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축계(逐界)-쫓겨난 이들의 세계-75화 (75/309)

축계(逐界) - 쫓겨난 이들의 세계 - 2장 - 4. 의혹(1)

4. 의혹(疑惑)

베트남에 도착한 최베드로와 석호는 재빨리 공항으로 향했다. 한시라도 빨리 아이의 상태를 치료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다행히도 이곳에 올 때까지 아이는 한 번도 발작을 일으키지 않았기에 수월하게 진행되었지만 언제 아이의 발작이 일어날 지 알 수 없었기에 최대한 서둘렀다. 잠깐의 소동이 있었지만, 비행기가 로마 공항에 착륙하고 아이를 앰뷸런스에 태운 후에야 두 사람은 다소 안심할 수 있었다.

- 일단 큰 산은 하나 넘었군.

- 하지만 공항 안에서는... 휴...

석호은 로마 공항에 도착했을 때 아이의 모습을 떠올리고는 그렇게 말했다.

베트남 공항에 도착했을 때까지 아이는 진통제와 수면제 덕분에 잠들어 있었다. 그러나 공항에서 나와 게이트를 빠져 나올 무렵 아이가 갑자기 잠에서 깨어났다. 아이는 무슨 일인가 싶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리고 어머니가 있다는 사실에 안도했는지 잠깐 미소를 띠다가 갑자기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눈이 뒤집히며 바닥에 누워 간질 발작처럼 몸을 떨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치 자해를 하듯이 자신의 목을 부여잡고 마구 조르기 시작했다. 최베드로와 석호가 나서 아이의 팔을 부여잡았지만, 아이의 힘은 놀랍도록 강했다. 최베드로는 그런 아이에게 얼른 수면제 주사기를 꺼내 놓았지만, 아이는 쉽게 잠들지 않았다. 공항 안에서 보안 요원들이 뛰어나오고, 잠시동안 공항의 업무가 마비될 정도였다. 사람들은 그런 아이를 불쌍하게 쳐다보기도 했고, 일부는 놀라서 입을 손으로 가리기도 하였다. 동양인 소년 하나가 신부 두 사람에 의해 제압되고 있는 모습은 누가 보아도 어색한 상황이었기에 다들 그들에게 주목하고 있었다.

- 안 되겠어. 다른 곳으로 옮겨야겠어.

최베드로는 아이의 겨드랑이에 손을 넣었다. 석호도 최베드로와 같이 아이의 겨드랑이에 손을 넣고 보안 요원들에게 휴게실이나 안정을 취할 곳이 없는지 물었다. 보안 요원들은 그들에게 공항 로비 구석에 있는 직원 휴게실 쪽으로 안내를 했다. 두 사람은 힘을 다해 아이를 끌고 그곳으로 갔다.

- 我下?!不,?不起。我不是...(이거 놔! 아니.. 잘못했어요. 제가 아니에요..)

아이의 뜻밖의 반응에 최베드로와 석호는 놀란 눈으로 아이를 쳐다보았다.

- 醒?!??!?人??害?。(정신차려! 아가야! 아무도 널 해치지 않아.)

최베드로는 아이의 팔을 부여잡으며 아이를 안심시켰다. 그러나 아이는 그 말이 들리지 않는지 연신 잘못했다고 빌기만 하였다. 그러다가 수면제의 효과가 어느 정도 나타나기 시작하자 아이가 잠이 들었다.

- 지독한 놈들이군. 아이가 어떤 꼴을 당했는지는 몰라도 아주 끔찍한 것인 건 분명해.

- 납치 후 학대 당한 아이의 모습이던데요.

- 저 정도의 정신적 외상이라면 학대가 아니라 거의 고문 수준이었을 거야.

- 아주 나쁜 놈들이군요.

- 어떤 놈들인지 모르겠지만 저 정도라면 거의 원한에 사 묻힌 놈들일 거야.

- 저 어린애가 무슨 죄가 있다고...

석호는 잠든 아이를 보며 마음이 아팠다. 자신에 대한 원한이 아닌 다른 누군가의 원한에 의해 희생당한 아이는 아무 죄가 없었다.

