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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계(逐界)-쫓겨난 이들의 세계-7화 (7/309)

축계(逐界) - 쫓겨난 이들의 세계 - 1장 - 2. 또 하나의 죽음(2)

환한 햇살이 쏟아지는 한가한 오후였다. 머리를 뒤로 묶은 채 살랑거리는 봄바람과 같은 걸음걸이로 꽃집 문을 연 노란색 교복을 입은 한 여학생이 꽃가게 안으로 들어 왔다. 주변의 꽃보다 화사하게 웃으며 꽃집 아저씨에게 인사를 했다. 맘씨 좋아 보이는 아저씨는 이 앞을 지나가는 많은 여학생들 중 한 명이라는 걸 알았다. 여학생에게 환하게 웃으며 다가왔다.

- 예쁜 학생. 뭐 찾는 거라도 있어요?

꽃집 아저씨의 말에 여학생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 노란 장미요. 엄마 생신인데 엄마가 노란 장미를 좋아하셔서요.

밝고 새침한 목소리를 듣자 꽃집 아저씨는 예의 맘씨 좋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 노란 장미라... 아! 노란 장미는 이 안에 있는데. 이리 들어와서 골라 봐요.

여학생은 꽃가게 안쪽으로 들어갔다. 밖에서 보는 것과 달리 안 쪽에는 여러 가지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 여기 예쁜 꽃이 많네요.

여학생의 말에 아저씨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 그럼요.

여학생은 이런저런 꽃들을 구경하며 아저씨 뒤를 따라 들어가다가 아저씨가 멈춰선 곳으로 향해 갔다.

- 아! 여기 노란 장미가 있네요.

- 네. 그런데 여기 꽃들이 예쁘지요?

아저씨의 말에 여학생은 밝게 웃으며 말했다.

- 네. 다 예쁜 것 같아요.

여학생이 노란 장미를 허리 숙여 볼 때 꽃집 아저씨는 여학생 뒤로 와서 혼잣말 하듯 말했다.

- 여기 꽃들은 다 예쁘지요. 제가 정성들여 가꾸니까요. 그런데 학생보다는...

꽃집 아저씨는 흰 손수건으로 여학생 입을 막으며 말을 이었다.

- 그런데 학생보다는 덜 예쁘지요. 오늘은 학생을 꽃꽂이 재료로 쓰고 싶네요.

여학생은 입이 막힌 채 꽃집 아저씨를 쳐다보다가 정신을 잃었다. 꽃집 지하실은 지하실답지 않게 무척이나 환했다. 꽃집 아저씨는 침대에 손발이 묶인 여학생을 내려다보았다.

- 예쁜 꽃은 예쁠 때 잘 보존하지 않으면 안 돼요.

여학생은 아무 반응이 없었지만 꽃집 아저씨는 혼자 무엇이 그리 즐거운지 연신 떠들어대며 콧노래까지 불렀다.

- 예쁜 건 잠깐이에요. 영원히 예뻐지는 건...

그는 수술용 도구를 정리하며 이렇게 중얼거렸다. 그리고는 정신을 잃은 여학생의 교복을 벗겨내며 벗기는 데 걸리적거리는 것들은 칼로 잘라내었다. 그리고는 브래지어와 팬티만 입은 여학생의 하얀 몸매를 보면서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 이렇게 예쁜 몸은 영원히 지켜야 해요. 남자들에게 짓밟히고, 늙고 추해지면 안 되는 거에요.

그는 칼을 브래지어의 가운데에 걸고, 잘라 벗겨냈다. 그리고는 배에 칼을 대었다. 그때 멀리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꽃집 주인은 그 소리를 무시한 채 자신의 일에 집중하려고 했다. 그러나 문 두드리는 소리가 더욱 거세졌다. 꽃집 주인은 짜증난 표정으로 칼을 내려놓았다. 얼른 저 불청객을 쫓아내고 자신의 즐거움을 찾겠다는 마음으로 지하실에서 나와서 잠시 문 쪽으로 보았다. 웬 남자 하나가 문이 부서져라 두드리고 있었다. 꽃집 주인은 잠시 거울을 보며 표정을 풀며 밖으로 나갔다.

- 잠시만요. 문 부서지겠습니다.

꽃집 주인이 밖으로 나와 '외출 중' 걸쇠를 뒤집어 놓고 문을 열었다.

- 잠깐 화장실 갔다 온 사이에 손님이 오셨는지 몰랐네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온 사람은 박 형사였다. 꽃집 주인의 이런저런 말에 대꾸도 하지 않은 채 이리저리 둘러보기만 했다.

- 그래. 무슨 꽃을 찾으시죠?

박 형사는 꽃집 주인의 물음에 대답을 하지 않은 채 꽃들만 구경을 하다가 갑자기 질문을 했다.

- 여기서 꽃집 오래 하셨나요?

꽃집 주인은 뜻밖의 질문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 그럼요. 10년은 넘었는데요.

박 형사는 그 대답에 피식 웃으며 꽃향기를 맡으며 말했다.

