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축계(逐界)-쫓겨난 이들의 세계-105화 (105/309)

축계(逐界) - 쫓겨난 이들의 세계 - 2장 - 9. 슬픈 과거 (3)

한편 강현은 부대로 온 지 1년이 넘었지만, 외출이나 외박 등은 일절 하지 않았다. 아니 평소 한 잔씩 즐기던 술도 한 번 입에 대지 않았다. 자신이 약해질 것 같았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이 그들과 같이 미쳐버릴까봐 두려워서였다. 그래서 강현은 어지간한 부대 행사에도 모두 불참하였다. 부대의 단합에 크게 저해가 되지 않는 한 행사 참여는 자유로웠다. 아니 오히려 그러한 행사에 레이코 역시 참여하지 않았기에 강현은 좋은 핑계가 되었다. 레이코는 그런 행사가 어떤 것인지 알고 있기에 의도적으로 참여하지 않았다. 술 한 잔 들어가면 다들 미치광이라도 되는지 실험체들을 원판에 걸어 놓고 단검 던지기를 한다. 죽느냐 사느냐에 내기를 건다. 만약 실험체가 살아 있다면 돈을 잃은 쪽은 분노하여 그를 죽인다. 어차피 그 실험체는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인 것이었다. 그런 살육의 잔치가 한쪽에서 벌어진다면 다른 쪽에서는 강간의 잔치를 벌였다. 아무 곳이나 들어가 여인들을 끌고 나와 아무 곳에서나 강간을 자행했다. 그러다가 매독균 실험체를 강간하여 매독에 걸려 또다른 실험체가 되기도 했다. 한 번은 레이코를 덮치려다가 즉결심판으로 처리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이번 행사는 필리핀에서 벌어진 생화학전(生化學戰)에서 거둔 승리를 축하하기 위한 자리였다. 그렇기에 본국에서도 장군이 두 명이나 오고 대신도 방문할 예정이었다. 부대는 대대적인 행사 준비를 했고 레이코와 강현 역시 어쩔 수 없이 참석해야만 했다.

- 이제 준비해라.

레이코는 군복을 입고 참석할 준비를 마쳤다. 강현 역시 군복을 차려입고 남아있는 서류를 정리했다. 그리고 두 사람은 행사장으로 참여했다.

- 저 여자가 우와마치 중좌입니다.

한 장교가 장군의 귀에 뭐라고 속삭이자 장군은 레이코를 흐뭇한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 예쁘군.

장군의 말에 장교는 흐뭇하게 웃었다. 레이코는 강현과 함께 식장에 들어서다 멀리서 보이는 한 남자에게 환한 얼굴로 다가갔다. 강현이 여기 온 지 일 년이나 되었지만 레이코가 그렇게 환하게 웃는 것은 처음 보았다. 남자 역시 레이코를 보더니 밝은 얼굴로 레이코에게 다가왔다.

- 여긴 어쩐 일이세요?

레이코가 다가가 스스럼없이 말을 걸었다. 강현의 놀라움은 그 뒤에 이어졌다. 남자는 아무렇지도 않게 레이코를 끌어안았다. 그리고는 듣기도 남사스러운 말을 했다.

- 보고 싶으니까 왔지.

두 사람아 포옹을 하고 떨어지자 부대의 거의 모든 시선이 그들에게로 향했다. 평소 레이코를 흠모하던 사람들뿐만 아니라 아까부터 그녀를 쳐다보던 장군 역시 그들을 쳐다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 오야마(大山) 대공(大公)께서 직접 오시다니. 그리고 저 계집과 아는 사이라니... 쩝...

장군은 무언가 아쉬운 듯이 입맛을 다시며 고개를 돌렸다.

- 이따 저녁 때 시간 되지?

오야마의 물음에 레이코는 마치 연인이라도 만난 듯이 밝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떡였다.

- 그럼요. 그런데 이게 얼마만이에요.

