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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계(逐界)-쫓겨난 이들의 세계-94화 (94/309)

축계(逐界) - 쫓겨난 이들의 세계 - 2장 - 7. 진실의 문(6)

석호는 고개를 끄떡이며 말했다.

- 그럼 일단 철구 씨 사무실로 가죠.

석호와 세현이 밖으로 나오자 철구는 피우고 있던 담배를 껐다. 그리고 냉랭한 분위기로 석호의 차에 올라탔다. 가는 차 안에서는 아무도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철구와 세현은 각자의 생각에 젖어 있었고, 석호는 섣불리 무어라고 얘기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철구의 사무실에 도착한 세 명은 각자 소파에 앉았다. 그 때 세현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 아까 신부님께서 저보고 인질이 되어달라고 하셨는데.... 그럼 전 어디에 있어야 하는 거죠?

세현의 말에 석호가 난감한 듯 말을 했다.

- 글쎄요. 아까 그렇게 말씀드린 건 저희와 같이 움직여야 된다는 거지 감금한다는 말이 아니었어요. 하지만 지금 집으로 돌아간다는 것도 그렇고...

철구가 투덜거리며 말했다.

- 지하에 있는 노래방이나 아니면 저 쪽 쪽방에 있어.

철구가 고갯짓으로 가리킨 곳은 사무실 한 쪽 구석에 있는 쾨쾨한 냄새가 나는 작은 쪽방이었다. 하지만 세현은 마치 스톡홀름 증후군 환자처럼 고분고분하게 말을 들었다.

- 알겠어요. 그럼 당분간 여기에서 머물게요.

철구는 갑작스런 세현의 태도에 당혹스러웠다.

- 이봐. 집으로 가라고.

하지만 이미 세현은 피곤하다며 그 쪽방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 젠장. 치우지도 않았는데.

철구가 자리에서 일어나 쪽방 쪽으로 갔다. 그런데 이미 세현이 방을 대충 정리하고 있었고, 한쪽 구석에서 곰팡이 쌓이게 놓여 있던 이불을 들어내며 말했다.

- 제가 치울 테니까 가서 신부님하고 계세요.

철구는 그런 세현의 모습이 당혹스러웠다. 한편으로는 측은하기도 했지만, 자신의 아내와 아이에게 실험을 했던 여자라는 생각이 들자 냉정하게 바뀌었다. 철구는 석호가 앉아 있는 소파로 와서 앉으며 말했다.

- 나도 궁금한 게 있는데, 기억을 지우고, 유전자 조작을 하고... 이건 공상 과학 소설에나 나오는 얘기잖아요. 그런데 그게 가능할까요?

철구의 말에 석호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얘기를 꺼냈다.

- 저도 사실 그 부분이 가장 의심스럽습니다. 아직까지 그런 기술이 있다는 얘기를 들어보진 못했으니까요. 물론 과학계가 감추고 있는 진실이 한두 개가 아니겠지만, 그래도 그건 너무나 엄청난 일이어서요.

- 그들이 그럼 혜민이한테 그런 실험을 하는 걸까요? 만약에 사람을 만들었다면 혜민이 말고도 만든 사람이 많을 텐데. 그 안에서 충분히 실험체를 찾을 수 있었을 텐데 말이죠.

철구의 말에 석호가 얘기를 했다.

- 어쩌면 특별한 케이스가 아닐까 해요. 자세한 내용은 우리가 알지 못하지만 그렇지 않고서야 굳이 혜민 씨를 납치해서 그렇게 할 이유가 없겠죠.

철구는 다소 심각한 표정으로 말을 했다.

- 그럼 그들의 실험은 성공했을까요?

그런데 그 때 철구의 사무실 문이 열리며 어떤 목소리가 들려왔다.

- 그들의 실험은 성공했네.

뜻밖의 목소리에 철구는 뒤를 돌아보았다. 철구는 몹시 놀란 표정이 되었다. 그러나 그 놀라움은 격한 반가움으로 변하였다.

- 임.. 임 박사님!

임 박사는 철구를 보며 환하게 웃었다. 그러더니 철구에게 다가와 포옹을 했다.

- 얘기는 들었지만 얼굴이 많이 변했군. 몸도 많이 상한 것 같고.

철구는 임 박사의 포옹하며 말을 잇지 못했다. 철구의 기억 속에 임 박사는 죽은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철구는 누구랄 것도 없이 조금 서운하다는 말투로 말했다.

- 살아계신다는 말씀만 들었어도 그렇게 맘 졸이며...

그 말에 석호가 말을 꺼냈다.

- 워낙 급하고 중요한 일이 있어서 그랬습니다. 저도 임 박사님이 한국에 오신다는 얘기를 지난주에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전까지는 바티칸 기밀 사항이라서...

