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축계(逐界)-쫓겨난 이들의 세계-115화 (115/309)

축계(逐界) - 쫓겨난 이들의 세계 - 3장 - 1. 빠져나간 정보(4)

최베드로는 비행기 창에 기대어 지난밤에 받은 보고서를 떠올렸다.

'마르티노(Martinus)의 죽음'

최베드로는 그의 죽음이 믿기지 않았다. 아니 그렇게 쉽게 죽을 녀석이 아니라는 걸 최베드로는 잘 알고 있었기에 그의 죽음을 용납할 수가 없었다. 아직 석호에게는 말하지 않았지만, 그의 죽음과 관련하여 뭔가 석연치 않은 낌새가 느껴졌다. 뭔가 거대한 음모가 뒤에 도사리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슈테판 추기경과 함께 바티칸에 있던 엑서더스(Exodus) 동조 세력을 몰아낸 지 2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그들은 바티칸에 손을 대고 있었기에 최베드로는 항상 행동에 조심, 또 조심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중국에서 악령에 사로잡힌 아이가 있다는 연락에 마르티노를 먼저 보내 조사하게 했는데, 돌아온 것은 정보가 아니라 마르티노의 죽음이었다. 상하이(上海) 근처에 있는 조그만 마을에서 일어난 일이었기에 비록 외국인이라도 지금은 많이 개방된 중국이기에 마르티노를 보낸 게 잘못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석호가 연락을 해 원 회장의 도움을 받아 손쉽게 일을 추진할 수는 있었지만, 그 이후의 일은 철저하게 마르티노 혼자 일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기에 최베드로는 그렇게 하도록 놔둔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엑서더스와 결탁한 그들이 자신에게 마수를 뻗칠 것이라는 생각에 행동을 조신한 자신의 소심함을 탓했다. 비행기가 상하이 공항에 내리자 몇몇 사람이 최베드로를 기다리고 있었다.

- 어서 오십시오.

최베드로는 그들이 석호가 말한 원 회장의 사람들이란 걸 알았다. 그들이 크게 탐탁지 않았지만, 현재의 상황에서는 어쩔 수가 없었기에 최베드로는 그들을 따라 가기로 했다. 차에 올라탄 최베드로는 어쩔 수 없이 그들에게 마르티노의 행방에 대해 물었다.

- 시신은 현재 저희 쪽에서 보관하고 있습니다만...

책임자인 듯한 이가 얘기를 하다 말을 흐렸다. 최베드로는 고개를 끄떡이고는 그에게 말을 했다.

- 시신을 먼저 보고 싶습니다.

- 놀라지 마십시오.

최베드로는 그들의 말에 얼마나 참혹한 시체이기에 어둠에 몸담고 있는 저들조차 저런 말을 할까 싶었다. 책임자가 시신을 덮고 있는 시트를 걷어냈다. 최베드로는 침대에 누워 있는 시신을 보고 깜짝 놀라 자신도 모르게 한 걸음 물러났다.

- 이.... 이게...

최베드로는 참혹한 시신 앞에서 할 말을 잃었다. 책임자는 낮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 저희가 도착했을 때 이미 이런 모습이었습니다.

최베드로는 시신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 그렇다면 죽은 지 하루 만에 이렇게 되었다는 얘깁니까? 그건 말이...

책임자 역시 이해가 되지 않는 듯 최베드로에게 얘기를 했다.

- 저도 이런 시신은 처음입니다.

최베드로는 마르티노 앞으로 다가갔다. 최베드로가 본 마르티노의 시신은 참혹하다기 보다 전혀 마르티노같지 않아 보였다. 온몸의 물기가 빠져 나간 미라와 같은 모습이었다. 뼈에 살가죽만 남겨진 모습이었지만, 특이하게도 눈만은 습기가 빠지지 않은 상태였다. 그렇기에 마른 눈꺼풀 아래로 커다란 눈만이 허공을 응시하는 것처럼 보였다. 최베드로는 그 시신이 마르티노의 시신인지도 솔직히 분간이 되지 않았지만, 팔뚝에 남은 살가죽에 번개 모양의 특이한 상처를 통해 마르티노라는 것을 알았다. 최베드로는 시트 커버를 덮었다.

