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축계(逐界)-쫓겨난 이들의 세계-15화 (15/309)

축계(逐界) - 쫓겨난 이들의 세계 - 1장 - 3. 냄새가 나지 않는 사건(4)

- 박 형사님, 그 수술 자국 위에 수술 자국이 있다는 건 예전에 수술을 한 거라는 말이잖아요. 그러면 다른 사람도 수술을 한 적이 있는지 알아봐야 될 것 같은데요?

- 그럼 그건 이 형사가 맡아서 알아봐줘.

- 알겠습니다.

- 그리고 작은 박! 아, 빠졌지..

박 형사가 지훈을 찾다가 이번 건에서 빠진 걸 알고는 조 반장에게 말했다.

- 그 안나 성이라는 여자가 의심스러운데, 독일 경찰에 협조를 구할 수 있을까요?

조 반장은 그 말에 알겠다고 대답을 하고는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 어! 성준아. 이리로 좀 와라.

정보과에 있는 성준은 지훈의 후배이기도 했지만, 조 반장의 조카이기도 하였기 때문에 조 반장은 지체없이 성준을 불렀다. 성준 역시 경찰 대학을 졸업한 엘리트이자, 영어와 일본어에 능숙했기 때문이다.

- 그리고 이건 그냥 직감같은 건데. 피해자들 부모가 모두 사고사거든. 어떤 사고로 어떻게 죽었는지 조사를 했으면 하는데?

- 그건 제가 하죠.

최 형사가 번쩍 손을 들었다.

- 그래. 정보통인 자네가 하는 게 좋지.

- 그런데요, 형님... 아까부터 눈에 거슬리는 게 있어서요.

고 형사가 손을 들고 질문을 했다.

- 뭔데?

- 저 하플로그룹인가? 그게 뭡니까? 뭐 조직 같은데. 저 여자들이 그러면 한 조직원이라는 말입니까?

고 형사가 질문에 박 형사는 피식 웃었다. 하지만 하플로그룹을 설명하기가 난감했다. 그런데 한 조직에 속한다는 말에 갑자기 머리를 스치는 것이 있었다. 고 형사의 질문에 대답을 하지 않은 채 박 형사는 수첩을 꺼내 무언가를 적었다.

- 그건 유전자 정보인데, 나도 골치 아픈 얘기라 잘 몰라. 아무튼 특이한 유전자래.

- 유전자? DNA는 들어봤어도 뭔 그룹은 또 처음 들어보네.

고 형사가 너스레를 떨자 경직되었던 분위기가 다소 풀렸다.

- 아무튼 지금 각자 정보 조사하고, 고 형사 너는 나랑 작은 박하고 와이프 만나러 가자.

박 형사의 말에 고 형사는 얼굴을 찌푸렸으나 자기에게 주어진 임무가 없었기에 고 형사는 울며 겨자 먹기로 일어났다.

- 반장님, 성준이 오면 얘기 좀 잘 해 주시구.

- 오케이.

박 형사는 지훈에게 전화를 걸었다. 몇 번 울리자 지훈의 목소리가 들렸다.

- 작은 박. 나다.

- 예. 박 형사님.

- 와이프는 괜찮냐?

- 뭐 그렇죠. 지금 병원에서 링거 맞고 있습니다.

- 그래? 너는 괜찮냐?

- 저야 뭐...

지훈이 말끝을 흐리자 박 형사는 조금 난감했다. 피해자의 제반 사항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가족들과 얘기를 나누어 보아야 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런 걱정을 지훈이 해소시켜 주었다.

- 일단 제가 와이프와 얘기를 먼저 나누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아는 내용도 말씀드릴게요.

- 그.. 그래? 미안하다.

- 미안하긴요. 조사 과정인데.

- 미안한데, 이거 하나만이라도 물어봐 주라.

- 뭐죠?

- 혜연 씨가 수술받은 적이 있는지. 수술을 받았으면 어디에서 받았는지.

