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축계(逐界)-쫓겨난 이들의 세계-101화 (101/309)

축계(逐界) - 쫓겨난 이들의 세계 - 2장 - 8. 어둠의 이면(裏面) (4)

정태는 세현이 눈을 뜨자 세현의 옆에 섰다. 지난밤을 세현의 옆에서 새서 퀭한 눈이었고, 꾀죄죄했지만 세현이 눈을 뜬 것이 다행이라는 안도감에 미소가 나왔다.

- 정신이 좀 드세요?

- 어. 닥터 리. 무슨 일이 있었지?

정태는 세현이 자신을 '닥터 리'라고 부르자 노곤했던 정신이 번쩍 들었다.

- 네? 셀레나...

정태가 이렇게 부르자 세현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 셀레나? 익숙한 외국 이름인데... 왜 날 그렇게 불러?

세현의 갈라지는 목소리를 듣자 정태는 세현을 똑바로 보며 말했다.

- 괜찮으세요?

정태의 말에 세현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 아니.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 무슨 일이지?

정태는 선뜻 대답할 수가 없었다. 지금 세현의 상태를 파악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 이름이 어떻게 되시죠?

정태의 말에 세현은 눈을 찌푸리며 말했다.

- 닥터 리. 내 밑에서 일하면서 내 이름도 몰라? 어? 그런데 손은 왜 그래?

정태는 자신이 찔러 놓고 왜 그러냐고 묻는 세현이 어이없었지만, 그 때 발작으로 기억을 잃고 현재의 기억을 찾은 것으로 보였다.

- 좀 다쳤어요. 그런데 혹시 다른 건 기억나는 건 없으세요?

정태의 말에 세현은 걱정스러운 표정을 하고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 없는데.. 그런데 손은 괜찮아?

세현의 말에 정태는 고개를 끄떡이며 말했다.

- 네. 괜찮아요.

- 그런데 난 왜 여기 누워있는 거지?

- 시술 도중에 일이 있어서 이곳으로 옮겼습니다.

정태의 말에 세현은 멀뚱한 표정으로 정태를 보며 말했다.

- 시술?

- 얘기하자면 길어요. 좀 회복되시면 말씀드릴게요.

정태의 말에 세현이 정태를 보며 말했다.

- 밤샌 몰골이네. 혹시 날 밤새 간호한 거야? 손도 불편하면서?

세현의 말에 정태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 그런 셈이죠. 쉬세요. 저도 간호사들에게 부탁하고 눈 좀 붙여야겠어요.

정태의 말에 세현이 고개를 끄떡였다. 정태가 돌아 나갈 때 세현이 말을 했다.

- 고마워. 보살펴 줘서.

정태는 그 말에 잠깐 걸음을 멈췄다가 밖으로 나갔다. 정태는 세현의 입에서 나온 걱정하는 말과 '고맙다'는 말이 대단히 이질적이었다. 현재의 기억을 찾았다면 현재의 성격도 찾았을 텐데 그렇다면 그녀의 입에서 '고맙다'는 말보다 현재의 상황을 추궁하는 말이 먼저 나왔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분명 그녀의 내부에서 무언가 변화가 생겼으리라는 걸 정태는 알 수 있었다.

다음날부터 세현의 검사를 다시 시작했지만, 지난번에 발견한 문제 외에는 큰 문제가 발견되지 않았다. 다만 크게 바뀐 게 있다면 '냉혈한'이라고 불리던 세현이 그녀와 어울리지 않게 상냥하고 밝게 바뀌었다는 것이었다. 특히 정태에게만은 '보통 여자'들이 하듯이 대했다. 더욱이 정태의 손이 자신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된 다음에는 정태에게 유독 미안해 하면서 친절하게 대했다. 그리고 가끔 농담도 하고, 친절하게 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둘이 술을 한 잔 할 때 세현이 정태에게 농담처럼 말을 했다.

