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계(逐界) - 쫓겨난 이들의 세계 - 2장 - 7. 진실의 문(3)
- 웨이룽이 국도변에서 발견되었습니다.
무영은 그 말을 듣고 침통한 표정을 지었다. 웨이룽이 죽었다는 것은 그들에게 이쪽의 정보가 새어 들어갔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을 계속 보호해야 할지 가늠이 서지 않았다. 이미 정보가 샌 마당에 그들을 보호할 수 있는 힘이 없었다. 더욱이 웨이룽을 죽인 놈들은 전문가들이었다. 현재 인원도 적을뿐더러 전문가를 상대로 보호할 수 있을 지도 걱정이었다. 들은 말로는 철구나 신부는 스스로 자신을 지킬 수 있을 만한 실력을 가진 이들이었지만, 세현은 감금을 하지 않는 한 그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기 힘들어 보였다. 더욱이 첸과 메이양은 웨이룽의 죽음으로 인해 그들을 보호하는 역할보다 복수에 혈안이 되어 있는 상태였다. 무영은 은밀하게 일을 진행하고 있는 일남과 훈기에게 전화를 걸었다.
- 회장님께 상황 보고해야 하니까 저녁 때 본가(本家)로 들어와라.
일남과 훈기가 도착하자 무영은 그들을 데리고 원 회장 앞에서 고개를 숙였다. 원 회장은 파이프를 문 채 눈을 감고 있었다.
- 모두 제 불찰입니다.
무영이 말을 하자 원 회장은 고개를 저었다.
- 누구의 잘못이 아니지. 모두 내 업보야. 모두.
원 회장은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다가 말을 했다.
- 웨이룽의 장례는 중국에서 성대하게 치러줘라. 그리고 가족들도 잘 거두고.
원 회장의 말에 무영이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였다.
- 최세현을 잡아가려는 놈들이라... 음...
원 회장은 크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 전쟁을 원하는 건가? 음...
원 회장의 입에서 전쟁이라는 말이 나오자 무영과 일남, 훈기가 동시에 바닥에 엎드렸다.
- 죽을 지라도 복수를 위하여!
세 사람이 동시에 그렇게 외치자 원 회장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 최세현, 그 여자를 잡아와. 반드시 살려서. 그리고 그 여자를 납치하려던 놈들이 누군지 알아봐. 모든 역량을 동원해서.
원 회장의 입에서 말이 떨어지다 세 사람은 다시 바닥으로 머리를 숙이며 말했다.
- 네. 알겠습니다.
원 회장이 서재 안으로 들어가자 무영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 회장님 입에서 전쟁이라는 말이 나왔다. 일남! 너는 한국의 모든 조직을 동원해서 웨이룽을 죽인 녀석들을 찾아내. 죽여도 좋지만 시끄럽지 않게. 첸하고 메이양 관리 잘 하고.
무영은 조용하게 얘기를 했지만, 그 안에 말은 무시무시했다.
- 네. 알겠습니다.
무영은 훈기를 보며 말했다.
- 넌 나와 같이 여자를 잡으러 간다. 최대한 신속하게 처리할 거니까 날랜 놈들 몇 명만 준비해라.
훈기는 고개를 끄떡이며 말했다.
- 네. 알겠습니다.
두 사람이 밖으로 나가자 무영은 무섭게 인상을 썼다. 자신에게 이렇게 패배감을 맞보게 한 놈들을 가만히 둘 수 없었다. 무영은 그 최세현이라는 여자가 도대체 어떤 존재이기에 그렇게 다들 잡으려고 애를 쓰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 도대체 그 여자... 왜...
하지만 무영은 많은 생각보다 행동이 우선이라고 생각했다. 철구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계속 통화가 되지 않았다. 무영은 깊은 한숨을 쉬며 본가에서 나와 세현의 사무실 쪽으로 옮겨갔다. 그리고 훈기에게 전화를 걸어 그녀의 집 쪽에 잠복해 있으라고 말을 전했다. 무영은 세현의 사무실에 불이 꺼진 것을 보고는 멀리에 차를 세우고 사무실 쪽으로 시선을 고정했다.
일남은 첸과 메이양을 만나서 무영의 말을 전했다. 그러자 메이양이 불같이 화를 내며 예쁜 얼굴이 마녀와 같이 변했다.
- 쓸어버리는 게 아니라 어떤 놈들인지만 알아보라구요?
