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계(逐界) - 쫓겨난 이들의 세계 - 1장 - 4. 사라진 여인(5)
아파트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차문을 열고 나왔을 때, 멀리서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평소에는 아기 우는 소리처럼 들렸는데, 오늘따라 몹시 고통스러운 것처럼 비명에 가까운 소리였다. 평소에도 고양이를 그리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이런 울음소리를 들으니 좀 더 껄끄러워졌다. 지훈은 아파트 입구 경비실에서 졸고 있는 경비 아저씨를 보았다. 평소에는 항상 켜져 있던 CCTV 모니터가 꺼져 있었다. 지훈은 순간 불길한 기분이 들었다. 얼른 엘리베이터 앞으로 갔다. 1층에서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지훈은 얼른 올라타 7층을 눌렀다. 오늘따라 엘리베이터가 더 느리고 답답하게 느껴졌다. 7층 문이 열리자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안에 있는 불빛과 함께 지훈이 어두운 복도로 뛰어나왔다. 그리고는 집 앞으로 다가가 초인종을 눌렀다. 그러나 안에서는 아무 반응도 없었다. 지훈은 다시 한 번 초인종을 눌렀다.
- 가게라도 갔나?
혼잣말처럼 내뱉다가 지훈은 열쇠를 꺼내 문을 열었다. 그러나 문은 잠겨 있지 않았다. 지훈은 습관적으로 자신의 가슴 쪽으로 손이 갔다. 그러나 평소 차고 있던 총은 없었다.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거실 불이 꺼져 있었다. 현관에 센서등이 켜지면서 거실 안의 상황을 짐작하게 했다.
- 혜민아!
지훈은 거실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거실은 마치 방금 청소한 것처럼 깨끗하였다. 그리고 안방으로 들어가 보았다. 안방 역시 깨끗하였다. 아기 방으로 꾸민 건넌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 곳 역시 깨끗하였다. 지훈은 거실에 나와 넋을 잃은 사람처럼 혜민을 불렀다.
- 혜민아! 어디 있어?
지훈은 온 집안을 뒤졌지만, 아무 것도 발견할 수 없었다. 지훈은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머릿속이 텅 비는 것처럼 느껴졌다. 경찰 대학에서 배운 내용 따위는 머리에 떠오르지 않았다. 그 자리에 앉아 우는 것 외에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어 보였다. 그러다가 주머니에서 전화를 꺼내 박 형사에게 전화를 했다.
- 어! 작은 박. 왜?
- 흑흑.. 지.. 집에 혜민이가 없습니다.
- 뭐? 제수씨가? 어디 나가신 거 아냐?
- 아.. 아뇨. 흑흑.. 어디 나갈 사람이 아니에요.
지훈의 울먹이는 소리에 박 형사는 크게 소리쳤다.
- 기다려. 금방 갈 테니까.
얼마나 넋을 놓고 앉아 있었는지 알지 못할 시간이 흘렀다. 그 순간 박 형사와 성준이 문 안쪽으로 달려 들어왔다. 두 사람 모두 달려왔는지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혀 있었고, 숨을 헐떡였다.
- 제수씨가 사라지다니? 무슨 일 있었어?
멍하니 있는 지훈에게 박 형사가 다가와 어깨를 흔들며 물었다. 지훈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 성준아! 너는 아래 내려가서 경비실로 가봐. CCTV 확보하고.
성준이 걱정스럽게 지훈을 보다가 박 형사의 말을 듣고 다시 아래로 뛰어 내려갔다.
- 이게 무슨 일이야?
- 모... 모르겠습니다. 병원 갔다 오니까 이렇게...
- 침착해. 얼마 안 됐으니까 빨리 탐문하면 될 거야.
박 형사는 지훈을 일으켜 세우고는 경찰서로 전화를 걸었다. 이 형사의 목소리가 들리자 박 형사는 급하게 말했다.
- 나야. 작은 박 집으로 감식반 보내.
- 네? 무슨 일 있어요?
- 아직 정확히는 모르지만 집 안에서 납치당한 것 같아.
- 집에서요?
- 아무튼 빨리 보내.
- 네. 금방 보낼 게요.
박 형사가 전화를 끊고는 지훈을 데리고 밖으로 나왔을 때 성준이 엘리베이터에서 내려다.