- 어디서 발견되었습니까?

책임자는 주변의 다른 사람들을 나가게 했다. 다른 이들이 모두 책임자에게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가자 책임자가 말을 했다.

- 자세한 내용은 아직 조사 중입니다만 불미스러운 일과 관련된 것 같습니다.

최베드로는 불미스러운 일이라는 말에 놀란 눈으로 책임자를 쳐다보았다. 책임자는 뭔가 난감한 듯이 입을 열었다.

- 이 시신만 발견이 된 게 아니라 이 시신 옆에는 여자의 시신도 같이 발견이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책임자는 다음 칸에 있는 시트커버를 들었다. 그러자 거기에는 마르티노와 똑같은 모양의 여자 시신이 나타났다.

- 혹시 이 여자도?

- 네. 같은 장소에서 동시에 발견이 되었습니다.

최베드로는 낮게 신음성을 냈다.

- 그 곳이 어디입니까?

책임자는 입을 다물며 생각에 잠겼다가 다시 말을 꺼냈다.

- 타이창 시(太?市)입니다. 여기서 그다지 멀지 않은 곳입니다.

최베드로는 당장이라고 그 곳으로 가려고 했지만, 책임자가 최베드로를 막았다.

- 지금은 아닙니다. 그 곳의 분위기가 지금은 가톨릭 성직자라면 모두 악마로 취급하는 분위기입니다. 특히나 공안에서도 출동을 해서 지금 가신다고 해도 크게 알아낼 수 있는 것이 없을 겁니다.

책임자의 말을 듣고 최베드로는 고개를 끄떡였다. 책임자는 최베드로에게 다시 말을 꺼냈다.

- 일단 회장님께서 만나보시고 싶어 하십니다만... 괜찮으시다면 같이 가시죠.

책임자는 무척이나 정중한 태도로 최베드로에게 얘기를 했다. 물론 최베드로의 입장에선 원 회장을 만날 이유가 없었지만, 그렇다고 딱히 그의 부름을 거절할 이유도 없었기에 최베드로는 그를 따라 원 회장이 있는 곳으로 갔다. 최베드로가 원 회장을 만난 것은 자신이 현재 머물고 있는 호텔의 최상층이었다. 최상층이라고 해서 일반 펜트하우스처럼 꾸며놓은 것이 아니라 아주 소박한 호텔방 수준이었다.

- 어서 오십시오. 이렇게 제가 신부님을 일방적으로 뵙자고 해서 죄송합니다.

원 회장은 깍듯한 태도로 최베드로에게 얘기를 했다. 최베드로 역시 세계적인 기업을 이끄는 원 회장이었지만, 소박하고 진솔한 태도에 편안하게 말을 했다.

- 저희를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신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바티칸을 대표해서 감사를 드립니다.

최베드로의 말에 원 회장은 손사래를 쳤다.

- 제 업보를 갚는 일에 오히려 신부님들을 이용하는 것 같아 송구스럽습니다.

최베드로는 원 회장이 안내하는 소파에 앉으며 말했다.

- 장 신부에게 얘기를 들었습니다만, 그건 회장님의 업보만이 아니라 저희에게도 해당하는 일입니다.

최베드로의 말에 원 회장이 고개를 끄떡이며 말을 했다.

- 불편하신 점은 없으셨는지요. 저희 일남이가 잘 보좌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최베드로는 공항에서부터 여기까지 자신을 데리고 온 사람이 일남이라는 것을 알고는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말했다.

- 네. 덕분에.

최베드로의 말을 하자 일남이 고개를 숙였다. 원 회장은 뭔가를 생각하는 표정이었다. 그러나 이내 그 표정을 풀고 최베드로에게 얘기를 했다.

- 외국인 신부님 일은 유감입니다.

- 슬픈 일이지요. 아주 유능한 신부였습니다.

