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축계(逐界)-쫓겨난 이들의 세계-97화 (97/309)

축계(逐界) - 쫓겨난 이들의 세계 - 2장 - 7. 진실의 문(9)

톰슨은 짜증이 났다. 다나카가 다녀가고 난 다음 왠지 자신이 그에게 속박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다나카가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고, 자신이 야심차게 세운 계획이 마치 그를 위한 계획처럼 여겨졌다. 그런 상황에서 지하 연구실에서 폭발 사고에 대해 보고를 받은 톰슨은 이 지하 시설이 붕괴될 일이 없다는 강한 믿음이 있었지만, 들어오는 보고에 의하면 점점 강한 폭발이 위에서부터 내려온다는 것이었다.

- 젠장. 일단 오늘 실험은 멈추고 모두 대피하도록 하게. 자료는 잘 모아 놓고.

톰슨은 누가 이 병원을 테러하는 것인지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톰슨 병원이 누군가에게 해를 끼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톰슨은 그 순간 얼마 전 다나카의 부하들이 병원 앞에서 벌인 사건이 떠올랐다.

- 이건 뭐야.

톰슨은 조금 화가 나서 다나카에게 전화를 걸어 현재의 상황을 말했다. 그러나 다나카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말했다.

- 협박일 뿐입니다. 건물을 폭파시킬...

그 때 건물이 몹시 심하게 흔들렸다.

- 건물이 심하게 흔들립니다. 이것들이 복수하려는 것 같은데요.

다나카는 한숨을 내쉬며 인상을 썼다.

- 알겠소. 일단 폭탄 전문가들을 보낼 테니까 잠깐 대피해 계세요. 그리고 그 녀석들은 제가 처리할 테니 걱정 마시고.

전화를 끊은 톰슨은 연구원들을 독려해서 밖으로 나왔다.

- 일단 오늘은 퇴근을 하고 내일 보세나.

톰슨은 연구원들을 보내고 건물 밖으로 나왔다. 건물 밖은 아수라장이 따로 없었다. 톰슨을 보다 경비원들과 의사들이 톰슨 옆으로 다가왔다.

- 원장님, 얼른 피하십시오. 위험합니다.

그 말에 톰슨은 굳은 얼굴로 얘기를 했다.

- 원장이 이런 상황에서 먼저 도망가면 누굴 믿고 환자들이 오겠소. 환자들이 다 나간 후에 나오려고 했는데... 환자들은 모두 피신했나?

의사들과 주변에 있던 환자들, 그리고 직원들은 모두 톰슨의 태도에 박수를 쳤다.

- 박수를 칠 일이 아닙니다. 지금 중환자들 경우에는 이렇게 이동하는 것 자체가 위험할 수도 있는데... 경찰들은 어디 있는 거요.

톰슨은 밖에서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단속을 하고, 관리를 했다. 어느새 왔던 환자들이 모두 빠져 나갔고, 병원에는 다나카가 보낸 폭탄 전문가들과 경찰들만 있었다.

- 폭발물은 더 이상 감지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CCTV를 확인해 보니 마스크를 쓴 이 남자가 용의자인 것 같습니다.

톰슨에게 보고를 하자 톰슨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 지하 대피소에 있던 환자들을 모두 원상 복귀시키세요. 그리고 기자들에게 이번 일에 대한 규탄 성명서도 내고, 내일 기자 회견도 잡고. 그리고 이 사진은 경찰에 보내고.

톰슨의 지시를 받은 사람들은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톰슨은 의자에 몸을 기대고 앉았다.

- 음... 피곤하군.

톰슨은 원장실에서 그냥 잘까 하다가 내일 기자 회견 잡은 걸 떠올리고는 집으로 가기 위해 주차장 쪽으로 몸을 돌렸다. 차에 올라탄 톰슨은 시계를 한 번 보았다. 밤 10시였다.

- 집에 가서 쉬고 싶군.

차에 올라타 시동을 걸었을 때 자신의 목 뒤를 노리고 있는 섬뜩한 느낌을 느꼈다.

- 누... 누구냐?

룸미러로 뒤를 보자 웬 여자 하나가 표독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자신의 목에 칼을 들이대고 있었다.

- 닥치고 이제부터 내가 말하는 곳으로 가.

톰슨은 한눈에 보기에도 그녀가 전문가로 느껴졌다. 그렇지 않다면 자신의 경동맥을 정확하게 칼로 겨눈 채 미동도 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톰슨은 그녀가 시키는 대로 운전을 했다.

