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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계(逐界)-쫓겨난 이들의 세계-40화 (40/309)

축계(逐界) - 쫓겨난 이들의 세계 - 1장 - 7. 비밀의 시작(4)

- 이 사건 정말 이상해요. 제가 다쳐서가 아니라 이 사건 용의자를 안다는 제보 전화가 왔다더라구요.

- 제보 전화?

- 네. 저는 당연히 이상하게 생각했는데, 어쩐지 출동 전까지 저한테 쉬쉬하더라구요.

- 용의자가 강원도 횡성에 있다고 제보가 왔다고?

- 네. 그래서 형사 두 명이 먼저 투입되고, 나중에 전원 출동이었죠.

- 제보 전화가 왔다는 건 어떻게 알았어?

- 가는 차 안에서 들었죠. 저한테 한 얘기가 아니라 제가 있는 줄 모르고 자기들끼리 얘기하다가 나온 말이었어요.

- 제보라니.

박 형사는 성준의 말을 듣고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가 수첩을 꺼내서 무언가를 적었다.

- 그렇게 된 일이로군. 결론은 누가 제보 전화를 했는지가 중요하군.

- 제보 전화가요?

- 응. 거기 창고에서 피해자의 장기들이 나왔어.

- 네? 그럼. 그 녀석이 범인이라는...

- 처음엔 나도 그렇게 생각했지. 그런데 우리가 모았던 정보와는 너무 동떨어진 것이었지. 그런데 지금 성준이가 얘기한 걸 들으니까 감이 오는군.

박 형사의 말에 성준과 지훈이 그를 쳐다보았다.

- 내 생각에는 제보자가 도축업자 녀석이 살인범이란 걸 알았던지, 몰랐던지 상관은 없다고 생각해. 우연히 그 녀석이 살인범이었는지, 아니면 알고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의대 출신의 도축업자의 창고에 먼저 장기를 가져다 놓고, 제보를 하지. 그러면 형사들이 출동을 해. 그리고 그 녀석을 잡고 창고를 뒤지지. 경찰은 장기들은 고기들하고 비슷하니 의심을 피할 수 있었으리라 판단을 하겠지. 첫 사건과 유사하게 가는 거지. 의대 출신의 사이코 새끼로.

- 그렇다면 그 제보를 한 사람은 그가 진범이 아니라는 걸 알고?

지훈의 말에 박 형사는 고개를 끄떡였다.

- 그 도축업자는 살인범이긴 하지만, 우리 사건의 살인범은 아니지. 하지만 이미 그 놈이 여러 명을 죽인 것으로 나타났는데, 몇 명 더 보태진다고 달라지진 않지. 다만 더 엽기적인 연쇄 살인범이 될 뿐이지.

- 그럼 누가 그랬을까요?

성준이 인상을 찌푸리면서 말을 하자 박 형사가 얼굴을 굳히며 대답했다.

- 우리한테서 사건을 빼앗은 놈들.

- 지금 특수본이요?

- 아니. 그보다 위. 아니 어쩌면 아주 위일 수도 있지. 우리 손이 닿지 않는.

박 형사는 여러 살인 사건을 맡았지만, 처음으로 온몸에 전율이 흘렀다. 자신의 손이 닿지 않는, 아니 닿을 수 없고, 알 수도 없는 살인마와 싸우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생각을 했다. 박 형사는 무기력감을 느꼈다. 아내가 눈앞에서 죽었을 때보다 더 암담했다. 풋내기 형사와 퇴직한 전직 형사 두 사람이 감당하기엔 너무나도 무거운 사건이라고 느껴졌다. 하지만 박 형사는 포기할 수 없었다. 겁쟁이가 되기 싫어서가 아니었다. 누군가를 잃는다는 고통이 무엇인지 절실하게 알기 때문이었다.

- 조 반장에게 전화를 해야겠군. 제보자가 누군지 알아봐 달라고.

그러자 성준이 고개를 저었다.

- 그 녀석들 처음부터 우리는 아예 개무시하고 일을 했는데, 아무리 삼촌이라도..

그러자 박 형사가 성준을 보며 말했다.

