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축계(逐界)-쫓겨난 이들의 세계-96화 (96/309)

축계(逐界) - 쫓겨난 이들의 세계 - 2장 - 7. 진실의 문(8)

뒤에서 경찰들이 소리치는 소리가 들렸고, 어디론가 무전을 치는 소리가 들렸다. 첸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무작정 앞으로 달렸다. 첸의 왼쪽에 타고 있던 경찰이 첸의 뒤를 쫓자 앞좌석의 운전을 하던 경찰이 전화기를 꺼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 탈주했습니다. 수원 반대 방향으로 뛰어가니까 검문소나 이런 건 없을 겁니다.

앞좌석 경찰은 전화를 끊고 숲풀 안에 있는 경찰을 향해 소리쳤다.

- 나와! 끝났어.

숲풀에 있던 경찰은 바지를 추스르며 나왔다.

- 그래? 박 경사는?

- 그 놈 잡는다고 뛰어갔어. 무전 쳐서 오라고 해야지. 좀 더 뛰게 하고.

첸은 경찰차에서 빠져나와 도로를 마구 달렸다. 한참을 달리다 보니 조그만 마을이 하나 나왔고, 첸은 그 곳에 있는 구멍가게에서 돈을 훔쳤다. 그리고 마을길을 빠져나와 근처에 보이는 택시에 올라탔다. 첸은 택시 운전사 옆에 앉아서 앞을 쳐다 보았다. 혹시 검문이 있다면 재빨리 택시 운전사를 제압하고 그대로 달아날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택시 운전사는 아무 것도 모르고 이런 저런 얘기를 떠들었다. 첸은 자신의 소식이 혹시 라디오로 나올 수도 있다는 생각에 운전사에게 말을 했다.

- 혹시 라디오 들을 수 있을까요?

첸의 말에 운전사는 자신과 얘기를 하기 싫어한다고 생각해서인지 이맛살을 찌푸리며 라디오를 켰다. 첸의 생각으로는 지금쯤이면 자신의 탈출 소식이 경찰에 퍼져서 검문을 한다던가 아니면 방송을 통해서라도 나와야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라디오에서는 신변잡기적인 얘기를 하면서 서로 낄낄댈 뿐 아무 소식도 나오지 않았다. 첸은 본능적으로 차 뒤 쪽을 쳐다보았다. 눈을 가늘게 뜨고 먼 곳까지 쳐다보았지만, 자신을 미행하는 차도 보이지 않았다. 첸은 번화가에 도착했을 때 차에서 내렸다. 그리고 골목길을 돌아 한참 먼 곳으로 가서 그 곳에서 다시 택시를 잡아탔다. 그리고 서울에 와서도 일부러 번화한 곳으로만 갔다가 느즈막이 본가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첸이 초인종을 누르자 문이 열리고 안에서 일남이 나왔다.

- 첸, 어떻게 된 일이야?

첸이 안으로 들어오자 표정의 변화가 없는 무영조차 놀라 눈이 커졌다.

- 어떻게 돌아왔지?

무영의 질문에 첸이 자신이 어떻게 빠져나왔는지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그리고 혹시 미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돌아서 왔다는 얘기도 빠짐없이 했다. 무영은 뭔가 의심스러웠기에 조용히 일남에게 얘기를 했다.

- 뭔가 이상해. 첸 옆에 붙어 있어.

무영은 첸이 절대 자신들과 관련된 기밀 사항을 불지 않았으리라는 걸 알고 있었다. 이미 그건 조직에서 닳고 닳도록 훈련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영이 생각하기에 첸이 빠져나온 과정이 무언가 석연치 않았기에 주의를 기울여 첸을 보았다. 안에서 첸이 왔다는 소식을 들은 원 회장이 밖으로 나와 첸을 보았다.

- 다치지 않아서 다행이야.

원 회장의 부드러운 말에 첸이 자리에 엎드렸다.

-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합니다.

원 회장은 첸을 자리에서 일으키며 말했다.

