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계(逐界) - 쫓겨난 이들의 세계 - 2장 - 6. 어둠의 그림자(4)
첸의 굳은 얼굴과 낮은 목소리에 웨이룽은 순간 경직되었다. 첸의 감각으로도 이렇게 늦게 알아챌 정도면 그들 역시 전문가라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 뭐지? 그 심부름센터 직원이나 신부 같아 보이진 않는데.
첸의 말에 웨이룽은 세현의 집 쪽으로 얼굴을 돌렸다. 첸은 가슴에서 핸드폰을 꺼내 무영에게 전화를 걸었다.
- 새로운 놈들이 나타났습니다. 전문가들 같습니다.
첸의 말에 무영은 즉시 명령을 내렸다.
- 保?!(보호해라!) 不要?。(죽이진 마라.)
무영의 말에 첸이 재빨리 건물 앞으로 다가갔다. 웨이룽 역시 큰 몸집을 감추며 건물 쪽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 델타. 잠금장치 해제.
침입자 중 하나가 무전기에 대고 말을 하는 순간 뒷덜미로 망치로 내려치는 듯한 충격을 받고 그 자리에 쓰러져 버렸다. 그러자 같이 있던 침입자가 뒤를 돌아보았다.
- 쥐새끼처럼 들어가기는.
웨이룽은 다시 팔을 들어 자신을 쳐다보는 침입자의 머리를 내려쳤다. 몸을 피하려 했지만 워낙 빠른 속도였기에 빠각 소리를 내며 마찬가지로 옆에 쓰러졌다. 그 때 무전기에서 말소리가 들렸다.
- 세타. 응답하라. 세타.
그런데 그 무전기 너머로 '윽'하는 소리가 들렸다. 웨이룽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 나보다 늦었군. 첸.
첸은 칼등으로 무전기에 대고 말을 하는 녀석의 명치를 내려 갈겼다. 그리고 옆에 서 있던 녀석의 다리를 걸어 넘어뜨리고 목을 졸랐다. 첸의 눈은 순간 광기(狂氣)에 사로잡혔다. 그러다 고개를 한 번 젓고는 주먹을 들어 인중(人中)을 내려쳤다. 순식간에 네 명을 제압한 두 사람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주변 소리에 집중을 했지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 쳇. 이제 재미있어지려는데 끝이로군.
첸은 그런 웨이룽을 한번 쳐다보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 급습 아니었으면 우리가 당했을 수도 있다.
그러자 웨이룽은 첸을 쳐다보며 말했다.
- 겁쟁이같은 놈.
첸은 웨이룽의 말을 무시하고 무영에게 전화를 걸었다.
- 일단 기절 시켰습니다. 어떻게 처리할까요?
- 음... 이쪽으로 보내.
무영의 말에 첸은 전화를 끊고 핸드폰을 보았다. 그 곳에는 주소가 적혀 있었다. 그리고는 웨이룽에게 말했다.
- 대장에게 저 네 놈 데려가야 하는데 니가 갈래, 내가 갈까?
웨이룽은 첸을 보며 말했다.
- 저 여자 감시하는 거 지겹다. 내가 데려갈 테니까 니가 여기 지켜라.
웨이룽의 말에 첸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자신의 뒷목이 순간 서늘했기 때문이었다.
- 아니. 내가 가야겠어.
첸의 말에 웨이룽이 버럭 화를 냈다.
- 못 믿어서 그러는 거냐? 이 자식은 자기만 잘난 줄 알아.
웨이룽이 화를 냈지만, 첸은 냉정하게 얘기를 했다.
- 중요한 일이다. 만약 하나라도 실수를 하면 그 순간...
첸의 말에 웨이룽은 더 화가 난 것처럼 말했다.
- 결국 그게 그거잖아. 내가 가면 문제가 있을 거라는.
- 그게 아니야. 니가 가다가 혹시 저 녀석 중에 하나라고 깨어나면 혹시 네 성격에 가만히 두지 않을 것 같아서 그런 거야.
첸의 말에 웨이룽은 고집을 부렸다.
- 그러지 않을 거야. 아니 이 집 앞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뭐든 하겠어. 오늘 밤에도...
첸은 무언가 불안했지만, 자신이 이 정도까지 했으면 웨이룽도 알아들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처음부터 첸은 웨이룽을 보낼 생각이었다. 하지만 웨이룽의 불같은 성격을 알고 있기 때문에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이렇게 밑밥을 깐 것이었다.
- 그 정도라면 네가 가라. 하지만 사고는 절대 안 돼.
첸의 말에 웨이룽은 자신의 가슴을 툭툭 치며 말했다.
- 약속하지. 내가 대장에게 반드시 아무 일없이 데려갈게.