- 네. 그런데 와이프는 아직 안정을 취해야 한다고 하니까 제가 먼저 조사를 받을 게요.

- 짜식. 조사가 뭐냐? 그냥 대화라고 해.

- 네.

지훈의 힘없는 대답에 박 형사 역시 맥이 없었다. 그러다가 옆에 있던 고 형사가 한 마디 했다.

- 밥은 먹었냐?

- 네? 밥은..

- 나와라. 형님이 맛있는 밥 사준단다. 제수씨도 같이 나와라. 맛있는 거 먹고 힘 좀 내라.

- 네? 네...

박 형사는 고 형사가 옆에서 말을 하자 아예 전화기를 고 형사에게 넘겼다.

- 그럼 제수씨가 좋아하는 거, 뭐냐, 지난번에 너희 집 갔을 때 해 준 거 있잖아. 이름 이상한 거 있잖아. 빵에 스파게티 들어간 거. 형님 그거 이름 뭐유?

고 형사는 지훈과 대화를 하다가 박 형사에게 질문을 했다. 그러자 전화기 너머에서 약간의 웃음소리와 함께 대답이 들렸다.

- 빠네 파스타요.

- 그래. 그거. 빠네. 거 이름 얄딱구리한 거.

지훈이 홍대 앞에 있는 가게 이름을 말하자 고 형사는 '오케이'하고 전화를 끊었다.

- 형님은 뭐 그리 어려워 하슈. 밥 먹으면서 적당히 하면 되지. 그리고 원래 파트너니까 가는 길에 제수씨 임신도 했으니까 아기 옷이라도 하나 사 가면 되는 거 아니유.

고 형사의 넉살에 박 형사는 피식 웃었다. 자신이 하지 못하는 일, 할 수 없는 일들을 다른 사람들은 잘 하고 있다는 것이 부럽기도 하였다.

- 알았다. 아무튼 홍대 쪽으로 가자.

젊은이들이 가득 찬 홍대 스파게티 집에서 늙수그레한 두 남자가 앉아서 두 사람을 기다리는 일은 무척이나 곤혹스러운 일이었다. 이런 일에 익숙하지 않은 박 형사는 괜히 무안해졌다. 그러나 고 형사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말했다.

- 아따 젊음이 좋구만. 나 어릴 땐 왜 이런 데가 없었나 몰라.

고 형사의 말에 건너편에 앉은 젊은 커플이 웃었다. 고 형사는 그들을 향해 어색하게 웃어주었다. 얼마 지나자 지훈과 그간 마음고생이 심했는지 몹시 초췌한 혜민이 들어왔다. 박 형사와 고 형사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지훈과 혜민이 자리에 앉자 두 사람도 어정쩡하게 자리에 앉았다. 박 형사는 이럴 때 어떻게 얘기를 꺼내야 할지 난감했다. 그러나 고 형사는 넉살 좋게 말을 꺼냈다.

- 제수씨, 마음고생이 심하셨나 보네요. 지난번에 봤을 때보다 더 마르셨네.

고 형사의 말에 혜민은 약간 고개를 숙일 뿐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러자 고 형사는 옆의 박 형사의 팔꿈치를 툭툭 쳤다. 박 형사는 고 형사를 보다가 옆 의자에 놓았던 봉투를 혜민에게 건넸다.

- 우리 같은 형사들은 패션 감각이 영 없어 놔서...

선물 봉투를 줬으나 분위기는 여전히 무거웠다. 지훈은 그 봉투를 받으며 인사를 했다.

- 고맙습니다.

네 사람을 주문을 하고는 다시 침묵을 했다. 평상시 피해자의 가족들을 조사할 때 느끼는 곤혹감보다 훨씬 난감하였다. 그러나 지훈이 먼저 입을 열었다.

- 아까 말씀하신 거. 처형은 꽤 오래 전에 수술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영국에서였을 겁니다. 맞지?