톰슨이 오기 전까지 메이양은 옆의 차 밑에 누워서 이를 갈았다. 몸에 폭탄을 두른 채 톰슨 원장과 함께 자살을 할 요령이었다. 그러나 톰슨 병원장이 어떤 차를 타고 다니는지, 언제쯤 퇴근하는지 알 수가 없기에 메이양은 차 아래에 숨어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VIP 주차장에 들어온 일련의 사람들이 한 사람을 향해 원장님, 원장님 하는 소리를 들었고, 나머지 사람들이 모두 빠져나갔다. 사실 오늘은 원장이라는 자의 차만 알아볼 참이었다. 그런데 운이 좋게도 원장은 퇴근을 하지 않았고, 메이양은 뒤늦게 퇴근하는 톰슨의 차에 몰래 올라탈 수 있었다.

메이양은 톰슨을 데리고 약속을 했던 공터 지하 창고로 갔다. 그리고 그 곳에서 무영과 일남과 만났다.

- 이 녀석이 톰슨 병원 원장입니다.

일남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 이 녀석은 아킬레스건을 끊진 않았군.

메이양은 비릿한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 그러면 운전을 못하니까. 조금 있다 끊어 줄 거니까. 호호호.

메이양의 비현실적인 웃음에 톰슨은 등골이 오싹했다.

- 내... 내게 왜 이러는가? 도... 돈 때문인가?

메이양이 칼을 들어 발등을 찌르며 말했다.

- 닥치랬지? 난 시키지 않았는데 입을 여는 놈이 제일 싫거든.

발등에 칼이 찍힌 톰슨은 악 소리를 지르며 자리에 주저앉아 발을 붙잡았다. 무영은 그 다음 행동을 하려는 메이양을 진정시키며 말했다.

- 기다려. 이 녀석한테 물어볼 게 많으니까.

무영이 눈짓을 하자 일남이 톰슨을 벽에 묶었다. 그리고 가방에서 주사기를 하나 꺼내서 톰슨에게 놓으며 말했다.

- 이 주사는 맞으면 뿅가는 거지. 주사를 즐기라고.

톰슨의 눈은 커지면서 일남을 쳐다보았다. 일남은 주사를 톰슨 팔뚝에 놓으며 말했다.

- 우릴 잘못 건드렸어. 네 놈이 건드렸는지, 아니면 그 다나카라고 하는 쪽발이 새끼가 건드렸는지 모르지만.

다나카의 이름이 나오자 톰슨의 눈이 커다랗게 변했다.

- 네.. 네 녀석들이구나. 오늘 병원에...

그 순간 메이양이 다시 칼을 들고 톰슨 앞으로 다가오며 말했다.

- 닥치하고 했지!

그러나 무영이 그런 메이양을 제지하며 말했다.

- 눈을 돌리느라고. 당신 같은 거물을 잡으려면 그 정도 혼란은 있어야지. 그리고 당신은 워낙 베일에 싸인 인물이라 알기 힘들었거든. 자.. 이제부터 편해지느냐 아니면 고통스러워지느냐는 당신의 입에 달려 있어.

무영은 의자에 묶여 앉아 있는 톰슨에게 다가갔다.

- 우리가 그 다나카 녀석의 위치를 알기 힘들거든. 그리고 보다시피 저 여자는 내가 통제하지 않으면 아마 당신 몸으로 회를 뜰 거야. 그리고 저 녀석은... 잔인하기로는 저 여자보다 더 하면 더 했지 덜 하진 않아. 그리고 알아 두는 게 좋은 게 이건 협박이 아냐. 그냥 명령이지. 자, 이제 쉽게 얘기하자구. 그 다나카는 어디에 있지?

무영의 말에 톰슨은 고개를 저었다.

- 그... 그 사람은 어디 있는지 정확히 몰라. 다만...

- 다만?

톰슨이 주저하는 모습을 보이자 무영이 메이양을 향해 눈짓을 했다. 메이양은 칼을 손수건을 닦으며 다가왔다. 그리고는 허벅지에 사정없이 칼을 꽂아 넣고 돌렸다.

- 으... 으악...

톰슨 원장은 고통에 몸부림을 쳤다. 보통 느끼는 자상(刺傷)의 고통보다 훨씬 심했다.

- 주사를 맞으면 더 아프지. 이제 고통은 더 커질 테니까 빨리 말하는 게 좋아.

무영은 표정의 변화없이 톰슨에게 말을 했다. 톰슨은 고통에 헐떡거리며 말을 했다.

- 그... 그가 어디... 어디에 있는지 바.. 밝히지 않아... 다.. 다만 그 녀석.. 조.. 조카가 벼.. 병원에 있어... 도... 동북아 평화 재단...