- 닥터 리. 왠지 닥터 리가 날 좋아하는 것 같아.

어느 날 뜬금없는 세현의 말에 정태는 손사래를 치며 부정을 했고, 그러한 행동에 실망한 척한 세현에게 정태는 그간의 마음을 고백했고, 세현 역시 정태에게 무언가 끌리는 것이 있어 두 사람은 연인 관계가 되었다. 물론 병원이나 센터 내에는 비밀로 하기로 했지만, 곧 두 사람이 사귄다는 소문이 병원 내에 파다하게 퍼졌다. 두 사람은 그 말을 부정하지 않았다. 특히 정태는 세현을 단순히 지켜보거나 감시하는 역할이 아니라 세현의 보호자로 적극적인 태도를 취했다. 이러한 변화는 피터에게 더 이상 세현에 대한 어떠한 실험도 하지 않도록 요구하는 것으로 나타났고, 정태가 그녀의 상태를 치료하는 주치의이자 연구원이 되었던 것이다. 피터의 입장에서도 정태의 요구가 나쁘지 않은 것이었기에 그렇게 하도록 했고, 두 사람은 그렇게 함께 있을 수 있었다. 그런데 뜻밖의 일로 인해 두 사람, 특히 세현의 기억이 엉키는 일이 발생했다.

- 그 때 그 사건이었어. 미래 생명 공학 연구소.

정태의 말에 세현은 머리를 무언가로 얻어맞은 것 같았다.

- 그럼 그 때 내 기억이 또 흐트러졌다는 거야?

정태는 세현의 말에 고개를 끄떡였다.

- 그럼 왜 내가 계속 병원에서 근무하지 않고, 밖으로 나온 거지?

- 음... 일단 조금 복잡한 일이 있었어. 피터 소장이 죽었어. 그리고 날 이곳으로 보냈던 홈즈 씨와 샘 교수도 모두 죽었지. 그래서 난 자기를 거기에서 빼내야겠다고 생각했어.

- 그럼 내가 나와서 개원의가 된 것도 정태 씨가?

- 응. 그런 셈이지.

- 그런데 정태 씨는 왜 그대로 있는 거야?

세현의 말에 정태는 세현을 걱정하는 눈으로 쳐다보았다.

- 세계 최고의 연구 시설이야. 어쩌면 자기를 고칠 수 있는 유일한 곳이라고.

정태의 말에 세현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 그게...

정태는 세현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 내가 자기한테 백 번 넘게 약속한 거야. 자기 병은 내가 고쳐주겠다고.

세현은 정태의 말에 눈물을 흘렸다.

- 그래도 위험한 곳에 혼자...

정태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 위험하지 않아. 그리고 그 안에 있어야 자기에 대한 여러 정보들을 파악할 수 있거든.

정태의 말에 세현은 고개를 저었다.

- 그래도...

정태는 세현을 보며 오히려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 자기한테 말을 해줬어야 하는데, 사실 충격적인 사건 때문에 또 기억을 잃을까봐 그러지 못했던 거야. 그리고... 그 때는 내가 감시하는 역할이었기 때문에... 미안해.

세현은 그 말에 고개를 끄떡였다.

- 미안해 하지 않아도 돼. 나한테는 정태 씨밖에 없으니까.

정태는 그 말에 세현의 손을 더욱 꼭 잡았다. 세현의 눈에 정태의 손 위에 있는 칼자국이 보였다.

- 이거구나.

- 응.

세현은 정태의 손을 안쓰럽게 쓰다듬었다. 정태는 그러다가 세현에게 은밀하게 얘기를 했다.

- 자기랑 연락이 안 됐을 때, 솔직히 너무 걱정이 됐어. 사실 내가 연구해 본 결과 자기는 기억을 잃는 게 아니었거든. 기억이 흩어지는 거였을 뿐이야. 그리고 그 때 주입된 다량의 기억들은 사라지지 않지만, 미셀러니들은 충격을 받으면 뇌를 보호하기 위해 흩어지는 거였어.

