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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계(逐界)-쫓겨난 이들의 세계-125화 (125/309)

축계(逐界) - 쫓겨난 이들의 세계 - 3장 - 4. 진행된 사건(3)

석호가 ZEN 심리치료센터로 왔을 때는 이미 늦은 밤이었다. 석호는 뒷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갔다. ZEN 심리센터는 모두 불이 꺼져 있었고, 세현의 방만 불이 켜져 있었다. 석호가 노크를 하고 들어가자 세현은 매력적인 미소로 그를 맞이했다.

- 가셨던 일은 잘되셨어요?

석호는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 제가 생각지 못한 일이 있었습니다.

석호가 병원에서 있었던 일을 말하자 세현은 낮게 한숨을 쉬었다.

- 어린 나이에 안타깝네요. 그 병은 아직 치료법이 없는 것으로 아는데.

- 그런가 봅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기도뿐이지요.

석호가 우수에 찬 표정으로 말하자 세현은 저절로 마음이 가라앉았다. 그러나 세현은 표정을 바꾸고 말했다.

- 참, 최지수 씨가 왜 그런지 알 것 같아요.

세현의 말에 석호는 고개를 들어 세현을 보았다.

- 원인을 알아내셨습니까?

- 원인을 알아냈다기보다 육체적으로 고통스러울 이유가 없는데 몸이 아픈 현상이 있어요. 물론 정신적인 원인이지만 최지수 씨와 같이 정신도 온전한 경우는 단 한 건도 없어요. 그런데...

세현은 뭔가 주저하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석호가 세현을 쳐다보자 세현이 입을 열었다.

- 제가 예전에 원인을 알 수 없는 정신과 사례에서 본 기억이 있어요. 그래서 책을 찾아보았죠. 그런데 한국에서만 특이하게 발견되는 사례인데...

- 혹시?

세현의 말에 석호의 머릿속에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세현은 그 표정을 보고 그렇다는 듯이 고개를 끄떡이며 말했다.

- 아마도 신부님께서 생각하신 것이 맞을 거예요. 무병(巫病)이죠. 원인을 알 수 없이 몸이 아픈 병. 그리고 뜻하지 않게 강신(降神)하여 바뀌는 인격.

세현의 말에 석호가 고개를 잠시 갸웃거리면서 말했다.

- 무병이라면 저도 들어봤는데 그건 검증되지 않은 것이잖습니까?

석호의 말에 세현이 책을 하나 꺼내면서 말했다.

- 네. 하지만 다양한 임상 사례가 있어요. 이 책에서 확인해 봤는데, 지수 씨 같은 경우에는 제가 본 사례들보다 훨씬 심한 것 같아요.

- 무병이라...

석호는 세현의 말에 자신이 연구했던 다양한 사례들을 떠올렸다. 한국에 와서 가장 조심스럽고도 힘든 일이 악령에 사로잡힌 사람과 무병에 시달리는 사람을 구별하는 일이었다. 지수의 경우에는 '악령'에만 초점을 맞춰서 살펴보았기에 무병이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 지수 씨는 악령이라고 보긴 힘들어요. 왜냐하면 신부님께서 전에 온정신으로 얘기를 나누었다고 하셨죠? 악령에 사로잡힌 사람의 특징은 알지 못하는 외국어나 고대어를 하거나, 성스러운 것에 대해 계속 모독을 하거나 혐오하는 것인데 그런 모습은 보이지 않았잖아요.

- 네. 알고 있습니다.

세현은 석호의 말에 자신의 이마를 툭 치며 말했다.

- 아! 신부님께서 저보다는 그 쪽 분야에서는 더 권위자이시죠? 후훗.

세현의 행동에 석호는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고는 담담하게 말했다.

- 하지만 곧 엑소시즘(Exorcism)을 거행할 것입니다.

석호의 말에 세현은 놀라며 말했다.

- 네? 악령이 아닌데요?

그 말에 석호는 고개를 끄떡이며 대답을 했다.

- 네. 악령을 쫒아내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치료하는 엑소시즘입니다.

- 마음을 치료한다구요?