첸 역시 불만이 가득한 표정이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냥 서 있었다.
- 회장님의 명령이다.
일남의 말에 메이양은 이를 악다물었다. 얼마나 세게 물었는지 아랫입술에서 피가 흘렀다. 일남은 우직한 웨이룽이 메이양을 따라다니며 줄기차게 추근거린 것을 알고 있었다. 메이양 역시 처음에는 무식하고 괴물같은 웨이룽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항상 자신을 보호하려고 애쓰는 웨이룽에게 어느 순간부터 마음에 쏠리는 것을 느꼈다. 그런데 그런 웨이룽이 시체로 돌아온 것이었다. 메이양은 이번 한국 일이 끝나면 웨이룽과 못이기는 척 만나주려 했었다. 하지만 이제 그런 것이 다 물거품이 되어버린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버림받고 이용당하는 데 익숙한 메이양이기에 아무에게도 마음을 열지 않았지만, 웨이룽의 한결같은 태도에 마음이 바뀐 것이었다. 메이양은 또다시 자신의 마음이 굳게 닫히는 것을 느꼈다. 아니 마음이 닫히는 것을 넘어서 웨이룽을 죽인 녀석들은 모두 찢어죽이고 싶었다. 그러나 회장에게 내려온 명령은 누구인지 파악하고, 살인을 최소화하라는 것이었다. 회장의 말은 그 무엇보다도 우선되어야 하기에 메이양은 분노를 안으로 삭이느라 입술을 깨문 것이었다. 그런 메이양을 보고 일남은 낮게 한숨을 쉬었다. 어쩌면 조만간 미친 살인귀라고 불리는 메이양이 피의 춤을 출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되면 아무리 자신이라도, 아니 무영이나 회장님이 나서더라도 막기 힘들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이번 작전에서 그녀를 빼면 더 큰 사단이 날 것이라고 생각을 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일남은 한숨만 내쉬었다.
- 일단 잠시만 참자. 너의 복수는 내가 기필코 약속하지.
일남의 말에 메이양은 입술에서 흐르는 피를 혀로 닦으면서 말했다.
- 약속을 어기면 대장이 먼저에요.
그녀의 섬뜩한 말에 일남은 얼굴을 굳히며 말했다.
- 내가 약속하지. 내 목숨을 걸고.
일남의 말에 메이양은 주먹을 꽉 쥐고 분노를 억눌렀다.
- 동원할 수 있는 애들 중에서 실력 있는 애들 준비시켜. 어쩌면 전쟁이 시작될지도 모르니까.
일남의 입에서 전쟁이라는 말이 나오자 첸이 조금 놀라서 물었다.
- 회장님의 의지입니까?
일남은 첸을 보며 고개를 끄떡였다. 그러자 첸의 눈빛이 돌연 싸늘하게 바뀌면서 얘기를 했다.
- 피가 차가워지는군요. 회장님이 전쟁이라고 하시다니.
첸은 자기가 어렸을 때 회장의 입에서 나온 '전쟁'의 실체를 겪어본 인물이었다. 흑사회 내에서 반란이 일어났을 때 회장은 반란에 가담한 이들과 전쟁을 선포했고, 그 결과는 너무나도 참혹했다. 반란에 가담한 이들은 철저하게 말살되었다. 흑사회 내에서 암살은 물론이고, 공안을 이용하여 소탕 작전을 펼쳤다. 항복이란 없었다. 공안에게 잡혀서 감옥에 가더라도 그 안에서 시체가 되었다. 전쟁이 끝났을 때 반란에 가담한 이들 800명이 모두 죽었다. 첸이 아직 조직의 말단이었을 때였기에 그 때 느낀 공포와 경악은 누구보다 심했다. 평소 온화하고 인자하기로 소문난 회장님이 이러한 끔찍한 살육을 벌였다고 생각할 수 없었다. 하지만 첸은 그 말을 깨달았다. 단순히 탈퇴를 하는 것에 대한 살육이 아닌 '복수'를 부정하는 것에 대한 살육이라는 것을. 자신 역시 '복수'의 증오심이 현재의 자신을 만들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첸의 표정이 바뀌는 것을 본 일남이 다시 말을 했다.
- 오후 5시까지 흩어져서 정보를 모으고, 가급적이면 너희는 나서지 마라. 중국인이기 때문에 눈에 띌 위험이 있으니까. 그리고 6시에 이곳에서 다시 모인다.