최베드로의 말에 원 회장이 낮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 신부님께서도 보셨다시피 그 외국인 신부님의 일은 아무래도 바티칸에서 파견한 것과 같은 악령이나 그런 것이 아닌 것 같아 보입니다만...

원 회장의 말에 최베드로는 고개를 저었다.

- 그건 아직 단정하기 힘듭니다. 지금은 아니지만 오래 전 고서(古書)에서 그런 기록이 남아 있긴 합니다.

최베드로는 엘리자베스 바토리를 염두에 두고 얘기를 했다. 그녀는 젊음을 유지하기 위해 피로 목욕을 했는데, 피를 뽑아낸 시신이 한참 후에 발견되었을 때, 모두 미라와 같은 모습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녀가 악령에 사로잡혔는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젊음을 위해 시녀들을 그렇게 잔인하게 죽인 것을 단순히 정신병이라고 치부하기엔 뭔가 석연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당시 발견된 시신과 현재 마르티노의 시신의 차이는 바로 '시간'이었다. 어쩌면 이번 일이 더욱 악령과 관련이 있어 보이긴 했다. 그렇기에 최베드로는 어떠한 단정도 내리지 않은 것이었다. 무언가 있는 것은 확실했지만, 그것의 실체를 확실하게 알 수가 없었다.

- 그래서... 제가 한 번 그 곳을 방문해 보려고 합니다만...

최베드로의 말에 원 회장은 무겁게 입을 닫았다. 최베드로는 원 회장의 표정에서 무언가 안 좋은 낌새를 느꼈다.

- 무슨 일이 있습니까?

최베드로의 물음에 원 회장이 입을 열었다.

- 지금 그 곳에 가셔도 별 소용이 없을 겁니다.

원 회장의 말에 최베드로는 의아한 표정으로 원 회장을 쳐다보았다.

- 소용이 없다니요?

- 타이창 시에서 일어난 일은 공식적으로 일어나지 않은 일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최베드로는 원 회장의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 공식적으로 일어나지 않은 일이요?

- 네. 제가 중국 공안(公安) 쪽과 좀 밀접해서 이번 일에 대해 알아보려고 했는데, 공안에서는 이 일이 더 커지는 걸 꺼려해서 아예 없는 사건으로 덮어버렸습니다. 더욱이 외국인 신부와 관련된 일이기 때문에 외교적인 문제도 있고, 또 그 외국인 신부의 불미스러운...

- 불미스럽다뇨?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혹시 옆에서 같이 발견된 여자 시신 때문입니까?

최베드로의 말에 원 회장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 단순히 같이 발견된 시신 때문이 아닙니다.

- 네? 같이 발견된 시신 때문이 아니라면?

- 그 외국인 신부는 그 여자와 부정한 행위를 했습니다. 그것도 가족들이 모두 지켜보는 가운데서요. 악령을 쫓아내기 위한 행동이라면서 발광하는 여인을...

원 회장의 말은 최베드로를 충격에 빠뜨리기에 충분했다. 최베드로의 입장에서는 그 말이 전혀 사실처럼 믿어지지 않았다.

- 그럴 리가...

원 회장은 충분히 믿기지 않는 상황이라는 걸 이해했다.

- 저 역시 처음엔 그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제가 만나 본 그 신부님은 전혀 그럴 분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가족들의 증언도 그렇고, 또 부검에서 밝혀진 사실도 그렇고...

- 부검에서?

- 여자의 질 내에서 그 신부님의 정액이 발견되었습니다.

최베드로는 충격에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그 말을 전하는 사람이 원 회장이었기에 최베드로는 수긍을 할 수밖에 없었다. 굳이 그가 자신에게 거짓말을 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었다.

- 그.. 그런데 그 일을 왜 덮으려고 하지요?

원 회장은 한숨을 푹 쉬며 말했다.

- 중국이기 때문이지요. 그 여자 아이가 중앙 정법위 서기의 딸입니다.

- 정법위 서기라면...