두 사람이 대화를 하며 행사장 안으로 사라지자 강현은 혼자서 멀뚱히 행사장 안을 쳐다보다가 행사가 곧 시작된다는 방송에 정신을 차리고 안으로 들어갔다. 행사는 길지 않았다. 어차피 행사는 요식 행위일 뿐이었다. 여기 모인 목적은 즐기기 위함이었다. 강현은 행사가 끝나자 사무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그 때 뒤에서 낯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 이게 누군가? 조센징을 묵사발 낸 중국인 중위 아닌가!

강현이 뒤를 돌아보자 선명하게 떠오른 얼굴이 있었다. 악몽에서 본, 그리고 세상에 악마가 있다면 그 녀석일 것이라고 믿고 살았던 얼굴이었다. 일 년이 지났지만 자신의 기억 속에 선명하게 남아서 자신을 괴롭히는 얼굴이기도 했다. 강현은 분노에 찬 눈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 이쁜이 상사가 남자랑 눈이 맞아서 가버렸군. 이제 혼자 가서 손장난이나 하나?

그 장교는 느물거리는 표정으로 강현을 놀렸다. 강현은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었다. 그러나 크게 심호흡을 한 번 하고는 비웃으며 말했다.

- 너는 오늘 병든 창꼬로 암캐들이나 썩어가는 조센징 암고양이들과 흘레를 붙겠군.

- 뭐라고!

강현은 비웃으면서 한 마디 더 흘렸다.

- 차라리 뒤뜰 돼지가 더 깨끗하니까 그 암퇘지랑 하는 건 어때?

강현의 말에 장교는 벌떡 일어나 강현 쪽으로 다가왔다. 강현도 지지 않고 그 장교를 노려보았다. 그러나 주위에 상관들도 많이 있고, 대신들까지 와 있는 상황이라 직접 시비를 걸지는 못했다.

- 창꼬로 자식. 가만 두지 않겠다.

강현은 지난 일 년 간 무수한 죽음과 처참함에 단련이 되어서인지 그러한 협박이 전혀 무섭지 않았다. 오히려 그 장교의 화를 돋우는 말을 했다.

- 그래? 누가 먼저 가나 볼까? 앞으로 밥 먹을 때마다 조심하는 게 좋아. 탄저균이 가득한 밥 알갱이가 목구멍으로 넘어갈지도 모르니까.

강현의 말에 일본인 장교는 주먹을 들었다가 내렸다. 두 사람의 심상치 않은 모습을 이미 주변에서 감지하고 그들을 쳐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강현은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그를 쳐다보고는 뒤돌아 가버렸다. 그러면서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 개잡놈.

강현은 사무실로 혼자 오자 왠지 쓸쓸했다. 평소라면 냉정한 표정일지라도 레이코와 함께 있었기 때문에 주변의 시끌벅적함 따위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러나 막상 혼자 남으니 바깥의 시끄러움이 모든 것을 압도했다. 여자의 비명 소리, 술 취한 병사의 목소리, 병 깨지는 소리, 탁자를 끄는 소리 등 온갖 소리가 섞여있었다. 강현은 슬그머니 밖으로 나가 술 한 병과 간단한 요깃거리를 갖고 다시 사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언제까지 여기서 버텨야 할지 생각을 하자 마음이 답답했다. 아나 어쩌면 영원히 나가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여기를 나가는 것은 죽음뿐이라는 생각이 들자 강현은 눈앞이 캄캄했다. 강현은 술병을 따고 한 잔 벌컥 마셨다. 독한 술기운이 목구멍을 타고 안으로 들어가자 가슴이 따뜻해졌다. 군대에 온 이후로 한 번도 술을 마셔본 적이 없었기에 술이 유독 쓰게 느껴졌다. 그러나 한 잔이 안으로 들어가자 앞에 있던 술병을 들어 다시 술을 한 잔 더 따랐다. 거푸 넉 잔을 마시자 술기운이 조금씩 오르기 시작했다. 강현은 안주머니에서 사진을 한 장 꺼냈다.

