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축계(逐界)-쫓겨난 이들의 세계-16화 (16/309)

축계(逐界) - 쫓겨난 이들의 세계 - 1장 - 4. 사라진 여인(1)

4. 사라진 여인

그날 저녁 경찰서에 모인 형사들은 각자 자기가 조사한 내용들을 말하기 시작했다.

- 피해자들의 병적 기록부를 보니까 최나연하고 조영아는 수술했던 기록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우리나라 병원이 아니라 다 외국 병원이더라구요. 둘 다 영국에 있는 병원에서 수술을 했더라구요. 그런데 어떤 수술을 했는지는 정확하게 나와 있지 않더라구요.

이 형사의 말에 박 형사와 고 형사가 고개를 동시에 들었다.

- 영국에 있는 병원?

- 네. 세인트 조지라고. 영국에서는 유명한 병원이라던데요.

- 그런데 수술 내용이 나와 있지 않다니. 그게 무슨 말이야?

- 이게 병적 기록부인데, 수술을 했다는 기록은 있는데, 자세한 내용이 없더라구요.

병적 기록부를 앞으로 내밀자 영어로만 쓰여 있는 기록지여서인지 다들 눈으로만 보고는 성준을 보았다. 자료를 정리하던 성준이 그 기록지를 들고는 말했다.

- 그냥 외과적 수술이라고만 나와 있습니다. 이걸 보고는 어떤 수술을 했는지는 알기 힘들 것 같은데요?

그러자 박 형사가 성준이에게 다른 질문을 던졌다.

- 독일 경찰하고는 연락해 봤어?

- 네. 연락을 하긴 했는데, 거기서도 난감한가 보더라구요.

- 난감해? 독일에서 활동하는 조각가라면서?

- 그게 인터폴에서 온 정보가 그런데요. 독일에는 그 여자에 대한 기록이 없다고 하더라구요. 일단 안나 성이라는 동양 여자는 등록이 되어 있지 않을 뿐더러 외국인 명부에도 없답니다. 그래서 20~30대 동양 여자들을 분류해서 알려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안나 성 사진도 보냈구요.

- 이건 뭐. 인터폴에서 보낸 정보가 병신인 거야?

고 형사가 투덜거리며 말하자 조 반장이 피식 웃으며 그 말을 받았다.

- 인터폴이라고 뭐 제대로 된 게 없구만.

조 반장의 말이 끝나자 박 형사는 수첩을 보면서 최 형사를 보며 물었다.

- 부모들 사고는 조사해 봤어?

- 네. 그런데 이상하다면 이상하고 아니라면 아닌 것 같아요.

- 그게 무슨 말이야?

- 전부 교통사고에요. 하다못해 이민영이 아버지마저도. 그것도 뺑소니 사고.

- 전부?

- 네. 마지막에 죽은 임혜연 부모도 뺑소니 사고로 죽었더라구요. 작은 박이 범인을 잡긴 했는데... 그 자식 진술도 하도 오락가락해서.

- 음..

- 그런데 그 학생인 이민영 엄마라는 사람을 만났는데, 얘랑 하나도 안 닮은 거에요. 그래서 아빠 사진을 봤는데, 뭐 이건 남이더라구요. 그래서 이상해서 다른 사람들의 부모 사진을 봤는데...

- 전혀 안 닮았다?

- 네. 마지막 임혜연은 뭐 거의 오빠, 언니 수준인 것 같았어요. 분명 작은 박 결혼할 때 봤는데, 그 땐 모르고 지나쳤는데... 다시 보니까 전혀 닮지도 않았고.

- 호적에 적힌 나이는 어때?

- 나이로 보면야 그럴 수 있죠. 두 사람이 모두 58세이니까 22살 때 첫째를 낳은 거니까.

- 음.. 생긴 게 다르다. 그럼 입양 기록은?

- 그래서 저도 그걸 확인해 봤는데... 모두 입양된 게 아니라 어린 시절에 호적에 오른 걸로 나와 있더라구요.

- 머리 아프군. 부모 자식 간에 안 닮을 수도 있겠지.

- 근데 이걸 한 번 보시면 다를 걸요.

최 형사는 어디서 구해왔는지 피해자의 부모 사진을 각각의 사진 옆에 붙여 놓았다. 아닌 게 아니라 정말 닮은 구석이라고는 거의 보이지 않았다.

그 말에 박 형사는 책상을 손으로 툭툭 치면서 말했다.

- 그럼 한 번 생각해 보자구. 안 닮은 부모들이 있어. 그리고 그들의 부모는 모두 교통사고로 죽었어. 그게 이 사건하고 무슨 관련이 있지?