- 물론 세현 씨의 말을 듣고 방금 새로운 계획이 추가되었지만, 기본적으로 제가 할 일은 악령을 퇴치하는 의식을 할 것입니다.

석호의 말이 이해가 되지 않는지 세현이 재차 석호에게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 악령과는 다른 반응을 보일 텐데요.

세현의 말을 듣고 석호는 빙그레 웃으면서 말했다.

- 네. 그래서 부탁드릴 일이 있습니다.

석호는 진지하게 세현에게 부탁할 내용을 얘기했다. 세현은 그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떡였다.

- 그것도 어쩌면 한 방법이겠네요.

그 말에 석호가 머리를 긁으며 말했다.

- 그런데 제가 아는 분이 없어서... 그게 걱정입니다.

석호의 말에 세현은 문득 무언가 생각이 나 서랍을 열어 명함을 찾았다. 그리고는 그 명함을 들고는 말했다.

- 제가 그런 분을 하나 알죠.

세현의 말에 석호가 의외라는 듯이 세현을 쳐다보자 세현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 뜻하지 않게 알게 된 분이에요. 전 이런 데 관심 없거든요.

세현의 말에 석호 역시 고개를 끄떡였다.

- 아무튼 오늘은 늦었으니까 내일 준비를 하도록 하죠.

세현의 말에 석호가 고개를 끄떡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세현은 석호를 보며 말했다.

- 고마워요. 제가 이만큼이나마 살아갈 수 있게 해 주셔서.

석호는 그 말에 빙그레 웃으면서 말했다.

- 고맙긴요. 모두 하느님의 뜻 안에서 일어나는 일인 걸요.

석호의 말에 세현은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는 석호의 뒷모습을 보며 왠지 거대한 그림자가 그의 뒤를 덮고 있는 것 같아 조금 마음이 쓰였지만, 세현은 고개를 저었다.

며칠 후 희귀병 연구센터 소라 담당의 사무실에는 세현과 소라의 담당의가 실랑이를 하고 있었다.

- 그래서 이렇게 부탁드리러 온 거잖아요.

하지만 담당 의사는 단호하게 말했다.

-그건 안 됩니다. 그 환자는... 의사시니까 아시지 않습니까? 그리고 그 병은 지금도 진행 중입니다.

하지만 세현은 물러나지 않고 말했다.

- 최대한 보호 장비를 준비할게요.

담당 의사 역시도 만만치 않았다. 담당 의사는 단호하게 얘기했다.

- 빛으로 보호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습니다.

하지만 세현은 끝까지 고집을 부렸다.

- 그래도...

하지만 의사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 어쨌든 안 되는 건 안 되는 겁니다. 그리고 보호자의 동의도 없지 않습니까?

의사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문 쪽으로 걸어갔다. 그리고는 문고리를 잡고 세현을 보며 말했다.

- 이만 볼 일 끝나셨으면...

세현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문 앞에 서서 말했다.

- 엄마를 보는 일도 안 되는 건가요?

의사는 답답하다는 듯이 마지막으로 말했다.

- 환자의 상태를 아시지 않습니까?

세현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돌렸다. 그러다가 애처로운 표정으로 의사를 보며 말했다.

- 그럼 면회만이라도 허락해 주세요.

세현은 마지막이라는 표정으로 담당의사에게 얘기를 했다. 담당 의사는 세현을 잠깐 보다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 면회요? 의학적으로 검증하는 것은 저희가...

세현은 의사의 옷깃을 부여잡으며 말했다.

- 그런게 아니구요. 성당으로 3년 간 병실 안에만 있는 불쌍한 애에게 기도라도 드릴 수 있게 해 주세요.

의사는 세현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당황했다.

- 그게... 그건....

세현은 의사의 눈을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 그것조차 안 되나요?

의사는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 그럼 잠시만입니다.

세현은 담당 의사에게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와 차로 걸어갔다. 차 안에는 석호와 로브를 뒤집어 쓴 사람 한 명이 침묵을 지킨 채 앉아 있었다. 8층에 올라왔을 때, 담당 의사는 세현과 같이 들어오는 사람들을 보며 깜짝 놀랐다.

- 이.. 이 분들은....

