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축계(逐界)-쫓겨난 이들의 세계-132화 (132/309)

축계(逐界) - 쫓겨난 이들의 세계 - 3장 - 5. 운명의 순환(4)

수술실 앞 대기실에는 많은 사람들이 앉아 대기실 모니터를 쳐다보고 있었다. 모니터에는 수술을 하고 있는 환자의 명단이 방송 자막처럼 흘러갔고, 사람들은 그 자막 가운데서 자신이 알고 있는 사람의 이름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남자는 멍한 눈으로 모니터를 쳐다보고 있었다. 수술 대기실이라 사람들은 모두 걱정스러운 표정이었고 대화도 나누지 않았기에 적막하기 이를 데 없었다. 더욱이 이 수술실은 임산부들을 수술하는 곳이었기에 저마다 근심어린 표정들을 풀지 못하고 있었다. 몇 개 없는 의자지만 몇몇 사람 외에는 의자에 앉은 사람도, 앉으려고 하는 사람도 없었다. 철구 역시 수술실 앞에서 마치 누군가를 기다리듯이 모니터를 쳐다보았다. 철구 옆에는 안경을 쓰고 매끈하게 생긴 남자 하나가 철구에게 무어라고 귓속말을 했다.

- 이번 환자는 제왕절개로 태어나는 아이입니다.

철구는 그 말에 무표정하게 고개를 끄떡였다. 철구는 지난 밤 원 회장이 준 자료를 머릿속으로 떠올렸다.

- 자연적으로 발생할 수 없는 기형아들이 태어나는 곳.

물론 자연발생적으로 기형아가 많이 태어날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한 지역에서 태어나는 아이들의 30%가 기형아로 태어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가 없는 것이었다. 더욱이 그 아이들은 대개 같은 종류의 기형을 갖고 태어난다는 특이점이 있었다. 이곳이 방사능에 노출되었다든가 하는 사고는 없었기에 더욱 특이하게 여겨졌다.

- 묘성증후군(猫聲症候群)이라...

철구는 이름도 생소한 유전병이었다. 철구는 파일을 넘겨 그 증후군이 무엇인지 살펴보았다.

'묘성 증후군은 1963년 다운 증후군을 발견한 레쥬느 교수에 의해 처음 보고되었다. 증상으로는 마치 고양이처럼 우는 소리를 내는 것이 대표적이며, 소뇌증, 격리증(hypertelorism), 소하악증(micrognathia), 안내각상의 주름(epicanthal folds), 낮의 귀의 위치, 근력저하(hypotonia), 정신 이상을 갖고 태어난다. 출생 시의 체중이 매우 적게 나가고, 얼굴이 둥글고 양 눈 사이의 간격이 넓다. 묘성 증후군은 1/50,000∼100,000의 비율로 발병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철구는 아기의 울음소리는 원래 고양이 울음소리와 같지 않나 싶었다. 하지만 이것이 5번 염색체의 이상으로 생기는 선천적 유전병이라는 걸 알고는 입맛을 다셨다.

- 별의별게 다 있네.

철구가 이 병원에 온 것은 정보원의 친구 때문이었다. 원 회장에게 부탁을 받은 일이었지만, 중국에서 일은 그들의 배타적인 태도 때문에 번번이 가로막혔다. 그러다가 원 회장이 같이 일을 하라고 보낸 정보원의 친구의 부인이 의심스러운 정황이 보인다고 해서 병원으로 오게 된 것이었다.

- 그 친구나 부인 모두 정상입니다.

원 회장이 보낸 정보원인 수혁이 말을 하자 철구는 고개를 끄떡였다.

- 그러니까 병원에서 아이에게 문제가 있다는 얘기를 들었단 말이죠?

- 네.

- 집안에 그런 유전적인 문제나 그런 건 없었습니까?

철구의 말에 수혁은 고개를 저었다.

- 저랑 같은 동네에서 20년 넘게 같이 지낸 녀석입니다. 그 녀석 부모님이나 형제들은 제가 다 알죠. 친척들도 한 동네에 살아서 어느 정도는 압니다만 그런 문제가 전혀 없었습니다.

철구는 고개를 끄떡이고 수첩에 그 내용을 적으며 말했다.

- 그 친구는 이곳으로 언제 이사를 온 겁니까?

철구의 물음에 수혁은 잠깐 생각을 하다가 말을 꺼냈다.

- 5년 전쯤에 이곳에 있는 회사에 취직이 됐다면서 떠났죠.

