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축계(逐界)-쫓겨난 이들의 세계-59화 (59/309)

축계(逐界) - 쫓겨난 이들의 세계 - 1장 - 10. 재시작(1)

10. 재시작

조 반장과 형사들은 지훈이 총격을 받고 쓰러졌을 때, 제일 먼저 지훈 쪽으로 뛰어갔다. 안 된다고 외치면서 달려갔을 때 지훈은 머리에서 심하게 피를 흘리고 있었다. 조 반장은 총알이 지훈의 머리를 관통한 줄 알고 그를 끌어안고 울기 시작했다.

- 작은 박. 눈 떠. 야 이 자식아.

조 반장이 끌어안고 있을 때 안에서 의사들이 뛰어나왔다.

- 비키세요. 비켜요.

지훈이 쓰러진 곳으로 의사들이 와서 지훈의 상태를 살펴보았다. 뒷머리에서 흐르는 피를 거즈로 닦아내자 벌어진 상처가 보였다.

- 괘.. 괜찮습니까?

- 뒷머리 부분에 총상이 있어요. 자세한 건 확인을 해봐야 되요.

그 때 뒤에 서 있던 고 형사가 한 마디 했다.

- 인질극 벌이던 병원에서 치료하면 해코지라도 하...

- 이봐요! 여긴 병원이에요. 환자가 생기면 범인이라도 치료를 하는!

지훈을 이동식 침대에 눕히고 안으로 옮겼다. 형사들이 따라가려 했으나 안에서 출입을 막았다.

- 여긴 들어오시면 안 됩니다.

지훈이 안으로 들어갔을 때 조 반장과 형사들, 그리고 지훈을 체포하기 위해 다른 과 형사들이 대기실에 앉아 있었다. 그 때 임 박사가 헐레벌떡 안으로 들어왔다.

- 어떻게 된 일이에요?

임 박사가 조 반장에게 물어보자 조 반장은 있던 상황을 말해 주었다.

- 내... 내가 들어가 보죠.

임 박사는 서둘러 1층에 있는 사무실로 들어갔다. 성준은 임 박사를 뒤따라갔다. 임 박사가 안으로 들어가 애원하는 듯하다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 난 국과수 법의관이오!

- 지금 사체 부검을 하러 들어간 게 아니지 않습니까.

- 그래서 내가 수술에 참관하겠다는 게 문제가 된단 말이오?

- 수술 과정은 아시지 않습니까. 지금 들어가시기 어렵습니다.

사무실에 있던 의사가 곤란하다는 듯이 말을 했다.

- 내 여기를 알아봤는데, 당신들 하는 짓 때문에 내가 들어간다고 하는 거야!

임 박사가 버럭 소리를 지르자 의사는 표정을 굳히며 말했다.

- 아무리 국과수 법의관이라도 말씀 함부로 하시면 곤란합니다.

- 곤란하다? 그렇다면 알겠소. 내가 가지고 있는 정보를 인터폴에 넘기도록 하지. 우리에게 들어온 시신들에서 발견된 내용들을.

그러자 의사는 임 박사를 노려보더니 전화기를 들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 네. 꼭 참관을 해야겠다고 합니다.

사무실의 의사는 전화를 끊고 임 박사에게 말했다.

- 수술 과정에는 절대 개입하셔서는 안 됩니다.

의사의 말이 떨어지자 임 박사는 사무실에서 나와 부리나케 수술실 앞 살균실로 들어갔다. 그 안에서 수술 가운으로 갈아입고, 나와 그 앞의 형사들을 지나쳐 수술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임 박사가 밖으로 나오자 의사는 다시 전화기를 들고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 국과수 임철환이라는 법의관입니다. 제 선에서 처리하겠습니다.

의사는 그 쪽에서 들리는 말에 놀랐는지 다시 재차 물었다.

- 그렇게 해도 괜찮습니까? 알겠습니다.

