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축계(逐界)-쫓겨난 이들의 세계-29화 (29/309)

축계(逐界) - 쫓겨난 이들의 세계 - 1장 - 6. 빼앗긴 사건(2)

홈즈는 옛날 일을 떠올렸다. 그의 친구인 샘 에드워드가 어느 날 놀라운 발견을 했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 잘 보게나. 이건 정말 획기적인 기술이야.

- 어허. 이 사람이. 죽은 사람이라도 살아 왔나.

홈즈는 샘에게 핀잔을 주었다. 그러나 평소와 다르게 샘은 흥분하여 홈즈의 말은 들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 죽은 사람이 살아 올 수도 있다네. 자 여길 보게.

샘은 생쥐 실험 내용 보고서를 홈즈에게 주었다. 홈즈는 그 보고서를 훑어보다가 놀라움에 찬 눈으로 샘을 올려다보았다.

- 이게 사실인가?

- 놀랍게도 사실이네. 아직 시험 단계이지만, 몇몇 쥐들한테서 명확하게 데이터가 나왔다네.

- 그럼 사람에게도 가능하다는 말인가?

- 아직 정확하게는 알 수 없지만, 가능할 거라고 생각하네.

- 그렇게만 된다면야.

샘이 가져온 기술은 놀랍게도 기억을 주입하는 기술이었다. 그 기술은 신경을 자극하는 특정 주파수의 광학 레이저??를 이용하여 신경을 자극해 시냅스 연결을 강화하거나 약화함으로써 기억을 만들어 주거나 지울 수 있는 것이었다. 특히 광학 레이저를 통해 뇌의 주름에 특정 주파수를 동기화시키면 그 주파수에 포함된 기억이 뇌에 각인이 되었다.

- 쥐에게 고양이의 기억을 주입하다니 짓궂군.

- 아마 쥐가 고양이처럼 행동하는 걸 보면 더 놀랄 것이라네. 그리고 이거.

샘은 따로 진행하고 있던 슈뢰딩거의 프로젝트의 결과물을 보여주었다. 홈즈는 그 결과서를 보고 말했다.

- 이거 놀라운 걸.

- 이번에 사이언스지에 낼 내용이지.

- 잠재 유전자의 발현이라. 이거 생물학계가 뒤집어지겠군.

- 이것도 혹시.

- 맞았어. 여길 보게나. 이종배합일 때 우성이 나타난 결과와 열성이 나타난 결과일세.

홈즈는 샘이 준 결과지를 보았다. 그리고는 놀라움을 나타냈다.

- 잠재의식 발현?

- 열성 유전자가 동종일 때는 원래 특징을 드러낼 확률이 99.9998%였지. 돌연변이를 일으킬 확률이 아주 낮아. 그런데 열성 유전자가 이종일 때 자신의 특징을 드러내니까 간섭을 받으면서 돌연변이를 일으킬 확률이 상당히 높았어. 그래서 돼지를 통해 실험을 해 보니까 아주 놀라운 결과를 나타냈지.

- 음... 자네 실험이라면 곧 글을 쓰는 돼지가 나올 수도 있다는 말인가?

- 실험을 하는 거위도 볼 수 있겠지.

- 어허.. 이거야.

- 뒷내용은 발표하지 않은 거야. 잠재 유전자가 발현하는 과정과 실험만 발표할 예정이지.

- 그렇다면 이건..

- 그렇지. 조만간 잠재 유전자가 발현된 실험체에 기억을 주입해 봐야지.

- 놀랍군.

- 아무튼 기억 주입술은 아직 더 연구를 해야 하는 과정이니까...

- 그래. 알겠네. 자네는 이 실험을 완성시키게나. 그리고 슈뢰딩거에게도 그 실험을 더 진행하라고 말하게나. 나는 실험 대상자들을 모집해 볼 테니까.

- 그레고리님의 기억을 되살릴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차네.