철구는 수혁의 말에 미간을 찌푸렸다.

- 그 친구의 부인도 잘 아십니까?

철구의 말에 수혁이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 그 친구의 부인은 저랑 사촌 지간입니다. 저희 앞집에 살았죠.

철구는 수혁의 말에 고개를 끄떡이며 말했다.

- 그럼 결국 이곳에 온 5년간이 문제로군요.

철구의 말에 수혁은 철구 쪽으로 몸을 기울이면서 조그맣게 얘기를 했다.

- 친구 녀석 말로는 이사 온 지 얼마 안 되서부터 몸이 좀 안 좋아졌다고 그러더라구요. 무슨 냄새가 난다면서...

철구는 수혁의 말에 뭔가 생각에 잠긴 표정이 되었다. 철구가 중국에 와서 제일 먼저 겪은 이질감은 풍경도, 사람도 아니었다. 바로 냄새였다. 뭔가 알 수 없는 특유의 냄새, 노린내도 아니고 그렇다고 고린내도 아닌 무언가 형용할 수 없는 냄새 때문에 자신이 지금 한국을 떠나 왔음을 느꼈다. 물론 자신의 다른 감각보다 후각이 조금 더 민감한 것은 있지만, 중국에 와서 겪은 알 수 없는 냄새는 철구에게는 잊을 수 없는 기억이었다. 아마 수혁의 친구가 얘기하는 것도 어쩌면 타향의 냄새일 수도 있으리라는 생각을 했다.

- 냄새라...

철구의 중얼거림을 들었는지 수혁은 조금 경직된 표정으로 철구에게 얘기를 했다.

- 일반적으로 맡을 수 있는 냄새가 아니라... 뭐랄까... 아무튼 그런 냄새가 났답니다. 조금 있다가 친구 녀석이 나올 테니까 그 때 자세히 물어보시죠.

수혁의 말에 철구가 고개를 끄떡거릴 때 수술실 문이 열리면서 친구가 밖으로 나왔다.

- 妻子??好??(아내는 괜찮아?)

수혁의 질문에 수혁의 친구는 입을 꾹 다물고 고개를 저었다.

- 有什?事??(무슨 일 있어?)

수혁의 친구는 철구를 흘낏 쳐다보고는 수혁을 끌고 구석으로 데리고 갔다. 눈앞에서 노골적으로 수혁을 데리고 가는 것이 기분이 상했지만, 철구는 그러한 모습을 모른 척 하고 수혁 쪽을 쳐다보았다. 수혁은 뭔가 진지한 표정으로 친구와 얘기를 하더니 친구를 보내고 철구 쪽으로 다가왔다. 철구는 수혁을 쳐다보고만 있었고, 수혁은 뭔가 난감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철구에게 다가왔다.

- 공안(公安)에서 나와서 닦달을 했나 봐요.

수혁이 철구의 멀뚱한 표정을 보자마자 얘기를 했다. 철구는 여전히 멀뚱한 표정으로 수혁을 쳐다보았고, 수혁은 조금 난감한지 머리를 긁적이며 철구를 데리고 병원 밖으로 나왔다. 차에 올라타자 수혁이 진지한 표정이 되어 철구에게 말했다.

- 아까 그 안에도 공안이 몇 명 있었던가 봅니다.

철구는 그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 공안이 왜 산부인과, 그것도 수술실 앞에 있는 거죠?

수혁은 그 말에 뭔가 심각한 표정으로 말을 꺼냈다.

- 친구가 이 일에서 손을 떼라고 하더군요. 처음에 연락했을 때는 도와주마 했던 녀석인데...

철구는 수혁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떡였다.

- 대강 짐작이 가는 군요. 어쩌면 친구분뿐만 아니라 이 지역에 사는 모든 임산부와 가족들에게 손을 뻗쳤을 수도 있겠군요.

수혁은 철구의 말에 고개를 끄떡였다.

- 친구가 우리를 친척으로 소개했다고 했답니다. 하긴 저는 사촌 오빠니까 그들도 믿었겠지요.

철구는 수혁의 말을 듣는 동안 머릿속으로 상황을 정리했다.

- 그렇다면 공안하고 그 마을에 누군가는 기형의 아이들이 많이 태어나고 있다는 걸 알고 있다는 뜻이군요. 그리고 외부인들에게 이 사실을 철저하게 함구하라고 협박을 했던 것일 테구요.

수혁은 철구의 말에 말없이 고개만 끄떡였다.