- 아니야. 내가 자네들에게 몹쓸 짓을 시켜 미안하지.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눌 때 갑자기 무영의 전화기가 울렸다. 무영은 전화기를 꺼내 전화를 받았을 때 처음 듣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 여보세요?

- 자네가 무영이라는 사람이로구만.

상대가 다짜고짜 자신의 이름을 부르자 무영은 날카로운 표정으로 일남에게 고갯짓을 했다. 그러자 일남이 자연스럽게 첸의 옆으로 갔다.

- 누구시죠?

- 음... 자네는 나를 모를 테니 원 회장을 바꿔주게나.

상대의 목소리는 부드러웠으니 권위가 있었다. 무영은 그러나 거부의 의사를 완강하게 얘기를 했다.

- 회장님은 그렇게 한가하지 않습니다.

그러자 상대편에서 큰 웃음소리가 들렸다.

- 그렇겠지. 하지만 다나카 이치로의 전화라고 전하면 알 거야.

무영은 송화기를 손으로 가리고 원 회장에게 조심스럽게 얘기를 했다.

- 다나카 이치로라는 사람이라는데 회장님을....

원 회장은 그 말을 듣고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 사람의 이름을 이렇게 들을 줄은 몰랐다. 재판에서 풀려났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지금쯤이면 죽었으리라고 생각했는데, 아직까지 살아 있다는 것이 더 놀라울 따름이었다.

- 다... 다나카 이치로?

무영은 원 회장이 손까지 덜덜 떨며 전화기를 받아들자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알고 있는 원 회장은 염라대왕이 찾아온다고 해도 저렇게 떨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 자넨가? 모토야스 카시코 고등관(高等官)!

강현은 충격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자신의 기억 속에 깊이 박힌 그 목소리였다. 꿈에서도 잊을 수 없고, 아니 죽어서도 잊지 못할 것같은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에서 들렸다.

- 난 자네인지 몰랐어. 일개 고등관이었던 자네가 중국에서 가장 잘 나가는 기업의 회장이라니... 세월은 놀라울 따름이야.

- 당.. 당신은 이미 늙어 죽은 줄 알았는데...

원 회장의 말에 다나카는 웃으며 말했다.

- 늙어 죽는 건 힘없는 자들의 얘기지. 자네같이 돈 많은 사람이나 나같은 사람은 사고로 죽기 전엔 늙어 죽기도 힘들지. 안 그런가?

원 회장은 다나카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 당신은 살아 있으면 안 되는 사람이야.

원 회장의 말에 다나카가 비웃으며 말했다.

- 자네는 아직도 고집이군. 돈을 그만큼 벌었으면 바뀔 때도 됐는데 말야.

- 바뀌다니. 대체 뭐가 바뀐다고...

원 회장이 버럭 소리를 지르자 건너편에서 다나카가 얘기를 했다.

- 돈은 사람을 바꾸지. 나도 자네가 많이 바뀐 줄 알았는데.

- 돈은 나를 바꾸지 못해.

다나카는 그 말에 은근한 목소리로 얘기를 했다.

- 내가 어떻게 연락처를 알았는지 아나? 옛날처럼 고문하고, 약 먹이고 하는 짓 따위는 이제 안 하지. 과학이란 좋은 거야. 첸인가? 그 친구 충성심이 아주 대단하더군. 기억을 뽑는데 아주 힘들더라구.

다나카의 말에 원 회장은 눈이 커다랗게 변했다.

- 기억을 뽑다니. 그게...

- 자네와 우와마치(上町) 중좌가 연구하던 내용 중 하나지.

그러자 원 회장이 소리를 쳤다.

- 말도 안 돼! 그건 실패한 실험이었어!

하지만 다나카는 웃으며 말했다.

- 너희가 실패한 거지. 다른 누군가는 성공을 했지. 그리고 더 놀라운 얘기를 해 주지.

원 회장은 다나카의 말에 입술이 떨렸다.

- 우와마치 중좌의 마지막 실험은 성공했어.