거기까지 말을 하고는 톰슨은 기절을 했다. 무영은 구석에 놓인 물동이를 톰슨의 머리에 들이부었다. 그러자 톰슨은 갑자기 정신이 드는지 몸을 떨며 눈을 떴다.

- 말이 앞뒤가 맞지 않아. 조카는 뭐고, 어디 있는지 밝히지 않는 건 뭐지? 그런데 동북아 평화 재단은 뭐고?

톰슨은 허벅지의 고통을 느끼며 말을 했다.

- 그... 그는 동북아 평화 재단 이사장이야. 그리고.. 조.. 조카가 우리 병원 연구원이야. 그.. 그런데 그 사람은 동북아 평화 재단으로 출근하지 않아. 이.. 이름만 이사장이지.

무영은 다시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다가 다시 고개를 끄떡이고는 말했다.

- 그럼 그 놈 위치를 아는 건 단순하군. 네가 전화를 하면 되잖아.

무영의 말에 톰슨은 고개를 저었다.

- 저... 전화로... 그를 부.. 불러낼 순 없어.

무영은 쪼그려 앉아 톰슨의 눈을 보며 말했다.

- 아직 우리를 모르는군. 네 놈 눈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어. 고통이 뭔지 더 알게 해 줄까?

무영이 다시 메이양 쪽을 보자 톰슨이 당황하며 말했다.

- 부... 부를게.. 부를 테니...

무영이 일남을 쳐다보며 말했다.

- 진통제 놔줘라.

그리고는 톰슨을 보며 말했다.

- 5분 후에 전화한다. 그리고 당장 약속을 잡는 거야. 난 질질 끄는 거 싫거든.

일남은 자신의 가방에서 또 다른 주사기를 꺼내 톰슨에게 놓았다. 조금 후 무영은 톰슨의 눈이 풀어지는 것을 보고 전화기를 넘겨주었다.

- 헛짓거리 하는 순간 죽음이다. 알고 있지?

톰슨은 포박이 풀린 손으로 다나카의 전화번호를 눌렀다. 그리고 조금 후 전화기 너머에 목소리가 들렸다.

- 다 잘 해결됐습니다. 보고는 받으셨죠?

다나카의 목소리가 들리자 톰슨이 말을 했다.

- 네... 그런데 지금 만날 수 있을까요?

톰슨의 말에 다나카의 목소리가 조금 올라갔다.

- 네? 지금이요? 급한 일인가요?

톰슨은 눈을 감았다 뜨며 말했다.

- 시.. 실험에 대한 문제입니다.

그 말에 잠시 침묵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대답이 들렸다.

- 알겠습니다. 그럼 실험실로 지금 가겠습니다.

전화를 끊자 무영은 이맛살을 찌푸렸다. 최대한 밖에서 해결하려고 했는데, 다시 병원 안으로 들어가야 하는 상황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무영은 일남과 메이양을 보며 말했다.

- 준비해. 병원으로 간다.

일남과 메이양 역시 병원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탐탁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는 걸 알았기에 톰슨 옆으로 다가오며 말했다.

- 헛짓거리는 죽음이니까 알아서 해. 우리는 목숨 내 놓고 일 하니까.

일남은 가방에서 붕대를 꺼내 허벅지와 발에 감아 주었다. 그리고 메이양과 함께 톰슨을 톰슨 차에 태웠다. 그리고 운전대에 일남이 앉고, 메이양은 톰슨 옆에 앉았다. 무영은 트렁크에 몸을 숨겼다. 그리고는 차를 톰슨 병원으로 몰았다. 입구 경비실에서 잠깐 차를 멈췄지만, 순조롭게 지하 VIP 주차장으로 차를 몰 수 있었다. 그리고 톰슨을 따라 세 명은 지하 연구실 안으로 들어갔다. 연구실은 낮의 소동으로 인해 모든 사람이 퇴근한 상태였고, 실린더에만 생명 유지 장치를 위한 전력이 가동되고 있었고, 모든 곳은 어둠에 휩싸여 있었다. 연구실 안으로 들어간 세 사람은 지하에 있는 것들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수십 개의 거대한 실린더 안에 사람들이 들어 있었다. 거기에는 어린 아이부터 늙은 노인까지 일렬로 나열되어 있었다.

- 이... 이 새끼들 뭐야?

일남이 놀라 소리를 쳤다. 무영과 메이양 역시 놀란 것은 마찬가지였지만, 지금은 그런 것에 신경을 쓸 정신이 없었다.

- 언제쯤 도착하지?

무영이 톰슨에게 묻자 톰슨이 대답했다.

- 도착하면 일단 내가 나가서 맞이해야 한다. 그리고 이 연구실 안으로 들어오려면 아까 봤듯이 여러 개의 장치를 통과해야 하지.