세현은 뭘 그러냐는 듯이 말을 했다.

- 네. 기도를 해 주실 분들이에요. 아주 훌륭한 사제분들이지요.

의사는 석호를 보고 눈인사를 하다가 옆에 음침한 포즈로 서 있는 필두를 보고는 화들짝 놀랐다.

- 신부님은 알겠는데... 저... 로브를 쓰신 분은...

석호는 그런 의사를 보며 환하게 웃었다.

- 이 분께서는 성령의 힘이 아주 강하신 분입니다. 저 분의 기도라면 환자의 마음이 더욱 위로가 될 것입니다.

석호의 말에 담당 의사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석호를 보며 말했다.

- 그렇지만... 이렇게 더운 여름에...

의사의 말에 석호는 목소리를 낮춰 조그맣게 말했다.

- 이건 비밀입니다만...

그러더니 로브를 쓴 수도사 쪽을 흘끗 보며 고개를 끄떡이고 말했다.

- 저 분께서는 바티칸에서 오신 사제분입니다. 신분이 밝혀지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그 분의 아버지께서 특별히 부탁하신 분입니다.

석호의 말에 의사는 두 눈이 커졌다.

- 환자의 아버지라면...

의사는 로브를 쓴 수도사를 쳐다보았다. 로브를 쓴 수도사 얼굴이 고개를 깊이 숙였다.

- 쉿! 네 그렇습니다.

석호는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떡였다. 석호의 태도에 담당 의사는 무거운 표정이 되었다.

- 알겠습니다. 진작 그렇게 말씀해 주셨으면... 뭐 그렇다면 기도하시는 동안 저는...

석호는 담당 의사의 말을 끊고 은밀하게 얘기를 했다.

- 자리를 비켜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저 사제께서는 신분이 노출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십니다.

의사는 놀란 표정으로 입을 꾹 다물며 말했다.

- 네. 알겠습니다.

병실 앞으로 가는 길에서 세현이 피식피식 웃으며 석호에게 조그맣게 말했다.

- 신부님이 무슨 거짓말을 그렇게 잘하세요?

석호는 무슨 말이냐는 듯이 세현에게 얘기를 했다.

- 거짓말이 아닙니다. 저 분은 아주 성령이 충만하신 분입니다.

- 훗.

석호와 세현과 한 걸음 떨어져서 걸어오던 필두는 잰걸음으로 석호 옆에 붙으며 말했다.

- 저 의사는 지난번에 봤던 의사네요. 휴. 역시 신부님께서는 선견지명이 있으십니다. 저와 저 의사가 알고 있을 줄 알고 저보고 멀리 떨어져 있으라고 하신 것을 보면.

석호는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 아닙니다. 그건 수도사님께서 저에게 미리 귀띔을 해 주셔서 그런 것입니다. 역시 수도사님께서는 대단하십니다.

필두는 석호의 말에 머리를 긁으며, 세현을 흘끗 보고는 말했다.

- 후후후. 제가 조금 영민하기는 합니다만...

세현은 그 말을 들은 채도 안하고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석호 역시 살짝 고개만 끄떡이고는 세현의 뒤를 따라 들어갔다. 혼자서 계속 지껄이고 있던 필두는 당황하며 같이 안으로 들어갔다. 병실 안에는 소라가 이미 모든 준비를 마치고 있었다. 석호는 필두를 향해 고개를 끄떡였다. 그리고 필두는 얼른 로브를 벗었다. 어두운 방 안에서 소라는 필두의 옷으로 갈아입으며 말했다.

- 여기서 이상한 냄새가 나요.

소라는 필두의 로브를 입더니 대번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러자 필두는 당황하며 말했다.

- 어... 어제 깨끗하게 빨아서... 말리고.. 그러니까...

필두가 당황하자 석호가 나서서 말했다.

- 수도사님들께서는 고행을 하시기 때문에 그 고행의 냄새가 배어 있는 것입니다.

축계(逐界) - 쫓겨난 이들의 세계 -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항상 관심있게 지켜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ps. 요즘 댓글이 넘 없어요. ㅜㅜ 저는 댓글을 먹고 살지는 않지만서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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