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계(逐界) - 쫓겨난 이들의 세계 - 2장 - 9. 슬픈 과거 (1)
9. 슬픈 과거
헤이룽장성(黑龍江省) 하얼빈에 있는 부대로 들어가는 길목은 키가 큰 나무들이 길가를 따라 줄지어 늘어서 있었다. 오전에 비가 내린 후라서 그런지 하늘은 뭉게구름만 흘러갈 뿐 아주 화창했다. 여름날 오후였지만 강가를 거쳐 불어오는 바람은 상쾌했다. 멀리 군부대 안에서는 알 수 없는 음악이 흘렀지만 몹시 흥겨운 음악이었다. 내리는 비에 몸을 숨겼던 새들도 하늘을 향해 쌍쌍이 날아다녔고, 잠자리들도 젖은 날개를 털 듯 부지런히 날개를 움직이며 날고 있었다. 여름의 녹음이 우거진 산은 희뿌옇던 시야가 사라지자 녹색과 붉은 색이 뒤섞여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몇몇 새들이 흙으로 길을 낸 도로에 내려앉아 무언가를 쪼고 있었다. 그러다가 무엇에 놀랐는지 푸드득하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 길 위로 페인트칠이 벗겨져 여기저기 녹슨 군용 지프 하나가 굉음을 내며 달려왔다. 맑았던 도로 위가 군용 지프차가 내뿜는 매연과 먼지바람으로 다시 뿌옇게 변해버렸다. 차가 멈추자 안에서 두 사람이 내렸다.
- 이곳은...
중위(中尉) 계급장을 달고 있는 사람이 옆에 있는 소좌(少佐)에게 물었으나 그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는 정문 앞으로 가서 위병(衛兵)과 얘기를 나눈 후 중위에게 다가왔다.
- 오늘부터 이곳에서 근무한다.
- 네. 알겠습니다.
- 그럼 안으로 들어가라.
중위는 소좌에게 경례를 하였다. 그러자 소좌는 경례를 받고 다시 지프에 올라탔다. 지프는 잠시의 머뭇거림도 없이 떠나버렸다. 부대 정문 앞에 선 중위는 위병의 안내를 받아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연병장같이 생긴 곳을 따라 안으로 더 들어가자 다시 위병이 지키고 있는 출입문이 나왔다. 상황실 안에 있던 중위 하나가 밖으로 나왔다.
- 연락은 받았습니다. 안으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원강현 중위.
상황실 안에서 나온 중위는 마치 그를 비웃듯이 말을 했다. 개명(改名)도 하지 않은 중국인의 중위가 탐탁지 않아서였다. 그러나 강현은 그런 것도 모른 채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안으로 들어갔다. 강현은 어떤 곳으로 어떤 일을 하기 위해 가는 것인지도 알지 못했다. 강현은 자신이 이곳으로 오게 된 이유가 자신의 학력 때문으로 알고 있었다. 북경대학(北京大學) 의학부에 재학하다가 징집이 되어 만주에서 보병 부대 군의관으로 복무를 하다가 갑자기 차출이 되어 이곳으로 왔기 때문이었다. 군의관들을 모아 놓고 이 부대로 갈 사람을 차출할 때 일본인 군의관들은 왠지 이곳으로 가기를 꺼려했다. 그러기에 강현이 손을 들고 자원을 한 것이었다. 더욱이 그 곳은 하얼빈에 있는 곳이어서 전투와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었을 뿐 아니라 듣기에는 민간인 치료를 목적으로 하는 곳이라고 들었기 때문이었다. 강현은 일본인이기에 중국인 병자를 치료하기를 거부하는 것으로 알았던 것이었다. 그러나 강현이 도착해서 본 것은 일반적인 병원의 모습이 아니라 마치 수용소와 같은 모습이었다. 일본이 중국인을 어떻게 대우하는지 이미 잘 알고 있었기에 이런 시설에 대한 불만은 없었다. 단지 한 명이라도 더 고치고, 살리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강현은 중간 출입문을 통과하여 안쪽으로 보이는 건물로 들어갔다. 복도를 걸어가던 강현은 감옥과 같이 생긴 방 안에 있는 사람들을 보고는 충격을 받았다. 거의 모든 사람이 몸이 성한 사람이 없었다. 강현은 칙칙한 외부보다 더 처참한 내부였기에 인상이 찌푸려지는 건 어쩔 수 없었지만, 한 사람이라도 더 살리겠다는 마음으로 복도를 지나갔다. 멀리서 비명 소리같은 것이 들리긴 했지만 강현은 치료의 과정이라고 생각하고 구석에 있는 사무실로 들어갔다.