원 회장은 그 말에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 그... 그건 모두 폐기됐어.

- 자료는 폐기됐지만, 샘플은 남았지.

다나카는 그러면서 은근한 목소리로 말을 했다.

- 자네는 많이 늙었더구만. 자네 정도의 재력가라면 젊음을 살 수 있지.

그러나 원 회장은 소리를 버럭 질렀다.

- 개소리!

- 개소리라. 내가 자네한테 그런 말을 들을 줄은 몰랐는데. 모토야스 고등관!

다나카는 냉정한 말투로 얘기를 했다. 하지만 원 회장 역시 지지 않고 말을 받았다.

- 악마에게 자비는 없어.

원 회장의 말에 다나카가 크게 웃으며 말했다.

- 자비라... 내가 자네에게 베푸는 자비도 여기까지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지?

하지만 원 회장은 버럭 소리를 쳤다.

- 너 같은 악마는 세상에서 죽어 없어져야 해! 조만간 네 녀석을 죽여버리겠다.

원 회장은 분노로 전화기에 대고 소리를 쳤다. 그러자 상대편이 조용해졌다. 무영이나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원 회장이 저렇게 분노에 사로잡혀 소리를 치는 모습을 처음 봐서인지 놀라서 원 회장을 쳐다보았다. 원 회장도 침묵에 쌓였다. 그 때 전화기 너머에서 기계음 비슷한 소리가 들렸다. 그러다가 다나카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 잘 가게.

그 순간 일남의 옆에 있던 첸의 눈이 뒤집혔다. 그리고는 자신의 몸에 품고 있던 칼을 꺼내 원 회장 쪽으로 몸을 날렸다. 원 회장은 첸이 다가오는 것을 보고 눈이 켜져 몸을 피했으나 칼이 원 회장의 복부를 찔렀다. 첸이 다시 칼을 빼서 원 회장을 찌르려 할 때 무영이 몸을 던져 첸을 밀었다. 그 순간 첸의 칼이 무영의 어깨에 꽂혔다. 일남은 쓰러진 회장을 붙잡았고, 옆에 있던 메이양이 자신의 다리에서 칼을 꺼내 첸의 목을 그었다. 워낙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누구도 경황이 없었다.

- 의사 불러!

무영이 소리를 치자 멍하게 있던 훈기가 전화기를 들었다. 그리고는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메이양은 자신의 윗옷을 벗어서 회장의 배를 감쌌고, 일남 역시 커튼을 찢어 무영의 어깨를 감쌌다. 그리고 한 쪽에는 목이 그인 채 피를 흘리며 컥컥 대는 첸이 무언가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사람들을 쳐다보았다. 첸은 눈을 감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죽었다. 얼마 후 엄 박사가 도착했고, 앰뷸런스가 집 안으로 들어와 원 회장을 태웠다.

- 장기에 손상을 입으셨지만, 생명에는 지장이 없네. 다만 중환자실에 얼마간 계셔야 될 것 같아.

무영은 그 자리에 앉아 어깨를 꿰맸다. 병원으로 가자는 말을 한사코 거부하며 그 자리에 앉아서 어깨를 꿰매고 붕대를 감고는 일남과 훈기에게 말했다.

- 훈기! 넌 회장님 옆을 지켜라. 단 1초도 딴 눈 팔지 말고. 최고의 애들 동원해서 회장님 옆에 누구도 오지 못하게 해.

- 네. 알겠습니다.

훈기가 무영에게 인사를 하고 재빨리 원 회장이 입원한 병원을 향해 갔다. 그리고 첸의 시신 앞에서 멍하게 앉아 있던 메이양에게 무영이 말했다.

- 자 자식. 세뇌 당한 거야. 우리가 상상하는 이상으로.

