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축계(逐界)-쫓겨난 이들의 세계-11화 (11/309)

축계(逐界) - 쫓겨난 이들의 세계 - 1장 - 2. 또 하나의 죽음(6)

며칠 후 경찰서가 발칵 뒤집혔다. 새로운 살인 사건이 터진 것이었다. 수법은 전과 동일한 방법이었고, 발견된 장소는 공항 기계실이었다. 지훈이 서 안으로 들어가자 소란했던 분위기가 일시에 조용해졌다. 지훈은 뭔가 이상하다는 낌새를 느끼고 자리로 가다가 고 형사에게 다가갔다.

- 무슨 일이에요?

지훈의 질문에 고 형사는 갑자기 무언가 뜨거운 물건에 대인 사람처럼 화들짝 놀라며 지훈을 쳐다보았다. 그러고는 그답지 않게 당황하며 말을 했다.

- 그게 말야. 살인 사건이 일어났어. 공항에서.

- 그거야 강력계에선 자주 있는 일인데요.

- 그렇지. 암. 그렇지.

지훈의 말에 고 형사는 뭔가를 감추는 듯한 기색이 역력했다. 멀리서 조 반장과 얘기를 나누던 박 형사가 지훈에게 다가와 말했다.

- 공항에서 똑같은 수법으로 당한 시체가 발견됐어.

- 네? 그럼...

- 한 축은 여전히 활동을 하는 거란 얘기지.

- 그럼 출동해서...

- 아니. 이번엔 고 형사랑 내가 파트너가 되어서 출동할 거야.

원래 형사의 파트너 관계는 한 사건이 끝났다고 해서 종결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 형사는 고 형사와 파트너가 되어 출동을 하겠다는 것은 지훈이 탐탁지 않거나 뭔가 문제가 있을 때일 뿐이었다.

- 왜죠? 제가 뭘 잘못했나요?

지훈은 의아한 표정으로 박 형사에게 물었다. 박 형사는 지훈의 팔을 잡고 밖으로 이끌었다. 박 형사는 경찰서 밖 주차장에서 담배를 꺼내 지훈에게 건네주었다. 지훈은 담배를 입에 물었다. 박 형사는 지훈의 담배에 불을 붙여주며 말했다.

- 놀라지 마. 새벽에 발견된 시체의 신원이 작은 박, 너하고 관련 있는 사람이야.

지훈은 그 말에 박 형사를 쳐다보았다. 박 형사는 여전히 담담한 말투로 말을 이었다.

- 큐레이터 임혜연. 자네 처형으로 알고 있는데...

지훈은 그 말에 충격을 받았다.

- 네? 처형은 영국으로 간다고 했었는데요?

- 아시아나 영국행 예약자에서 확인을 했지. 근데 가지 않았나 봐. 아니 어쩌면 못 간 걸 수도 있지. 작은 박. 안 된 얘기지만, 이번 일에서 너는 손을 떼야겠다. 가족 관계 일은 빠지는 게 불문율이잖아.

- 그래도 박 형사님.

- 반장하고 얘기는 해 놨어. 당분간 정보계에 가서 있어.

- 저의 처형입니다.

- 자네 맘 다 알고 있어. 내 와이프 그렇게 됐을 때, 나도 미친 듯이 지랄을 했는데, 생각해 보니까 빠지는 게 맞았어. 내가 확실히 잡을 테니까 잠깐 거기 가 있어라.

박 형사는 지훈의 어깨를 툭툭 친 후 안으로 들어갔다. 지훈은 이 사실을 아내에게 어떻게 알려야 하나 고민스러웠다. 임신 중인 아내가 분명히 놀랄 것이다. 그렇다고 알리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어차피 처형의 장례를 치러야 하는데, 처형의 유일한 혈육은 아내 외에는 없기 때문이었다.

지훈은 담배를 끄고 안으로 들어가서 박 형사에게 다가갔다. 박 형사는 고 형사와 얘기를 나누며 출동 준비를 하고 있었다. 박 형사는 지훈을 보고는 고 형사에게 눈짓을 하여 먼저 나가게 한 후 지훈을 쳐다보았다.

- 어떻게 죽었습니까?

- 음... 눈이 없어졌다는군.

지훈이 침묵을 하자 박 형사는 같이 침묵을 했다. 그러고는 시계를 한 번 보더니 지훈의 어깨를 두드렸다.

- 갔다 와서 얘기하자구.

박 형사가 밖으로 나가자 지훈은 늘어진 걸레처럼 의자에 주저앉았다. 지훈은 조 반장에게 얘기를 하고 밖으로 나왔다.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어느 때보다 무거웠다. 지훈의 머릿속에는 아내에게 어떻게 얘기해야 하나 하는 것만 가득 차 있었다. 임신 중인 아내가 받을 충격을 생각하니 도저히 입이 떨어질 것 같지 않았다. 지훈은 자신의 집 앞에서 서성거렸다. 이 시간에 집 앞에 있는 것은 지훈에게도 낯선 일이었다. 지훈은 용기를 내어 집 초인종을 눌렀다. 안에서 '누구세요?'하는 소리가 들리자 지훈은 마치 큰 잘못을 저지른 아이처럼 깜짝 놀란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 어? 이 시간에 웬일이에요?