- 충성! 만주 주둔지에서 의무관을 맡았던 원강현 중위입니다.
부대 책임자인 듯한 이가 강현을 째려보았다.
- 아직 개명을 하지 않았군.
- 네? 무슨 말씀이신지...
- 칙쇼(ちくしょう)!.. 이 중요한 일에 중국인이라니..
책임자가 낮게 중얼거리자 강현은 이맛살을 지푸렸다. 사람 고치는 일에 일본인과 중국인을 구분하는 것 자체가 말도 안 되는 일이라 생각했다. 또한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일에 창씨개명이 필요하다는 것 또한 웃기는 일이라 생각했다.
- 하긴 모두 전쟁터로 나가 있으니...
책임자는 밖을 향해 크게 소리쳤다.
- 이 녀석 데리고 가서 1부에 있는 레이코(花子) 중좌에게 데려다 줘.
그러자 사병 한 사람이 들어와 경례를 하고는 강현을 데리고 나갔다. 강현은 밖으로 나와 사병에게 물었다.
- 이 병원엔 환자가 몇 명이나 되나?
사병은 강현의 말에 비웃듯이 말했다.
- 글쎄요. 환자는 한 명도 없는 걸로 아는데요?
사병의 말에 강현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 이 봐! 장난하나?
- 장난이요? 전 장난같은 거 안 칩니다.
사병은 짜증스럽다는 표정으로 강현을 외면했다. 강현은 그런 그를 못마땅하게 쳐다보았다. 일본인의 오만이 군에서의 계급보다 우선하는 것 같아 한 마디 하려다가 그냥 참고 넘겼다. 온 첫날부터 분란을 일으키고 싶진 않았다.
- 하긴 자네같은 사병이 병원에 대해 잘 모르겠지.
강현의 한 마디에 사병은 무슨 소리냐는 듯이 강현을 쳐다보았으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여깁니다. 레이코 중좌님 사무실입니다.
그러더니 돌아서 가버렸다. 경례도 하지 않고 돌아서는 사병이 괘씸해서 그를 쳐다보다가 그가 혼자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 칙쇼! 창꼬로(チヤンコロ: 중국인을 비하하기 위해 일본군이 사용한 말).
강현은 그 소리에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중위인 자신에게 대놓고 중국인을 비하하는 말을 한 사병의 태도에 분개했다. 강현은 그 사병을 소리쳐 불렀지만,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버렸다. 강현은 너무나도 화가 났지만 자신의 직속상관을 만나는 자리였기 때문에 얼굴의 표정을 풀었다.
- 레이코 중좌? 여자인가?
강현은 여자라고 깔보거나 하는 마음은 없었지만, 이런 중증 환자들 사이에 여자 의사는 어울려 보이지 않았다. 강현이 노크를 하고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을 때 강현은 뒤로 돌아 있는 의자 너머로 누군가가 앉아서 전화를 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의자 등받이 너머로 보라색 나비핀이 보였다. 강현이 안으로 들어오자 사무실 안의 사람은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의자를 빙글 돌려 강현과 눈아 마주쳤다. 20대 중반으로밖에 안 보이는 여인 하나가 환하게 웃으며 강현에게 손을 내밀었다.
- 경례같은 건 생략하고.
