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계(逐界) - 쫓겨난 이들의 세계 - 1장 - 4. 사라진 여인(3)
- 뭐 이민영이 엄마가 실종? 어제도 통화가 됐잖아?
- 네. 어제 전화할 때까지만 해도 오늘 서로 온다고 했는데 아침에 다시 전화를 해 보니까 안 받더라구요. 그래서 서랑 멀지 않은 곳이어서 집으로 가봤는데 아무도 없었습니다.
- 구인이라도 했어야 하나?
최 형사는 난감한 표정으로 반장 앞에 서 있었다. 경찰서에 들어온 박 형사가 무슨 일인가 싶어 반장 옆으로 다가왔다.
- 이거야 원. 갑자기 정보가 다 막히니...
- 무슨 일인데?
반장은 답답하다는 듯이 고개를 숙였다. 끼고 있던 깍지를 풀고는 박 형사를 보며 말했다.
- 어제 성준이가 세인트 조지 병원에 전화를 했는데, 그런 환자는 수술한 기록이 없다네. 그러더니 지금은 최 형사가 와서 이민영이 엄마가 실종되었다고 하고. 그리고 독일에서도 메일이 왔는데, 안나 성이라는 여자가 없다고 하고.
- 그게 무슨.
- 일주일 사이에 모든 정보가 증발해 버린 것 같아. 아니 시체는 있는데, 정보가 없어. 내가 경찰 짬밥 먹은 지 20년이 다 돼 가는데 이런 일은 처음이야. 젠장.
- 고 형사는?
- 나갔어. 아까 마약 관리과 애들한테 연락이 와서 졸피뎀 불법 거래하는 애들 찾으러 갔어.
- 휴. 갑자기 뭐지?
박 형사는 자신의 자리로 가서 앉았다. 뭔가 꼬여도 단단히 꼬인 느낌이었다. 졸피뎀을 거래하는 녀석들이라야 향정신성의약품 취급에 관한 혐의 외에는 엮을 것이 없다. 살인 사건에 대한 증거는 점점 오리무중이 되었다.
- 이러다 미제 사건 되는 거 아냐?
반장이 무언가 불길한 느낌이 들었는지 한 마디 던졌다. 그 말에 아무도 대꾸를 하지 않았지만 현재 상황으로는 도저히 앞으로 나갈 방향이 보이지 않았다.
- 어딘데? 고 형사는? 뭐? 이런 개새끼들..
반장이 전화를 받고는 욕지거리를 해댔다. 다들 반장을 쳐다보았으니 반장은 사람들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고 말을 했다.
- 빨리 병원으로 옮겨. 금방 그리 갈 테니까.
반장이 전화를 끊고는 형사들에게 소리 쳤다.
- 고 형사가 당했어. 졸피뎀 거래하는 새끼들한테 칼빵 맞았대.
- 뭐요?
자리에 앉았던 형사들이 모두 벌떡 자리에서 일어섰다.
- 새끼. 운동만 존나게 열심히 하면 뭐해. 그런 새끼들 만나러 갈 때는 복대라고 하고 가야지.
반장은 차키를 챙기며 박 형사에게 말했다.
- 세브란스 병원으로 옮기고 있다니까 그리로 가자.
박 형사는 수첩을 가슴에 챙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 최 형사는 차장님한테 상황 보고 좀 해 주고. 성준아! 너는 독일에 다시 연락해 봐. 그리고 이 형사! 고 형사네 집에 전화해라. 고 형사 와이프 심장 약하니까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이 말해라. 칼빵 이런 말 쓰지 말고.
조 반장과 박 형사가 밖으로 나가자 최 형사가 한 마디 했다.
- 어떤 새끼들이길래 태권도 금메달리스트인 녀석한테 칼빵을 놓은 거야? 그나저나 우리도 가봐야 되는 거 아냐?
자료를 정리하고 있던 이 형사가 최 형사에게 말을 했다.
- 이따 연락 오면 가 보죠. 그런데 고 형사님이 태권도 금메달리스트였어요?
- 그 자식. 어리바리해 보여도 싸움 하나는 기가 막히게 하지. 오죽하면 그 녀석 얼굴만 좀 더 생겼어도 액션 배우해도 된다고 했으니까.
- 많이 안 다치셨나 모르겠네요.
성준이 걱정스러운 말투로 말하자 최 형사는 내심 걱정을 되지만 도리어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 그렇게 갈 녀석이었으면 예전에 골로 갔지. 걱정 마. 이따 전화라도 해 보지.