모두들 침묵을 했다. 도저히 연관 관계를 이끌어내기 힘들었다. 그 때 박 형사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는 최 형사에게 말했다.

- 이민영이 엄마 서로 좀 오라고 해. 내일 오전 중으로.

형사들은 박 형사를 쳐다보았다. 최 형사는 주춤거리며 박 형사에게 물었다.

- 왜요?

- 다른 얘긴 하지 말고 이민영이 사건에 대해 얘기할 게 있다고 말하고 오라고 해.

최 형사가 전화를 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 자리 쪽으로 가자 박 형사가 말했다.

- 그 하플로그룹이라는 거. 그게 엄마한테만 받는 거라네. 그러니까 이민영이 엄마 DNA 검사를 해 보면 알 수 있을까 하고.

그 말에 다른 형사들이 고개를 끄떡였다.

- 골치 아픈 건 일단 놔두고 나온 걸로만 생각해 보자고.

조 반장이 말에 다들 상황판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 때 성준이 조심스럽게 손을 들어 말했다.

- 그런데 왜 모두 졸피뎀이 검출된 거죠?

그 말에 다들 성준을 쳐다보았다. 박 형사가 그 말에 대답을 했다.

-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었거나 그랬겠지. 임 박사 말로는 그렇다던데. 왜?

- 졸피뎀은 수면 유도제 중에서도 다소 강한 중독성을 갖고 있거든요. 더욱이 그 약을 먹으면 몇몇은 몽유병에 걸린 것처럼 행동하기도 하고 그래서요.

- 그래? 그냥 수면제가 아니고?

- 네.

- 네. 그 약 먹고 잠든 사람이 일어나서 운전을 한 경우도 있구요, 밥을 먹는다든가, 전화를 한다든가 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하거든요.

- 시중에서 구하기 힘든 약이 검출되고, 이상한 행동을 한다. 그것도 이상하군. 그럼 고 형사는 마약 관리과에 연락해서 이거 파는 놈들하고 접촉해 봐.

고 형사는 '네'하고는 벌떡 일어났다.

- 어디 가게?

최 형사가 고 형사를 보며 묻자 고 형사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 당췌 어려운 얘기는 머리가 아파서요. 가서 그 놈들이나 찾아 조지는 게 내 성미에 맞아요.

고 형사의 말에 다들 키득키득 웃었다. 박 형사마저 그런 고 형사를 보고는 피식 웃었다.

- 지금쯤 다 퇴근했을 걸.

최 형사의 말에 고 형사가 시계를 보고는 다시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러자 박 형사가 상황판 쪽으로 걸어가며 말했다.

- 그런데 가장 중요한 게 있어. 왜 그 사람들을 죽였을까? 그리고 왜 일부의 장기만 빼내갔을까? 아니 그리고 시체는 왜 그대로 두고 갔을까?

박 형사가 상황판 앞에서 말을 하자 다들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박 형사가 다시 말을 이었다.

- 일단 장기 밀매는 아니야. 일단 혈액형이 모두 AB형으로 일치하지. 장기 밀매할 때 특정 혈액형만 하지는 않거든. 그리고 밀매라면 장기를 다 빼 가면 되지. 왜 남겨 두었겠어. 그리고 범죄 현장을 은닉하기 위해서 시체를 안 보이게 유기하지. 그래서 내가 감으로 생각해 본 건데...

박 형사가 자신의 생각을 말을 하자 다들 설마하는 표정으로 박 형사를 보았다. 그러나 누구도 박 형사의 말을 부정하지는 못했다.

- 그럼 왜 시체를 쉽게 발견할 있는 곳에 두었을까요?

성준이 말을 하자 박 형사는 고민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 글쎄 그것까지는 아직 모르겠군. 정보가 많긴 한데, 연결되는 게 없으니.

박 형사의 말이 끝나자 조 반장이 자리에서 일어서면서 말했다.

- 일단 아까 나왔던 거 먼저 확인해보고, 성준이 넌 영국에 있다는 그 병원에 연락을 한 번 해 보고 뭔가 있는지 알아보고.

- 네.

형사들이 모두 자리에서 일어났다. 조 반장은 박 형사에게 다가와서 말했다.

- 배고픈데 소주나 한 잔 하지.

- 내일 하지. 오늘은 일이 있어서.

박 형사의 말에 반장은 입맛을 다시면서 고개를 끄떡였다. 그러자 고 형사가 조 반장 옆으로 다가와 말했다.

- 저랑 한 잔 하시죠. 출출한데.

- 그래, 가자.

조 반장과 고 형사가 박 형사를 향해 손을 번쩍 들고 밖으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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