웨이룽의 다짐을 믿고 첸은 자신의 차에서 로프를 꺼내 네 명을 묶었다. 모두들 아직은 기절한 상태였기에 손쉽게 묶고 트렁크에 태울 수 있었다. SUV를 개조한 차량이었기에 성인 남자 네 명이 충분히 들어갈 공간이었다. 네 사람을 트렁크에 태우고 첸이 핸드폰 문자 메시지를 웨이룽에게 보여주었다.
- 주소는 여기 있으니까 지도 보고 찾아가.
웨이룽은 주소를 읽더니 옆에 놓인 지도를 펼쳤다. 그리고는 위치를 대강 확인하고 시동을 걸었다.
- 그리고 꼭 메이양한테 전화해라.
첸이 시동을 거는 웨이룽에게 말을 했지만, 웨이룽은 그 말을 무시하고 출발을 했다. 첸은 떠나가는 차를 보며 무언가 말할 수 없는 불안함이 스쳐지나갔다. 살면서 이 정도의 불안함은 처음 느껴본 것이었다.
세현의 집 앞을 떠난 웨이룽은 운전하던 도중 뒤에 묶여 있는 녀석들을 살펴보았다. 여전히 미동도 없어 보였다. 대장이 말한 장소까지 가려면 30분은 족히 걸릴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전에 놈들 중 하나가 깨어날 것 같았다. 웨이룽은 미리 불안을 없애기 위해 도로 옆에 차를 세웠다. 그리고 트렁크 문을 열었다. 그리고 그 녀석들에게 한 방씩 더 먹일 생각이었다. 웨이룽이 트렁크를 열고 누워 있는 녀석들을 확인하고 주먹을 치켜들었다. 그리고 첫 번째 녀석에게 주먹을 날리려고 할 때 구석에 누워있던 한 녀석이 갑자기 트렁크에 놓인 창처럼 생긴 꼬챙이로 웨이룽을 찔렀다. 불시에 공격을 당해서 그런지 웨이룽은 피하는 게 늦었다. 그 꼬챙이는 웨이룽의 목울대를 정확하게 찔렀다. 웨이룽은 순간 몸이 경직되었다. 몸이 묶인 채 녀석은 좀 더 강하게 웨이룽 쪽으로 꼬챙이를 밀었다. 웨이룽은 꼬챙이가 목에 찔렸지만, 초인적인 힘으로 몸을 밀어 놈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그런데 그 순간 앞에 있던 녀석이 깨어나 목에 꼬챙이가 찔린 채 앞으로 다가오는 웨이룽에게 발길질을 했다. 그러자 웨이룽은 꼬챙이를 목에 낀 채 뒤로 넘어갔다.
- 으... 으윽...
두 번째로 깨어난 놈이 자신의 어깨에 힘을 주어 강제로 탈구를 시키더니 로프를 풀어냈다. 그리고는 옆에 깨어 있던 놈의 로프를 풀며 말했다. 그리고 먼저 깨어있던 녀석에게 말했다.
- 긴급이다. 넌 차를 몰고 상황 보고 해라.
깨어있는 녀석에게 말을 한 녀석은 차에서 내려 목에 꼬챙이가 찔린 웨이룽 앞으로 걸어 나왔다. 그 순간 차가 떠났고, 어깨를 탈구시켰던 놈이 다시 힘을 주어 자신의 어깨를 맞췄다.
- 개새끼. 죽어라.
녀석이 욕을 내뱉으며 웨이룽 앞으로 다가왔다. 웨이룽은 자신의 목에서 꼬챙이를 빼어내려고 애썼다. 그러나 녀석은 그렇게 놔두지 않았다. 발에 힘을 주어 꼬챙이를 더욱 깊이 웨이룽의 목에 찔러 넣었다. 웨이룽은 고통에 얼굴이 일그러졌다.
- 뒈져라.
녀석은 웨이룽에게 무자비하게 발길질을 시작했고, 웨이룽은 꼬챙이에 찔린 채 몸을 들썩거릴 뿐 움직이지 못했다. 녀석의 분노의 발길질이 멈추자 웨이룽의 몸도 축 늘어졌다. 녀석은 웨이룽의 목에서 꼬챙이를 뽑아버렸다. 그리고 웨이룽의 시신을 길가에 있는 둔덕 아래로 밀어버렸다. 그리고 꼬챙이를 들고 차가 간 방향으로 몸을 돌렸다. 둔덕 아래로 굴러 떨어진 웨이룽은 자신의 죽음이 믿기지 않는지 눈을 뜬 채로 죽어갔다.
