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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계(逐界)-쫓겨난 이들의 세계-46화 (46/309)

축계(逐界) - 쫓겨난 이들의 세계 - 1장 - 8. 삶과 죽음의 경계(2)

- 아.. 씨바. 언제까지 이런 냄새나는 거나 수거해야 되는 거야?

재철이 혼자 떠들자 상구는 인상을 쓰며 말했다.

- 난 맨날 하는 일이야. 씨발아.

- 이 짓을 어떻게 맨날 하냐? 난 씨바 못 해먹겠다.

- 너도 아부지한테 걸려서 제대로 맞아봐야..

- 씨발 새끼. 난 아부지 없는 거 알면서.

- 그러니까 니가 그러고 돌아다니는 거야.

- 아 씨발. 그냥 한 방에 훅 훔쳐서 나오면 쉬운데...

- 너 빵에 또 갈려고? 난 싫다. 씨발 거기 생각만 하면... 지금도 똥꼬가 아프다.

- 씹새. 누가 너보고 예쁘게 생기래?

- 아무튼 난 한 방에 훅 그런 거 싫고, 그 형사님 말처럼 조금씩 모을란다.

- 아무튼 적성에 안 맞아서..

둘이 잡담을 하고 있을 때 간호사 한 명이 그 둘을 불렀다.

- 저기요. 여기 이것도 가져가시면 돼요.

성구가 '네'하고 뛰어 가자 재철은 못 이기는 척 그 곳으로 갔다. 그리고는 간호사를 보고는 갑자기 걸음을 뚝 멈춰섰다.

- 뭐 해, 새꺄. 얼른 치워.

- 아.. 알았어.

- 이상한 놈이네.

재철은 거기에 있는 폐기물을 수거하면서도 간호사에게서 눈을 떼지 못 했다. 그 곳의 폐기물을 다 수거하자 상구는 인사를 하고 돌아 나왔다. 그러나 재철은 여전히 그 곳에 서서 간호사를 쳐다보고 있었다. 상구는 재철을 끌고 밖으로 나왔다.

- 뭐하는 거야?

- 씨바. 나 여기 뼈를 묻을란다.

- 뭐? 왜? 아까는 졸라 싫다더니.

- 아 씨바. 왜 간호사를 천사라고 하는지 오늘 알았다. 방금 못 봤냐? 천사?

- 미친놈. 아까 그 간호사? 씨바 눈을 똥꾸녕에 달고 다니냐? 여기 저 간호사보다 예쁜 여자 졸라 많아.

- 아냐. 내가 볼 때 그 간호사가 최고야. 저기 폐기물은 내가 수거한다.

- 미친.. 알아서 해. 아무튼 이제 거의 다 끝나가니까 분리해야 돼.

- 아! 분리. 씨바.. 제일 싫은 시간이 왔네.. 때려치우던지 해야지..

- 이 새끼 뭐야? 아까는 뼈를 묻는다더니...

- 아... 이럴 줄 알았으면 공부 열심히 해서 의대 가는 건데.

- 지랄하지 말고 얼른 분류나 해.

두 사람은 폐기물을 분류하면서 거기서 버려진 종이나 서류들을 따로 모아 놓는 일을 하였다. 그 종이나 서류 중 찢어진 것은 잘 찾아서 붙이고,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것들은 비닐봉투에 담아서 박 형사에게 가져다주었다.

- 근데 궁금한 게 있는데, 여기 의사들은 간호사들 막 따먹고 그러냐?

- 미친 새끼. 여기가 야동이냐?

- 안 그래? 아 씨바. 의사되면 간호사 맘대로 따먹고 그러는 줄 알았는데.

- 니 대가리엔 뭐가 들었냐?

- 글쎄? 뇌가 있겠지.

- 내가 볼 땐 똥만 들었을 걸. 그러니까 그런 생각을 하지.

- 씨바. 똥이 어떻게 따먹는 생각을 하냐?

- 아.. 넌 그냥 그렇게 사는 게 낫겠다.

- 씹새. 고등학교 졸업했다고 똑똑한 척은...

둘은 쓰레기를 분류하면서 시답지 않은 농담을 하며 시간을 때웠다. 상구도 항상 돌아이같은 소리를 하는 재철이 있어서 오히려 분류하는 게 예전처럼 곤욕은 아니었다. 재철은 재철 나름대로 쓸데없는 말과 공상으로 그 시간을 때우는 것이었다.

- 오늘 저녁에 가져다 드리는 날이지?

- 응.

- 근데 너네 큰 형님은 뭐래? 너 이렇게 오래 비워도 돼?

- 어? 형님이야 안타까워하시지. 나 같은 인재가 여기서 썩고 있으니까. 그런데 어쩌냐, 큰 형님의 형님의 부탁인데. 큰 형님도 그냥 최선을 다해 도와드리라고 하더라고.

- 그래? 대단한 분인가 보네.

- 한 때 전국 조직 오야들이 그 큰 형님의 형님 앞에서 무릎을 꿇었대. 우리 큰 형님이 나 같은 막내였을 때. 전설 같은 얘기지.

- 뭐? 그럼 그 형사님 나이가 한 60은 되냐?

- 뭐? 왜?