- 어머니...

강현은 어머니의 사진을 보며 어머니를 불렀다. 손으로 환하게 웃고 있는 얼굴을 쓰다듬을 때 사무실 문이 벌컥 열렸다.

- 빠가야로. 창꼬로 자식!

행사장에서 강현에게 무안을 당했던 장교 녀석이 술이 떡이 되어 다짜고짜 사무실로 들이닥쳤다. 그 뒤로는 몇 명의 취한 장교들이 그와 함께 대검을 든 채 서 있었다. 웃통을 벗고 있는 이도 있었고, 술병을 든 채 비틀거리는 이도 있었다. 강현은 그들이 떼로 뭉쳐 을러대는 모습을 보고는 피식 웃었다. 그들은 어차피 자신을 죽이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부대 안의 의사가 턱없이 부족할 뿐만 아니라 1부에 소속된 의사들은 거의 과학자 수준이어서 일본인이 아니더라도 부대 내에서는 주요 인물 취급을 받고 있었다. 더욱이 강현은 1부에서도 가장 중요한 기밀 실험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개 게이트 위병 장교가 이 사무실까지 들어온 것도 엄밀히 따지면 군법으로 처리될 만한 사항이었다.

- 술 한 잔 들어가니까 1부 실험실도 우습나 보지?

- 개놈의 자식. 네 놈을 내 오늘 갈아 마셔버릴 테다.

술 취한 장교가 대검을 들고 안으로 들어오자 강현은 몸을 뒤로 피했다.

- 지금이라도 나가는 게 신상에 이로울 걸.

강현의 경고 따위가 장교의 귀에 들어올라 만무했다. 그는 분노에 사로잡힌 눈으로 강현의 앞으로 다가왔다. 그리고는 대검을 들어 강현을 내려쳤다. 강현은 재빨리 몸을 피했지만 어깨 쪽에 상처를 입었다. 장교는 피를 보자 눈이 뒤집히더니 강현 족으로 다가왔다. 밖의 장교들도 안으로 들어와 소리를 치며 박수를 쳤다.

- 저 쪽이라고. 바보 자식.

- 칼을 비스듬히 베어버리라고. 그래야 한 방에 죽지.

- 하하하. 저 도망치는 꼴 봐.

장교는 강현을 향해 휘두르던 대검이 몇 번 허공을 가르자 약이 올랐는지 책상 위로 뛰어올라 강현이 있는 자리로 뛰어내렸다. 강현은 더 이상 피할 곳이 없었다.

- 쥐새끼 같은 놈. 이제 끝이다.

장교의 칼이 하늘로 치솟고 강현을 내려치려고 내려올 때 뒤에서 총성이 한 발 들렸다.

- 탕!

그 소리와 함께 장교는 칼을 허공에 든 채 앞으로 쓰러지더니 몸을 부르르 떨었다. 술 취한 다른 장교들이 강현이 총을 쏜 것이라 생각하고 대검을 빼들고 강현 근처로 다가오고 있었다.

- 뭐 하는 짓이냐!

장교들은 물론 강현도 놀라 문 쪽을 쳐다보았다. 문 앞에는 공작이라고 불리는 사내와 레이코와 정체 모를 군인이 하나 서 있었다. 정체 모를 군인은 여전히 장교들을 향해 총을 겨누고 있었다.

- 이 실험실이 어떤 곳인 줄 알고...

레이코가 화가 난 표정으로 장교들에게 소리쳤다. 그러자 칼을 들고 있던 장교들은 그제야 상황 파악이 됐는지 칼을 버리고 제자리에 우뚝 멈춰 섰다.

- 죄... 죄송합니다.

그런 장교들을 보고 공작은 인상을 쓰며 말을 했다.

- 다나카 이치로 장군이 부대 관리를 잘 못하는군.