- 원한이 아닌 다른 것으로 볼 수도 있지 않을까요?

석호의 말에 최베드로는 고개를 끄떡였다.

- 어쩌면 무서운 실험을 당했을 수도 있지.

- 어찌 되었건 아이가 너무 불쌍하네요.

- 그러니까 한시라도 빨리 그 놈들을 잡아야지. 또다른 희생자가 나오기 전에.

- 원한이건 실험이건 아주 나쁜 놈들이군요.

- 음...

얼마 후 앰뷸런스가 도착했고 비티칸 안에 있는 병원으로 아이가 실려갔다. 석호는 아이의 어머니가 머물 곳을 알려주기 위해 같이 나갔고 최베드로는 보고를 위해 바티칸 안으로 들어갔다.

- 오! 최베드로. 오랜만이야.

최베드로가 성당 안으로 들어갔을 때 안에서 라울 신부가 반가워하며 밖으로 나왔다. 라울 신부는 최베드로와 사제 서품을 같이 받은 동기간이었으나 바티칸 안에서만 활동을 하였기 때문에 최베드로와 가끔 만나는 사이였다. 최베드로 역시 라울을 끌어안으며 반갑게 인사를 했다.

- 이게 얼마만이야. 그동안 별고 없었고?

- 나야 뭐 항상 여기 처박혀서 연구만 하니까 별고가 있을 게 뭔가? 그나저나 자네는 많이 말랐구만.

라울은 듬직했던 최베드로의 옛 모습을 떠올리며 안쓰러워했다. 그러나 최베드로는 빙긋이 웃으면서 말했다.

- 건강해 진 거지. 여기저기 다니다 보니 살이 빠지더군.

그 말에 라울은 자신의 늘어진 뱃살을 잡으며 크게 웃었다.

- 나도 자네처럼 되려면 여기를 나가야겠군. 하하하.

두 사람의 격의없는 대화가 끝날 무렵 라울과 최베드로는 복도를 걷고 있었다. 라울은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 요즘 교황님 건강이 심상치 않아.

- 뭐? 지난 번에 왔을 때만 해도 건강하셨는데...

- 노환이시지. 벌써 여든 살이 넘지 않으셨나.

- 그렇긴 하지만, 그래도 왕성하게 활동하시던 분인데...

- 그래서 말인데...

라울은 자리에서 우뚝 멈춰서며 최베드로 쪽으로 허리를 숙였다.

- 어쩌면 콘클라베(Conclave)가 곧 있을 예정이야.

라울의 말에 최베드로의 눈이 커졌다.

- 뭐? 아직 선종(善終)하시지도 않았는데?

그 말에 라울이 화들짝 놀라며 말했다.

- 목소리 낮춰. 아무튼 이따가 시간이 되면 내 사무실로 좀 와. 할 말도 있고.

최베드로는 라울과 헤어진 후 곧바로 슈테판 추기경 방으로 갔다. 슈테판 추기경은 최베드로가 안으로 들어오자 밝게 웃으며 최베드로를 안았다.

- 고생이 많소.

슈테판 추기경의 말에 최베드로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 고생이랄 것도 없습니다. 모두 하느님의 계획 안의 일이니까요.

- 하하. 딱딱한 건 여전하군요.

최베드로는 슈테판 추기경의 말에 반박하지 않았다. 항상 검소하고 종교적으로는 철두철미하면서도 늘 웃음과 위트 넘치는 슈테판 추기경은 최베드로만 만나면 항상 좀 웃으라는 충고를 하였다.

- 그렇게 멋진 얼굴을 갖고서 웃지 않는 건 하느님의 선물을 감추는 것입니다.

슈테판의 충고를 들을 때마다 최베드로는 억지로라도 웃으려고 노력했지만 그가 하는 일이 웃음과는 거리가 먼 일이라 그는 언제나 웃음을 잊고 살았다. 그런 의미에서 자신과 같이 다니는 장석호 마태오 신부나 마르티노 신부는 정말 잘 웃는 편이었다. 최베드로도 그들을 보면 자신도 모르게 기분이 좋아지곤 했는데 그것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말을 들은 최베드로는 억지로라도 웃으려고 하였지만 생각대로 되지 않았다. 그러자 슈테판은 박장대소를 하였다.