의사는 전화를 끊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는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한편 수술실로 들어간 임 박사는 지훈의 상태가 그리 나쁘지 않다는 것을 확인했다. 총알이 머리를 관통하여 뒷머리에서 피가 흐른 것이 아니라 쏘는 순간 총알이 빗나가 지훈의 목덜미 위쪽부터 뒷머리 사이에 스친 것이었다. 두개골이 약간 금이 간 것 외에는 외상이었다. 총알이 머리를 스치자 그 충격으로 지훈이 쓰러진 것이리라. 임 박사는 천만 다행이라고 생각을 했다. 박 형사가 죽은 마당에 지훈마저 이렇게 가버리면 임 박사는 자신도 삶의 끈을 놓아버릴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임 박사는 수술복을 입은 채 한 걸음 떨어져서 수술 과정을 지켜보았다. 딱히 수술이라 할 만한 것도 아니었다. 두개골이 깨진 것은 골절이기 때문에 MRI를 통해 뇌출혈의 여부를 알아보고 뇌출혈이 없다면 골절 접합이 될 때까지 기다리면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목과 뒷머리의 상처는 꿰매고 아물기만을 기다리면 된다. 수술을 하던 의사들은 지훈의 목덜미를 꿰매고는 서로를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뒤에 놓여 있던 수상한 기계를 켜고 지훈의 뒷머리 쪽에 레이저 같은 빛을 쏘았다. 임 박사는 그러한 행동에 소리를 쳤다.

- 뭐 하는 짓이오!

의사 중 하나가 마스크를 벗고 말을 했다.

- 국과수에서 나오셨다는 얘기는 들었습니다. 지금 하고 있는 과정은 수술 부위에 대한 레이저 살균과 꿰맨 부분을 레이저로 봉합하는 과정입니다. 그리고 머리 안에서 발견된 뇌출혈을 지혈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 그게 무슨 말이오? 간단한 수술인데...

- MRI 사진은 보셨나요? 두개골이 골절되면서 약간의 뇌출혈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건 저희 병원의 최신 설비입니다.

임 박사는 다시 컴퓨터 앞으로 갔다. 급하게 보느라 골절 부분만 보았었지만, 자세히 보니 골절 안에 약간의 뇌출혈 징후가 보였다. 임 박사는 다시 수술대 앞으로 와서 고개를 까딱했다.

- 뇌출혈이 약간 보이는군요.

- 그럼 이제 시술을 계속 진행해도 될까요?

임 박사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떡였다. 그 설비가 무엇을 하는 것인지 임 박사는 처음 본 것이었다. 나름 의료 기계에 대해 최신 장비까지 알고 있던 임 박사였지만, 생소한 기계 앞에서 할 말을 잃었던 것이었다. 그들은 지훈의 머리에 돌아가면서 레이저를 쏘았다. 공명 장치처럼도 보였고, 방사성을 이용한 장치처럼도 보였다. 임 박사는 혹시나 하는 마음이었지만, 적어도 자신의 앞에서 그렇게 무모하게 행동하진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약 30분 정도 흐를 무렵 기계가 꺼졌다.

- 어? 무슨 일이야?

기계 옆에 있던 남자가 소리를 쳤다. 수술실이어서 바로 전기가 들어왔지만, 마치 그들은 1초도 안 되는 시간동안 정전이 된 것이 큰일인 것처럼 얘기를 했다.

- 일단 마무리를 하지.

지훈의 수술이 끝이 났는지 의사들이 모두 마스크를 벗었다. 지훈의 머리에 붕대를 감고는 의사들이 모두 밖으로 나왔다.

- 어떻게 되었습니까?

처음 나오는 의사에게 조 반장이 일어나 물었지만, 그는 대답없이 스쳐지나갔다.

- 씨발, 사람이 물으면 대답을 하던가.

그 때 뒤에서 따라 나오던 임 박사가 말을 했다.

- 잘 됐네. 총알이 관통한 게 아니었어. 뒷머리에 스친 것뿐이야.

임 박사의 말에 형사들은 모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조 반장은 지훈을 데려가기 위해 있던 형사들에게 말했다.

- 내가 책임지고 데려갈 테니까 들어들 가.

- 그래도 국장님께서...

- 내가 책임진다고 했잖아.