- 박 형사님, 문제가 생겼습니다.
- 무슨 문제?
박 형사는 아무 잘못이 없는 성준에게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성준은 마치 자신의 잘못인 양 움찔하며 말했다.
- CCTV 저장본이 사라졌습니다. 경비 아저씨는 순찰 중이었다고 하더라구요.
- 저장본이 사라져? 그게 무슨...
그 순간 박 형사는 무언가로 머리를 얻어맞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 잠깐...
박 형사는 다시 전화를 걸었다. 이번에는 조 반장이었다.
- 전데요. 지금 형사들 모두 작은 박 집 앞으로 모이라고 해 주세요.
- 얘긴 들었는데, 무슨 일이야?
- 이번 건하고도 연결되는 것 같아요.
- 오케이. 금방 데리고 갈게.
박 형사는 조 반장과 전화 통화를 끝내고 정신을 놓고 있는 지훈을 보았다. 도대체 어떤 악연이기에 이 착한 녀석이 이런 꼴을 당하나 싶었다. 박 형사는 엘리베이터에 지훈을 태우고 아래로 내려갔다. 집은 성준에게 지키라고 하고는 박 형사는 지훈을 데리고 밖으로 나왔을 때 아래에서 임 박사와 마주쳤다.
- 여기!
박 형사가 임 박사에게 손을 들었다. 임 박사는 박 형사를 보고 오다가 옆에서 넋을 놓고 있는 지훈을 보았다.
- 무슨 일인데, 감식반까지?
- 거실하고 엘리베이터까지 샅샅이 조사해줘. 뭔가 나오는지.
- 알았어.
임 박사는 박 형사를 알고 있기에 더 묻지 않았다. 박 형사는 비록 실종 사건이었지만 무언가 연결고리가 확실하게 느껴졌다. 곧이어 조 반장과 형사들이 도착했다. 박 형사는 다른 내용은 거두절미하고 본론만 말했다.
- 작은 박이 병원에 온 시간이 여섯 시 반이었고, 헤어진 시간이 일곱 시 반 정도니까. 집을 비운 시각이 여섯 시에서 여덟 시 사이야. 이 근처에서 탐문해 봐. 이 형사 너는 이 동하고, 저 동하고 불 켜진 집에 다니면서 물어보고, 최 형사 너는 근처에 있는 가게 돌아다녀 보고, 반장님은 경비실에서 조사해 주시고요.
다들 지훈에게 한 마디 하려다가 지훈의 상황이 좋지 않은 것을 보고 각자의 일을 하러 자리를 떴다.
- 작은 박! 정신 좀 차려! 니가 이러고 있으면 어떻게 하라는 거야!
박 형사는 지훈을 잡아 흔들며 말했다. 그러나 지훈은 여전히 넋빠진 꼴을 하고 있었다.
- 제수씨 찾아야 할 거 아냐! 처형 범인도 잡고!
박 형사의 말에 지훈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러더니 박 형사를 붙들고 울기 시작했다.
- 혜민이가... 지금 4개월짼데.. 어째서... 흑흑.
박 형사는 지훈의 마음을 알겠다는 듯이 지훈의 등을 토닥여주었다. 그 때 성준이 아래로 내려왔다. 분위기를 보며 조금 기다렸다. 그러다가 어느 정도 지훈이 진정된 것 같아 보이자 박 형사에게 말을 했다.
- 박 형사님, 위에 좀 올라가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박 형사는 성준을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 죄송합니다. 추한 모습을 보여서.
지훈은 한바탕 울고 나니 어느 정도 정신이 들었는지 성준을 보고 무안해했다. 박 형사는 지훈의 어깨를 한 번 치고는 위로 올라갔다. 지훈과 함께 남은 성준은 무어라고 얘기해야 할지 몰라 가만히 지훈 옆에 서 있었다.
- 담배 있냐?
- 네. 여기.
지훈은 성준에게 얻은 담배를 피우며 계단에 주저앉았다. 그러다가 화단 옆에서 혜민이 끼고 있었던 머리핀이 보였다. 지훈은 그 머리핀을 들었다. 한편 위로 올라간 박 형사는 임 박사에게 어처구니없는 얘기를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