석호의 변명에 철구가 고개를 끄떡이며 임 박사를 보았다. 임 박사는 철구가 살아있다는 것에 감격해서인지 아니면 예전 지훈의 듬직한 모습이 사라진 것이 마음 아파서인지 눈물을 흘렸다.

- 나도 늙으니까 주책이야.

임 박사의 혼잣말에 철구는 임 박사의 얼굴을 보며 환하게 웃었다.

- 박 형사님이 그렇게 가시고 임 박사님마저 잘못된 줄 알고...

철구의 눈에서도 자신도 모르게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죽은 박 형사에 대한 미안함과 살아있는 임 박사에 대한 안도감 때문에 철구 역시 감정이 격해졌다.

- 이 사람! 장 신부 말로는 이 세상을 다 씹어 먹을 것처럼 강해졌다고 들었는데 아직 여린 심성은 그대로구만.

철구는 뒤돌아 눈물을 닦아냈다. 석호는  자연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나며 임 박사에게 악수를 청했다.

- 최베드로 신부님께 오신다는 말씀은 들었습니다.

- 아! 오랜만이군요.

- 네. 연구실에서 뵙고 처음이니까 거의 이 년이 다 됐네요.

- 연구실이라뇨? 임 박사님은...

- 철구 씨에게는 말씀드리지 않았는데 임 박사님께서는 저희 바티칸 연구소에서 프로젝트 연구를 진행 중이시죠.

철구는 임 박사를 쳐다보았다. 임 박사는 철구의 어깨를 툭툭 치며 말했다.

- 말하자면 사연이 길어. 다시 돌아갈 때까지 앞으로 시간도 많고 하니 차근차근 얘기하세나.

임 박사의 말에 철구는 고개를 끄떡였다.

- 들어오기 전에 최베드로 신부가 그들의 꼬리를 잡은 것 같다면서 얘기해 주던데...  그들의 본체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들의 연구 시설을 알아냈다고 말야. 지금은 새마음 병원으로 등록이 되어 있다더군.

임 박사의 말에 철구와 석호가 조금 놀라며 임 박사를 쳐다보았다.

- 새마음 병원이요?

- 어찌 된 일인지 모르지만 예전에 자네가 크게 사고쳤던 미래 생명 공학 연구소와 멀지 않은 곳이라고 하더군.

- 네...

철구는 조금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 혹시 새마음 병원에 근무하는 모든 의사들이 다 그들과 관계가 있는 건가요?

그 말에 임 박사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 그건 아닐 걸세. 그 병원 의사들은 잘 모를 거야. 핵심 연구원이 아니면 아마도 그들의 존재조차 모를 걸세.

그 말에 철구는 고개를 끄떡였다. 철구는 그러면서 자신이 의심스러워하는 부분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 새마음 병원에 근무하는 의사가 한 명 있는데 제가 조사하고 있는 여성과 관련이 있거든요. 그 곳 의사이길래 그 사람도 혹시 관련이 있는지 하고 여쭤본 겁니다.

그 말에 임 박사는 고개를 무심히 끄떡이다가 말했다.

- 혹시 그 사람이 특이한 병을 연구한다든가 아니면 희귀한 환자를 살핀다면 관련이 있을 수 있지.

- 그런가요? 그러면 기억상실증은 특이한 병인가요?

그 말에 임 박사는 피식 웃었다.

- 엉뚱한 걸 묻는 걸 보니 자네가 정말 박 형사가 된 것 같으이. 기억상실증은 특이한 병은 아니지. 일시적으로 나타날 수도 있고, 아니면 충격이나 사고 등으로 인해 해마에 영향을 받아 기억을 잃을 수 있지.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과장되게 보여주지만 사실 건망증도 기억상실의 일종이라네.

- 그러군요.

- 자네랑 이런 얘기를 하니까 옛날에 같이 일했건 때가 떠오르는군.

- 네.

두 사람 모두 서로 얘기는 꺼내지 않았지만, 마음속으로는 박 형사를 떠올렸다. 두 사람의 쓸쓸한 표정을 보고는 석호가 입을 열었다.

- 오늘 같은 날은 소주라도 한 잔 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사제인 석호의 뜻밖의 말에 철구와 임 박사는 자신들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박 형사에 대한 슬픔만 생각하다가 석호의 말에 두 사람이 오랜만에 만났음을 떠올렸다.

- 임 박사님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어디 나가는 건 부담스러우니까 예전 경찰서 앞에 있는 족발집에서 족발하고 소주 사다가 여기서 먹죠.

그러면서 철구가 일어나려 하자 석호가 먼저 나섰다.