강현은 그녀의 아름다운 모습에 잠시 멍하게 있다가 자신도 모르게 손을 내밀어 그녀의 손을 잡았다. 그런데 그 순간 아차 싶었다. 그녀는 자신의 상관 아닌가! 더군다나 처음 보는 자리에서 손을 내민다고 덥석 잡아버린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오는 첫날부터 상관에게 흠결이 잡힌 것 같아 어찌할 바를 몰랐다.
- 이 부대는 알고 왔나?
레이코의 말에 강현은 지금이라도 예절을 지켜야겠다고 생각하고는 그녀에게 경례를 하고 보고를 시작했다.
- 충성! 중위 원강현은...
그러자 레이코는 손을 저으며 말했다.
- 보고는 생략해도 된다고 했다. 여기 보고서에 다 있으니까. 아무튼 이 부대는 알고 왔냐고 묻고 있다.
강현은 파견 올 때 그냥 의학 지식이 있기 때문에 중위로 특진을 하고 특수 임무에 투입된다고만 들었었다. 그리고 이곳에 들어섰을 때 환자들이 많이 있는 것으로 보아 중증 환자를 치료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어느 누구에도 이 부대 혹은 병원에서 하는 일을 듣지 못했다.
- 정확하게 듣진 못했습니다.
- 그런가? 그럼 마음의 준비는 됐겠지?
레이코의 말을 강현은 환자를 치료할 준비가 되었냐는 말로 들었다.
- 네. 준비는 되었습니다.
- 부대에서 하는 일도 제대로 모르면서 마음의 준비가 되었다고?
- 네? 병원이니까 당연히..
강현의 반응에 레이코는 냉정한 표정으로 물었다.
- 병원으로 알고 왔군. 어차피 왔으니까 하는 일을 알아야지.
레이코는 차트 하나를 꺼내 강현 앞에 던져주었다. 강현은 그 차트를 받아 들었다. 그리고 한 페이지를 넘기자 놀라운 사실이 쓰여 있었다.
- 이.. 이게 사실인가요?
강현은 그 차트에 나온 내용이 믿어지지 않았다. 이곳은 병원이 아니었다.
- 사실이지. 그리고 내일부터 너도 투입될 거고.
강현은 못 믿겠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서 화가 난 듯이 말을 했다.
- 저는 사람을 고치는 의사입니다.
그러나 강현에게 되돌아온 말은 냉정하기 그지 없었다.
- 지금은 전쟁 중이고, 우린 군인이야. 그리고 일단 여기 들어온 이상 너 역시 명령에 충실해야 하고.
- 그렇다고 해도 이건...
강현의 말에 레이코는 냉정한 표정으로 말했다.
- 싫으면 나가도 돼. 단 여기 정보를 알았으니 죽어서 나가야겠지만.
강현은 예쁘장하게 생긴 레이코 중좌의 입에서 나오는 서슬 퍼런 말에 오금이 저렸다.
- 그래도 이건 사람이 어떻게...
- 웃기는군. 전쟁에선 사람이 왜 사람을 죽이지?
레이코의 말에 강현은 할 말을 잃었다. 전쟁이라는 상황은 사람을 미치게 한다. 전쟁 상황이 아닐 때에 사람을 많이 죽인다면 미치광이 살인마가 되겠지만 전쟁 상황에서는 영웅이 된다. 전쟁은 죽음을 정당화하고 당연시하고 일상화한다. 강현은 그런 사실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건 치열한 전투 중에 일어나는 일이다. 여기처럼 전투와는 전혀 상관없는 곳이 아닌가! 하지만 강현은 어떤 반박도 할 수 없었다. 전쟁이란 어차피 적을 많이 죽일수록 유리한 것이기에 적은 희생을 통해 최대한의 이익을 뽑아내려는 이 행동을 비난할 수는 없었다. 전쟁이란 이미 윤리와 도덕을 마비시켜 사람으로 하여금 죽음과 죽임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때문이었다. 누가 어떻게 죽건 그건 어차피 전쟁 중에 일어난 일일 테니까.