조 반장과 최 형사가 병원에 도착했을 때에는 고 형사가 이미 수술실에서 수술을 하고 있었다. 조 반장은 마약 관리과 형사들에게 다가가 물었다.
- 어떤 새끼야?
다짜고짜 묻는 말에 팀장인 형사 하나가 대답했다.
- 급습할 때까지는 괜찮았어요. 현장에서 물건하고 놈들하고 다 잡고 조사하는 과정에서 그랬습니다. 그 녀석들도 포기했는지 처음에는 순순히 불다가 고 형사가 책임자 녀석 멱살을 잡고 윽박지르는 사이에 숨어 있던 똘마니 녀석 하나가 옆구리를 찌르는 바람에..
그 형사는 마치 고 형사의 성격으로 인해 그렇게 된 거라는 듯이 말을 했다. 그러자 조 반장은 불같이 화를 냈다.
- 뭐 이 새꺄! 현행범이고, 물어볼 게 있어서 물은 건데. 그리고 저렇게 될 때까지 니들은 다 뭐 했어?
조 반장의 말에 억울하다는 듯이 팀장인 형사가 말했다.
- 워낙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어서요.
- 그 새낀 잡았어?
- 네. 서로 가고 있을 겁니다.
- 그 새끼들은 뭐야?
- 신촌 일대에서 대학생들이나 연예인들, 유흥업소 종사자들한테 공급하던 녀석들인데요. 졸피뎀뿐만 아니라 프로포폴도 취급하고, 엑스터시같은 마약도 거래했던 녀석들입니다.
- 그럼 서에서 보자고. 자네들은 들어가 있어. 여긴 나랑 박 형사가 지키고 있을 테니까.
- 네. 들어가 보겠습니다.
팀장인 형사는 반장에게 목례를 하고 팀원들을 이끌고 나갔다. 수술실 앞에 앉은 조 반장과 박 형사는 걱정스러운 얼굴이었다.
- 옆구리 살짝 긁힌 것치고는 요란하군.
조 반장이 투덜거리며 말을 하자 박 형사가 피식 웃었다.
- 필성이 형님 때 생각나는군.
박 형사가 말을 하자 조 반장이 의자에 앉으며 말했다.
- 맞아. 그 형님 웃겼지. 칼에 옆구리 살짝 긁혔다는 사람이 100바늘이나 꿰매고. 전화해서 '나 아프다. 칼에 살짝 긁혀서 옆구리에서 피나는데..' 그렇게 얘기해서 정말 살짝 긁힌 줄 알았다니까.
- 고 형사는 필성이 형님만큼 강하니까.
박 형사의 말에 조 반장이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 이 새끼 일어나기만 해봐. 한 여름에 내가 복대 서너 개씩 차고 다니라고 할 테니까.
그 때 고 형사의 부인이 아이들과 함께 들어왔다. 조 반장은 고 형사의 아이들을 보면서 헤벌쭉 웃었다.
- 어이구. 강아지들.
하고는 세 살짜리 고 형사의 아들을 번쩍 안아들었다. 그러고는 고 형사의 부인에게 밝은 표정으로 말했다.
- 제수씨, 그냥 살짝 긁힌 거야. 안 그래도 좀 쉬고 싶다고 했는데, 이참에 좀 쉬면 되지.
고 형사의 부인은 사색이 된 얼굴이었으나 조 반장의 말을 듣자 다소 안색이 좋아졌다. 평소 조 반장과 고 형사는 티격태격하면서도 두 집안 식구끼리는 가족만큼이나 가깝게 지냈기 때문이다. 조 반장은 자기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 어! 나야! 오늘 고 형사 애들 좀 봐.
전화를 하면서 조 반장은 복도 멀리로 걸어갔다. 박 형사는 고 형사의 부인에게 말을 했다.
- 걱정하셨죠? 고 형사는 강하니까 금방 일어날 겁니다.
- 네.
두 사람은 말을 잇지 않고 수술실 문을 쳐다보았다. 멀리서 조 반장이 걸어오며 말했다.
- 좀 있다가 마누라가 올 거야. 오늘 애들은 우리 집에서 재우고.
조 반장이 말하자 고 형사의 부인은 고개를 끄떡이고는 수술실 문 쪽만 쳐다보았다. 얼마 후 수술실 문이 열리고 의사가 밖으로 나왔다.
- 어떻게 됐습니까?
조 반장이 묻자 의사는 고 형사의 부인을 흘끗 보고는 조 반장을 쳐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