정태의 말에 세현은 놀란 표정으로 말을 했다.

- 그게 무슨...

정태는 다소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 내가 그동안 자기의 뇌 세포 분열을 억제하는 방법을 연구했는데... 만약 지금처럼 뇌 세포가 계속 분열하면...

- 분열하면?

정태는 조금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 뇌압이 높아져서 뇌출혈을 일으킬 수도 있어. 그래서 항상 관리를 받아야 되는 거야.

정태의 말에 세현은 낮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 그럼 그게...

- 어쩌면 그 실험의 부작용일 수도 있어. 한계치 이상으로 기억을 주입해서...

세현은 그 말에 고개를 숙였다. 정태는 세현의 손을 다시 잡으며 말했다.

- 내가 꼭 고칠 수 있어. 반드시 고쳐줄 거야.

정태의 말에 세현은 정태를 보며 빙긋이 웃었다. 정태는 세현의 손을 잡고 다시 조용히 말했다.

- 그리고...

정태의 조용한 말투에 세현이 고개를 들었다. 두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린 채였다. 정태는 세현의 눈에서 눈물을 닦아 주며 말했다.

- 잠깐 몸을 피해야 할 것 같아. 내부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아. 이성렬 연구원이라고 나랑 같이 임무를 맡았던 녀석인데 요즘 자꾸 자기의 근황을 묻더라구. 한동안 잠잠하다가.

정태의 말에 세현은 고개를 끄떡였다.

- 내가 일단 숨어 있을 곳을 알아봐 줄 테니까 거기 가 있어.

정태의 말에 세현은 고개를 저었다.

- 있을 곳 있어. 병원 내부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나를 찾으러 다니거든. 톰슨 병원에서...

정태는 톰슨 병원이라는 말을 듣자 눈이 커졌다.

- 톰슨 병원?

- 응. 왜?

정태의 반응에 세현이 묻자 정태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 아니야. 그냥...

정태는 톰슨 병원이란 말에 예전에 홈즈를 만났을 때를 떠올렸다. 영국의 대부호가 하버드 대학의 일개 대학생에게 먼저 연락을 해서 만나자고 요청한 것은 정태에게는 잊지 못할 기억이었다. 더욱이 그 자리에서 세계적인 석학인 샘 에드워드와 만나게 될 줄은 꿈에도 알 수 없었다. 정태는 그 자리에서 여러 제안을 받았고, 그 중 하나가 피터의 밑에서 피터를 감시하는 일이었다. 정태는 왜 하필 자신을 선택했는지 물었을 때 샘 에드워드의 답변이 모든 것을 말해주었다.

- 톰슨 병원에서 만든 복제품인 CS1 중 자네가 최고니까.

정태는 그 동안 자신은 한국의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나 평범하게 살아온 사람인 줄 알았다. 그러나 홈즈와 샘의 말에 의하면 자신은 그들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 '개체'였고, 그렇기에 다른 이들보다 뛰어난 두뇌를 갖게 된 것이었다. 정태는 그 말에 자신의 정체에 대해 절망을 했지만, 그들은 오히려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 자네야 말로 우리가 옳다는 걸 보여주는 가장 좋은 사례지. 자네와 같은 '도덕적' 인간을 만들 수 있으니까.

정태는 자신의 삶이 그들의 계획 하에 있었다는 것에 대해 충격을 받았지만, 곧 그것을 극복할 수 있었다. 그것은 샘의 한 마디 때문이었다.

- 자네는 모르겠지만, 자네의 잠재력에 우리는 많은 기대를 하고 있어. 특히 자네가 어쩌면 나중에 '우리'를 이끌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까.

정태는 그때 '우리'라는 것이 단순히 샘이나 홈즈를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들과 일을 하면서, 그리고 피터의 밑에서 일을 하면서 더 큰 무엇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 그럼 일단 저에게 주어진 일에 충실하겠습니다.