- 하하하. 베드로 신부는 항상 너무 진지해서 탈이에요. 그렇게 억지로 웃으니까 더 이상하게 보이네요.

슈테판의 말에 최베드로는 어깨를 한 번 으쓱했다.

- 참 어렵군요. 하느님께서 제게는 웃는 법을 가르쳐주시지 않으셨나 보네요.

최베드로의 말에 슈테판은 고개를 저었다.

- 웃는 건 사람이 가르치고 배우는 것이지요. 하하하.

두 사람은 오랜 만에 만난 감흥을 이렇듯 농담하면서 표현을 했다. 그러나 그러한 농담이 지나간 후에 두 사람의 대화는 더없이 진지해졌다.

- 그렇다면 그 아이가 악령이 아니라 납치로 인한 정신 발작이라는 것인가요?

- 현재 제 소견으로는 그렇습니다. 다만 아이의 발작이 특이한 것만은 사실입니다. 어쩌면 이것도 그들과 연결되어 있을지도 모릅니다.

- 음... 어린아이의 발작이 그들과...

슈테판 신부는 자신의 날카로운 턱선을 손으로 만졌다. 까칠한 수염이 자라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맨들맨들한 피부에 손가락이 스쳐 지나갔다.

- 그렇다면 이 일도 보통 일이 아니겠군요.

슈테판이 생각에서 깨어 말을 했을 때 최베드로는 고개를 끄떡였다.

- 그들과 관련이 있다면 모종의 실험일 수도 있지요. 더 자세한 건 진단이 나와 봐야 알겠지만, 현재까지는 그들과의 연관성을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

- 음. 그렇군요. 그렇다면 흩어져 있는 사제들을 다시 모아야겠군요.

슈테판의 말에 최베드로는 고개를 저었다.

- 아직은 시기상조라고 봅니다. 좀 더 정보가 모이고 그들과의 연계 관계가 분명해졌을 때 행동해야 될 것 같습니다.

- 그렇군요. 그렇다면 오늘은 어쩐 일로.. 설마 나를  보거나 교황님을 알현하기 위해 온 건 아닐 테고...

최베드로는 슈테판의 말에 잠시 참묵을 하다가 슈테판 옆으로 다가갔다. 슈테판은 그런 최베드로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 조사하던 중 발견한 사실 때문에 이렇게 오게 되었습니다.

- 발견한 사실?

- 아주 민감한 일이라 논의가 필요합니다.

최베드로는 목소리를 낮춰 자신이 알아낸 사실을 슈테판에게 말을 했다. 그러자 슈테판은 무척이나 놀란 표정으로 최베드로를 보았다.

- 만약 그 정보가 사실이라면 심각한 문제가 아니오.

- 이것도 더 알아 봐야겠지만 거의 사실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 음...

슈테판은 최베드로의 말을 듣고는 두 눈을 감고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다른 사람을 의심하는 것은 분명 옳지 못한 행동이지만 명백하게 드러난 사실을 외면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 음.. 감찰부에 연락을 해 두겠습니다.

그러나 슈테판의 말에 최베드로는 고개를 저었다.

- 감찰부 소속도 몇몇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실체를 찾기 위해서는 새로운 조사 위원회를 꾸려야 할 것 같습니다.

최베드로의 말에 슈테판은 손깍지를 끼며 말했다.

- 그렇게 하면 일이 커질 텐데...

최베드로 역시 가장 우려하는 일이 그것이었다. 최베드로는 그들을 조사하던 중 우연히 알게 된 정보가 있었다.

'다수의 신부가 축계(Exodus)와 연결이 되어 있다.'