- 조 반장 별명이 뭔지 알아?

지훈과 성준이 박 형사를 쳐다보았다.

- 기차 꼴통이야. 목소리가 커서 기차 화통이라고 하다가 정보를 알아내기 위해서는 무식하게 밀고 나간다고 해서 기차 꼴통이라고 하지. 오늘 기차 꼴통 실력 좀 봐야겠어.

박 형사가 전화를 하러 밖으로 나가자 성준이 몸을 일으키려고 했다. 지훈은 그런 그를 눕히며 말했다.

- 칼빵 맞은 녀석이 누워 있어. 갑자기 왜 일어나?

- 형님 얘기 들었습니다. 형님 아니면 죽었으리란 얘기도.

평소 성준은 지훈을 '선배'라고 불렀다. 그런데 지금 '형님'이라고 부르는 걸 들으니 지훈은 자신이 박 형사에게 느꼈던 감정이 떠올라서 피식 웃었다.

- 너라면 안 그랬겠냐? 내가 아니면 뻔히 죽어가는 걸 보는데도.

- 그래도 형님 덕분에...

- 낯간지럽게 왜 그래. 얼른 벌떡 일어나서 우리 사건 도와줘야 할 거 아냐.

- 제가 일어나면 저도 그 일에 참여하겠습니다.

- 몸 추스르는 게 먼저야. 그리고 너도 나갈 때 복대 여섯 개씩 차고 나가.

- 네. 고맙습니다.

- 자식..

박 형사는 인상을 구기며 안으로 들어왔다.

- 무슨 일 있으세요?

- 휴... 조 반장도 그 사건에 대해 알아보느라 제보자에 대해 물어봤는데, 극비 사항이라면서 알려주지 않는다더군. 오히려 차장한테 불려 들어가서 엄청 깨지고 나왔다더군.

- 차장이요?

- 그러니까. 국장도 아니고 차장까지 나서서... 이거 뭔가 냄새가 구려. 이제 아주 구려.

그러더니 박 형사가 일어나며 말했다.

- 알려주지 않으면 캐내야지. 그깟 특수본 전화야 몇 개 되지도 않으니.

지훈이 일어서는 박 형사를 보며 물었다.

- 어떻게 하시려구요?

- 나 심부름센터 소속이야. 그런 거 전문이지. 먼저 간다.

박 형사가 문을 열고 나가자 지훈도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 몸조리 잘 해라. 서울로 언제 오냐?

- 다음 주 정도에 옮길 예정이에요. 어머니도 힘드시고 해서요.

- 그래. 서울 오면 또 올게.

- 네. 형님도 몸 조심하십시오.

지훈은 밖으로 나와 자신의 방으로 갔다. 그리고 베개 아래에 적어 놓았던 종이를 꺼내서 몇 가지 내용을 덧붙였다. 지훈은 그렇게 적고 있는 자신을 보면서 점점 자신이 박 형사와 닮아 간다고 생각했다.

서울로 올라오면서 박 형사는 한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 알아 봐줘.

- 그거 정보 통신법이다 뭐다 해서..

- 왜 돈 드는 거야?

박 형사의 말에 한수는 잠시 말을 더듬었다.

- 그... 그런 게 아니고, 그건 범법이고, 또... 에...

- 훗. 니 입에서 범법이란 얘기가 나오니까 웃기다. 얼마나 드는데?

- 그게 뭐 이런 저런 거 해서..

- 끌지 말고 말해.

- 한 세 장정도 들어.

- 이번 달 내가 한 일들 안 받을 테니까 해줘.

박 형사의 말에 한수가 펄쩍 뛰며 말했다.

- 자식아. 그래도 그게 아니지. 에이. 나도 맘이 약해서.... 반띵해서 할 테니까, 언제까지 주면 돼?

- 빠르면 빠를수록 좋아.

- 알았어. 근데 특수본 전화 통화 내역 조사는 처음 해본다. 내가 구청까지는 해봤는데. 구청 과장놈 하나가 바람이 나서...

- 알았으니까 빨리 해줘. 끊는다.

