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축계(逐界)-쫓겨난 이들의 세계-12화 (12/309)

축계(逐界) - 쫓겨난 이들의 세계 - 1장 - 3. 냄새가 나지 않는 사건(1)

3. 냄새가 나지 않는 사건

어두운 병실 안에는 주기적으로 '삐삐'하는 소리 외에는 아무 것도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았다. 소리가 나는 곳은 온통 유리로 둘러싸여 있었고, 그 안에는 기괴한 모양을 한 환자가 누워 있었다. 어느 중환자실에서도 볼 수 없을 것 같은 모습이었다. 환자는 성별이 남자인지, 여자인지도 모호할 정도였다. 그도 그럴 것이 침대 위에 누워 있는 환자는 '환자'라고 부를 수 있을까 싶을 정도였다. 링거만 열 개가 넘었고, 전신에는 마치 전신주에서 금방 잘라낸 전선 다발처럼 많은 선이 연결되어 있었다. 유리 안쪽은 다른 어느 곳보다도 습했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 환자는 개복이 되어 있는 상태였다. 유일하게 속살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곳은 다리와 팔 뿐이었다. 배는 열린 상태로 장기들이 끊임없이 전기 자극으로 인해 움직이고 있었고, 얼굴마저 껍질이 벗겨진 채로 있었다. 두 눈이 있어야 할 자리는 비어 있었고, 심지어 두개골마저 열려 있었다. 놀랍게도 그 안에는 뇌가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살아 있다'라는 것 자체가 놀라울 정도였다. 아니 어쩌면 '죽은 이'를 그저 기계적 장치로 '살아 있게' 만드는 것일는지도 몰랐다.

- 샘플 수거는 잘 되고 있지?

유리벽 밖에 서 있는 남자가 옆에 있는 남자에게 말했다. 옆에 서 있는 남자는 검은 양복이 미어터질 정도로 엄청난 근육질을 갖고 있었다. 반면 질문을 던진 남자는 평범한 40대의 남자였지만, 그 남자 옆에 서니 왜소해 보였다. 다만 특이한 점은 얼굴은 40대의 얼굴이었지만, 머리는 온통 하얀색이었다. 그냥 단순한 새치라고 할 수 없을 만큼 그 의 머리는 온통 하얀 색이었다. 그의 얼굴과 머리는 묘하게 이질적이었다.

- 거의 다 수거 했습니다.

- 아직 남은 게 있나?

- 네. 그게...

건장한 남자가 말끝을 흐리자 40대의 남자는 입맛이 쓴 듯 인상을 구겼다.

- 처음부터 보호 시설에 있었으면 잘 됐을 것을... 쯧쯧.

남자의 말에 건장한 남자는 잠시 흠칫 놀랐다. 그런 남자를 보고 40대 남자는 팔뚝 있는 곳을 툭툭 치며 말했다.

- 건전한 비판은 좋은 일이야.

40대 남자의 말에 건장한 남자가 반박을 했다.

- 자유정신에 위배됩니다.

그 말에 40대 남자는 뒤돌아 걷다가 건장한 남자를 쳐다보았다. 그러고는 피식 웃었다.

- 순진하긴. 자유정신이 있는 곳에서 '경고'를 하나?

그 말에 건장한 남자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하지만 40대 남자는 능글맞게 웃으며 말했다.

- 이봐. 우리는 어차피 같은 목적인 거야. 자네도 지난번 회의 때 들어와 보지 않았나. 우리가 하려는 일은 과정보다는 결과가 중요한 일이지. 다음 회의 땐 좀 더 강하게 얘기해 보려고 하는데... 자네는 반대겠지?

건장한 남자는 얼굴을 씰룩거리며 무언가를 말하고 싶어 하는 표정이었으나 40대의 남자가 먼저 말을 했다.

- 하긴. 자네 말도 맞는 게 있는 것 같군. 만약 내 말대로 했다가는 나도 자네도, 그리고 얼마나 되는지 모르는 샘플들을 모두 보호 시설에 놔야 할 테니. 안 그런가? 자네가 말하는 자유정신 덕분에 우리가 이렇게 지내는 거겠지.

40대 남자는 건장한 남자를 한 번 흘끗 보더니 양 미간을 찡그렸다. 마치 늑대와 같은 표정이 되어 건장한 남자에게 한 걸음 다가가 말을 했다.

