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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계(逐界)-쫓겨난 이들의 세계-8화 (8/309)

축계(逐界) - 쫓겨난 이들의 세계 - 1장 - 2. 또 하나의 죽음(3)

그러더니 다들 크게 웃으며 현장에서 빠져나갔다. 서 근처 돼지갈비 집에 들어가자 조 반장이 크게 소리쳤다.

- 이모! 오늘 우리 다들 죽자고 마실 거니까 푸짐하게 가져다주쇼!

이모라고 불린 할머니가 밖으로 나오면서 욕을 하며 말했다.

- 썩을 것들. 경찰이라는 놈들이 범인은 안 잡고 술이 쳐 마시고.

할머니의 욕에 익숙한지 조 반장은 넉살 좋게 웃으며 말했다.

- 범인을 잡았으니까 마시죠.

그러면서 형사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 오늘 들어갈 생각 마라.

그러자 고 형사가 껄껄 웃으며 말했다.

- 우리가 언제는 들어갔습니까? 집에서 실종 신고할지도 모르겠네요. 하하하.

고 형사의 말에 분위기가 더 풀어졌다. 할머니는 기본 안주와 맥주잔을 놓으며 말했다.

- 범인 잡았다구?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네. 근데 누가 잡았어?

그 말에 고 형사가 걸걸한 목소리로 말했다.

- 누구긴 누구겠습니까? 명탐정 박 형사님이시죠.

할머니는 박 형사를 한 번 보고 말했다.

- 저 썩을 것은 범인을 잡고도 왜 인상을 쓰고 있어. 내 기분이다. 안주 서비스로 줄 테니까 한 번 많이 처먹어 봐.

할머니의 말에 다들 '와~'하고 박수를 쳤다.

- 어이, 막내. 여긴 술은 셀프야. 냉장고 가서 쓸어 와.

고 형사가 지훈에게 말하자 지훈은 벌떡 일어나서 품에 안을 수 있을 만큼 술을 가져왔다. 그 모습을 보고 고 형사는 놀라는 척 하며 말했다.

- 작은 박! 술 좀 가져올 줄 아는데?

고 형사는 능숙하게 병뚜껑을 숟가락으로 따며, 조 반장부터 술을 따르려고 했다. 그러자 조 반장은 손을 막으며 말했다.

- 오늘 주인공은 박 형사 아니냐. 그러니까 박 형사 먼저 따라야지.

고 형사는 박 형사에게 술병을 가져갔으나 박 형사는 거부하며 말했다.

- 그래도 반장님 먼저 따라야지.

조 반장은 박 형사를 흘끗 보더니 자신 앞에 놓인 병뚜껑을 입으로 따며 말했다.

- 따지긴. 내가 따라 줄게. 고 형사 넌 애들 술잔 채워.

술병을 들고 있던 고 형사는 무안해 하며 엉거주춤하게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는 지훈을 보며 말했다.

- 박 형사랑 파트너니까 너도 주인공이잖아. 그러니까 니가 받아라.

그 말에 지훈은 사람들의 눈치를 보았다. 자기마저 거부하면 분위기가 어색할 것 같아서 잔을 들고 술을 얼른 받았다. 그리고는 술병을 들고는 서열 순으로 따르기 위해 멀리 있는 최 형사 쪽으로 가려고 했다.

- 됐어. 언제 여기까지 와. 거기나 따라.

최 형사는 손짓을 하며 지훈에게 말했다. 그러자 다들 서로의 옆 사람에게 술을 따라 주었다. 술잔이 다 차자 조 반장이 자리에서 일어나서 한 마디 했다.

- 아무튼 고생 많았다. 상황 종료는 내일 가봐야 알겠지만, 증거가 명확하니까. 자! 오늘 고생한 박 형사를 위해 건배. 먹고 죽자!

그러자 형사들은 모두 '먹고 죽자!'를 외쳤다. 할머니는 불판 위에 돼지 갈비를 놓으며 한 마디 했다.

- 뒈질려면 왜 먹어? 먹고 살아야지!

할머니의 말에 다들 '와~'하고 웃음이 터졌다. 그 다음부터는 정말 다들 죽기 살기로 먹고 마셨다. 지훈은 첫 회식 때 맥주잔에 소주를 따라 마시는 걸 보고는 혀를 내둘렀지만 어느새 이런 분위기에 익숙해졌다. 지훈은 막내답게 테이블을 살피며 술이 떨어질 것 같으면 얼른 냉장고에 가서 술을 가져왔다.

- 작은 박! 그만 하고 너도 마셔. 마시고 싶은 놈이 가져다 먹을 거니까.

고 형사가 지훈에게 말하면서 지훈의 잔에 술을 채웠다. 그리고는 지훈의 옆에 앉으며 말했다.