부대장의 이름을 듣자 난동을 피던 네 사람이 얼른 공작 앞으로 다가와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 주..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그 말에 공작은 눈매가 날카로워지며 그들을 쏘아 보았다.

- 그럼 죽어.

공작이 그렇게 말하자 옆에 있던 군인이 권총에 총알을 장전하고 한 명의 머리를 향해 발사를 했다.

- 탕!

그 자가 쓰러져 몸을 부르르 떨자 나머지 장교들은 무릎을 꿇은 채 오줌을 지렸다.

- 사.. 살려 주십시오.

한 명이 그렇게 말을 하며 머리를 바닥에 찧어대자 나머지 두 명도 바닥에 머리를 찧으며 살려 달라 애원을 했다. 실험실 앞은 순식간에 총에 맞아 죽은 이의 피와 그들의 이마에서 흐른 피로 흥건해졌다. 공작은 그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 그래? 살려는 주지.

그런 후 복도 끝을 향해 공작이 크게 소리를 질렀다.

- 누구 없나! 가서 다나카 이치로 장군을 데려와라!

레이코는 사무실 안으로 들어가 강현을 쳐다보았다. 어깻죽지에서 피를 흘리고 있긴 했지만, 괜찮아 보였다.

- 너도 저 놈들처럼 되기 싫으면 얼른 어깨에 붕대 감고 여길 치워!

레이코의 말에 강현은 의료함에서 붕대를 꺼내 어깨에 감았다. 그리고 자신의 앞에 쓰러져 있는 장교를 들쳐 업었다.

- 이.. 이게 무슨 일인가?

이치로는 공작에게 감히 묻지를 못하고 레이코를 보며 물었다. 레이코는 시신을 메고 나오는 강현을 보았다. 이치로가 강현을 쳐다볼 때 머리를 조아리고 있던 녀석 하나가 입을 열었다.

- 모두 저 모리 중위 때문입니다. 레이코 중좌랑 같이 근무하는 창꼬로 하나를 처리하자고 부추기는 바람에...

- 빠가야로! 오늘 같은 날...

이치로는 공작에게 머리를 숙이며 말했다.

- 모두 제 부덕의 소치입니다.

공작은 비웃음 같은 걸 흘리며 말했다.

- 위병 장교가 군의관을 무시하는 걸 보니 정말 그럴 것 같군요. 그럼 이제 레이코 중좌는 조센징이겠군요.

- 시정하겠습니다.

- 시정이라... 이들이 시정이 될까요? 그리고 들리는 말로 행사 때마다 사정이 비슷하다고 들었는데요. 여기가 사창가인가요? 아까 복도 끝에 보니까 장교 하나가 러시아 여인을 덮치고 있던데. 아주 좋은 광경이더군요.

- 죄송합니다.

공작은 이치로 앞으로 한 걸음 다가가며 조그맣게 속삭였다.

- 같이 끝장나고 싶지 않으면 내일부터 알아서 하시게.

그런 후 옆에 있던 군인에게 말을 했다.

- 마바시(間橋) 대좌(大佐), 자네한테 내 권한 전부를 위임해 줄 테니 내일부터 이 부대에 남아서 잘 감시하게.

- 네. 알겠습니다.

그 때 멀리서 여자의 비명 소리가 들렸다. 레이코는 그 목소리를 듣고 사색이 되어 복도를 달렸다. 그러자 대공 옆에 있던 장교가 레이코의 뒤를 재빨리 따라갔다. 레이코가 도착한 방은 세현이 관리하고 있던 실험체가 있는 방이었다.

- 사.. 살려주세요.

군인 하나가 음흉한 미소를 흘리며 말했다.

- 너 같은 년은 어떤 맛일까? 레이코 중좌가 아끼는 걸 보면 맛있는 년일 거야.

그러면서 여자에게 달려들어 옷을 찢기 시작했다. 여자가 반항을 하자 군인은 여자를 때렸다.

