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축계(逐界)-쫓겨난 이들의 세계-17화 (17/309)

축계(逐界) - 쫓겨난 이들의 세계 - 1장 - 4. 사라진 여인(2)

아침 일찍 지훈은 혜민과 함께 집을 나섰다. 혜민도 언니를 생각하면 억장이 무너지는 심정이었지만, 아기를 위해서라도 힘을 내야 했다. 지훈 역시 당분간 일을 쉬면서 혜민을 돌보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어디에도 혜민을 부탁할 사람이 없었을뿐더러 혜민 역시 지훈과 같이 있을 때에는 어느 정도 안정을 했기 때문이었다. 차에 오른 지훈은 혜민에게 말했다.

- 힘들면 말해. 언제든지 멈추게 할 테니까.

- 아녜요. 아기를 위해서 하는 건데.

- 혜민아. 아기도 중요하지만, 나한테는 네가 가장 중요해.

- 고마워요.

혜민은 지훈의 손을 잡았다. 지훈은 말라버린 혜민의 손이 안쓰러웠다. 지훈은 시동을 걸고 혜민이 알려준 병원을 향해 갔다.

'미래 생명 과학 연구소'는 서울 외곽을 벗어난 곳에 있었다. 한적한 도로를 따라 가다보니 병원 건물이 하나 보였다. 겉에서 보기에는 조금 허름해 보였지만, 오래된 건물치고는 많이 낡아 보이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오래된 건물에서 느껴지는 고풍스러움까지 느껴졌다. 한 쪽 구석에 차를 세우고 정문 쪽을 향해 걸어갔다. 정문 앞에는 기이한 모양의 조각상이 하나 서 있었고, 정문 안으로 들어가자 넓은 로비가 보였다. 그 로비 안에는 임산부들이 몇 명 있었고, 몇 명의 남자들이 소파에 앉아 있었다.

- 어떻게 오셨죠?

지훈과 혜민이 안으로 들어가자 밝게 웃으며 한 여자가 다가왔다.

- 홈페이지에 나온 DNA 검사 때문에 왔습니다.

- 아! 그러세요? 그럼 이 쪽으로 오셔서 먼저 이걸 먼저 작성해 주세요. 그리고 다 작성하셨으면 저 쪽 접수창구에 내시면 되요.

- 네. 감사합니다.

지훈은 혜민을 한 쪽 소파에 앉히고, 한 쪽 테이블에서 내용을 채워나갔다. 지훈이 신청서를 작성하는 동안 혜민은 말없이 앉아 있었다. 지훈은 내용을 다 쓰고 접수창구에 신청서를 제출하고 혜민 옆에 앉았다.

- 먼 곳인데도 사람들이 꽤 많네.

지훈이 긴장한 것 같은 혜민을 보며 말했다. 그러나 혜민은 여전히 다소 긴장된 표정이었다.

- 왜, 어디 안 좋아? 나갈까?

- 아니에요. 그냥 여기를 전에 와본 것 같아서요.

- 여기를? 종합 병원인 것 같기는 한데, 여기까지 왜 왔을까?

- 잘 모르겠어요. 그냥 느낌이 그래요.

- 그래? 그냥 기분 탓 아닐까? 오래된 병원은 다들 비슷비슷하니까.

- 그런가요?

몇 명의 임산부가 혼자서 혹은 남편과 함께 진료실로 들어갔고, 몇몇은 검사를 끝냈는지 밖으로 나왔다. 임산부들은 다들 팔을 문지르며 밖으로 나왔다.

- 임혜민 산모분!

혜민을 부르자 지훈과 혜민이 같이 일어났다. 진료실 안으로 들어가자 젊은 여의사가 앉아있었다. 그리고 옆에는 간호사 한 명이 서 있었다.

- 이쪽으로 앉으세요.

혜민과 지훈이 자리에 앉자 여의사가 말을 했다.

- DNA 검사 때문에 오셨다구요?

- 네.

여의사는 기록지를 훑어보며 말했다.