강현은 그러한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러한 행동을 전쟁 수행이라는 미명하에 저지르고 있는 이곳이 역겨웠다. 당장 이곳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자원을 하는 게 아니었는데...'
강현은 그때 손을 번쩍 든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물론 더 많은 병자를 치료하고 싶은 마음에서였지만, 지금은 차라리 보병으로 구르다가 누군가를 총으로 쏘거나 아니면 자신이 총에 맞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
- 그.. 그럼 제가 하는 일은 뭡니까?
강현의 말에 레이코는 명료하게 대답했다.
- 실험 결과 정리와 뒷정리지.
강현은 그래도 직접 실험을 하지 않는다는 것에 안도했다. 그런 한편으로는 그런 비겁한 마음이 드는 자신에 대한 자괴감이 커졌다. '난 직접 하는 건 아니잖아'하는 생각은 그로 하여금 자신을 좌절하게 한 것이기도 했다.
- 네... 알겠습니다.
강현은 레이코에게 경례를 하고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벽을 붙잡았다. 내 목숨이 사라진다고 해도 못하겠다고 얘기했어야 한다고 그의 내부에선 소리치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두려웠다. 이 낯선 곳에서 아무도 모르게 죽어가는, 아니 어쩌면 중국인인 자신을 이용할 것이라는 두려움에 강현은 몸서리를 쳤다.
- 이건 아니야.
강현은 몸을 휘청거리며 자신에게 배정된 방으로 향했다. 방에 들어가서 강현은 멍하니 앉아 있었다. 방송을 통해 식사 시간임을 알렸지만, 강현은 도저히 밥이 목구멍으로 넘어갈 것 같지 않았다. 아니 이런 일을 하면서도 목구멍으로 쉽게 무언가를 넘기는 사람들이야말로 괴물이라고 생각이 들 정도였다. 강현이 혼자 넋을 놓고 앉아 아까 본 서류의 내용과 사진들을 떠올렸다.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최악의 실험 내용이었다. 사람을 이용한 생체 실험. 그것도 가장 효과적으로 죽일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는. 그런 한편으로는 적들이 그러한 방법을 썼을 때 끝까지 살아남는 법. 두 가지 모두 괴물을 만드는 것이었다. 정상적인 인간이라면 생각할 수도 없는 최악의 방법들이었다. 자신이 그런 죄악에 내일부터 참여해야 한다는 것이 강현은 견딜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런 실험을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자행하는 레이코는 예쁜 얼굴 뒤에 악마가 숨어 있는 것 같았다. 아니 원래 악마는 사람을 현혹하기 위해 사람에게 가장 호감이 가는 얼굴을 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강현은 레이코와 내일부터 같은 공간에서 사람을 효율적으로 죽이는 연구를 하게 된다고 생각하니 바로 그 곳이 지옥이라고 생각되었다. 악마에게 영혼을 판 파우스트 박사와 같은 심정이었다. 죽음을 제조하고 죽음을 방관하고 아니 올바른 죽음의 길이 아닌 죽음을 위한 죽음을 강요하고 강제하는 이곳에서 과연 자신이 살아남는 게 무슨 의미인가 싶기도 했다. 그러나 강현은 스스로 목숨을 끊을 용기는 나지 않았다. 자기 자신의 목숨도 소중했지만, 징용 때 마당에 엎드려 울던 어머니, 방에서 말없이 담배만 연신 빨아대던 아버지, 그리고 자신의 옷깃을 부여잡으며 꼭 살아 돌아오라고 흐르는 눈물을 억지로 참으며 말하던 홍연이까지 자신을 기다리는 사랑하는 이들이 있기 때문이었다. 강현은 이들 사이에서 살아남는 것조차 고통이라고 여겼지만, 하루하루 살아지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강현은 그 날 하루를 내리 굶었다. 더욱이 누구도 그에게 와서 식사를 강요하지 않았다. 다만 사병이 잠시 와서 신경질적으로 휘갈겨 쓴 명령서만 던져 주고 갔다.
'오늘은 처음이니 봐주겠지만, 내일부터 또다시 이런 짓을 하면 군법으로 다스릴 것이다.'
