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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계(逐界)-쫓겨난 이들의 세계-88화 (88/309)

축계(逐界) - 쫓겨난 이들의 세계 - 2장 - 6. 어둠의 그림자(6)

최베드로가 잡은 사람은 뜻밖에도 젊은 사제였다.

- 여기서 뭘 한 거지?

젊은 사제는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 넌 누군데 여기서 어슬렁거리는 거지?

최베드로는 그 젊은 사제를 다그쳤지만, 입을 열지 않았다. 최베드로는 그 사제를 잡고 정보국 쪽으로 갔다. 그런데 그 젊은 사제는 뜻밖에도 순순히 최베드로의 뒤를 따랐다. 정보국 안으로 들어가서 최베드로는 의자에 그 젊은 사제를 자리에 앉혔다.

- 염탐인가?

최베드로의 단도직입적인 말에 젊은 사제는 입을 더욱 꾹 다물었다. 최베드로는 손가락으로 탁자를 툭툭 치며 오히려 조용하게 말을 했다.

- 일을 크게 만드는군.

그러다가 몸을 젊은 사제 앞으로 수그리면서 말을 했다.

- 니가 어디 소속이고, 무슨 목적인지는 오늘 하루만 주면 다 알 수 있지. 알겠어?

최베드로는 다시 허리를 펴며 책상을 탕하고 내려치며 말했다.

- 한 번 해 보자고.

최베드로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버튼을 눌러 다른 정보 사제들을 부르려 했다.

- 알아보려고 했습니다.

젊은 사제의 입이 열리며 뜻밖의 말이 나왔다. 최베드로는 다시 자리에 앉으며 젊은 사제를 쳐다보았다.

- 알아보려 하다니?

최베드로의 말에 젊은 사제는 무언가를 결심하듯이 말을 꺼냈다.

- 최베드로 신부님이 과연 저의 원한을 풀어주실 수 있을지 알아보려 했습니다.

최베드로는 그의 말에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말을 했다.

- 무슨 원한을 풀어줄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그렇게 염탐을 하는 건 잘못된 일이지.

- 염탐이 아닙니다. 저 스스로 알아보는 것이었습니다.

젊은 사제는 목소리를 굳히며 말을 했다.

- 알아보는 것이라... 얘기나 들어보지.

최베드로는 손깍지를 끼며 젊은 사제를 쳐다보았다.

- ...

젊은 사제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무언가를 결심하듯이 말을 했다.

- 피오바넬리 추기경에 관한 것입니다.

피오바넬리 추기경이라는 말을 듣자 최베드로는 주변에 갑자기 손짓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젊은 사제를 불러 일으켰다.

- 능구렁이같은 녀석이로군. 일어나 이 자식아!

최베드로는 갑자기 불같이 화를 내며 젊은 사제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젊은 사제의 멱살을 잡으며 갑자기 안쪽 취조실 같은 곳으로 끌고 갔다. 젊은 사제는 당황을 하며 말을 했다.

- 이... 이게 뭐하는...

최베드로는 문을 쾅하고 닫고는 말했다.

- 피오바넬리 추기경이라고?

최베드로가 정색을 하며 물었다. 젊은 사제는 돌별한 최베드로를 보자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 밖에는 듣는 귀가 많지. 자네가 무슨 얘기를 했다면 아마도 뭔 일이 있었을 테지.

최베드로의 말에 젊은 사제는 무서운 듯이 몸을 떨었다.

- 여.. 여긴 바티칸 아닙니까.

- 바티칸이니까 조심해야지.

젊은 사제는 앞에 있는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최베드로는 그 맞은편에 앉으며 말을 꺼냈다.

- 피오바넬리 추기경이 어떤 분인지 알고 있겠지?

젊은 사제는 고개를 끄떡였다. 몸을 추스르면서 이를 악물며 말했다.

- 잘 알고 있습니다.

- 이번에 콘클라베에서 유력한 후보인 것도 알고 있나?

최베드로의 말에 젊은 사제는 고개를 끄떡이며 말했다.

- 그것 때문에 제가 신부님을 찾아온 것입니다.

최베드로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 혹시 반대쪽인가?

최베드로의 말에 젊은 사제가 말을 했다.

- 저 같은 새끼 사제가 누구 쪽이 어디 있습니까? 다만 피오바넬리 추기경이 절대 교황이 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에 찾아온 것입니다.

최베드로는 그 말에 고개를 끄떡였다.

- 그렇겠군. 자네 말을 듣자니 왜 그런지 이유가 궁금하군.

젊은 사제는 손가락에 힘을 주며 말했다.

- 제가.... 그 사람의 아들이기 때문입니다.

최베드로는 그 말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 뭐... 뭐라고?

- 제가 피오바넬리 추기경의 아들입니다. 어머니는 두오모 성당의 수녀였습니다. 저를 혼자 키우시다가 얼마 전에 암으로 돌아가셨죠.

최베드로는 그 말에 젊은 사제에게 질문을 했다.

- 자네의 아버지라면 오히려 교황이 되는 걸 바라야 되지 않나?

그러자 젊은 사제는 분노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 그 인간은 괴물입니다. 저희 어머니는 피오바넬리 추기경을 진심으로 사랑했습니다. 그 인간이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했답니다. 그래서 제게도 그 사실을 숨기셨죠. 하지만 돌아가시기 전에 꼭 한 번만 보고 싶어 하셨죠. 그래서 아는 분께 부탁을 해 추기경을 찾아갔는데.. 그 인간은 외면했습니다. 제발 어머니가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 비밀로, 비밀로 와 달라고... 부탁을 했는데, 그 인간은 외면을 했답니다.

젊은 사제는 눈물을 흘렸다. 최베드로는 젊은 사제의 말에 침묵을 했다.