지훈이 혜민에게 묻자 혜민이 고개를 끄떡였다.

- 오래 전이라...

- 저희가 결혼을 한 해였는데, 사실 수술을 했는지는 몰랐어요. 아까 오는 길에 물어보니까...

지훈이 말을 잇자 혜민이 힘겹게 입을 뗐다.

- 언니가 수술한 건 지난 번 만났을 때 알았어요. 지난번에 언니랑 같이 여행가서 샤워를 하려고 욕실에 들어가서 화장을 지웠는데 전에 보지 못했던 흉터가 있어서 물어봤었죠.

- 눈 아래의 흉터라...

박 형사가 조심스럽게 묻자 지훈이 나서서 대답했다.

- 사실 그 때는 처형하고 저나 와이프하고는 약간 냉각 상태였거든요. 저희가 결혼할 때 처형의 반대가 심했거든요.

- 음... 그렇군.

박 형사는 지훈을 잠깐 쳐다보았다.

- 혹시 제수씨도 수술을 한 적이 있나요?

박 형사의 말에 혜민은 고개를 저었다.

- 수술한 기억은 없어요. 그런데...

혜민은 조금 민망한지 대답을 꺼렸다. 그러자 지훈이 대답했다.

- 겨드랑이 쪽에 상처가 있는데, 그게 수술 자국인지는 모르겠어요.

그러자 박 형사는 수첩에 무언가를 적다가 고민하는 표정으로 혜민을 보았다.

- 그리고 이건 어쩌면 조금 민감한 얘기인데... 제수씨는 언니와 친자매가 맞나요?

박 형사의 말에 지훈과 고 형사가 무슨 말이냐는 듯이 박 형사를 쳐다보았다. 혜민 역시 박 형사를 쳐다보았다. 박 형사는 혜민의 눈을 피하지 않았다.

- 네. 친자매 맞아요. 그런데 왜 그러시죠?

박 형사는 잠시 고개를 끄떡이다가 말을 했다.

- 사실 혜연 씨에게서 조금 의외의 결과가 나타나서 그런 겁니다. 제수씨도 가능하시다면 DNA 검사를 한 번 받아보시는 게...

지훈은 박 형사를 쳐다보았다. 박 형사는 특유의 무뚝뚝한 표정이었지만, 그의 눈은 지훈에게 무척이나 미안한 듯한 빛을 띠고 있었다.

- 국과수에 가야하는 건가요? 아니면 DNA 검사를 할 수 있는 샘플을 채취해서 보내면 되는 건가요?

지훈이 묻자 박 형사는 아랫입술을 비비며 말했다.

- 편할 대로 해. 국과수에 가는 게 부담스러우면 일반 병원에서 피를 뽑아서 보내도 되고.

- 그럼 다음 주에 보낼게요. 안 그래도 태아 검사를 해야 해서 병원에 한 번 가봐야 하거든요.

그 때 음식이 나오자 박 형사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떡이고는 혜민에게 말했다.

- 제수씨. 내가 책임지고 범인을 잡을 테니까 믿어 주십시오.

박 형사의 말에 고 형사가 한 마디 덧붙였다.

- 우리 과의 명탐정 형사니까 믿으셔도 됩니다. 저도 있고. 우리 작은 박까지 참여하면 더 금방 잡을 테지만... 아무튼 아기를 생각해서라도...

혜민은 그 말에 눈물이 터져 나왔다. 혜민의 울음에 박 형사와 고 형사는 당황을 하였다.

- 고맙습니다. 꼭... 저희 언니를 그렇게... 꼭 잡아 주세요.

지훈은 옆에 앉은 혜민의 어깨를 끌어안았다. 박 형사는 지훈과 눈빛이 마주쳤다.

'내가 니 맘 다 안다. 꼭 잡아 주마.'

지훈은 박 형사의 마음을 읽었는지 고개를 끄떡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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