- 하지만 중요한 샘플에게 '자유'는 없어. 그게 설혹 '나'라 할지라도.

40대 남자의 말에 건장한 남자는 한 걸음 물러났다. 40대 남자는 표정을 풀고는 다시 뒤돌아서 가며 말했다.

- 오늘 얘기는 서로 안 들은 걸로 하는 게 좋겠네. 그게 서로의 삶을 더 길게 만드는 방법이니까.

건장한 남자는 40대 남자가 사라지자 유리창 안을 쳐다보았다. 벌써 4년 째 저런 모습을 하고 있기에 이젠 예전 모습보다 지금이 더 익숙했다. 하지만 그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예전으로 돌아오기까지 얼마 안 남았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건장한 남자는 유리창에서 고개를 외면하고는 40대 남자가 나간 문 쪽으로 몸을 돌렸다. 40대 남자의 말을 곱씹어 보면서 긴 생각에 잠겼다.

- 어때?

- 어떻긴 뭐가 어때? 이 여자는 몸에 피가 남아 있다는 것 외에는 예전하고 똑같아. 아직 기자들을 통제해서 바깥으로 흘러나가진 않았지만, 금방 다들 알겠지.

- 뭐 이미 예상했던 일이니까. 하지만 지난번과 이번 사이에는 시간상 너무 짧은 걸.

- 미친놈 발작이 금방 일어났나 보지. 뭐.

구석에서 얘기를 나누던 임 박사와 박 형사는 뒤에서 그들을 부르는 소리에 뒤를 돌아보았다.

- 반장님.

조 반장이 다가오며 임 박사에게 인사를 하고는 박 형사에게 얘기를 했다.

- 그 녀석이 세 명, 그리고 사라진 꽃집 주인까지 네 명만 불었어. 나머지는 절대 자기가 아니라는군.

- 얘기 들었습니다.

- 그럼 나머지는 누가 죽인 거야?

- 그건...

박 형사가 미적거리자 임 박사가 먼저 나서서 말했다.

- 그 변태 녀석만큼 실력 좋은 놈이겠죠. 지금까지 본다면.

- 골치 아프군. 그런 미친놈이 또 있다니...

조 반장이 임 박사를 쳐다보며 말하자 임 박사는 어깨를 한 번 으쓱했다.

- 아마 우리가 알지 못해도 더 많을 겁니다.

- 이번에도 의대에서나 병원에서 쫓겨난 놈인가?

그러더니 조 반장은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 응. 좀 이따가 들어갈 테니까 의대에서 쫓겨난 놈들하고 병원에서 헛지랄하다 쫓겨난 놈들 명단 좀 추려줘.

- 뭐? 의대는 모른다고? 아무튼 신고된 놈들 위주로만.

조 반장은 전화를 끊고 박 형사에게 물었다.

- 뭐 냄새나는 거 없어?

박 형사는 수첩에 무언가를 적다가 조 반장을 보았다.

- 이번 건은 전혀 냄새가 안 납니다.

- 자네마저 그러면... 아무튼 뭔가 찾아낸 게 있으면 연락 줘.

조 반장은 그렇게 말하고는 임 박사에게 인사를 하고는 폴리스 라인 밖으로 나갔다. 조 반장이 가자 임 박사는 박 형사에게 낮은 목소리로 얘기를 했다.

- 그 자네 파트너, 박지훈인가의 처형이라지?

- 응. 형사하기엔 여린 놈인데, 이번 일까지 있으니 더 힘들 수도 있지.

- 아무튼 좀 중요한 일인데, 저녁 때 우리 사무실로 좀 오시게나.

- 중요한 일?

박 형사는 또 농담인가 싶어 임 박사를 쳐다보았으나 임 박사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 응. 언제쯤?

- 한 아홉 시 쯤이 좋지. 올 때 족발하고 소주 사오는 거 잊지 말고.

임 박사의 말에 박 형사는 피식 웃었다.

- 술 마시려고?

- 왜? 중요한 일에 술 한 잔 하면 안 되나?

- 술 마시고 싶으면 그렇다고 하지, 뭘 또 중요한 일이라고...

- 어허. 중요한 일이라니까. 이 여자도 부검이나 DNA 검사를 해 보면 알겠지만, 뭐 지금 예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거겠지만...

- 알아냈어?

박 형사의 말에 임 박사는 시신을 옮기는 쪽으로 몸을 돌리며 말했다.

- 족발하고 소주! 꼭 사오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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