- 하지만 어머니는 그 인간을 진심으로 사랑하셨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모두 안고.. 죽기 전에 한 번만... 어머니는 그렇게 그 인간을 보지 못하고 돌아가셨습니다.

최베드로는 고개를 끄떡였다.

- 그것이 자네의 한이었군. 하지만 자네가 아들이라는 걸 피오바넬리 추기경도 알고 있지 않나?

젊은 사제는 눈물을 닦았다.

- 아니오. 모르고 있습니다. 어머니께서 아들을 낳았다는 것도.

최베드로는 라울에게 들은 피오바넬리 추기경과 관련된 소문들을 전부 확인해 보았지만, 많은 부분이 모함에 가까운 얘기들이었다. 물론 그 중에는 마피아에게 세례를 주었다든가 하는 비위 사실은 있었지만, 이탈리아 안에서는 어쩔 수 없는 일들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최베드로는 그 중 일부는 사실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어떤 방식으로 정보를 은폐했는지 모르지만 최베드로조차 정보를 찾기 힘들었다. 도덕적인 결함이 있음을 알고 있지만, 어찌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의 아들이라고 주장하는 이가 나타나게 된 것이었다.

'콘클라베는 연기할 수 있겠군.'

최베드로는 그와의 대화 내용을 녹취하였다. 그리고 젊은 사제의 어깨를 두드렸다.

- 유전자 검사를 할 수 있도록 머리카락과 피부 조직을 조금 가져가겠네.

최베드로의 말에 젊은 사제는 어깨를 들썩이며 말했다.

- 네. 절대 그 사람이 교황으로 선출되지 않게 해 주세요.

최베드로는 고개를 끄떡였다.

일주일 후에 짐바브웨와 말라위를 갔던 사제가 슈테판 추기경 사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 그 서류의 내용은 사실이었습니다. 이건 녹취록과 사진 자료입니다.

슈테판 추기경은 그들에게 수고했다는 말을 하고 내보냈다. 그리고 최베드로에게 전화를 해 사무실로 오라고 말을 했다. 최베드로는 유전자 검사 결과지를 들고 슈테판 추기경에게로 갔다.

- 둘 다 문제가 많군요. 내가 교황님께 직접 가서 보고 드려야겠군요.

슈테판은 최베드로를 사무실에 두고 혼자 교황에게로 갔다가 한참 만에 사무실로 돌아왔다.

- 어떻게 됐습니까?

슈테판은 낮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 격노하시더군요. 일단 콘클라베는 연기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자료들을 바탕으로 두 추기경을 파문한다고 하시더군요.

최베드로는 그 말에 피식 웃었다.

- 적이 또 늘겠군요.

슈테판은 잠시 침묵을 하다가 말을 꺼냈다.

- 저야 바티칸 안에 있으니 아무리 제가 미워도 어찌할 수 없겠지만, 문제는 최 신부님입니다. 이제 그만 바티칸에 계시지요.

최베드로는 고개를 저었다.

- 저야 사무실 체질이 아니니까요. 그렇게 사는 게 하느님의 뜻일지도 모르지요.

슈테판은 최베드로의 손을 부여잡았다.

- 최 신부님을 잃고 싶지 않습니다.

최베드로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 저는 그렇게 쉽게 죽지 않습니다. 쉽게 죽을 거라면 이미 하느님 품으로 갔겠죠. 하하하.

최베드로는 그렇게 웃으며 슈테판을 안심시켰다. 사실 최베드로 역시 거물 두 사람의 파문으로 인해 내심 불안하긴 했지만, 사실 이전에도 있었던 일이었기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이 일이 훗날 최베드로에게 엄청난 시련을 안겨 주게 될 줄은 아무도 알지 못했다.

아우렐리오 추기경과 피오바넬리 추기경은 이단 심판과 도덕적 해이로 바티칸으로부터 파문을 당했다. 물론 이것은 바티칸의 위신을 실추시킬만한 일이었기에 언론에는 절대 흘러들어가지 않게 하였다. 그리고 조용히 이 일이 마무리되는 듯 했다.

- 일이 틀어졌습니다.

한 사제가 어디론가 전화를 걸자 전화기 너머에서는 조금은 화가 난 목소리가 들렸다.

- 멍청한 놈들. 하긴 그런 놈들이니까 우리 손으로 들어왔겠지만.

사제는 뭔가 크게 잘못한 것처럼 고개를 조아렸다. 하지만 전화기 너머에서는 더 이상 화가 난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 당분간은 침묵하도록.

사제는 짧게 '예'하고 대답을 했다. 그런데 그 다음 말을 듣고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 그 놈들 귀찮으니까 한 놈씩 치우도록 하지.

그러자 사제는 조금 당황한 말투로 얘기를 했다.

- 슈테판 추기경은 워낙 규칙적인 사람이라 틈을 찾기 힘듭니다. 그리고 같이 일하는 최베드로는....

전화기 너머에서 들리는 목소리는 껄껄 웃으며 말했다.

- 그 모기같은 놈 말인가? 그 놈은 내가 처리하지.

- 네. 알겠습니다. 그런데...

그러다가 사제는 다급하게 말을 이었다.

- 다나카님, 제 여동생은 간 이식은....

사제의 말에 전화기 너머의 다나카는 흔쾌하게 대답을 했다.

- 내일 전용기를 보낼 테니 걱정 말고 맡은 일 잘해 주시게.

사제는 그 말에 크게 감동한 표정으로 말을 했다.

-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사제는 전화를 끊고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번 일이 틀어져서 자신의 유일한 혈육인 여동생의 수술이 물 건너간 줄 알았던 사제는 다나카의 뜻밖의 말에 안도를 하고 성당 안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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