박 형사는 한수의 말이 길어질 것 같자 얼른 끊었다. 박 형사는 강변북로를 타고 가는 길에 맥컬리 병원에 심어놓은 정보원에게 전화를 했다. 그 정보원은 투덜거리며 전화를 받았고, 박 형사는 그와 용산역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했다. 박 형사가 용산역에 도착했을 때 정보원은 담배를 피워가며 주변의 시선을 끌고 있었다. 험악하게 생긴 남자가 팔의 문신을 그대로 드러낸 채 담배를 피고 있으니 지나가는 누구라도 한 번씩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 저 자식. 미치겠구만.

박 형사는 앞에다 차를 세우고 정보원을 불렀다. 그러자 정보원이 박 형사의 차 가까이 걸어왔다. 그리고는 앞 창문에 기대고 섰다.

- 타.

그러자 정보원은 인상을 구기며 말했다.

- 그냥 말하겠시다.

- 보는 눈이 많으니까 타.

- 나 참. 형사도 아닌...

그러자 박 형사는 문을 벌컥 열었다. 차 문이 그의 가슴팍을 때렸고, 고개가 숙여져 차 문 안으로 들어왔다. 박 형사는 창문을 올려 목과 팔이 끼게 만들었다.

- 아.. 안 놔. 이 새끼..

- 여기서 뒈질래, 아니면 조용히 갈래?

- 가... 갈 테니까...

박 형사는 창문을 내렸다. 그러자 정보원 녀석이 목과 팔을 한 번 흔들며 말했다.

- 아 씨발. 한수 형만 아니면...

- 덜 맞았구나.

박 형사는 정보원 귀를 잡아당기고는 용산역 구석으로 데려갔다. 그리고는 구석에 쓰레기가 버려진 곳에 집어 던졌다.

- 너 어느 누구 밑에 있어?

쓰러진 녀석은 일어서며 말했다.

- 아 씨발. 아무리 한수 형이라도 이건 못 참아.

그 녀석은 일어나며 옆에 있던 돌을 들고는 박 형사에게 달려들었다. 박 형사는 피식 웃으면서 달려오는 녀석에게로 달려들어 다리를 걸어 넘어뜨렸다. 그리고는 발로 허벅지를 밟으며 말했다.

- 니 오야가 누구냐고 물었어.

- 아.. 아... 성산파.. 아...

박 형사는 성산파라는 얘기를 듣자 피식 웃었다.

- 팽봉기 똘마니였냐?

박 형사는 휴대폰을 꺼내 어디론가 전화를 했다. 그러자 그 쪽에서 가벼운 목소리가 들렸다.

- 아이고. 형님. 저한테까지 어쩐 일십니까?

- 다른 게 아니고, 너 애들 관리 요즘 안 하냐?

-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어떤 우라질 놈이 형님의 심기를...

박 형사는 자신의 휴대폰을 아래 깔린 녀석에게 던져 주었다. 그리고 다리에서 힘을 빼고 한 발 물러나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그 녀석은 휴대폰을 들더니 갑자기 벌떡 일어나 각을 잡은 자세로 전화를 받았다.

- 재철아! 이런 천하의 개잡놈이. 니가 형님 수명을 줄이려고 환장했구나. 창자를 뽑아서 줄넘기를 해 버릴라 보다. 니가 어떻게 모셨길래 그 신사적인 형님께서 나한테 애들 관리를... 눈깔에 먹물을 쪽 빨아 먹어버려? 이 썅누무 새끼....

째지는 목소리로 한 5분간 계속 욕을 퍼붓던 목소리가 잦아들었다. 재철이라 불린 정보원인 녀석은 얼굴이 사색이 되어 박 형사에게 허리를 굽히고는 두 손으로 핸드폰을 줬다.

- 애들 관리하는구나.

- 아이고. 형님. 애들 관리 안 하면 형님께서 예뻐해준다고 하신 이후에 저희들 모두 선량하게 살고 있습니다요.

- 됐고. 요즘 나쁜 짓 안 하지?

- 아 그럼요. 형님 퇴직하셨다고 들었는데, 제가 술이라도 한 잔..

- 됐어. 착하게 살아라.

- 네.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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