처음에는 신념이나 추구하는 방향 자체가 다른 집단에 사제가 동조한다는 것을 믿지 않았다. 그러나 정보를 조사하던 중 몇몇 사제는 그들과 관련이 있고, 바티칸에 상주하는 사제 중 일부는 그들과 깊은 관계에 있음을 알게 되었다. 최베드로는 아이와 관련된 일을 마무리 짓는 대로 그 일을 조사하려 했지만, 첩보에 따르면 그들이 바티칸 내부 정보를 빼내려 한다는 것이었다. 그 중에는  바티칸 내부 기밀 사항뿐만 아니라 최베드로가 입수한 정보들도 다수 있었다. 한시가 급한 최베드로는 이 일을 먼저 슈테판 주교에게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바티칸으로 오자마자 슈테판에게 찾아온 것이었다. 사실 사제와 관련된 일이었기에 감찰부에서 조사하는 것이 맞는 것이었지만 감찰부 내부에도 이미 그들과 연계된 사람들이 있었기에 더욱 조심스러웠다. 그렇다고 새로운 조직을 꾸린다는 것도 번거로운 일이었다. 사제단 회의에서 안건으로 상정하고 회의를 하고 조직을 꾸리기까지 시일이 너무 오래 걸렸기 때문이었다.

- 어쩔 수 없군요. 최 신부님께서 하는 일은 장 신부와 마르티노 신부에게 맡기고 일단 저와 이 일을 먼저 처리해야 할 것 같네요.

최베드로는 슈테판의 말에 고개를 끄떡였다. 아이와 관련된 일도 중요한 일이었지만, 그 일이 그들과 관련이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는 더 많은 조사가 필요했기 때문에 시일이 걸리는 일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바티칸 내부에서 생긴 일을 처리하는 것이 더욱 중요했기에 최베드로는 그 일을 먼저 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이때는 이 일이 모든 이의 운명의 지침을 바꾸게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그저 내부에서 발생한  잘못 인도된 사제들과 관련된 일이라고만 여겼었다.

- 장 신부와 마르티노 신부에게 알리세요. 저는 믿을 만한 사제들을 모아 볼 테니.

- 명백한 증거가 없으면 오히려 역공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아까 라울 신부에게 들으니 곧 콘클라베가 열릴 것 같다는...

최베드로의 말에 슈테판은 난감함 표정을 지었다.

- 사실 저도 그 문제 때문에 요즘 고민이 많습니다. 교황님께서 건강상의 문제로 물러나신다는 말이 바티칸에 돌자마자 이미 콘클라베가 기정사실화되어 돌고 있죠. 그리고 이미 많은 추기경들이 물밑 접촉을 하고 있습니다. 아직 어떻게 될 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지금 바티칸을 비롯해서 여러 사제들이 혼란스러운 건 사실입니다.

슈테판의 말을 듣자 최베드로는 자신도 모르게 쓴웃음을 지었다. 라울이 자신을 보자고 은밀하게 말한 이유를 대충 알았기 때문이었다.

- 그렇군요. 어쩐지 조금 어수선하다고 느꼈는데...

- 이런 때니까 그들도 맘만 먹으면 손쉽게 정보를 빼내갈 수 있겠지요.

- 혹시...

최베드로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 워낙 민감한 사항이 걸려있는 지라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 이번에 아우렐리오(Aurelio) 추기경님은 어떻습니까?

최베드로의 말에 슈테판은 크게 놀랐다. 아우렐리오 추기경은 사제 중에 가장 명망 있고, 신앙심이 깊기로 유명한 사람이었다. 더욱이 그는 그의 모국인 모잠비크(Mozambique)에서 기적을 행하여 모두들 그를 성인(聖人)으로 추앙하고 있었기에 최베드로의 말은 더욱 충격적인 것이었다.

- 아우렐리오 추기경님이라면 최초로 흑인 교황이 되실 분이라고 회자되는 분입니다. 그 분은 왜?

슈테판의 말에 최베드로는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 아직 확실한 것은 아닙니다만 아우렐리오 추기경님께서 그들과 아주 긴밀한 관계가 있다는 정보가 있었습니다. 세인트 앤서니 병원 기록에서 찾은 것입니다.