- 임신 3개월이시고, 초음파 검사 시 이상한 점은 없었고...

- 네.

그러다가 여의사는 혜민을 보며 물었다.

- 이 검사가 어떤 검사인지는 알고 계시죠?

혜민이 뭐라고 대답하기 전에 지훈이 말을 꺼냈다.

- 정확하게 무슨 검사를 하는지 안 나와 있어서요.

- 네. 사실 아직 우리나라에서 DNA 검사라고 하면 익숙하지 않은 내용이죠. 엄밀히 말하면 DNA 검사가 아니라 쿼드 검사라고 하죠. 임신 중에 아이가 기형이 생기면 엄마 혈액 변화가 생겨요. 그래서 엄마의 혈액을 이용해서 기형 위험도를 체크하는 거에요.

- 네.

- 사실 모든 위험을 다 파악할 수 있는 건 아니구요, 가장 흔한 유전 질병인 다운증후군이나 에드워드 증후군 같은 것만 파악할 수 있죠. 검사 결과는 2주 후에 나오구요.

- 그냥 혈액 검사인가요?

- 네. 혈액 검사를 먼저 하구요. 그 다음 이상이 있으면 정밀 검사를 하죠.

- 그렇군요.

- 제가 보니까 남편분이나 아내분의 나이가 많지 않기 때문에 크게 걱정하실 필요는 없어요.

의사는 그렇게 말하고는 혜민을 쳐다보았다.

- 이 쪽 안으로 들어와서 잠시 누우세요. 먼저 초음파 검사부터 하구요.

혜민이 안 쪽으로 들어가서 눕자 여의사는 지훈을 보며 말했다.

- 먼저 목덜미투명대를 먼저 확인해 볼 거에요. 지금 3개월이면 약 2.5mm 정도가 정상이구요.

여의사가 커튼 안으로 들어가자 자신의 옆에 있는 모니터에 검은 화면이 나타났다.

- 자 여기가 아기 다리구요, 목덜미는 2.5mm 정상이네요.

화면에는 이런 저런 숫자와 어두운 그림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잠시 후 여의사가 밖으로 나오며 말했다.

- 초음파 결과는 정상이네요.

그리고는 간호사를 시켜 주사기를 준비시켰다. 혜민이 커튼 밖으로 나오자 의자에 앉혔다. 그리고는 혜민의 팔에 고무줄을 감고 팔 주변을 툭툭 치고는 혜민의 팔뚝에서 피를 뽑았다. 혜민은 약간 인상을 찌푸렸다. 지훈은 피를 뽑는 의사에게 말을 했다.

- 혈액 샘플을 국과수로 보내주실 수 있나요?

- 네? 국과수요? 저희는...

그러자 지훈이 지갑을 꺼내 형사 신분증을 보여주었다.

- 어떤 사건이 있는데 그 사건 때문에 제 아내의 혈액 샘플이 필요해서요.

- 아내 분의 동의가 있으셔야 하는데요?

그러면서 혜민을 보자 혜민이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의사는 혜민에게서 뽑은 피를 두 개의 실린더에 나누어 담았다. 그리고 담은 혈액의 실린더에 태그를 붙였다.

- 네. 그럼 그 쪽으로 보내도록 할게요.

의사는 두 사람에게 웃으면서 말했다.

- 감사합니다.

- 결과는 아까 말씀드렸듯이 2주 후에 나오니까요. 우편으로 받아보실 수도 있고, 내방하셔서 결과를 들으셔도 되고요. 저희가 전화를 드릴 거니까 그 때 말씀해 주시면 되요.

- 네. 알겠습니다.

진료실 밖으로 나오자 로비에서 처음에 자신들에게 안내를 했던 여자가 다시 다가왔다.

- 진료는 다 보셨어요?

- 네.

지훈은 혜민을 부축하면서 걸었다.

- 이건 저희가 이번에 새롭게 하는 제대혈 프로그램에 대한 내용인데요, 한 번 읽어보세요.

전단지를 받고 밖으로 나온 지훈과 혜민은 차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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