- 공안에서 개입했다는 건 이미 손을 썼다는 얘기군요.

철구의 말이 끝나자 수혁이 조금 긴장된 표정으로 얘기를 꺼냈다.

- 얼른 이 지역에서 나가라더군요. 그리고 자신은 공안에 아이가 태어났다고 보고를 해야 한다고 하더라구요.

수혁은 시동을 걸며 말을 이었다.

- 상황이 여의치가 않습니다. 일단 제가 회장님께 이 일을 보고할 테니까 이 동네에서 벗어나 계십시오.

철구는 수혁의 말에 고개를 끄떡였다. 수혁은 철구의 태도에 안심했는지 표정이 조금 누그러였고, 철구는 그런 수혁을 보면서 속으로 피식 웃었다. 동네에서 100여km나 떨어진 곳에 숙소를 잡았을 때는 벌써 어두운 밤이 되었다. 수혁은 철구에게 인사를 하고는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며 자신의 방으로 향해 갔다. 철구는 숙소 안에서 서성거리다가 밤이 되기를 기다렸다. 시끌벅적했던 숙소 주위가 조용해지자 철구는 조용히 숙소를 빠져나왔다. 바짝 신경을 곤두세우고 밖으로 나와 멀리 서 있는 차 쪽으로 다가갔다. 그 곳에는 연식이 좀 된 구형 자동차가 한 대 서 있었다. 철구는 그 옆에 서서 주머니에서 스위스 아미 나이프(Swiss army knife)를 꺼냈다. 손톱 손질하는 줄을 꺼내 구형 차 안으로 밀어 넣으며 조그만 철사를 조금 움직이자 차문이 열렸다. 철구는 차 안에 올라 차를 한 번 쓱 둘러보았다. 그리고는 허리를 숙여 액셀러레이터 옆에 있는 배선 부분을 잡아 당겼다. 그리고는 익숙하게 전선 접합부를 잘라내고는 시동을 걸었다. 푸드덕거리며 자동차의 시동이 걸렸고, 철구는 자연스럽게 차를 몰고 밖으로 나갔다.

- 뭔가 단단히 구린내가 나는군. 짱깨 놈들은 항상 그게 문제야.

철구는 혼자서 투덜거리며 달려온 길을 되짚어 돌아갔다. 철구는 아까 떠나온 마을의 초입에 다다르자 차에서 내렸다. 상황을 봐서 여의치 않으면 빨리 차를 타고 돌아가기 위해 시동을 끄지 않고 그대로 내려 마을을 쓱 둘러보았다. 낮에는 무턱대고 수혁의 친구가 있는 병원으로 바로 갔기 때문에 마을을 살펴볼 겨를이 없었기에 철구에게 어둠 속에 펼쳐진 마을의 모습을 더욱 생경해 보였다. 공장들이 한쪽으로 늘어서 있고, 그 앞으로 주택가들이 펼쳐져 있었다. 철구는 한국에서 1970년대에 보던 전형적인 공장 마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 저러니 기형아가 생기지.

철구는 혼잣말로 얘기를 하면서 마을 안으로 들어갔다. 새벽이라 그런지 길거리에는 다리는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더욱이 공장 지대라 그런지 음울한 건물들이 더욱 을씨년스럽게 느껴졌다. 철구는 천천히 공장 앞을 걸었다. 무려 한 블록이나 차지하고 있는 공장 벽을 따라 걷다보니 조그만 샛길이 하나 뚫려 있었고, 그 샛길을 넘어서면 또 다른 공장의 벽이 이어져 있었다. 건너편에는 아직 개발되지 않은 황무지가 그대로 펼쳐져 있었고, 그 사이 사이에 급하게 올린 건물들이 흉물처럼 늘어서 있었다. 철구는 빠른 걸음으로 공장들 사이를 지나쳤다.

- 냄새라... 냄새...

철구는 공장 벽을 지나 다음 블록으로 재빨리 걸음을 옮겼다. 몇 개의 블록을 지나서 어떤 건물 앞에 우뚝 멈춰 섰다.

- 음.. 이건 여기랑 어울리지 않는 회산데?

철구는 비타민 향이 나는 건물 앞에 서서 건물을 쳐다보았다. 다른 공장들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지만, 다른 공장들에서는 모두 목재 가루 냄새라든가 철가루 냄새, 그렇지 않으면 기름 냄새가 났다. 그런데 이 건물 앞에서는 이 동네 분위기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냄새가 풍겨왔다.