세인트 앤서니(St. Anthony) 병원은 휴먼 바이오사 소속 병원으로 장기 이식과 줄기 세포 연구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병원이었다. 그 병원은 그동안 불치의 영역으로 알려졌던 췌장과 간에 생기는 병에 대한 치료를 성공함으로써 일약 세계적인 병원으로 발돋움하였다.

- 병원 기록에서 찾다니요?

- 아우렐리오 추기경님께서 거기서 수술을 받으셨습니다.

최베드로의 말에 슈테판의 표정은 의아함으로 바뀌었다.

- 수술을 받은 것과 그들과 무슨 관계인가요?

- 음... 이게 민감한 사항입니다. 아우렐리오 추기경님께서는 어린 시절 급성 간염 때문에 항상 간에 문제가 있으셨습니다. 그래서 그 곳에 의뢰를 하여 아마도 간 이식 수술을 받으신 것 같습니다.

- 간 이식 수술이라... 그게 문제가 됩니까?

- 제가 파악한 정보로는 그 간이 '본인의 것'을 배양하여 만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또한 모잠비크에서 행한 기적 역시도 그 아이의 줄기세포를 통해 치료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 음... 물론 그렇다면 기적이라고 할 수 없겠지만, 그것만으로 아우렐리오 추기경님을 그들과 연관짓기는 무리인 것 같아요.

- 그게 사실은...

최베드로의 이어지는 말에 슈테판은 눈이 커졌다.

- 자신의 간 이식 성공을 위해 다른 아이들을 먼저 데려가 임상 실험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 기적으로 치료된 아이 역시 원래는 임상 실험 대상자였습니다.

- 뭐... 뭐라구요?

- 자신의 간을 치료하기 위해 모잠비크의 어린 아이들을 생체 실험의 대상으로 이용한 것입니다. 그들과 협의 하에.

- 어떻게 그럴 수가...

- 제가 지난번에 짐바브웨(Zimbabwe) 하라레(Harare)에 파견갔을 때 모잠비크에 있는 치쿠알라쿠알라(Chicualacuala) 쪽에 환자가 있다고 해서 그 쪽으로 넘어간 적이 있었습니다. 거기에서 아우렐리오 추기경님의 기적을 경험한 아이가 산다고 해서 만나보았습니다만... 심각한 부작용을 앓고 있었습니다. 흑인이지만 얼굴색이 흙색으로 변했더군요. 전형적인 간 손상 부작용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래서 마을 이곳 저곳을 돌아다녀 보니 아우렐리오 추기경님이 기적으로 고쳐주신다고 데려간 아이가 무려 여덟 명이나 되었습니다. 물론 돌아온 아이는 그 아이 하나뿐이었습니다.

- 이런...

- 그래서 세인트 앤서니 병원을 조사했더니 다수의 아프리카 아이들이 그 곳에 입원해 있었습니다. 그런데 국적을 보니까 대부분이 모잠비크 아이들이었고, 그렇지 않으면 짐바브웨나 말라위, 잠비아, 탄자니아 아이들이었습니다. 모두 모잠비크 인근 국가들이죠.

- 그 말이 사실이라면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닙니다.

- 그런데 문제는 아직 확실한 물증이 없다는 것입니다. 사실 그것 때문에 이번에 말씀드려야 하나 하는 고민도 했지만, 일이 걷잡을 수 없게 커질 우려가 있어 이렇게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 음.. 한시라도 빨리 해결해야 할 문제로군요. 아우렐리오 추기경님까지 연루가 되어 있다면 얼마나 많은 인원이 엮여 있을지 상상이 안 되는군요.

- 네.

- 그럼 오늘부터 당장 조사에 착수하도록 하죠. 최 신부님께서도 준비를 해 주시기 바랍니다.

최베드로는 슈테판에게 간단히 목례를 하고 밖으로 나왔다. 혼자 남은 슈테판은 의자에 등을 기대고 앉아 눈을 감았다. 그들의 손이 이 안까지, 아니 이렇게 깊숙하게 침투해 있을 줄은 몰랐다. 더욱이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아우렐리오 추기경도 그들과 관계가 있을 줄은 정말 생각지도 못했다.

- 힘든 일이겠어...

슈테판은 자리에서 일어나 어디론가로 향해 갔다.