- 형님하고 다니기 힘들지?

- 아닙니다.

- 아니긴. 형님이 좀 깐깐해야지. 성격 더러운 건 아마 대한민국 형사 중에 최고일 거다.

- 네? 네.

- 형수님 돌아가시고 저 형님 성격이 더 더러워진 것 같아.

고 형사는 담배에 불을 붙이며 말했다. 지훈은 박 형사의 가정사에 대해 대강 알고 있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 니가 잘 보살펴드려. 잘 따라다니며 배우고.

- 네. 알겠습니다.

그 때 조 반장이 화장실 갔다 들어오면서 고 형사 옆에 털썩 앉으며 말했다.

- 술집에서 막내 군기 잡냐?

고 형사는 조 반장을 보고는 손사래를 쳤다.

- 아니에요. 형님 아니 반장님은 왜 저만 미워하세요.

- 짜식. 오랜만에 형님 소리 들어본다. 옛날에 시체보고 눈물, 콧물 줄줄 흘리던 녀석이...

- 에이. 막내 앞에서 쪽팔리게.

고 형사는 술을 벌컥 들이켜다 사래가 들었는지 콜록거렸다. 조 반장은 고 형사의 등을 쳐주며 말했다.

- 그 때가 좋았다. 씨발.. 감투 쓰니까 에이...

고 형사의 사래가 어느 정도 진정되자 두 사람은 옛 얘기에 빠졌다. 그 때 박 형사가 지훈의 뒤로 와서 어깨를 툭툭 쳤다. 지훈은 박 형사를 돌아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박 형사는 입에 담배를 물고 밖으로 나갔고, 지훈은 박 형사를 따라 나갔다. 밖은 봄밤의 상쾌함이 있었다.

- 들어가 봐야지. 와이프 임신도 했는데.

박 형사는 특유의 무뚝뚝한 말투로 얘기를 했다.

- 아닙니다. 저만 빠질 수 없죠.

- 들어가 봐. 지금 잘못하면 평생 후회해.

- 괜찮습니다. 오늘 처형하고 같이 지낸다고 아까 전화가 와서요.

지훈의 대답에 박 형사는 묵묵히 담배만 빨았다. 지훈은 박 형사 옆에 서서 있다가 먼저 말을 꺼냈다.

- 어떻게 아셨습니까?

지훈의 말에 박 형사는 담배꽁초를 멀리 던지며 말했다.

- 어떻게 알긴. 경찰 짬 먹으면 알게 되지.

- 네?

- 범인은 열심히 보면 보여. 열심히 보고 그 안에서 증거를 찾아내면 되지.

- 네...

지훈은 박 형사의 대답에 실망했다. 뭔가 그만의 방법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 지훈의 표정을 읽었는지 박 형사는 말을 덧붙였다.

- 대충 보면 아무것도 몰라. 너 이 술집에 의자가 몇 개인 줄 기억하냐? 수저통에 있는 숟가락 개수와 젓가락 개수. 집중하고 기억하면 되지. 나처럼 기억을 못하면 적어 놓으면 되지.

지훈은 박 형사의 말에 충격을 받았다. 평소 박 형사가 메모하는 것을 자주 본 지훈은 그저 정보를 조합하기 위해 메모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작은 단서 안에서 무언가를 찾아내기 위한 방법이었던 것이었다. 지훈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박 형사는 뜬금없는 얘기를 했다.

- 한 사건의 범인은 잡혔는데, 다른 사건 범인이 오리무중이야.

지훈은 박 형사의 말에 반문을 했다.

- 아까 그 놈이 범인이지 않습니까?

- 맞아. 그 놈이 범인이지. 그런데 우리가 착각했던 게 있어. 두 사건을 같은 것으로 보고 범인을 하나로 생각한 거지.

- 그럼 공범?

- 아니. 별개의 사건.

박 형사는 다시 담배를 물고 말을 이었다.

- 아직 한 축은 감도 안 와서 입 다물고 있는 거야. 아무튼 너도 당분간은 입 다물고 있어.

- 네. 그런데 다른 사건 범인은 이 일을 알고 있을까요?

- 모르지. 내일 그 놈 족친 거 나와 보면 알겠지.

- 네...

- 근데 다른 건은 냄새가 안 나. 그 녀석은 심한 구린내가 났는데...

박 형사는 알 듯 모를 듯한 말을 남기고는 지훈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 들어가자. 너무 심하게 달리진 말고.

- 네. 선배님도 조금만 드세요.

- 아직도 선배님이냐? 니 편할 대로 해라.

박 형사는 지훈을 남기고 안으로 들어갔다. 지훈은 박 형사가 남긴 말을 곱씹어 보았다.

- 냄새가 안 난다. 무슨 냄새가 나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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