일남의 말이 떨어지다 메이양과 첸이 밖으로 나가면서 어디론가 전화를 했다. 일남은 회장의 입에서 '전쟁'이라는 말이 떨어졌을 때 느낀 두려움과 전율이 떠올라 몸이 조금 떨렸다. 죽음이 두려운 것이 아니었다. 회장의 입에서 나온 전쟁은 곧 복수의 완성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일남 역시 밖으로 나가 웨이룽의 시신이 발견된 곳으로 이동했다. 일남이 국도를 달릴 때 노란색 폴리스 라인이 쳐진 곳을 보았다. 웨이룽의 시신이 발견된 곳이었다. 그러나 그곳은 폴리스 라인만 쳐져 있을 뿐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다. 일남은 그곳에서 한참 떨어진 곳에 차를 세웠다. 그리고 폴리스 라인 근처에 낌새를 살폈다. 아무런 기척이 느껴지지 않았지만, 일남은 참을성 있게 기다렸다. 이 장소를 이렇게 개방적으로 놔둔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기 때문이었다. 그쪽에서 이쪽의 정체를 대충 알았다면 반드시 이곳으로 누군가가 올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정확한 정체를 알아내기 위해 누군가를 잠복시켰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런데 그 때 두 명의 인영이 웨이룽이 발견된 개울 쪽으로 내려갔다. 멀리서 보아서 누군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었다. 일남은 차에 올라타서 U턴을 했다. 그리고 그 곳을 향해 천천히 차를 몰았다. 그런데 그 순간 개울가에 서 있던 두 명이 목을 부여잡고 자리에 쓰러졌다. 일남은 고개를 돌려 풀숲 쪽을 쳐다보았다.
- 으악..
일남은 얼른 차를 세웠다. 그리고 그 풀숲 쪽으로 몸을 던졌다. 바닥에 바짝 엎드려 앞을 쳐다보았다. 그런데 거기에는 메이양이 칼을 입에 문 채 마취총을 들고 있는 사람을 제압하고 있었다. 말이 제압이지 보기에 처참한 모습이었다. 도망가지 못하게 아킬레스건을 잘랐고, 두 팔은 이미 탈구가 되었는지 덜렁거렸다. 메이양은 일남을 보고 냉정하게 말했다.
- 죽이진 않았어요.
일남은 그녀가 죽이지 않은 것만으로도 얼마나 참았는지 알 수 있었다. 일남은 아까 엎어지면서 뭔가 깨지는 소리가 난 것을 알고 가슴 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아까 엎드렸을 때 바닥에 있던 돌과 부딪쳤는지 핸드폰이 깨져 있었다. 폴더를 열었지만, 핸드폰이 영 고장이 난 것처럼 보였다. 일남은 약간 짜증이 난 표정을 지으며 아래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 저 두 명은?
- 미끼요.
아무렇지도 않게 얘기하는 메이양을 보고 일남은 같은 팀이었지만 조금은 소름이 끼쳤다. 메이양은 그 남자의 머리채를 부여잡고 물었다.
- 누가 시켰지?
그러나 남자는 고통에 몸부림을 칠 뿐 입을 열지 않았다.
메이양은 입에 물고 있던 칼을 손에 쥐고 남자의 어깨에 꽂았다. 그리고 살짝 비틀며 말했다.
- 어깨 근육은 잘리면 영원히 쓸 수 없지.
메이양은 비명을 지르는 남자의 입에 신발을 물리고는 다시 말했다.
- 이번엔 허벅지야. 내가 잘 저며줄게.
메이양은 칼을 들어 허벅지에 찔러넣었다. 남자는 여전히 고통스런 신음소리만 낼 뿐 말하겠다는 의사를 보이지 않았다. 메이양은 남자를 보고 피식 웃었다.
- 고문에 익숙하군.
그러다가 남자의 뒷주머니가 불룩한 것을 보았다. 손을 뻗어 불룩한 무언가를 꺼냈다. 남자의 지갑이었다. 그 안에는 아기 사진 하나가 보였다.
- 예쁜 아기로군.
메이양의 입에서 이 말이 나오자 남자의 눈이 커졌다. 그러더니 웅웅 소리를 냈다. 메이양은 입에서 신발을 빼주었다.