밖으로 나온 최베드로는 일단 석호가 간 병원으로 갔다. 그런데 최베드로는 병원 일반 병실 쪽이 아닌 연구실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보안 장치를 통과하고는 안으로 들어가자 한 동양인 박사가 무언가를 열심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최베드로는 그에게 다가가 인사를 건넸다. 동양인 박사는 최베드로를 보자 환하게 웃으며 다가왔고, 그와 몇 마디 주고 받고는 다시 연구실 안쪽으로 들어가 서류를 하나 들고 나왔다. 최베드로는 그 서류를 받아 들더니 다시 인사를 하고 연구실을 빠져나왔다. 그리고는 석호에게 전화를 걸어 병원 입구에서 만났다.

- 의사들도 혀를 내두르던데요.

- 아이가 잘 견뎌줘야 하는데 걱정이로군.

석호의 말에 최베드로는 진심으로 걱정하는 말투로 얘기를 했다. 그리고는 잠시 눈을 감고 묵주를 들고는 기도를 했다. 석호 역시 눈을 감고 잠시 기도를 올렸다.

- 이제부터 할 일이 많을 거야. 각오 단단히 하는 게 좋아.

최베드로의 말에 석호는 빙긋이 웃었다.

- 각오는 늘 하고 있는데요.

- 그럼 일단 점심부터 먹자고.

최베드로는 근처에 보이는 식당으로 가서 석호와 늦은 점심을 먹으며 석호에게 말을 했다.

- 이 일은 자네하고 마르티노 신부가 중심이 돼서 진행해야 할 것 같아.

최베드로의 말에 석호는 의아한 표정으로 최베드로를 쳐다보았다.

- 저... 저는 아직 일을 독자적으로...

석호의 말에 최베드로가 피식 웃었다.

- 자네가 사고 치듯이 하면 되니까 걱정 말고.

최베드로의 말에 석호가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 제가 언제 사고를 쳤다고...

그러다가 몇몇의 기억이 떠오르자 석호는 자신도 모르게 말을 멈췄다. 최베드로는 허리를 숙이고 석호에게 조용히 말했다.

- 바티칸에 큰일이 있어. 나도 이번 일을 같이 처리하고 싶은데, 이 일이 더 급하게 돼서 말야.

최베드로의 말에 석호는 고개를 끄떡였다. 최베드로의 입에서 '큰일'이라는 말은 정말 '큰일'이 아니고서는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석호는 직감적으로 바티칸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 일단 이것 받고.

석호는 파일을 하나 받아 들었다. 그리고 펼쳐보려고 하자 최베드로가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 흠흠. 그건 이따가 보고.

최베드로의 말에 석호는 파일을 덮고 최베드로를 쳐다보았다.

- 자네는 일단 한국으로 들어가 있어. 일본은 일전에 내가 야나기사와 신부에게 부탁을 해 놓았으니까 어느 정도 일이 진척될 테고. 한국에서 마르티노 신부가 고생이 많은가봐. 그렇겠지. 아무래도 외국인한테는 배타적인 나라니까.

최베드로의 말에 석호는 한국에서 지내고 있는 마르티노 생각에 웃음이 났다.

- 자네가 가서 그 녀석들 뒤를 캐봐. 그리고 일전에 얘기했던 그 형사하고 연계해서.

- 그럼 마르티노는 바티칸으로 오는 겁니까?

- 아니 당분간은 자네랑 같이 활동을 할 테지만, 뭐 그건 상황을 봐야 하니까.

- 네. 알겠습니다.

두 사람은 긴밀한 대화를 마치고는 늦은 점심 식사를 계속했다. 최베드로는 문득 이렇게 잘 커준 석호가 내심 대견했다. 자신이 하던 일을 맡길 수 있는 든든한 지원군으로 성장한 석호를 보며 살면서 처음으로 '아들'을 갖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최베드로의 생각을 모르는 석호는 여전히 중국인 아이의 용태와 연결 관계에 대한 것에 대해 얘기를 했고 최베드로는 그의 말을 들으며 흐뭇하게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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