- 중국 내에서 서열 10위 안에 드는 고위직입니다. 그런 사람이 이런 스캔들에 휘말리면 정치적으로 타격이 크기 때문에...

최베드로는 그 말에 주먹을 부르르 떨었다. 신부가 죽고, 자신의 딸이 죽었지만, 정치적인 이유 때문에 덮어버리는 후안무치한 행동에 최베드로는 분노에 휩싸였다.

- 그래도 정확한 정황을 밝히는 게 온당하지 않습니까?

최베드로의 말에 원 회장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 그 윗선까지는 제가 어찌 할 수 없는 일이라....

최베드로는 미안해하는 원 회장에게 사과를 했다.

- 죄송합니다. 제가 흥분해서... 회장님의 탓도 아닌데...

최베드로의 말에 원 회장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

- 사실 제가 신부님을 뵙자고 한 이유는 이 때문이 아닙니다. 제가 볼 때에도 이 사건은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어서, 제 정보망을 동원해서 이러한 경우가 있는지 알아봤습니다. 네이멍구자치구(?蒙古自治?)에 있는 퉁랴오 시(通?市)에서 그 여자 아이와 같은 증상을 보이는 여자 아이가 있다는 보고를 들었습니다.

최베드로는 원 회장의 말에 진심으로 고마움을 느꼈다. 이 일에 대해서는 사실 원 회장이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될 일이었는데, 이번 일에 대한 진상 조사가 불가능해지자 다른 방법으로 그 일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낸 것이었다.

- 그렇습니까?

- 일단 저희 사람이 그 곳을 지키고 있습니다. 오늘은 너무 늦었으니 내일 떠나시면 됩니다. 전용기를 준비해 두었습니다.

최베드로는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 정말 감사드립니다.

최베드로의 말에 원 회장은 손사래를 쳤다.

- 아닙니다. 장 신부님께서 신부님의 말씀을 많이 하셔서 저 역시 많은 감복을 받았었습니다. 장 신부님과 같이 대단하신 분이 존경하는 분이 과연 누구실지 저 역시 대단히 궁금했습니다.

서로 간의 인사치레가 오가고 원 회장이 말을 했다.

- 일남을 같이 보내겠습니다. 저를 돕는 친구 중 가장 뛰어난 친구 중 하나입니다.

- 그러실 필요까진...

- 중국은 다른 곳과 많이 다릅니다. 일남이 같은 친구가 옆에 있다면 든든하실 겁니다.

- 이렇게까지 호의를 베풀어 주시니 정말 감사합니다.

최베드로의 말에 원 회장은 고개를 끄떡이며 말했다.

- 아무튼 이 일이 잘 해결되었으면 합니다. 그 여자 아이가 말씀하신 것처럼 악령에 사로잡힌 것이라면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원 회장의 마지막 말에 최베드로는 원 회장을 의아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원 회장은 그런 최베드로에게 최근 자신이 조사한 내용 중 의심스러운 부분을 최베드로에게 얘기를 했다. 최베드로 역시 바티칸에서 파악한 내용을 바탕으로 추론을 했다.

- 그럴 개연성도 있지만, 제가 직접 확인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 네. 아무튼 고생스러운 일에 몸조심하십시오.

- 이번 일이 끝나면 다시 한 번 찾아뵙겠습니다.

최베드로의 인사에 원 회장은 크게 고개를 끄떡였다.

- 제가 영광입니다.

두 사람이 굳게 악수를 하고 헤어질 때 원 회장은 그 만남이 최베드로와의 첫 만남이자 마지막 만남이 될 줄은 몰랐다. 그리고 자신이 얼마나 위험한 일에 그를 끌어들였는지 알지 못했다. 원 회장은 일남을 불러 최베드로를 따라가도록 지시를 했다. 그리고 장 신부에게 이 일을 얘기해야 하는지 고민에 빠졌다. 얼마 전에 연락받기로는 한국에서 중요한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고 들었기에 원 회장은 이 일이 마무리되면 연락하기로 하고 입을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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