홈즈와의 기억을 떠올린 정태는 고개를 저었다. 정태는 차마 자신이 실험체이고, 모종의 음모의 중심이라는 말은 할 수가 없었다. 정태는 세현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말을 꺼냈다.

- 위험한 상황이면 언제든지 나한테 연락해.

세현은 정태의 말에 고개를 끄떡였다. 정태와 세현의 이야기를 엿듣던 철구가 툭하고 한마디 던졌다.

- 미리 알고는 있었지만 참 복잡한 여자군요.

철구의 말에 석호가 고개를 끄떡였다. 그러다가 철구에게 질문을 했다.

- 정태라는 사람, 어떤 사람 같나요?

철구는 그 말에 단호하게 얘기를 했다.

- 아직은 의심스러운 부분이 많습니다. 우선 정태라는 사람의 과거를 우리는 아무 것도 모르거든요. 세현 씨와 만난 상황만 알고 있을 뿐이죠.

석호가 그 말에 고개를 끄떡이며 말했다.

- 그 때 받은 기록 중에도 이상한 게 전혀 없었나요?

철구는 그 말에 곰곰이 무언가를 떠올리며 말했다.

- 저런 사람의 과거는 어차피 '만들 수' 있는 거니까요.

철구의 말에 석호가 고개를 끄떡이며 말했다.

- 결국 정태라는 사람에 대한 것도 따로 조사를 해야겠군요.

철구는 잠깐 생각에 잠겼다가 얘기를 꺼냈다.

- 뭐 과거야 어찌되었건 현재는 크게 의심스러운 부분이 없으니까 당분간은 덮어둬야죠. 저도 과거를 뒤지면 한도 끝도 없이 나오니까요.

철구의 말에 석호가 웃으며 말했다.

- 그런가요? 아무튼 세현 씨의 잊힌 기억의 일부를 또 찾았네요. 그런데...

석호의 말에 철구가 석호를 쳐다보았다.

- 홈즈 스미스나 샘 에드워드가 이리로 최세현 씨를 보냈다는 게 아무래도 제가 찾는 무언가와 관련이 있어 보여서요.

철구는 그 말에 고개를 끄떡였다.

- 하긴 그 피터인가 하는 흰머리 가진 놈하고도 연결이 되어 있으니까 저하고도 연결이 되죠.

라디오에선 정태와 세현이 헤어지고 세현이 차 쪽으로 걸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철구는 얼른 라디오를 끄고 세현이 있는 쪽으로 다가갔다.

- 의심이 풀렸나요?

세현이 앙칼진 표정으로 철구를 쳐다보았고, 철구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말했다.

- 전부는 아니지만.

세현이 차에 올라타자 석호가 세현에게 웃으며 말했다.

- 고생하셨어요.

석호의 말에 세현은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 알면 알수록 고통스럽네요. 왜 정태 씨가 기억을 찾지 말라고 하는지 알 것 같아요.

그 말에 석호가 얘기를 했다.

- 고통스러운 기억이라도 찾아야 합니다. 그 기억이 없다면 결국 사람은 아무 것도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 그래도 고통스러운 건...

석호는 그 말에 혼잣말처럼 얘기를 했다.

- 제가 유럽에서 공부할 때 GNR(Genomics, Nanotechnology, Robotics)과 관련된 내용을 공부할 때 했던 논쟁이 있거든요. 과연 인간의 뇌의 기억을 다운로드 받아서 이식한다면 어떻게 될까 하는 논쟁이었죠.

철구가 시동을 걸고 차가 출발했고, 석호는 세현에게 과거에 했던 논쟁에 대한 자신의 생각에 대해 얘기를 하였다.