홈즈와 샘은 그 날 이후부터 뇌에 기억을 이식하는 연구를 실시했고, 각 지역별로 고아나 금치산자를 모집하여 실험을 하였다. 그 실험에서 대부분의 피실험자들은 발작을 일으키거나 죽어버렸다. 어쩔 수 없이 포기하려 할 때, 그를 만난 것이었다. 그 고통스러운 실험을 이겨내고, 아니 그간의 연구를 뛰어넘을 만큼 놀라운 결과를 보여준 것이었다. 이 실험의 성공으로 그들은 그레고리의 기억을 그들이 '그 분'이라고 부르는 그레고리의 유일한 유전자 계승자에게 주입시키려 하였다. 그러나 샘과 홈즈는 두려웠다. 성공 확률은 1%. 실험체 99명이 죽거나 발작 증세를 일으켰고, 딱 한 사람만이 살아남았다. 그런 실험을 그 분에게 한다는 것은 뻔히 질 줄 아는 도박에 가까웠다. 결국 홈즈와 샘은 연구가 더 진행될 때까지 기억을 이식하는 일은 접어두었다. 그러나 그 때 문제가 생겼다. 그레고리의 기억을 주입받은 '그'가 그레고리와 같은 일을 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모두들 놀라움에 사로잡혔고, 그를 그레고리의 현신(現身)으로 생각했다. 홈즈와 샘이 막을 겨를도 없이 그는 조직을 장악해 갔다. 그리고 그들 역시 그를 믿고 따랐다. 결국 홈즈와 샘은 자신들이 새로운 그레고리를 창조했다는 것을 알았다. 자신들의 계획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일이 전개되었다. 홈즈와 샘 역시 조직 안에서 그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이 기술만 안정된다면 언제든지 '그 분'이 '그'를 대신할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그들의 계획은 이제 거품처럼 사라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물론 홈즈는 이미 샘에게 자신이 이러한 상황에 처할 것임을 알렸기에 나머지 일은 샘이 처리할 것이다. 하지만 조직의 정보력은 홈즈가 항상 놀라듯이 상상 이상이었다. 어쩌면 지금쯤 샘도 자신과 같은 처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절망감이 들었다.

- 하지만 자네가 말하는 '그 분'은 어쩌면 나처럼 될 수 없을 것 같네.

- 그... 그렇다면 폐기하시는 겁니까?

- 폐기라... 자네는 모르겠지만, 자네들이 연구한 기술은 기억저장 기술이지. 자네는 단지 기억을 만들고 사라지게 하는 기술로 생각하겠지만, 이미 그 기술을 조직에서 충분히 연구를 했다네. 기억을 데이터로 변환시켜 저장하고, 다시 뇌에 각인시키는 기술이지. 그런데 거기엔 치명적인 문제가 있다네. 나같이 뉴런이 전류가 다른 이들보다 높지 않으면 뉴런 사이에서 흐르는 전류가 조금만 높아도 뇌에 치명적인 영향을 주더군.

- 그렇다면....

- 불가능에 가깝지. 나같은 사람은 드물거든. 아니 자네가 아니었으면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높은 전류로 아마 도파민이 과다 분비 됐겠지.

홈즈는 절망적인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죽을 것 같은 기침이 터져 나왔다. 한참동안 기침을 하다가 허리를 들었을 때 그의 입가에서는 피가 흘렀다.

- 저런. 몸에 병이 심각하군.

- 자네가 말하는 '그 분'은 폐기하지 않을 것이야. 다만 자네의 계획대로 되지는 않을 것이라네.

기계음은 마지막에는 다소 냉소적인 말투였다. 홈즈는 눈을 감았다.

- 제게 왜 그런 말씀을 하시는지요.

- 자네가 조직에 헌신한 열정과 그간의 노고를 생각해서, 아니 무엇보다도 현재의 나를 있게 해준 장본인이기 때문에 특별히 말하는 것이라네.

- 그럼 저도 이제 폐기하시겠군요.

홈즈의 냉정한 말에 기계음은 잠깐 말을 멈추었다.

- 아직은 아니야. 여전히 실리보다 상징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다네. 특히 우리 조직에는.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 그렇다면 저는...

- 자네는 이제 상징이 될 것이야. 그 분과 더불어. 옛날 그레고리 공작과 홈즈 스미스처럼 말야.

기계음이 멈추자 홈즈가 앉아 있던 의자에서 족쇄가 나오며 홈즈의 손과 발을 묶었다. 홈즈는 발버둥 치려했지만 홈즈의 몸에도 끈이 나와 그를 묶은 채 의자가 뒤로 넘어갔다. 홈즈는 꼼짝 없이 온몸이 묶인 신세가 되었다.

- 그렇게 되지는 않을 거야. 내가 지옥에서도 너희를 저주할 테니까.

- 자네 입에서 지옥 얘기가 나오다니 놀랍군.

그 말을 끝으로 기계음은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의자에서 나온 주사기가 홈즈의 목덜미에 꽂히자 홈즈의 목소리도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