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계(逐界) - 쫓겨난 이들의 세계 - 1장 - 4. 사라진 여인(4)
- 대장이 조금 찢어졌지만, 수술은 잘 됐습니다. 조금만 깊었으면 큰일날 뻔 했어요.
- 그래요? 다행이네요
.
- 조금 있다가 회복실로 옮길 예정이니까 조금만 기다리세요.
의사는 이렇게 말을 하고는 갔다. 의사가 가자 조 반장은 고 형사 부인에게 너스레를 떨며 말했다.
- 거봐. 괜찮을 거야. 좀 쉬면 예전보다 더 튼튼해질 거니까 걱정하지 말고.
조 반장은 그러면서 경찰서로 전화를 걸었다.
- 나야. 수술 잘 됐단다. 이따 저녁 때 와 보면 될 거야.
전화를 끊고는 조 반장은 박 형사에게 말했다.
- 괜찮으면 막내한테도 전화해 봐. 같은 팀인데 그래도 와 봐야지.
박 형사는 고개를 끄떡이고, 지훈에게 전화를 걸었다.
- 고 형사님이요? 가봐야죠. 몸은 괜찮으세요?
- 수술은 잘 끝났어. 그래 저녁 때 잠깐 들러. 다들 올 거니까.
- 가 봐야죠. 고 형사님이라면 항상 도움을 많이 받는 분이라고 했잖아요.
혜민은 환하게 웃어주며 말했다.
- 그렇긴 한데, 자기 혼자 집에 있어야 하니까 걱정이 돼서...
- 걱정은요. 올 때까지 TV 보면서 기다리고 있으면 돼요.
- 그래. 금방 다녀올게.
지훈은 혜민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혜민의 수척한 얼굴이 못 견디게 불쌍해 보였다. 지훈은 병원으로 출발하면서 박 형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모두 고 형사의 병실에 모였다는 얘기를 듣고 지훈은 서둘러 병원으로 갔다. 지훈이 병원에 도착했을 때에는 병실 안에서 웃음꽃이 피고 있었다.
- 너무 웃기지 말라구요. 오늘 수술한 사람인데...
지훈이 병실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고 형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러다가 지훈을 보고는 고 형사가 말했다.
- 막내도 왔네.
지훈이 음료수를 구석에 놓고 형사들 사이로 들어왔다.
- 괜찮으세요?
- 그냥 옆구리 약간 긁힌 거야.
고 형사가 조 반장을 잠깐 보고는 말했다.
- 어? 막내 왔다구 말이 바뀌는 걸? 방금은 저승사자랑 하이파이브를 했다더니.
조 반장이 고 형사를 타박하자 고 형사가 엄살을 부렸다.
- 아. 아이고. 아파도 구박이네.
고 형사의 엄살에 또다시 다들 웃어댔다. 웃음이 잦아들자 고 형사가 말을 했다.
- 그런데 그 녀석들, 그냥 양아치들이던데요. 사건하고는 별 관계가 없어 보이더라구요. 개인 판매책은 점조직이라 확인이 불가능하다고 그러구요.
고 형사의 말에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그렇지 않아도 모든 정보가 흩어지는 마당에 고 형사가 하는 말 역시 사건을 더욱 미궁으로 빠지게 하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 지금은 뭐 알 수 있는 게 없으니까 일단 고 형사 너는 몸조리나 잘 해. 제수씨 속 좀 그만 썩이고.
조 반장이 고 형사의 코를 쥐어잡자 고 형사는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 아.. 환자 괴롭히는 경찰이 어디 있어요?
- 여기 있다. 짜식아.
조 반장과 고 형사의 장난이 이어지자 박 형사가 지훈에게 조그맣게 말을 걸었다.
- 제수씨는 괜찮아?
- 네. 아직 충격에서 벗어나진 못했는데, 장례식 치르고 난 다음부터 조금씩 안정을 찾고 있습니다.
- 음. 그런데 제수씨 혈액 샘플은 보냈어?