- 빠가야로! 죽이기 전에...

그 때 뒤에서 레이코가 크게 소리를 쳤다.

- 야나기사와(柳?) 소좌! 이 여자는 건드리지 말랬지!

그러고는 야나기사와 소좌를 무섭게 몰아붙였다.

- 다른 여자는 다 괜찮아도 이 여자는 안 된다고 내가 했을텐데..

- 그... 그게 아니고...

야나기사와는 벌떡 일어나며 바지춤을 추슬렀다. 레이코는 옆에 세워둔 야나기사와의 대검을 뽑아 야나기사와의 목에 겨누었다. 야나기사와는 두 손을 들었다. 한쪽 구석에는 옷이 반쯤 찢어진 채 입술에서 피를 흘린 채 쓰러져 있던 여인이 손으로 찢어진 옷을 든 채 몸을 가렸다.

- 이.. 이 여자도 천황님께서 하사하신...

야나기사와가 변명을 하기 위해 입을 열자 레이코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 닥쳐! 넌 상관 명령에 불복종한 것이다.

그러자 야나기사와가 뒤로 물러나며 말했다.

- 이러는 건 상관이어도 월권입니다.

- 쓰레기같은 새끼. 똥인지 된장인지 구분도 못하고...

그러자 야나기사와는 입술을 씰룩거리다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 빠가야로. 조센징 계집 주제에 상관 행세..

그 때 레이코의 대검이 공중을 갈랐다. 그리고 야나기사와의 어깨로 내리쳐졌다. 비명 소리와 함께 팔 하나가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 으악...

야나기사와는 선뜩한 느낌 후에 자신의 팔이 땅에 떨어지는 것을 보고는 분노에 사로잡혔다. 어깨에서는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고, 그 피는 방 안에 흩뿌려졌다. 몸을 가리고 있던 여인은 그 모습을 보고 비명을 질렀다.

- 조.. 조센징 계집... 내가 누군지 아나! 야나기사와 남작의 아들...

야나기사와는 남은 한 쪽 팔로 총을 더듬어 꺼냈다. 그 순간 탕하는 총소리와 함께 야나기사와의 미간에서 피가 흘렀다. 그리고 총격의 반동에 의해 몸이 뒤로 튕겨져나갔다. 레이코는 총소리가 난 곳을 쳐다보았다.

- 즉결심판입니다. 아가씨. 항명죄 및 상관 모욕죄.

레이코가 뒤를 돌아보자 마바시 대좌는 권총을 권총집에 넣었다. 그리고는 레이코에게 고개를 숙였다. 레이코도 가볍게 목례를 한 후 안에 있는 여자를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 그 때 마바시가 조용히 말을 꺼냈다.

- 성공하셔야 합니다. 대공님의 의지이십니다. 아가씨.

레이코는 여자의 팔을 잡고 사무실 쪽으로 가다가 잠시 멈칫했다. 그러나 이내 평정심을 찾고는 아무 대꾸 없이 복도를 걸어갔다. 마바시는 죽어있는 야나기사와를 한 번 쳐다보고는 레이코와 같이 걸어갔다. 마바시는 오야마 대공의 옆에 서서 상황을 간략하게 보고하고 여자와 같이 오는 레이코를 보았다.

- 부대가 썩어 빠졌어!

오야마 대공은 그렇게 한 마디하고는 옆에 부동의 자세로 서 있는 다나카에게 말했다.

- 실험은 새로운 곳에서 진행하겠습니다. 그리고 그 곳은 레이코가 전담을 할 것입니다. 설사 다른 장군이나 장관이 오더라도 레이코의 허락 없이는 들어갈 수 없습니다. 이건 천황 폐하의 명령입니다.

오야마의 입에서 천황 폐하라는 말이 나오자 다나카는 바짝 바닥에 엎드리며 말했다.

- 알겠습니다. 당장 시설을 만들어 진행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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