- 제가 막내인 것 같은데 제가 가죠.

철구는 석호의 털털한 모습에 문득 웃음이 났다. 평소 신부라면 근엄하고 딱딱한 사람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석호는 자신이 아는 그런 사제의 모습이 아니었다. 석호가 차 키를 들고 밖으로 나가자 철구는 임 박사에게 그 동안의 안부를 물었다.

- 우리 가족은 모두 바티칸에 있다네. 아들 녀석은 거기서 신부가 되겠다고 우기고 있고 딸은 로마 쪽으로 나와서 학교를 다니고 있지. 어렸을 때부터 미국에서 살아와서 그런지 외국 생활에 아주 잘 적응하고 있어.

철구는 자신 때문에 고국을 떠나 사는 임 박사에게 무척이나 미안함을 느꼈다.

- 고맙습니다. 그리고 죄송합니다.

철구의 사과에 임 박사는 손사래를 쳤다.

- 작은 박 때문이 아니야. 아! 개명(改名)했다고 했지? 이름이 철구? 맞나?

- 편하신 대로 부르시면 됩니다.

- 아냐. 아냐. 나도 그렇게 불러야 나중에 입에 붙지. 아무튼 자네 때문이 아니야. 나도 어렴풋이 그 놈들 정체를 알고 있었는데, 때가 돼서 그렇게 된 것일 뿐이야. 그게 왜 자네 잘못인가?

철구는 그 말에 고개를 숙였다.

- 자네도 그랬겠지만, 난 그 녀석들한테 정말 복수를 하고 싶었다네. 하지만 내가 가진 힘이라고는 알량한 법의학 지식밖에 없었지.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힘을 다해서 지금 그들에 대해 알아보고 있네. 아마 앞으로 자네와도 자주 연락을 하게 될 거야.

철구는 그 말에 임 박사의 손을 잡았다.

- 네. 임 박사님께서 살아계신 걸 알았으니 저도 정말 열심히 살겠습니다.

두 사람이 그간 어떻게 살았는지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석호가 안으로 들어오며 말했다.

- 족발에 소주가 도착했습니다.

앞의 탁자에 족발에 소주를 놓고는 석호가 철구에게 말했다.

- 세현 씨도 부를까요?

철구가 조금 떨떠름했지만, 고개를 끄떡이자 석호가 쪽방으로 갔다. 그러나 안을 살짝 들여다보고 그냥 나오며 말했다.

- 자고 있네요. 오늘 일이 많아서 피곤했나봐요.

석호의 말에 임 박사가 석호에게 물었다.

- 세현 씨라니? 그 사람이 누군가?

석호는 족발 봉투를 뜯으며 간단하게 세현에 대해 얘기를 했다. 그러자 임 박사가 고개를 끄떡이며 말했다.

- 그렇군. 기억을 잃은 여자라... 아까 얘기했던 그 여자로구만.

임 박사의 말에 철구가 고개를 끄떡였다. 그런데 족발 봉투를 뜯다말고 석호가 말을 꺼냈다.

- 족발을 사러 가면서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요. 새마음 병원이 그 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세워진 이유가 혹시 기억을 지우는 무언가 때문이 아닐까요? 뭐 옮길 수 없는 기계일 수도 있고, 아니면 무슨 특별한 장치일 수도 있구요.

석호의 말에 임 박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 맞을 걸세. 내가 곁에서 지켜보고 있었네만 그 기계가 설마 기억을 지우는 기계인 줄은 꿈에도 몰랐었지. 아마도 그 기계때문일 수도 있겠지.

그러자 철구가 말을 받았다.

- 그렇다면 그 기계가 아직 완전하지 않은 것 같은데요. 제 기억이 하나둘씩 돌아오는 걸 보면.

그 말에 석호가 다시 족발 봉투를 뜯으며 대답을 했다.

- 그렇다고 볼 수 있죠. 단기 기억을 지운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두 사람의 얘기를 듣고 있던 임 박사가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가 말을 꺼냈다.

- 아니. 아마도 그들의 기계는 완벽할 거야. 나와 같이 연구하는 연구원 하나가 벨기에에서 에르고 짐머(Ergo zimmer)박사를 만났었는데 그 사람도 그들의 일원이라고 알려진 인물이거든. 그런데 넌지시 얘기를 꺼내봤는데 전혀 기억을 못하고 있더라는 거야.

임 박사의 말에 두 사람은 낮은 신음성을 냈다.

- 그럼 왜 저는 기억이 조금씩 돌아오는 거죠?

철구의 말에 임 박사가 무릎을 탁 치며 말했다.

- 정전!