- 비타민 냄새라..

철구는 비타민 알약에서 나는 특유의 냄새가 익숙하지 않았기에 그 건물의 외벽을 따라 걸어가며 무언가를 확인하듯이 코를 벌름거렸다.

- 이거야 내가 개가 된 것도 아니고...

철구는 비타민 향이 짙어지자 주변을 한 번 휙 돌아보았다. 사람의 모습은커녕 흔한 개나 고양이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철구는 능숙한 자세로 벽을 뛰어 넘었다. 철구는 발소리를 죽이며 담 안으로 들어섰다. 담 안쪽에는 목재로 무언가를 짜고 있는 상자들이 보였고, 그 앞쪽에는 커다란 종이 박스가 보였다. 철구는 조심스럽게 안을 들여다보았다. 목재가 쌓여 있는 공터 너머에는 단층짜리 작은 사무실 같은 건물이 보였고, 그 옆에는 공장 설비들이 보였다. 그러나 한눈에 보기에도 그 공장 설비들은 구색을 맞추기 위해 설치해 놓은 것처럼 보였다. 어디에도 기계가 돌아간 흔적은 것은 보이지 않았고, 오히려 사무실 앞쪽만 사람의 왕래가 많았는지 흙에 많은 발자국들이 보였다. 철구는 대번에 작은 사무실 역시 대외용으로 만든 것이라는 걸 알았다.

- 그놈들 지하 더럽게 좋아하네.

철구는 사무실 옆으로 몸을 숨겼다. 사무실 뒤에는 넓은 공터가 보였고, 그 공터는 말 그대로 아무 것도 없는 공터였다. 철구는 눈을 가느스름하게 뜨고 사방을 살폈다. 멀리 환기구로 보이는 철창이 보였다. 그 철창 앞으로 다가가자 아까 맡았던 비타민 냄새가 더욱 짙어졌다.

- 뭐하는 거지?

철구는 철창 아래를 살쳐보았다. 그러나 주변도 어둡고, 철창 아래도 어두워 잘 보이지 않았다. 철구는 철창을 손으로 당겨보았다. 꿈쩍도 하지 않았다. 철구는 좀 더 힘을 주어 당겨보았지만 여전히 요지부동이었다. 어쩔 수 없이 철구는 환기구에서 물러나와 공터 구석으로 걸었다. 환한 달빛에 공터가 드러나 보였기에 철구는 담벼락에 붙어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벽을 따라 조심스럽게 걷다보니 공터가 꽤 넓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냥 멀리서 보기보다 훨씬 넓게 느껴졌다. 철구는 이 넓은 공터 아래에 무언가 있다는 게 의심스러웠다. 그러다가 어디선가 물 흘러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 물?

철구는 물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조심스럽게 몸을 옮겼다. 물소리가 나는 쪽으로 다가갈수록 묘한 냄새가 짙어졌다. 아까 맡았던 비타민 냄새와는 다른 뭐라고 형용할 수 없는 냄새였다. 항생제 냄새 같기도 했고, 어린이용 시럽 냄새 같기도 했다. 조금은 달콤하면서도 씁쓸한 냄새. 철구는 뭔가 냄새가 이질적이라고 생각하면서 그 물소리가 나는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윽고 물소리가 나는 곳에 도착하자 조그만 배수관이 건물 밖으로 연결된 것이 보였다. 철구는 다시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담을 뛰어넘었다. 그리고 그 물이 배출되는 배수관을 따라 걸었다. 얼마쯤 걷자 앞에 조그만 개울이 하나 보였다. 철구는 무의식적으로 그 곳에 가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밝은 달빛에 비춘 개울의 모습은 처참하기 이를 데 없었다. 모든 공장의 폐수가 이리로 나오는지 악취가 몰려들었고, 그 곳에서 철구는 썩어가는 풀들을 보았다. 철구는 가슴에서 장갑을 꺼내 끼고 가슴에 늘 품고 다니는 비닐봉투 하나를 꺼냈다. 그리고 역겨운 냄새가 나는 개울로 흘러들어가는 배수관의 물을 비닐 봉투에 담았다. 그리고 비닐 봉투 입구를 묶은 후 주머니에 넣었다. 한시라도 빨리 여기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었다. 철구는 조금 걸어 올라와 담벼락을 따라 아래로 걸었다. 그런데 그 순간 철구의 앞쪽에서 플래시 불빛이 비치며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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