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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계(逐界)-쫓겨난 이들의 세계-14화 (14/309)

축계(逐界) - 쫓겨난 이들의 세계 - 1장 - 3. 냄새가 나지 않는 사건(3)

- 그래. 그리고 이건 뭔지 잘 모르겠는데, 이들은 모두 체내에서 졸피뎀이 검출되었지.

- 졸피뎀? 수면제?

- 엄밀히 말하면 수면 유도제지.

- 그게 뭐?

- 결론은 이들은 모두 불면증을 앓고 있거나 졸피뎀 중독이라는 얘기지.

- 수술할 때 쓰지 않나?

- 이 사람아. 수술할 때 수면제를 왜 쓰나? 마취제를 사용해야지.

- 그런가? 불면증, 졸피뎀 중독이라...

- 뭐 다들 전문직이거나 아니면 학생이니까 불면증에 시달릴 수도 있겠지만, 이게 뭔가 이상하단 말야.

- 골치 아픈 것만 모이는군.

- 그리고 안나 성, 그 여자는 정말 이상한 점이 하나 있어. 다른 여성들에게는 나타나지 않는...

- ?

- 이 여자 부검을 하면 할수록 이상해. 몸에 거의 균이 없어. 일반적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일반 세균조차 드물어. 그래서 다른 시신들보다 부패 정도도 더 빠르고.

- 균이 없다니, 그게 무슨 말이야?

- 사람은 환경에 노출되면 자연스럽게 세균에 감염되지. 그걸 이겨내면서 살아가는 건데, 이 여자는 무균실에서만 자랐는지 그런 세균이 거의 없어. 이 정도면 신생아 수준이라고.

박 형사는 수첩을 꺼내 지금까지 들은 내용들을 꼼꼼하게 적었다. 그리고는 임 박사를 물끄러미 보았다. 임 박사는 박 형사가 수첩에 내용을 적을 때 흘끗 살펴보고는 피식 웃었다.

- 자넨 참 안 바뀌어.

- 바뀌면 이상한 거지.

- 그래. 하기야. 그런데 자네가 조사한 내용 중에는 별 다른 게 없나?

- 자네가 얘기해 주기 전까지는 크게 이상한 점은 없었지. 뭐 이상할 것도 없었고.

임 박사는 그러다가 은밀하게 목소리를 낮췄다.

- 그리고 이번에 발견된 임혜연의 시신에서는 수술 자국이 있더라고.

- 뭐 수술이야 할 수 있는 거지.

- 그런데 그 수술 자국 위에 자상과 봉합의 흔적이 있었지.

- 뭐? 짼 데는 또 쨌단 말야?

- 응. 다른 시신에도 그런 흔적이 있는지 확인해 봤는데, 다들 긴가민가해서 그랬는데...

- 이상하군.

- 그러게 말야. 나도 부검을 많이 해 봤지만, 이런 경우들은 처음이라서.

- 자네가 처음이라면 다들 처음이겠지.

- 그래서 미국에 있는 법의학자에게 자문을 구하고 있지.

- 자네보다 잘 아는 사람이 있단 말야?

박 형사는 진심으로 놀랐다. 임 박사는 무슨 소리냐는 듯이 박 형사를 보며 웃었다.

- 이 사람아. 난 그 분에 비하면 새발의 피야.

- 난 자네가 시체를 제일 잘 보는 줄 알았지.

- 뭐라고, 내가 장의산가?

- 아무튼 이번 건은 뭔가 이상해.

- 그러게. 정말 뭔 정보가 이렇게 많고, 뭔 일이 이렇게 복잡한지.

- 아무튼 그럼 가장 최신 정보가 작은 박 처형이군. 골치 아프네.

박 형사가 이맛살을 찌푸리자 임 박사는 글라스에 소주를 한 잔 따라서 박 형사에게 주었다.

- 골치 아플 때는 한 잔 하는 게 어때?

박 형사는 임 박사가 준 잔을 단숨에 비우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 일단 가서 팀원들 좀 정리해야겠군. 지난 번 사건 해결된 다음 바로 해체했거든.

- 그러게나. 나도 뭔가 발견하면 바로 연락하겠네.

- 그래. 고마워.

박 형사가 밖으로 나가자 임 박사는 반쯤 남은 소주병을 한 번 보고는 입맛을 다셨다. 그리고는 자신의 글라스에 소주를 붓고는 한 잔 벌컥 마셨다.

- 오랜만에 재미있는 사건이야.

임 박사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다음 날 아침 박 형사가 경찰서에 들어가자 반장이 풀이 죽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다른 형사들도 시무룩한 표정들이었다.

- 왜들 그래? 이제 시작인데?

박 형사가 크게 말하자 고참격인 최 형사가 박 형사 옆으로 다가왔다.

