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계(逐界) - 쫓겨난 이들의 세계 - 1장 - 7. 비밀의 시작(8)
고기 집에 온 세 사람은 처음에는 앉아서 가만히 고기만 먹었다. 박 형사는 소주 한 병을 시키더니 두 사람에게 한 잔씩 나누어 주었다. 상구는 넙죽 받아 마셨지만 박 형사가 음주 금지를 내린 후 재철은 술을 마시지 않았다.
- 한 잔 마셔.
- 아..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재철이 거절을 하자 재철 친구는 놀라는 표정으로 재철을 보았다.
- 니가 웬일이냐? 술을 다 거절하고. 너 병원이라도 가야되는 거 아냐?
- 씨박새끼. 닥쳐.
재철이 고개를 숙이며 친구에게 욕을 했다. 상구는 그것도 우스운지 재철의 뒤통수를 한 대 치며 막 웃어댔다.
- 취하지 않을 만큼만 마셔도 돼.
박 형사의 허락이 떨어지자 재철은 얼굴에 화색이 돌며 술잔을 앞으로 내밀며 말했다.
- 그래도 되요? 감사합니다.
재철은 소주를 한 잔 받더니 벌컥 마셨다.
- 캬. 좋다. 아.. 살만하다.
박 형사는 술잔을 돌리며 말했다.
- 오늘 고생 많았어. 아주 좋은 정보였어. 그런데...
박형사는 상구를 보며 물었다.
- 혹시 그 뇌사로 온 여자 임신 중이었나?
- 임신 중이요? 아닐 걸요. 자세한 얘기는 못 들었는데, 무슨 사곤가 나서 왔다고 그랬던 거 같아요. 애 얘기는 없었던 것 같았어요. 뭐래더라... 미래 뭐시깽이 하면서 거기서 치료 받던 여자라고만 하던데요.
상구 말에 박 형사는 눈매를 날카롭게 했다.
- 미래?
- 네. 자세히 기억나진 않는데요. 그 때 응급실 폐기물 수거하다가 들어오는 여자 얼굴 보고 놀라서 사람들 얘기를 들은 거라서요.
- 응. 그래. 좋아.
- 그런데 왜요?
상구가 박 형사에게 묻자 재철이 뒤통수를 한 대 갈겼다.
- 알 필요 없는 얘긴 묻지 말고. 임마.
- 아 씨바. 뭔 일인지 알아야 돕던가 하지.
박 형사는 그의 말을 수첩에 적고는 말했다.
- 그래서 말인데...
박 형사가 얘기를 꺼내자 두 사람은 허리를 숙여서 들었다.
- 지난번에 말한 그 정보 빼내오는 거 말야. 아주 위험할 수 있어.
박 형사의 말에 재철이 자신의 가슴을 툭툭 쳤다.
- 저 이래뵈도 절도 세계에서는 알아주는 놈이에요.
재철은 자랑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상구는 그런 녀석을 보며 혀를 찼다.
- 구멍가게 턴 게 자랑이냐?
- 구멍가게라니?
- 씨바 그런 거기가 구멍가게지, 마트냐?
- 이 새끼가 초치기는...
박 형사는 두 사람의 말을 끊고 말했다.
- 맥컬리 병원은 그냥 절도를 하면 CCTV나 보안요원한테 대번에 잡히지. 그러니까 시간을 두고 조금씩 빼오는 거야. 알겠지?
- 어떻게요?
박 형사는 두 사람에게 정보를 빼오는 요령에 대해 차근차근 말해줬다. 그러자 상구는 놀란 표정으로 박 형사를 쳐다보았고, 재철은 인상을 구기며 박 형사를 보았다.
- 그럼 제가 그거 알바로 들어가라는 거에요?
- 정보 활동이지.
그러자 상구가 말을 꺼냈다.
- 그런데 이 일을 하면 저희한테 무슨 이익이 있죠?
상구의 당돌한 말에 재철이 놀라서 다급하게 그의 입을 막았다.