메이양은 첸의 얼굴을 쓰다듬다가 눈을 감겨주었다. 자신의 손으로 죽인 형제와 같은 이였다. 항상 자신을 챙겨주었고, 자신을 죽음에서도 몇 번이나 구해줬던 사람이었다. 웨이룽처럼 직접적으로 자신에게 들이대진 않았어도 항상 오빠처럼 마음을 써 주던 첸이었다. 메이양은 눈물이 나지 않았다. 자신의 손에 의해 죽었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온몸이 잘려나간 아픔 때문이었다. 일남 역시 첸의 시신 앞에서 눈을 감았다. 자신과는 친구이자 라이벌, 더 나아가 형제와 같은 사람이었다. 비슷한 시기에 조직에 들어왔지만, 국적도, 성격도, 배경도 다른 두 사람은 서로 쉽게 어울리지 못했지만, 두 사람이 의기투합해서 안 되는 일이 없었다. 일남이 첸보다 실력이 조금 더 뛰어나 중간 대장이 된 것일 뿐이지, 결코 자신에 비해 떨어지지 않는 실력자임을 일남은 잘 알고 있었다.

- 복수해야지.

무영의 입에서 복수라는 말이 나오자 메이양과 일남이 고개를 끄떡였다. 일남은 첸의 눈을 감겨주며 말했다.

- 갈기갈기 찢어줄 겁니다.

무영은 인상을 구기며 말했다.

- 오늘부로 본가는 해체한다. 호텔로 갈 테니까 준비해.

일남은 부하들을 불러 첸의 시신을 중국으로 보내라고 명령을 한 후 무영과 메이양과 같이 본가에서 은밀하게 밖으로 나왔다. 호텔에 도착한 무영은 엄 박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원 회장의 수술을 마치고 나온 엄 박사에게 무영은 극비 명령을 내렸다. 원 회장이 회복되면 바로 중국으로 이송하라는 내용이었다. 무영이 생각하기에 한국은 원 회장이 머물기에 위험한 곳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원 회장과 통화한 다나카 이치로의 수작이 또 미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무영은 원 회장의 안위가 무엇보다 중요하게 느껴졌다. 또한 첸과 웨이룽, 그리고 원 회장과 자신에게 상처를 입힌 다나카에게 어떻게 복수를 하는 게 좋을지 심각하게 고민을 했다. 무영은 다나카에 대한 복수를 구상하느라 호텔에서 이틀 동안 한 발자국도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그러던 중 엄 박사의 전화를 받은 무영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원 회장이 깨어났고, 곧 중국으로 이송할 예정이라는 전화였다. 무영은 이제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고 일남과 메이양에게 명령을 내렸다.

- 톰슨 병원이야. 그 녀석이 있는 곳은.

무영은 일남과 메이양에게 각각 할 일을 주고, 자신도 다나카에 대한 공격을 준비했다.

- 철저하게 부숴버리겠어. 우리를 건드린 대가가 무엇인지 알게 해 주지.

다음 날 아침 무영은 차에 무거운 가방을 하나 실었다. 그리고 뒷좌석엔 일남과 메이양이 탔다. 그리고 톰슨 병원이 있는 송도 쪽을 향해 달렸다. 톰슨 병원은 평일 낮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꽤 많았다. 진료를 받기 위해 의자에 앉아 있는 사람들 사이에 무영이 앉았다. 그리고 일남에게 전화를 걸었다.

- 잠시 대기! 조금 있다가 메이양에게 연락이 오면 실행해라.

차에 앉아 있던 일남은 전화를 끊고 가방을 챙겼다. 그 순간 메이양에게 전화가 왔다.

- VIP 주차장 도착.

전화를 끊은 일남은 가방을 메고 안으로 들어갔다. 로비에는 많은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일남은 마스크를 쓴 채 기침을 하며 주변을 한 번 살펴보다가 1층 구석 자리로 갔다. 구석에 있는 의자에 앉아 있다가 가방에서 무언가를 재빨리 꺼내 의자 밑에 붙여 놓았다. 그리고 위층으로 올라가 환자 대기석에 앉아 있다가 의자 밑에 무언가를 재빨리 붙였다. 그리고 여기 저기 다니며 의자 밑에 무언가를 붙여 놓았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1층 다른 쪽 구석으로 갔다. 그리고 그 곳에서도 의자 밑에 무언가를 붙여 놓았다. 일남이 자리에서 일어날 때 뒤에서 누군가가 불렀다.

