으로 다시 들어갔다. 그리고는 아까 철구가 담을 넘었던 공장 지대 안으로 안내했다. 사무실 쪽으로 다가가선 목에 걸린 보안 카드를 대자 '디릭'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경훈이 안으로 들어가자 안에 앉아 있던 남자 하나가 경훈을 쳐다보았고, 뒤 따라 들어오는 철구를 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 맥컬리에서 오신 분이야!
경훈이 말을 하자 남자는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떡이고 앉았다. 철구는 경훈을 따라 안으로 들어가 남자의 뒤 쪽에 있는 문 앞으로 다가갔다.
- 모든 시설이 다 지하에 있어서요.
경훈의 말에 철구는 고개를 끄떡였다. 경훈이 문을 열자 그 앞에 짧은 복도가 하나 나타났고, 그 끝에 엘리베이터가 있었다. 두 사람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아래로 내려갔다. 지하 2층으로 내려가자 유리벽으로 된 공간이 있었다.
- 멸균실이죠.
경훈의 말에 철구는 고개를 끄떡였다. 경훈은 멸균실 안에서 옷을 하나 꺼내 주었다. 철구는 경훈에게 옷을 받고 경훈을 쳐다보자 경훈이 뭐하냐는 듯이 철구를 쳐다보았다.
- 지금 옷 위에 걸쳐 입으시면 돼요. 그리고 마스크는 꼭 하시구요.
철구는 고개를 끄떡이고 옷을 걸쳐 입었다. 주머니 안에 보니 새 마스크 하나가 들어 있었다. 그리고 반대쪽 주머니에는 장갑이 들어 있었다. 철구는 마스크를 쓰고 장갑을 꼈다. 경훈은 마스크를 아래로 내리고 철구에게 얘기를 했다.
- 얘기는 들으셨겠지만,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건 유전자 발현을 억제하는 DNA 배열이 너무 중구난방이어서 갈피를 못 잡고 있다는 겁니다.
철구는 그 말에 고개를 끄떡이며 말했다.
- 보안이 허술하군요.
철구의 말에 경훈이 무슨 말이냐는 듯이 철구를 쳐다보았다.
- 여기 보안은 최첨단입니다. 물론 여기까지는 그냥 사무실처럼 보이기 위해서 아무 보안 시설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안쪽은 크게 다릅니다.
멸균실 문이 열리자 마스크를 썼음에도 비타민 냄새가 강하게 풍겼다. 철구는 자신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렸다. 경훈 역시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 이 냄새는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익숙해지지 않아요.
경훈은 철구를 안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철구는 경훈이 안내하는 곳으로 들어갔다. 여러 연구원들이 새벽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저런 시약을 조합하고 있었다. 철구는 그들을 한눈으로 흘끗 보고는 경훈을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보안 장치가 있는 두 개의 문을 지나자 안에는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커다란 실린더들이 있었고, 그 안에는 다양한 장기들이 들어 있었다. 철구는 그 모습을 보고 저절로 이맛살을 찌푸렸다.
- 이곳에서는 완전체를 못 만들거든요.
철구는 경훈이 말한 '완전체'라는 말에 가슴이 덜컥 했다. 순간 아내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아내가 이런 배양 시설에서 만들어진 '완전체'라는 생각이 들자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저었다. 당장이라고 이 시설을 때려 부수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철구는 마음을 진정시켰다. 경훈은 실린더 사이를 한참을 지나쳐 어떤 실린더 앞으로 다가갔다. 거기에는 무어라고 규정하기 힘든 '살덩이'가 실린더 안에서 부유(浮遊)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 이겁니다.
철구는 경훈이 가리키는 실린더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게 무얼 의미하는지, 그리고 그게 무엇인지 알고 싶지도 않았다. 철구는 미간을 찌푸리며 실린더를 바라보는 척하다가 경훈을 쳐다보았다. 철구가 경훈을 쳐다보자 경훈이 이상하다는 듯이 철구를 쳐다보며 말했다.
- 무... 무슨 문제라도?
철구는 경훈의 태도에 피식 웃었다. 철구는 새벽이라는 사실에 조금은 안도했다. 경비원이라고 느껴지는 사람은 몇 안 되어 보였고, 그나마 연구실에 있는 사람들도 몇 명 안 되었기 때문이었다. 철구는 마음속으로 이런 저런 가늠을 하다가 경훈에게 말을 했다.
- 제가 왔다는 걸 병원에 알리셨나요?
철구의 말에 경훈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 오늘은 늦어서 아침에 보고를 하려고...
철구는 웃으며 말했다.
- 그런데 저는 바로 이곳으로 데려 오고?
철구의 말에 경훈은 조금 당황한 듯이 말했다.
- 그.. 그거야 본원에서도 급한 일이라고 했고, 아까 공 박사님을 만났을 때도 급한 일이라고 하셔서...
철구는 그 말에 고개를 끄떡였다. 이런 어수룩한 인간이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여기까지 이렇게 들어올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철구는 경훈을 보며 말했다.
- 이제 제가 일을 시작할 예정인데...
철구의 말에 경훈은 안심했다는 듯이 말을 했다.
- 아! 저는 기분이 상하신 줄 알고...
경훈의 말에 철구가 경훈 앞으로 다가가며 말했다.
- 기분이 상하다니요. 이렇게 협조를 잘해 주셨는데..
철구의 말에 경훈이 갑자기 몸을 돌리더니 구석에 있는 서류철 쪽으로 갔다. 철구는 경훈의 갑작스런 행동에 잠시 주춤했다. 경훈은 구석에 있는 서류철에서 무언가를 들고 철구에게로 다가왔다.
- 이게 이 샘플에 대한 실험 일지인데요...
철구는 그 서류철을 받아 들고 펼쳐서 보았다. 무어라고 쓴 건지 알 수 없었기에 서류를 접어 옷 안에 집어넣었다. 철구가 서류를 안으로 넣자 경훈이 당황하며 말했다.
- 그... 그건 유출 금지 서류라...
철구는 재빨리 움직여 경훈을 뒤에서 끌어안았다. 그러자 경훈이 놀라며 소리를 쳤다.
- 무... 무슨...
철구는 주머니에서 주머니칼을 꺼내 경훈의 목에 들이대며 말했다.
- 이제부터 여기를 부숴주셔야겠어.
철구의 말에 경훈은 몸을 덜덜 떨며 말했다.
- 고... 공 박사님... 이게 무슨...
철구는 경훈의 말을 무시하고 목에 칼을 들이댄 채 말했다.
- 아까 대충 보니까 여긴 CCTV가 없더군. 이제 저것들을 모두 없애는 방법을 알려주셔야겠어.
철구의 말에 경훈이 놀라 아무 말도 못한 채 몸만 떨고 있었다. 철구는 그런 경훈의 목에 칼을 살짝 대면서 말했다.
- 난 길게 얘기하기 싫은 사람이야. 널 보내고 그냥 때려 부셔도 되거든.
철구의 말에 경훈이 화들짝 놀라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