그러면서 톰슨은 비릿한 웃음을 지었다.

- 이 새끼 왜 웃어!

일남이 톰슨의 멱살을 쥐자 톰슨이 말했다.

- 너희한테 알려 주려고. 이곳은 들어오는 건 나랑 들어왔으니까 올 수 있지만, 나갈 수는 없거든.

무영이 그 말에 눈살을 찌푸렸다.

- 우릴 협박하는 건가?

그러자 톰슨이 어깨를 으쓱했다.

- 난 죽어도 되지. 저 앞에 있는 실린더들 보이지? 그것들은 모두 나지. 여기서 내가 죽어봤자 저기 있는 것들 중 하나가 또 내가 되면 되는 거지.

그 말에 메이양이 소리쳤다.

- 말도 안 되는 소리!

톰슨이 그 말에 고개를 저었다.

- 말이 되는 소리지. 내가 왜 쉽게 이 연구실로 들어왔을까? 저 실린더들은 총으로도 폭탄으로도 사라지지 않지. 내가 여기서 죽으면 시신이 있으니까 저기 있는 것들 중 하나로 금방 대체하면 되지.

그 말에 무영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 몸은 너겠지만, 기억들은 다를 텐데?

톰슨이 비웃으며 말했다.

- 기억이라... 그런 것쯤이야 이미 저장해 놓았지. 날 죽여도 그 기억을 저 중 하나에 주입하면 되니까.

톰슨은 자신만만하게 얘기를 했다.

- 개소리. 기억을 저장하고 주입하다니.

일남의 말에 톰슨이 대답했다.

- 믿지 못하겠다면 어쩔 수 없지. 다만 이번엔 우리의 상황이 뒤바뀌었다는 것만 알면 되지.

무영은 잠깐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 표정과 말투로 보아서는 헛소리 같지는 않아 보였다. 그리고는 메이양에게 말했다.

- 저 자식 죽여! 검지손가락하고 눈알 파내고. 그리고 일남 너는 저 실린더를 못 부수면 저 기계들 부숴버려.

무영의 아무렇지도 않은 말에 톰슨이 놀라서 무영을 쳐다보며 말했다.

- 그... 그깟 걸로...

무영은 시니컬하게 말했다.

- 아까 들어올 때 보니까 네 놈 손가락하고 눈알 검사하더군. 비밀 번호는 내일 아침이면 누군가는 출근할 테니 그 녀석을 통해 알면 되니까. 그리고 저 녀석들이야 말로 기계로 연결된 녀석들이니까 기계들만 파괴하면 되겠지.

톰슨은 자신이 세운 계획이 틀어지는 것을 느꼈다. 기계들이나 개체들은 새로 만들면 되지만, 자신이 지금 죽으면 영원히 자기의 기억은 사라지게 되는 것이었다. 서번트 증후군을 앓고 있는 자신의 기억을 아직 완벽하게 추출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최근에 새로운 방법을 발견해 기억을 추출해 보긴 했지만, 아직은 불안정하기 때문에 조금은 불안했지만, 이것을 미끼로 그들과 협상을 하려고 했던 것이었다. 그러나 뜻밖의 상황에 톰슨은 당황하였다. 메이양이 톰슨에게 다가오며 말했다.

- 최대한 고통스럽게 죽여주지. 다시는 죽고 싶지 않게.

- 자... 잠깐...

무영이 톰슨을 보며 말했다.

- 왜? 죽으면 다시 부활하시지. 당신은 아직 나 같은 사람을 속이려면 멀었어. 모든 게 다 맞아도 당신의 눈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으니까.

톰슨은 그 말을 쉽게 수긍했다.

- 협.. 협상을 하세. 내가 다나카를 죽여줄 테니 난 살려주게. 사실 난 이 상황과는 아무 관련이 없는 사람이 아닌가!

무영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 협상이라... 들어보지.

- 내가 다나카를 안으로 유인해 올 테니 여기서 다나카를 죽이는 것이 어떤가?

톰슨의 다급한 말에 무영이 피식 웃었다.

- 그런 말도 안 되는 제안을 나보고 받으라고? 다나카가 당신을 보고 과연 안으로 들어오려고 할까? 다리에 붕대를 칭칭 감고 멍청한 눈을 한...

그 순간 무영은 톰슨의 태도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분명 일남이 주사한 것은 뇌를 교란하는 물질이기 때문에 이성적인 사고가 불가능한 것이었다.

- 마약에 대한 영향이 없군. 너에 대한 족쇄가 풀려버렸군.