그 말에 임 박사도 한 마디 거들었다.

- 나도 같이 책임을 지겠네. 가서 국과수 임철환이가 그러더라고 전하시게.

두 사람이 그렇게 말을 하자 형사들은 하는 수 없이 물러났다. 형사들이 물러나자 임 박사가 조 반장에게 말을 했다.

- 지금부터가 중요해요. 작은 박 병실에 최소한 한 명이라도 대기하고 있어야 해요. 저 놈들이 어떻게 할지 아무도 모르니까.

임 박사의 말에 조 반장을 비롯해 형사들이 고개를 끄떡였다.

- 제가 옆에 있겠습니다.

성준이 나서서 말을 하자, 최 형사가 말했다.

- 막내 너 혼자서 감당하기 힘들어. 두 명씩 짝지어서 하는 거야.

- 그래도 사무실에 복귀...

그러자 조 반장이 성준에게 말했다.

- 그깟 사무실에 복귀 안 해서 받는 처벌이야 감봉쯤이야. 걱정 마.

조 반장의 말에 형사들이 다들 고개를 끄떡였다.

- 작은 박마저 보낼 수 없어. 박 형사가 가기 전에 나한테 그랬어. 저 녀석 잘 부탁한다고. 안 그러면 귀신이 돼서 나타날 거라고. 생각 같아서는 저 녀석 버려둬서 귀신이라도 만나고 싶은 심정이야.

조 반장이 회한 섞인 말을 하자 다들 분위기가 숙연해졌다.

- 자자. 자들 힘내시게. 작은 박 깨어나면 내 다른 병원으로 바로 옮길 테니까 그때까지만 고생해 주시게나.

임 박사가 형사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형사들은 모두 결의에 찬 표정으로 임 박사의 말에 고개를 끄떡였다.

- 박 형사나 작은 박이나 인생 잘 살았구만. 이렇게 좋은 동료들이 있으니...

임 박사는 그들을 보며 자신이 그들을 지키는데 한 몫을 해야 된다는 생각을 하고 의자에 주저앉았다. 조 반장은 얘기를 마치고 사무실로 먼저 돌아왔다. 밤 12시가 넘은 시각이었지만, 조 반장은 상황 정리를 위해 사무실로 돌아온 것이었다. 사무실에서 TV를 켜자 뉴스 앵커가 속보로 지훈의 소식을 전하고 있었다.

- 어제 저녁 미래 생명 과학 연구소에서 인질극을 벌인 사람은 강남경찰서 강력 3반 소속인 박지훈 형사로 밝혀졌습니다. 아내가 실종되어 정신적으로 불안했던 박지훈 형사는 과대망상으로 그 안에 아내가 있다고 생각하고 침입했다고 알려졌습니다. 현재는 총격을 받고 의식불명 상태인 것으로 나와 있는데요. 인질로 잡혀 있던 의사는 연구소 측에서 신변 보호를 위해 신원을 밝히고 있지 않습니다. 현장을 연결해 상황을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TV를 보던 조 반장은 화가 난 나머지 리모컨을 집어 던졌다.

- 개새끼들. 과대망상? 나쁜 새끼들.

경찰청은 현직 형사의 인질극 사태를 어떻게든 개인의 일탈로 몰기 위해 지훈의 상황을 언론에 흘렸다. 그러면서 마치 지훈이 아내의 실종으로 과대망상을 앓고 있는 환자로 몰아가기 시작했다. 그러한 분위기는 지훈이 왜 그러한 인질극을 벌이게 되었나를 밝히기보다 과대망상 등 정신계 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이 형사의 신분을 유지할 수 있느냐에 대한 논의로 이어졌고, 결국 모든 형사들을 대상으로 정신 감정 및 정신과 치료가 필요하다는 논조로 이어졌다. 결국 지훈이 미래 생명 과학 연구소에서 벌인 인질극은 언론에 의해 목적은 사라지고, 결과만 남게 되었다. 조 반장은 박 형사 때도 그랬던 것처럼 지훈도 누군가에 의해 언론 조작이 일어나고 있음을 느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자신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에 절망감이 더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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