- 애... 애는 건드리지 마...
메이양은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 니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 그.. 그건...
그러자 메이양이 휘파람을 불었다. 휘파람 소리를 듣고 한 명이 부리나케 달려왔다. 메이양은 손에 쥐고 있는 지갑을 주며 말했다.
- 수단, 방법 가리지 말고 한 시간 내에 이 애새끼 시체를 내 눈앞에 가져와.
명령을 들은 부하가 조금 놀란 표정을 짓다가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
- 네. 알겠습니다.
일남은 지금 자신이 나서면 오히려 일을 더 어렵게 만들 수 있다는 생각에 그건 아니라는 말을 해 주고 싶었으나 참았다. 부하가 자리를 뜨자 남자는 손을 뻗으며 말했다.
- 아.. 안 돼. 마.. 말할게. 제발.. 아기는..
메이양은 그 자리에 쭈그려 앉아 남자를 보았다. 피 묻은 칼을 들고 있는 예쁜 여자의 모습은 귀기(鬼氣)스러워보였다.
- 누가 시킨 거지?
남자는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말을 했다.
- 토... 톰슨 병원...
메이양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 톰슨 병원? 거기 병원장이 시킨 건가?
- 그것까진... 모... 몰라. 톰슨 병원에서...
- 톰슨 병원이라... 알겠어. 고마워.
일남은 그 말을 듣자 메이양에게 고개를 저었다. 안 된다는 표시였다. 그러나 메이양은 일남을 무시하고 칼을 들어 남자의 목을 그었다. 남자는 목에서 피를 흘리며 꺽꺽거리며 메이양을 쳐다보았다.
- 걱정마. 아이도 곧 보내 줄게.
메이양이 남자의 머리채를 놓고 일남 쪽으로 걸어왔다.
- 톰슨 병원. 가죠.
일남이 메이양의 팔을 잡았다.
- 아이는 아냐.
일남의 말에 메이양이 표독스러운 표정으로 일남을 쳐다보았다. 일남 역시 그녀의 눈을 정면으로 응시하였다.
- 그러죠. 하하하.
그녀는 마치 마녀처럼 크게 웃으며 일남의 손을 뿌리치며 도로 쪽으로 나갔다. 그러자 멀리서 그녀를 태우기 위해 차가 다가왔다. 메이양은 큰소리로 소리쳤다.
- 아이는 놔둬! 대신 톰슨 병원으로 간다.
일남은 그녀가 무슨 사고를 칠 것만 같은 불안함이 들었다. 그래서 얼른 달려가 메이양의 앞을 가로막았다.
- 진정해.
메이양은 일남을 쳐다보며 말했다.
- 톰슨 병원도 가지 말라구요?
일남은 강한 어조로 말했다.
- 천천히 접근해야 돼. 네 복수가 아니니까.
일남의 말에 메이양은 다시 입을 굳게 다물었다. 일남은 그녀를 쏘아보며 다시 말했다.
- 너 하나의 복수라면 가서 죽던 살던 안 말려. 하지만 회장님 명령이야.
메이양은 회장의 명령이라는 말을 듣자 한쪽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사창가에서 흑사회한테 찍혀 죽도록 얻어맞고 버려졌을 때 자신을 구해주고, 보살펴 준 회장이었다. 평범한 여자로 키우려고 노력한 회장과 다르게 분노와 복수를 일념으로 갈고 닦은 살인 기술이었다. 그래서 그녀의 손에는 자비가 없었다. 하지만 회장의 명령, 회장의 말, 회장의 부탁 등 회장과 관련된 것이라면 자신의 목숨도 던질 수 있었기에 메이양은 분노를 누르고 대신 눈물을 흘린 것이었다.
- 일단 숙소로 가서 대기해. 너마저 잃기 싫으니까.
일남의 말에 메이양의 두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일남은 메이양의 수하들에게 소리쳤다.
- 모두 숙소로 가라!
축계(逐界) - 쫓겨난 이들의 세계 -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2박 3일간 아무 생각없이, 그러나 여러 생각을 담은 여정이었습니다.
그래서 화요일 연재가 휴재였습니다.
미리 알리지 못한 것은 그냥 무작정 떠났기 때문입니다.
무책임하죠?
금요일부터 다시 연재를 할 예정입니다.
즐거운 마음으로요~~!
한 번정도는 애교로 봐주실꺼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