- 그렇군요.

- 그런데 무슨 꽃을 사러 오셨는지. 오늘 들어온 프리지아가 아주 좋답니다. 사모님께 선물해 드리면 좋을 겁니다.

박 형사는 프리지아를 한 번 흘끗 보더니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 그것보다 노란 장미가 예쁠 것 같은데?

꽃집 주인은 그 말에 잠시 멈칫 하다가 대답을 했다.

- 노란 장미는... 저 안 쪽에...

박 형사는 안으로 돌아서는 꽃집 주인의 뒷목을 꽉 부여잡고 총을 머리가 가져다 대었다.

- 안에 있겠지.

- 왜.. 왜 이러세요?

- 어디 있냐?

- 네?

- 아까 들어온 여학생은 어디 있지?

그 말에 꽃집 주인은 발버둥을 치며 소리쳤다.

- 그... 그게 무슨 소리에요?

'탕'

그 말에 박 형사는 꽃집 주인 대퇴부를 향해 총을 쐈다.

- 헉..

꽃집 주인이 다리를 부여잡고 자리에 쓰러졌다. 박 형사는 그의 목에서 손을 떼고 총을 겨눈 채 말했다.

- 아까 들어온 여학생은 어디 있냔 말야!

- 왜 이래. 이 새꺄. 난 몰라.

박 형사는 다시 같은 다리를 향해 총을 발사했다.

- 대퇴부는 동맥이 지나가는 자리라서 5분 안에 치료를 안 하면 죽을 지도 몰라.

- 개새끼. 나... 난 몰라.

- 이제 3분 남았네.

꽃집 입구에는 경찰차와 기동대 차와 구급차로 가득 찼다. 들것에 실려 나오는 꽃집 주인은 박 형사를 노려보았다. 박 형사는 그런 그를 무시하고 다음에 나오는 들것 쪽으로 갔다. 앳된 여학생이 아직 의식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 괜찮은 건가?

박 형사가 응급 대원에게 묻자 응급 대원은 고개를 끄떡이며 말했다.

- 프로포폴에 취해 있는 것뿐입니다. 곧 깨어나겠죠.

- 그래? 잘 보살펴 주라고. 죽을 뻔 한 애니까 신경 쓰고.

박 형사는 그렇게 말하고는 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지훈에게 말을 했다.

- 작은 박.

- 네. 박 형사님.

- 저놈이 나한테 칼 흔든 거다. 너도 봤지?

- 네?

- 저 녀석이 나한테 칼을 흔든 거라고. 그래서 내가 총을 쏜 거고. 그걸 니가 목격한 거야. 그렇게 보고서에 쓰면 돼. 알았어?

- 네? 네. 알겠습니다.

박 형사는 감식반으로 나온 임 박사를 찾아갔다. 임 박사는 커다란 보관함에 잘 정리되어 있는 장기를 보고는 혀를 내둘렀다.

- 미친놈이구만. 여기 봐. 이거. 이건 여자 성기야. 이거 봐. 이건 대장이고.

그러다가 박 형사를 보고는 한 마디 했다.

- 자네 한 건 했구만. 저 자식. 딱 봐도 연쇄 살인범인데.

- 잘 조사해 봐줘. 이상한 거 있으면 말해 주고.

- 알겠어. 뭐 딱히 뭔가 있겠어? 증거가 이렇게 명확한데.

- 아무튼.

박 형사가 밖으로 나오자 고 형사를 비롯한 팀원들이 박 형사에게 인사를 하며 다가왔다.

- 박 형사님. 또 독고다이로 뛰신 거예요? 이런 정보 있으면 같이 오셨어야죠. 다친 데는 없으세요?

팀원들의 말에 박 형사는 고개를 한 번 끄떡였다. 멀리서 조 반장이 웃으며 다가왔다.

- 박 형사. 고생 많았어. 고마워. 정말 고마워.

그러다가 조 반장은 피의자 상황의 얘기를 듣고는 크게 웃으며 말했다.

- 그 자식. 칼 들고 흔들었겠구만. 우리 박 형사가 아무한테나 총 쏘는 사람인가!

조 반장의 말에 지훈은 어리둥절했다. 박 형사는 피식 웃으며 지훈을 쳐다보았다. 조 반장의 말에 고 형사가 한 수 더 떴다.

- 쌍칼이라고 들었다고 들었는데요. 작은 박. 쌍칼이었지?

지훈은 고 형사의 말에 고개를 끄떡이고는 팀원들을 돌아보았다. 그러자 고 형사는 지훈의 어깨를 팔로 두르며 말했다.

- 내일 보고서는 본 대로 잘 쓰면 돼. 쌍칼을 흔드는 미친놈을 향해 박 형사님이 용감하게 총을 쏜 걸로. 카우보이급으로만 만들면 돼.

그러더니 팀원들을 향해 돌아서며 말했다.

- 조사는 내일 하면 되니까 오늘 코가 삐뚤어지게 마셔 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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