무영은 무영 나름대로 톰슨에 대한 대비책을 세우고 있었다. 이번에 새롭게 만든 LSD 변형 마약을 톰슨에게 투여하고 마약 중독으로 옭아맬 생각이었다. 그러나 톰슨은 그것에 대한 영향이 거의 없었다. 무영은 그의 특이한 모습에 인상을 썼다.

- 같이 나간다.

무영의 말에 메이양과 일남은 무영을 쳐다보았다. 처음에 했던 계획과 달랐기 때문이었다.

- 대장. 그건...

무영은 조심스럽게 귓속말로 일남에게 말했다.

- 저 녀석 마약 내성이 강해.

그러자 일남이 톰슨을 돌아보며 말했다. 그리고는 고개를 끄떡였다.

- 나가서 다나카를 기다리자. 그 후에 상황 봐서 정리하자.

일남과 메이양은 톰슨을 부축하고 밖으로 나왔다. 톰슨은 머리를 굴렸다. 지금 이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게 무엇일까? 다나카를 내 준다고 이들이 살려줄 것 같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의 실력으로는 1초도 안 되는 시간에 자신의 목을 그을 수도 있었다. 그렇다면 가장 좋은 방법은 다나카의 차 문이 열리는 순간 자신이 다나카의 차에 올라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하 주차장에 도착하자 톰슨은 문 앞에 서 있었고, 그 바로 옆에 메이양이 서 있었다. 그리고 뒤 쪽에 무영과 일남이 숨을 죽이고 숨어 있었다.

- 다나카에겐 새로운 비서라고 소개해.

메이양이 그렇게 속삭이자 톰슨은 고개를 끄떡였다. 조금 후에 고급 세단이 지하 주차장 입구에 도착했다. 톰슨은 자신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문이 열리는 순간 다나카 쪽으로 뛰어들어 문을 닫을 요령이었다. 여자가 자신과 한 2미터 거리에 떨어져 있으니 타이밍만 잘 맞추면 될 것 같았다. 더욱이 그들은 총도 갖고 있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하긴 차에만 올라타면 그깟 총은 문제가 될 것도 아니었다. 자신의 차와 마찬가지로 다나카의 카 역시 방탄 설비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차 문이 열리자 톰슨은 머릿속으로 그린 일을 실행하였다. 다나카 몸 위로 자신의 몸을 던졌다. 뒤에 있던 무영과 일남이 놀라 앞으로 뛰어 나오려고 할 때 옆에 있던 메이양이 톰슨의 몸 위로 자신의 몸을 던졌다. 차 뒷좌석에 다나카, 톰슨, 메이양이 쌓여 있는 형국이었다. 앞에 앉은 운전사가 가슴팍에서 총을 꺼내 메이양을 향해 발사를 했다. 메이양은 총을 맞으며 그를 향해 비웃으며 말했다.

- 다 죽어!

그 순간 차는 엄청난 굉음에 휩싸인 채 폭발을 했다. 무영과 일남은 그 상황을 당혹스럽게 쳐다보다가 무영이 먼저 정신을 차리고 일남을 끌었다.

- 나가자.

두 사람은 지하 주차장을 빠져 나와 밖으로 냅다 뛰었다. 지하 주차장은 순식간에 불길에 휩싸였고, 뒤늦게 도착한 경비원들은 차에 불을 끄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러나 순식간에 화염에 뒤덮인 차는 차를 몽땅 태우고 나서야 진화가 되었다.

- 그.. 그 녀석 자살을 준비했던 거야?

병원에서 한참을 달려 나와 길을 걷던 무영이 혼잣말처럼 얘기를 했다. 옆에 있던 일남은 침통한 듯 입을 다물고 있었다.

- 우리도 위험할 수 있으니까 일단 중국으로 피하자.

두 사람은 송도에서 빠져 나와 연안부두 쪽으로 갔다. 그리고 그 곳에서 밀항 조직과 연결해서 중국으로 밀항을 했다. 밀항선 안에서 일남이 무영에게 얘기를 했다.

- 능력 있는 녀석들이었습니다.

그 말에 무영이 고개를 끄떡였다.

- 알고 있어.

- 회장님께선 이번 일만 끝나면 모두 평범하게 살게 해 주라고 했습니다.

무영은 그 말에 눈을 감았다 떴다.

- 음...

일남은 아픈 신음 소리를 냈다.

- 제 나머지 삶은 그 녀석들을 위해 살 겁니다.

일남의 말에 무영은 무겁게 고개를 끄떡였다. 일남은 이 모든 일이 최세현이라는 여자와 관련이 있음을 알고 조만간 그녀를 만나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어두운 서해를 쳐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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