임 박사의 뜬금없는 말에 두 사람은 임 박사를 쳐다보았다. 임 박사는 그 때의 기억을 차근차근 짚어 가며 말했다.

- 그 놈들이 자네 뇌에 약간의 출혈이 있다면서 자네 머리에 기계를 가져다 댔었지. 나도 MRI로 봤을 때 약간의 출혈이 보여서 그 기계로 지혈을 하는 줄 알았어. 그런데 그게 기억을 지우는 기계일 줄은 몰랐네. 그런데 자네 머리 위에서 움직이던 기계가 갑자기 멈췄어. 병원이라 바로 발전기가 돌아가면서 전기가 들어왔는데 그 때 잠깐 정전이 됐었지. 1초 정도밖에 안 되는 시간이었는데 그 놈들이 당황하더군.

아마 그 때 문제가 생간 것 같네만...

- 1초요? 그 정도로 뭐가 잘못 될까요?

철구의 말에 임 박사는 빙그레 웃으면서 생각했다. 질문하는 내용이나 폼이 마치 박 형사가 그대로 살아 돌아온 것 같은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 기억에서 1초는 엄청나게 긴 시간이지. 우리가 길어야 1초밖에 되지 않는 영상도 얼마나 강렬하냐에 따라 달라지기 마련이지. 하물며 뉴런이 해마로 기억을 바꾸는 1초는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시간일 수 있지.

- 그렇군요. 그럼 정전 때문에 제 기억이 완전히 제거되지 않았고, 결국 모든 게 떠오를 수 있는 것이군요.

- 더욱이 여기 장 신부와 함께 기억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더 손쉽게 떠오르는 것이지.

- 음... 그렇군요.

철구는 소주 뚜껑을 따서 임 박사의 잔에 따르며 말했다.

- 그런데 임 박사님께서는 어디에 계실 예정이신가요?

철구의 물음에 임 박사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이 입국한 것도 사실은 극비에 해당하는 사항이었고, 자신이 머무는 곳도 역시 비밀 사항이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철구를 믿지 못해서가 아니라 정보의 공유를 최소화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사실 임 박사가 한국에 왜 왔는지 그리고 어디에서 머무는지 석호도 알지 못했다. 임 박사의 난감한 표정을 본 철구는 자연스럽게 말을 돌렸다.

- 이렇게 오셨는데 박 형사님 묘에라도 같이 가려구요.

박 형사의 묘라는 말이 나오자 임 박사는 잠시 슬픈 표정이 되었다.

- 그래? 그 친구는 어디에 있는데...

철구는 박 형사의 시신을 탈취해서 묻었을 때를 떠올렸다. 부검을 하네 어쩌네 하면서 국과수로 옮기는 차를 성준에게 알아내고 한적한 도로에서 차를 습격했다. 비록 시신일지라도 그들에게 넘겨줄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박 형사의 시신이라도 자신의 손으로 묻어주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비록 자신이 지금 숨어있는 신세라 해도 자신의 양심이 내리는 명령을 거부할 수 없었다. 박 형사의 시신을 탈취한 후 철구는 집안 소유의 선산으로 갔다. 거기는 사유지이기 때문에 사람들의 출입이 제한된 곳이었고 또한 자신의 묫자리도 그 곳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구획을 그어 놓고 그 곳이 자신이 묻힐 자리임을 알려주는 표지석 하나가 놓여 있었다. 그 곳은 아무도 찾지 않는 외진 곳이었다. 철구는 이제 물기가 다 빠져서 점점 썩어가는 박 형사의 시신을 보고 한동안 오열했다. 자신의 모든 것이 눈물이 되어 빠져나가는 아픔이 느껴졌다. 그리고 준비한 삽과 곡괭이로 자신의 묫자리를 팠다. 그리고는 자신의 묫자리에 박 형사를 다시 관에 넣고 땅에 묻고는 그 앞에서 피눈물을 흘리며 다짐을 했다.

- 형님... 미안합니다. 이제 내가... 내가 형님을 이렇게 만든 놈들을... 꼭.. 꼭... 죽여버릴 겁니다. 아주 갈아버릴 겁니다.

철구는 비어 있는 자신의 묫자리에 박 형사를 묻은 것이었다. 비석조차 세우지 못하고 가는 것이 마음에 걸렸지만 언젠가는 꼭 세워 주리라고 마음먹었다.

- 그 녀석들에게 제가 빼앗아 왔습니다.

임 박사는 박 형사의 시신이 누군가에 의해 탈취되었다는 얘기를 듣고 불같이 화를 냈었다. 분명히 그 놈들이 박 형사를 욕보이기 위해 빼앗아 간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뜻밖에도 철구가 박 형사의 시신을 가져가 묻었다는 말을 듣자 안도의 마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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