지난 밤 바깥의 상황을 전혀 알지 못하는 세현은 아침 햇살에 눈을 떴다. 세현은 지난밤에 겪은 일이 모두 거짓말 같았다. 자신과 철구가 어느 정도 엮여 있는 것은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그것이 자신의 일과 연결되어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꿈에 나타난 것들이 그저 단순한 악몽이 아니라 자신의 경험과 직접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 더욱 무서운 일이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세현은 사무실로 전화를 걸어 오늘 일정을 모두 취소시켰다. 평소에 그런 일이 없는 세현이었기에 간호사들도 의아해했지만, 세현은 도저히 환자들을 볼 자신이 없었다. 자기 자신도 추스르기 힘든 판국에 다른 사람의 사정을 들어주며 조언을 한다는 게 어불성설(語不成說)이었다. 세현은 답답한 마음에 무작정 밖으로 나왔다. 언제나처럼 누군가가 자신을 보고 있는 느낌이 들었지만, 세현은 애써 그런 마음을 지웠다. 자신처럼 평범한 여의사를 누가 감시를 할 것이며, 또 그래서 그들에게 이득이 뭘까 싶은 마음 때문이었다. 세현은 차에 올라타서 시동을 걸었다. 그리고 기어를 넣기 위해 옆 콘솔박스 쪽을 쳐다보았다. 그러자 거기에서 명함 하나가 발견되었다.
- 장군 보살?
세현은 그 순간 얼마 전 사고가 났던 때를 떠올렸다.
'자꾸 두 명이 포개져 보이기도 하고. 그 두 명이 같기도 하고 다르기도 하고...'
세현은 명함을 보고 그 주소를 내비게이션에 찍었다. 얼마를 달려 도착한 곳은 단독주택들이 모여 있는 골목길 앞이었다. 세현은 차를 세우고 그 명함에 적힌 주소를 찾기 위해 골목길 안쪽으로 들어갔다. 이 집 저 집 확인하다가 주소와 같은 집을 발견했다.
'신당동 신장보살'
그 앞에는 '사주, 궁합, 재물운, 운수대통 부적'이란 광고가 잔뜩 쓰여 있었다. 세현은 문앞에서 잠시 망설였다. 세현은 낮게 한숨을 쉬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 내가 미친 거 아니야? 나 참...
세현은 초인종을 누르려다 그냥 돌아서 나오는데, 갑자기 스피커폰에서 웬 할머니 목소리가 들렸다.
- 왔으면 들어와야지, 왜 그냥 가누? 누가 잡아먹는당가?
그 소리에 세현은 깜짝 놀라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세현은 조심스럽게 문고리를 잡고 열었다.
- 싸게 싸게 들어오드라고.
세현이 문 안으로 들어가자 현관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 실례합니다.
세현은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갔다. 점을 보는 집은 처음이라 세현은 입구부터 조금은 놀랐다. 벽면에는 수많은 장군 그림이 무섭게 그려져 있었고, 불상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그리고 향냄새가 진하게 풍겨 나왔고, 벽에는 징이나 꽹과리 같은 것들이 걸려 있었고, 붉은 색과 흰 색이 섞인 무당 옷도 보였다. 그리고 한 쪽에는 주방인 듯 싱크대가 보였고, 그 위에는 주변 풍경과 어울리지 않게 고급 커피 머신이 하나 있었다. 세현이 안으로 들어가자 한복을 차려 있는 아주머니 한 명이 세현 앞으로 다가왔다.
- 안으로 들어가시지요. 보살님께서 기다리십니다.
- 네? 네...
세현이 놀라 그 아주머니가 안내하는 방으로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가자 현란한 무당 복장을 한 할머니 한 명이 앉아서 세현이 들어오는 쪽을 노려보았다. 세현은 할머니 앞에 놓인 방석에 조심스럽게 앉았다. 그리고 할머니 쪽을 쳐다보았다. 크게 부라린 눈이 무섭기도 하였지만, 조용히 깍지 낀 할머니의 왼손에 있는 특이한 문양의 금반지가 유달리 눈에 띄었다.
- 처녀였구만. 내가 다시 만날 거라고 했지.
- 네? 아.. 네..
세현의 반응에 할머니는 무심하게 말을 했다.
- 시상 사람들이 엥간히 인생이라믄 즈그들 거라고 하는디, 아니지. 아니여.
그러더니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며 말했다.
- 다 저 위에서 시키는 디로 움직이는 벱이지. 다 그렇게 지어진 대로 가는 게야.
세현은 뜬금없는 할머니의 말에 안절부절 못했다. 순간 괜히 왔나 싶었다. 하지만 자신이 문 앞에 서 있는 것을 알아챌 정도라면 신통력이 있는 것처럼 느껴져 세현은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말했다.
- 아, 네... 그런데... 제가 문 앞에 있는 건 어떻게 아셨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