- 조 반장님, 지방 발령 났습니다.

- 뭐? 아직 사건 진행 중인데, 그게 무슨 소리야?

박 형사의 외침에 반장이 박 형사 쪽으로 다가왔다.

- 무능한 놈이니 당연한 일이지만...

반장의 말에 박 형사는 반장을 쳐다보며 말했다.

- 그렇게 약한 소리해 대면 결국 칼침밖에 안 맞아요. 그래서 누가 반장으로 오는데?

그 말에 최 형사가 조용히 박 형사의 소매를 끌며 말했다.

- 형님을 이번에 반장으로 올리느라...

- 뭐? 그런 개같은 경우가 어디 있어?

박 형사는 최 형사와 반장의 만류를 뿌리치고 차장실로 향해 갔다. 차장실 문을 노크하자 안에서 들어오라는 소리가 들렸다.

- 어? 박 형사? 아니 이젠 박 반장인가?

- 차장님, 이건 아닙니다.

박 형사의 말에 차장은 놀라서 되물었다.

- 아니라니? 그게 무슨 말이야?

- 조 형사, 아니 조 반장이 왜 지방으로 갑니까? 유능한 사람입니다.

- 그게 말야. 지난 번 청장님께서...

박 형사는 몸을 차장 앞으로 숙이며 책상을 두 손으로 짚으며 말했다.

- 사건 제가 다 해결하겠습니다. 반장 역할도 할 테니까, 조 반장은 잠깐 놔두십시오.

- 그러니까 강력 1과는 박 반장이 맡아서 하고...

- 저는 책상머리에 앉아서 진두지휘하는 성격이 아니라서요. 그런 건 조 반장이 저보다 훨씬 낫습니다.

- 이미 결정난 사항이라서..

- 만약 사건에 실패하면 모두 제가 책임질 테니까 그 때까지 조 반장을 놔두십시오.

- 어허. 이 사람 참.. 진급을 시켜준다고 해도 난리니...

- 아무튼 그렇게 알고 가겠습니다. 차장님께 제가 처음 드리는 부탁입니다.

박 형사가 그렇게 말하고 나가자 차장은 의자에 몸을 깊숙이 기댄 채 고개를 저었다.

- 저 자식. 옛날에도 꼴통이더니 아직도 그러니.. 이거야 원...

사무실 안으로 들어오자 반장은 어깨가 축 쳐져 있었고, 형사들은 모두 힘없이 앉아 있었다. 박 형사는 사무실 안으로 들어와서 반장을 향해 소리쳤다.

- 이봐. 조태철! 언제까지 이렇게 쳐져있을 거야? 너 그렇게 약한 놈이었어?

박 형사가 소리치자 모두들 화들짝 놀라서 박 형사를 쳐다보았다.

- 씨발, 나 이렇게 능력 있으니까, 여기 놔둬! 새끼들아. 해야 할 거 아냐!

박 형사의 말에 힘없이 앉아 있던 조 반장이 의자를 박차고 일어나며 말했다.

- 그래. 씨발 해보자!! 되든 안 되든 존나게 해 보자.

조 반장의 말에 형사들이 모두 고개를 들고 박 형사와 조 반장을 보았다. 조 반장은 박 형사에게 가서 말했다.

- 고맙다.

- 새끼.. 아까는 죽을 상이더니..

- 하하하.

조 반장은 크게 웃더니 상황판 앞으로 갔다. 박 형사의 조언을 받으며 팀을 나누었고, 팀 별로 수사 역할이 분담되었다.

- 일단 그 변태 새끼가 분 세 명은 빼고 나머지만 보자고.

(2) 국회의사당 지하 창고에서 발견된 학생 이민영(17, 모 O) - 심장

(3) S여대 교수실에서 발견된 교수 최나연(35, 부모 X) - 대장과 소장

(4) 성북 룸살롱에서 발견된 대학생 조영아(24, 부모 X) -  간

(7) 인사동 갤러리에서 발견된 독일에서 활동하던 조각가 안나(Anna) 성(32, ?) - 뇌

(8) 공항 기계실에서 발견된 큐레이터 임혜연(36, 부모 X) - 각막

상황판에 피해자들이 나열되었다. 그리고 그 아래 박 형사는 임 박사에게 들은 내용을 추가하였다. 임 박사가 보낸 서류에는 없는 내용도 있었다. 그리고는 나머지 형사들에게 짧게 브리핑을 했다.

① 모두 하플로그룹 R에 속함.

② (2)와 (4)는 DNA 구조가 형제만큼 유사함.

③ (7)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졸피뎀 검출.

④ 피해자 모두 AB형.

⑤ (7)은 거의 무균 상태임.

⑥ (8)에서는 수술 자국 위에 수술을 한 흔적이 보임. 다른 시신들은 정확하게 확인이 불가능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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