- 병원에서 보낸다고 했는데, 도착하지 않았나요?
- 아직 임 박사한테 말이 없어서...
박 형사는 딱히 재촉하기도 그래서 그냥 모르는 척 놔두었다. 그러나 지훈의 말로는 이미 혈액을 보낸 상황이었기 때문에 박 형사는 전화기를 들고 조용히 병실 밖으로 나왔다.
- 나다. 임혜민 씨 혈액 샘플 도착했어?
- 어? 아니. 아직 안 왔는데?
- 분명 보냈다고 했는데.
- 온 게 없어. 도착하면 바로 나한테 가져오라고 했거든.
- 오케이. 알았어.
- 근데 어디야?
- 응? 병원. 고 형사가 좀 다쳐서.
- 고 형사? 아! 그 개그맨 형사!
- 그래.
- 어디를?
- 옆구리에 칼을 맞았어.
- 그래? 어느 병원인데.
- 여기? 세브란스.
- 그래. 거기 과장하고 내가 잘 아는 사인데, 그 놈 실력 좋아. 내가 전화라도 한 통 해 줄게.
- 그러면 고맙고.
- 아무튼 샘플 받으면 전화 다시 함세.
박 형사는 전화를 끊었다. 박 형사는 안으로 들어와 조용히 지훈을 불러냈다.
- 아직 안 왔다는군.
- 그래요? 오일 전에 검사하고 보내달라고 했는데요.
- 그래? 음...
- 제가 내일 다시 전화해서 보내달라고 할게요.
- 그래. 부탁 좀 할게.
병실 안은 여전히 형사들끼리 떠드는 소리에 왁자지껄했다. 박 형사와 지훈은 그런 가운데 조용히 한쪽 구석에 서 있었다. 조 반장은 상황을 정리하면서 말했다.
- 고 형사도 좀 쉬어야 하니까 이제 그만 가지. 제수씨 못난 놈 간호 좀 잘 해줘.
조 반장이 말하자 고 형사가 옆구리를 부여잡으며 말했다.
- 못난 놈이라뇨? 나만한...
그 때 고 형사의 부인이 고 형사의 팔뚝을 꼬집으며 말했다.
- 맞는 말이지. 벌써 수술만 세 번째인데.
- 아니 이 마누라가.. 아야..
고 형사는 다시 자신의 옆구리를 부여잡았다.
- 맞아. 맞아. 못난 놈이 칼 맞는다고...
그러다가 자신의 입을 막았다. 쓸데없는 말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 상황에서도 고 형사는 농담을 했다.
- 반장님도 예전에 등에 크게 한 방 맞았잖아요. 못나서.
고 형사의 말에 다들 낄낄대며 웃었다. 조 반장은 흠흠거리며 형사들에게 말했다.
- 이제 가자구. 고 형사는 제수씨한테 혼 좀 나고.
조 반장이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오자 다른 형사들도 반장을 따라 밖으로 나왔다.
- 어이, 막내.
지훈이 밖으로 나오자 반장이 지훈을 불렀다.
- 네.
- 제수씨는 괜찮아? 자네 휴가 신청 냈던데.
- 네. 지금 아이도 있고 해서 제가 옆에 있어줘야 할 것 같아서요.
- 그래. 그래. 우리들이야 그냥 마누라가 마음 넓거니 하고 살았지만, 자네같이 젊은 사람들은 그러면 안 되지.
- 네. 고맙습니다.
- 자네는 얼른 들어가 보라구.
조 반장이 지훈을 밀어내듯 보내려고 했다. 박 형사는 고갯짓으로 지훈에게 얼른 가보라는 눈치를 주었다. 지훈은 멋쩍은 상황이었지만, 형사들에게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왔다. 하늘은 비라도 내릴 것처럼 먹구름이 잔뜩 끼어있었고, 습도가 몹시 높아 피부에 닿는 공기가 눅눅하였다. 지훈은 차에 올라 핸드폰을 꺼냈다. 집으로 전화를 걸었으나 아내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지훈은 전화를 끊고 시동을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