- 이익은요. 저는 형사님을 돕는 것만으로도...
박 형사가 주머니에서 신문지에 싼 돈 뭉치를 꺼냈다.
- 일단 급한 대로 300이다. 성공하면 이거 두 배로 주고. 모자라면 말해. 봉기한테 전화해서 한 5000 쏘라고 할 테니까.
'봉기'라는 말이 나오자 재철은 화들짝 놀라서 얘기했다.
- 모자라긴요. 이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그러자 상구가 '봉기, 봉기'하고 입으로 되뇌다 갑자기 표정을 굳혔다.
- 그 너네 조직 큰 형님?
재철은 친구의 옆구리를 찌르며 말했다.
- 형사님께서 큰 형님의 형님이고, 큰 형님이 가장 존경하고...
그 말에 상구가 갑자기 신문지 뭉치를 박 형사 앞으로 밀었다.
- 제가 미쳤었나 봅니다. 제가 원래 똥오줌을 잘 못 가려서...
그러더니 자신의 뺨을 후려쳤다.
- 저같은 놈은 맞아도 쌉니다.
박 형사는 어이없이 두 놈을 쳐다보았다. 얻어 걸린 정보원들이었지만, 한숨만 나올 뿐이었다.
- 그만 하고. 할 수 있겠어, 없겠어?
박 형사의 말에 두 사람이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는 큰소리로 대답했다.
- 할 수 있습니다.
그 두 사람의 목소리가 커서인지 시끄러운 고기 집에서 사람들이 모두 그들을 주목했다. 박 형사는 고개를 숙이며 머리를 긁었다. 둘은 여전히 뭐가 그리 자랑스러운지 당당한 표정으로 박 형사를 보았다.
- 어디 편찮으세요?
재철이 박 형사에게 묻자 박 형사는 손사래를 쳤다.
- 아냐. 아니니까. 고기나 많이 먹어. 그리고 천천히 정보를 구하는 거야. 알...
박 형사는 또 물어보려다가 말을 끊었다. 또 큰소리로 대답할 것이 두려워서였다.
- 미치겠군.
박 형사는 혼잣말로 중얼거리고는 앞에 있는 소주를 한 잔 마셨다. 그 때 한수에게서 전화가 왔다.
- 그 김환영이 있잖아. 최병헌 국회의원 보좌관이면서 사위더라구. 그리고 최병헌 국회의원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위원장이더라구. 그리고 그 딸이 맥컬리 병원 뇌신경 뭐시깽인가 하는 데 의사고. 그리고 재산 정도는...
- 나머지는 됐어. 고마워.
- 아니 그것 말고도 좀 더 있으면 계좌도 털고, 출신 학교부터...
- 아냐. 그만 해도 될 것 같아. 필요한 건 다 얻었으니까.
- 그게 뭐라고... 아무튼 그것만 알면 된다고?
- 그렇다니까.
- 알것다. 그럼 여기서 종친다.
- 그래.
한수와 전화를 끊고는 박 형사는 피식 웃었다. 모든 정황이 맥컬리 병원으로 모이는 기분이었다. 박 형사는 다른 한편으로는 맥컬리 병원은 어쩌면 보이는 것일 뿐이고, 그 이면에는 더 큰 무언가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지금은 맥컬리 병원에서 정보를 얻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 여기 파다 보면 연결되는 게 나오겠지.
박 형사가 앞에 놓인 소주병을 들고 한 잔 따르자 재철이 상구의 뒤통수를 후려치며 말했다.
- 형사님이 혼자 따라 드시잖아. 이런 호로 새끼야.
- 아.. 아 씨바.. 니 눈깔은 동태냐? 니가 봤으면 니가 따르면 되잖아.
두 사람이 또다시 티격태격하자 박 형사는 한숨을 내쉬었다.
- 그만 하고 고기나 먹어. 내 술을 내가 따라 마실 테니까.
두 사람은 박 형사의 말에 찔끔하고 서로 쳐다보다가 고기를 입에 넣고 조용히 우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