- 큰 형님이 막내였을 때면 벌써 30년 전일 텐데, 그렇게 하려면 최소한 30살은 넘었을 거 아냐? 그러면 최소한 60은 넘었단 말이잖아.

- 아 씨바. 따지긴. 그냥 그렇다는 거지.

- 구라는. 하여간 뻥도 존나 심해.

- 아 새끼. 아무튼 대단한 분이래. 이제 다 됐냐? 나 먼저 간다.

- 같이 가. 새꺄.

- 꼭 극비 사항에 끼려고 해. 그냥 넌 찌그러져 있어.

- 아 새끼. 내가 알바 자리 추천해서 들어와 놓고는.

- 내가 오고 싶어서 왔냐?

- 아무튼 새꺄. 같이 가.

- 알았어. 얼른 정리 해.

재철이 먼저 나가서 옷을 갈아입는 동안 상구는 마무리 정리를 하였다. 그런데 구석에 구겨진 채 버려진 외국어로 쓴 종이 조각이 보였다. 피가 묻어 있어서 찝찝해서 버리려고 하다가 그래도 뭔가 있겠지 싶어 종이를 들어 비닐에 담았다. 상구는 그걸 비닐에 담고는 뭔가 싶어 쳐다보았다.

'Memory transplant...'

- 메모리? 컴퓨터인가? 뒤엔 뭐야? 에이 모르겠다.

- 나 간다.

- 같이 가자고.

상구는 그것을 주머니에 넣고는 밖으로 뛰어 나왔다. 그리고는 부리나케 옷을 갈아입었다. 재철과 상구는 햄버거 가게에서 박 형사를 만났다. 그리고는 휴지통에서 수거한 종이들을 넘겨주었다.

- 뭐가 있었어요?

박 형사는 받은 종이 뭉치들을 읽기만 할 뿐 대꾸가 없었다. 재철은 무안한 듯 머리를 쓱 쓸다가 상구에게 말했다.

- 햄버거 좀 사와.

- 이 새끼는 여기만 오면 나보고 햄버거를 사래.

- 어제는 내가 사줬잖아.

- 아 새끼..

박 형사는 주머니에서 만 원짜리 한 장을 꺼내 상구에게 주었다.

- 세 개 사와.

상구는 박 형사에게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 에이. 형사님. 저도 이런 거 사먹을 돈은 있어요. 제가 오늘은 살게요.

그러면서 카운터로 가버렸다. 문서들을 대충 읽은 박 형사는 재철에게 얘기를 했다.

- 고생했다. 좀만 더 고생해 주라.

- 그냥 한 방에 훔쳐오면 안 되나요? 이거 맨날 분류하는 것도..

- 그러니까 좀만 더 고생하라고.

박 형사가 정색을 하며 말하자 재철은 입을 다물었다. 그러고는 햄버거를 들고 오면서 종이봉투 하나를 흔들었다.

- 아 맞다. 아까 이거 하나 더 건졌는데, 지금 계산하면서 주머니 뒤지니까 나오네요.

- 이게 뭐지?

- 잘은 모르겠는데, 쓰레기통에서 나왔어요. 메모리 뭐래나..

상구는 햄버거를 한 입 베어 물면서 말했다.

- 새끼. 어른도 안 드셨는데 먼저 처먹기는...

재철이 상구를 보며 한 마디 하자 상구는 먹던 햄버거를 내려놓았다. 박 형사는 어서 먹으라고 손으로 표현하고는 비닐 봉투에 담긴 종이를 보았다.

'Saint George Research Institute'

- 세인트 조지?

박 형사의 중얼거림에 상구가 킥킥댔다.

- 조지래. 크크큭...

상구의 말에 재철도 같이 큭큭 거리며 웃었다.

- 프랑스 여자애 이름 생각난다. 그 예전에 빡철이 선생이 얘기했던. 그 뭐냐.. 조세피나. 조세피나.. 하하하하.

그러자 상구도 그 말에 같이 웃어재꼈다.

- 그러니까. 이름이 조세피나가 뭐야. 여자가 좆에서 피가 나면... 생리 중인가?

- 하하하.

박 형사는 그 서류를 보다가 두 사람이 하는 음담패설에 인상을 썼다.

- 그만 해라. 이것들아.

두 사람은 킥킥대다가 박 형사의 말을 듣고 웃음을 뚝 멈췄다. 그러나 미어져 나오는 웃음은 참을 수 없는지 인상을 구기며 웃고 있었다.

- 앓느니 죽지. 에휴... 아무튼 고생했다. 다음 주에 보자.

박 형사는 그 종이들을 품에 잘 갈무리하고 일어섰다. 재철과 상구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 저 형사님.

상구가 박 형사를 불렀다. 박 형사는 돌아 나가다가 그를 쳐다보았다.

- 여기 햄버거는...

- 너희들 먹어.

- 네? 그래도 형사님을 위해서 산 건데...

박 형사는 피식 웃으면서 다가가 햄버거를 받아 들었다.

- 잘 먹지.

- 네. 안녕히 가십시오.

두 사람은 꾸벅 인사를 했다. 박 형사는 가벼운 녀석들이라고만 생각했던 녀석들에게 조금씩 정이 가기 시작했다. 그런 한편으로는 녀석들에게 위험은 가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조금은 불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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