- 저기요.

일남은 자리에 멈춰 섰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보았다. 체구가 작은 간호사 하나가 일남을 보며 말했다.

- 최성원 씨 아니세요?

일남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 아닙니다.

그러자 간호사가 일남에게 웃으며 말했다.

- 아! 여기 앉아 계시라고 했는데, 어디로 가신 거지?

일남은 간호사와 헤어지고 로비 쪽에 사람이 많은 곳으로 갔다. 그 곳에 앉아 무영에게 전화를 걸었다.

- 완료됐습니다.

- 알겠다. 먼저 빠져 나가라. 호텔에서 보자.

무영은 커피를 한 잔 마시며 시계를 보았다. 15분 정도 지나자 무영은 무선 버튼을 하나 눌렀다. 그러자 1층 로비 끝에 있는 의자 밑에서 펑하는 소리와 함께 의자가 튀어 올랐다. 그 소리에 사람들은 모두 웅성거리며 무슨 소리인가 싶어 소리가 난 곳을 쳐다보았다. 무영은 다시 무선 버튼을 눌러 반대쪽 의자 쪽에서도 펑하는 소리가 났다. 무영은 화장실 쪽으로 가면서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 이 건물에 폭탄이 설치되어 있다. 환자들과 로비의 사람들을 모두 대피시켜라. 10분 주겠다.

전화를 받은 이가 뭐라고 얘기하기 전에 무영은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러자 조금 후에 급하게 대피 방송이 나왔다.

- 알려드립니다. 오늘 진료는 기계 이상으로 모두 종료하오니, 차례를 지켜 병원 밖으로 나가주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그 방송과 함께 경비원들이 나와 1층에 있던 사람들을 밖으로 인도했다.

- 범인은 안에 있어. 아까 전화 소리가 시끄러웠어.

경비원 중 책임자인 듯한 이가 다른 경비원들에게 얘기를 했다. 그리고는 뭔가 의심스러운 듯한 사람들을 하나씩 붙잡아 얘기를 하고 있었다. 무영은 그 모습에 다시 버튼을 하나 눌렀다. 그러자 로비 의자가 펑하고 터지면서 하늘로 튀어올랐다. 그 모습과 함께 로비에 있던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밖으로 빠져나갔다. 순식간에 로비가 아수라장이 되었고, 경비원들은 더 이상 범인을 찾을 수 없다는 생각에 사람들이 다치지 않게 밖으로 빠져나가게 했다. 밖으로 나온 무영은 다시 한 번 버튼을 누르자 2층, 3층에서 폭발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다시 전화를 걸었다.

- 모두 대피하는 게 좋아. 이 건물은 조금 있으면 무너질 테니까.

전화를 끊고 무영은 많은 사람들 사이에 껴서 차에 올라타 시동을 걸었다. 차들이 빠져나가는 긴 행렬 끝에 차를 세웠다. 정문 쪽은 차들이 서로 빠져나가려고 난리였다. 무영은 건물 안쪽을 쳐다보면서 다시 폭파 버튼을 눌렀다. 폭탄은 한꺼번에 터지는 것보다 이렇게 시간차를 두고 터지면 공포감은 배가 된다. 언제 또 폭탄이 터질지 모르고 더욱이 지금까지의 약한 폭발은 협박용이고, 큰 폭발이 있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순간 환자들을 실어 나르는 앰뷸런스들이 안에서 나왔다. 그리고 바깥쪽에서는 어느 샌가 경찰들이 들어오고 있었다.

- 검문은 앞 도로에서 하면 되니까 일단 빨리 병원에서 내보내.

무영은 나머지 버튼을 누르고는 차 안에서 느긋한 마음으로 앞의 차 꽁무니에 붙어 차를 빼고 있었다.

- 폭발 사고? 경비원들은 뭐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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