강현은 그 명령서를 구겨 쓰레기통에 던져버리고 침대에 누웠다. 낮은 한숨과 함께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생각해 보았다. 그러나 딱히 판단되는 일도 가늠할 수 있는 일도 없었다. 내일 일은 내일 닥쳐봐야 알 것 같았다. 강현은 조용히 눈을 감았다. 강현은 어떻게 밤을 보냈는지 몰랐다. 밤새 죄책감과 자괴감에 시달려 악몽을 꾸었다. 아침에 기상나팔 소리에 일어나긴 했지만 머리가 지끈거렸다. 강현이 밖으로 나오자 아침 일찍부터 연병장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강현은 무슨 일인가 싶어 그곳을 쳐다보다가 레이코의 사무실로 갔다. 노크를 하고 문을 열자 레이코는 어제와는 다르게 군복을 입고 있었다. 강현이 경례를 하자 레이코는 경례를 받고 강현 앞에 서류를 하나 던져 주었다.
- 읽어보고 서명을 하든, 그냥 서명을 하든 서명을 해라.
강현은 그 서류의 첫장을 넘겼다. 처음에는 부대 내규가 보였다.
부대 규율
1. 물의를 일으키거나 탈주를 시도한 수용자는 24시간 이내에 실험을 종료한다. 이 때문에 수용자가 폭동을 일으킬 경우 새로운 실험을 개시한다.
2. 부대의 모든 구성원(부대지휘관 포함)은 부대에 몸담고 있는 도중 사망하면 그 시신은 부대에 기증한다.
3. 어떠한 경우라 해도 수용자는 석방시킬 수 없다.
4. 실험이 종료된 이후의 수용자는 생사 여부와 관련없이 무조건 소각 처리한다.
5. 적과의 교전에서 패배하거나 기타 다른 이유로 어쩔 수 없이 부대를 해체해야 할 경우에는 모든 수용자를 정리한다.
6. 수용자의 탈주를 도와준 부대원은 직위해제는 물론이고 중죄인으로 분류되어 사형 또는 이에 준한 형벌을 받는다.
강현은 부대 규율을 보면서도 몸서리를 쳤다. 이 부대에 속해 있는 한 절대 살아서는 나갈 수 없다는 것이었다. 왜 일본인 군의관들이 이 부대에 오기 싫어했는지 알 것 같았다. 이미 그들은 이러한 정보를 공유하고 있었으리라. 강현은 다음 페이지를 넘겼다. 다음 페이지는 부대의 부서 활동에 대한 내용이었는데, 개략적으로 8개 부서가 있음만을 보여주었다. 강현이 속한 부서는 제 1부였다. 강현은 낮게 한숨을 쉬었다. 다음 페이지에서는 이 부대에서 하는 일을 개략적으로 설명한 내용이었다. 강현이 어제 본 내용과 유사했지만, 훨씬 자세하게 나와 있었다. 강현은 떨리는 손으로 마지막에 있는 서명란에 자신의 이름을 적었다. 그러자 레이코는 그 서류를 받아들고는 강현을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는 부대장실 앞에 섰다.
- 부대장님인 다나카 이치로(田中一朗) 장군이시다.
레이코가 문을 열자 안쪽으로 넓은 집무실이 보였다. 커다란 책상 옆으로 일장기가 보였고, 장군의 머리 위에는 일왕(日王)의 사진이 보였다. 레이코와 함께 장군 앞으로 다가간 강현은 크게 전출 보고를 했다.
- 충성! 중위 원강현은 1942년 5월 21일 부로...
강현의 보고가 끝나자 다나카는 고개를 한 번 끄떡일 뿐이었다. 다나카는 거대한 몸집을 갖고 있어서 충분히 위압적이었다. 그리고 동그란 안경 너머에 보이는 매서운 눈매는 상대의 의중을 꿰뚫어볼 것만 같았다.
- 대일본제국의 영광을 위해 피아(彼我) 구분없이 최선을 다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