- 그 때 제 입장은 신학적인 관점이 아니라 인간적인 관점이었죠. 인간의 기억을 다운로드 받아서 이식을 한다고 해서 그 사람이 되지는 않는다는 것이었죠. 비록 호르몬의 작용으로 그 때의 감각은 느낄 수 있겠지만, 어찌 보면 그 사람이 당시에 느꼈던 본질적인 감각은 남지 않는다는 것이죠. 마치 아우라(Aura)처럼 말이에요. 똑같은 기억, 똑같은 감각이 있지만, 똑같은 아우라는 없어지는 것이죠. 그냥 기억을 다운로드 받아서 이식을 받는다고 해도 완전히 자신이 되는 건 아니죠. 제가 볼 때 헤이즐넛 커피 향기에 추억을 떠올릴 수 없거나 어느 날 문득 내가 살아온 모든 것에 회의를 느끼지 못한다면 결코 인간적일 수 없죠. 그건 그냥 하드디스크에 정보가 저장되고, 그것을 복사해서 새로운 데이터베이스를 만드는 것뿐이죠. 사람의 삶이 게시판에 글을 남기는 정보를 쌓는 게 아니니까요. 다운로드 받은 뇌가 어느 날 문득 '나는 뭐지?'하는 물음을 던졌을 때, 이미 나는 내가 아닌 타인이 되어있을 거예요. 결국 기억으로 인해 고통을 느끼고, 쾌감을 느끼고, 아픔을 느낀다면 그게 인간이 아닐까 해요. 그리고 그런 기억을 내 스스로가 오롯하게 알고 있기에 진짜 내가 되는 게 아닐까요?

- 철학적인 얘기로군요.

철구가 앞에서 툭 한 마디 던졌다. 그러자 석호가 그 말에 대답을 했다.

- 철학적이죠. 어쩌면 그래서 제가 더 신부라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는지도 모릅니다. 죽음에 대해 성찰할 수 있으니까요.

석호의 말을 들은 세현은 물끄러미 창밖을 쳐다보았다.

- 저는... 저를 찾을수록 무서워져요. 그리고 살아야 할 이유도 상실해 가고요.

세현의 말에 석호가 얘기를 했다.

- 무섭죠. 저 역시 어린 시절의 기억을 알고 무서웠죠. 너무 무서워서 한밤중에 십자가를 들고 밤새 기도도 하고, 저의 스승님 품 안에서 엉엉 울기도 했죠. 하지만 이젠 그 기억으로 살아가니까요. 아마 세현 씨도 저와 같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철구 씨도 그 아픈 기억으로 살아가고 있죠.

철구는 차를 몰아 외곽에 있는 산장 쪽으로 갔다. 전에 후배 경준이 소개해 준 곳이었기에 철구는 막힘없이 그 곳을 찾아갔다.

- 일단 오늘은 여기서 지내자구. 신부님도 괜찮으시죠?

철구의 말에 석호가 의아한 듯이 철구를 쳐다보다가 고개를 끄떡였다.

- 저 쪽에 방 있으니까 그 방을 쓰면 되고. 우리야 거실에서 자면 되고.

철구의 말에 세현은 힘없이 산장 안으로 들어갔다. 세현이 안으로 들어가자 철구가 석호에게 얘기를 했다.

- 사무실은 번화가에 있어서 빠져 나가면 대책이 없어요. 여기는 고립됐으니까 그나마 우리가 보호하기도 편하고... 그리고 아까 보니까 죽고 싶다는 말은 아니어도 그런 비스무레한 말을 하는데 그냥 놔두면 혹시 몰라서요.

철구의 말에 석호가 고개를 끄떡였다. 저렇게 심리가 불안한 사람은 순간적으로 어떤 극단적인 판단을 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석호 역시 내심 불안했는데, 철구가 그러한 불안을 미리 감지하고 외곽으로 나온 것이었다.

- 그렇군요.

- 아직 죽으면 안 되기 때문이에요. 저 여자가 불쌍해서가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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