문을 열고 나오는 혜민을 보며 지훈은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

- 괜찮아?

뜬금없는 지훈의 말에 혜민은 놀란 토끼눈을 하고는 지훈을 보았다.

- 갑자기 무슨 소리에요?

지훈은 혜민을 보자 아까는 느끼지 못했던 슬픔이 밀려왔다. 지훈이 낮게 한숨을 쉬자 혜민이 지훈의 손을 이끌며 안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 무슨 일 있어요?

지훈의 안색이 좋지 않자 혜민은 지훈을 걱정했다. 그런 혜민이 지훈은 불쌍하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였다.

- 놀라지 말고 들어. 알았지?

지훈은 마음을 다 잡고 혜민에게 말했다. 혜민은 지훈의 말에 겁을 먹었는지 이미 놀란 표정이었다.

- 무... 무슨 일인데요?

지훈은 잠시 주저했다. 아이도 아이지만, 이 일로 인해 혜민이 상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지훈이 주저하자 혜민은 지훈의 손을 잡고 말했다.

- 다 괜찮아요. 말해 봐요. 무슨 일이에요?

혜민의 따뜻한 손에 지훈은 긴장이 조금 풀어졌다. 지훈은 혜민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 오늘 공항에서 시신이 한 구 발견되었대.

집에서는 자기가 놀란다면서 밖에서 있던 얘기를 한 번도 꺼낸 적이 없는 지훈이 갑자기 사건에 대해 얘기를 하자 의아한 눈초리로 지훈을 보았다.

- 우리 팀과 관련된 일이어서 다른 형사들이 모두 출동했어.

- 그 뉴스에 나왔던 사건이에요? 범인을 잡았다면서요?

지훈은 고개를 끄떡이고는 뒷말을 이었다.

- 그게 어쩌면 다른 사람의 소행일지도 몰라. 그런데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지훈은 혜민의 손을 꽉 잡으며 말을 했다.

- 이번에 발견된 시신이... 처형이야.

혜민은 지훈의 말을 잘못 들은 게 아닌가 하고 지훈을 보며 되물었다.

- 누... 누구요? 어.. 언니 말하는 거예요?

지훈이 고개를 끄떡이자 혜민은 고개를 저었다.

- 아닐 거에요. 얼마 전까지 같이 있었잖아요. 그죠? 당신은 형사니까 아니라는 걸 알고 있잖아요.

혜민은 지훈의 손을 끌고 밀며 지훈에게 말했다. 지훈은 그런 혜민이 못 견디게 불쌍하게 느껴졌다.

- 당신은 왜 안 갔어요? 당신 팀 사건이라면서요?

- 가족은 수사에 참여할 수 없어.

- 아닐 거예요. 언니는 지금 영국에 있어요.

그러더니 혜민이 핸드폰을 꺼내 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기에서는 '전화기가 꺼져 있어...'하는 말이 나왔다. 혜민은 믿지 못하겠다는 듯이 종료 버튼을 누르고 다시 전화를 걸었다. 그런 행동을 몇 차례 반복하다가 핸드폰을 바닥에 던졌다.

- 아니잖아요. 언니가 왜, 왜?

혜민은 무너지듯 자리에 주저앉았다. 지훈은 그런 그녀를 끌어안았다. 혜민은 울기 시작했다. 지훈의 품에 안겨서 비에 젖은 새처럼 몸을 떨며 울었다. 지훈은 그런 그녀에게 어떤 위로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안아주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한동안 지훈의 품에 안겨 울던 혜민은 어느 정도 감정을 추슬렀다. 지훈은 그런 그녀를 묵묵히 쳐다보았다. 혜민은 지훈을 보자 퉁퉁 부은 눈에서 다시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 당신이 날 지켜줄 거죠?

혜민의 말에 지훈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 지옥에 가더라도 당신하고 아이는 지킬 거야.

- 고마워요.

지훈은 언니의 죽음으로 인해 혜민이 받은 충격이 이렇게 심할 줄은 몰랐다. 언니의 죽음이 마치 자신의 죽음과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살인 사건 피해자 가족에게 나타나는 증상 중 가장 심각한 증상이기 때문이었다. 이럴 때는 그 사람의 마음을 이해해 주고, 보듬는 것 외에는 없다는 것을 그는 배우기도 했고, 느끼기도 했다. 지훈은 죽은 처형보다 지금 심적으로 불안정한 혜민이 더 걱정되고, 불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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