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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계(逐界)-쫓겨난 이들의 세계-3화 (3/309)

축계(逐界) - 쫓겨난 이들의 세계 - 1장 - 1. 연쇄 살인 사건(3)

- 뇌는 이식이 안 되나?

박 형사의 질문에 임 박사는 어이없이 웃었다.

- 이 사람아. 뇌를 어떻게 이식하나. 뇌가 얼마나 복잡하고...... 아니, 이런 얘기 해봤자 입만 아프니까. 간단하게 말하지. 뇌는 이식이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이식해봤자 소용없는 부분이야.

- 그런데 왜 뇌를 가져갔지?

- 모르지. 프랑켄슈타인이라도 만들려나 보지.

- 그런가?

- 아니 형사라는 사람이 그런 말을 믿나?

- 난 똑똑한 박사님 말이길래 믿었지.

둘 사이의 객쩍은 농담이 끝나자 박 형사는 바닥에 쪼그려 앉아 카펫을 훑어보며 임 박사에게 물었다.

- 그런데 왜 범죄 현장에 왜 시신을 남겼을까, 핏자국 하나도 남기지 않는 범인이?

박 형사의 물음에 임 박사는 아랫입술을 쭉 내밀었다. 그러나 딱히 생각나는 것이 없는지 그냥 말을 꺼냈다.

- 가져가봤자 유기하기도 힘드니까 그랬겠지. 뭘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하나.

- 그럼 왜 이렇게 잘 보이게, 그리고 특이하게 놓았을까?

- 글쎄. 미친놈이니까 그렇겠지.

박 형사는 자신의 입술을 손으로 문질렀다. 그가 무언가 생각할 때면 나타나는 버릇이었다. 이럴 때는 아무도 그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 음. 그런가.

한참을 생각하던 박 형사는 임 박사를 뒤로 하고 사건 현장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사건 현장에 누가 손을 댄 건 아니겠지만, 살인 사건의 현장치고는 너무 깨끗했다. 시신이 있던 자리마저도 핏자국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시신이 기괴하게 꺾인 채 꽂혀 있는 음산한 화병마저도 주변의 작품들과 어우러져 있는 하나의 작품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 예술 작품이란 게 이런 건가? 난 도통 이해가 안 되는군.

박 형사는 철사로 만든 기괴한 조형물을 지나치면서 한마디를 던졌다.

- 박 형사님.

박 형사가 돌아보자 갤러리 관계자와 얘기를 하고 돌아오는 지훈이었다.

- 저 여자가 관장인데요. 피해자는 이 갤러리와 전혀 관련이 없다는데요?

- 무슨 소리야? 그 동안 피해자는 대부분 자신과 관련된 곳에서 발견되었잖아?

- 글쎄요. 관장도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고 하더라구요. 그리고 이곳은 고가의 미술품들이 있어서 CCTV가 곳곳에 설치되어 있는데, 어젯밤에는 모두 작동을 하지 않았다고 하더라구요.

- 경비원은 잠들어 있었을 테고.

- 네. 저 관장하고 경비원을 조사해야겠지만 지난 사건들처럼 별 상관이 없어 보입니다.

- 갈수록 태산이군.

- 혹시 박 형사님.

지훈은 박 형사를 따라 걷다가 자신의 생각을 말하기 위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그러자 박 형사가 걸음을 멈추고 돌아보았다.

- 제 생각에는 이번 사건은......

여기까지 말하자 박 형사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 아니야. 자네가 생각한 걸 나도 생각했는데, 그건 아닌 것 같아.

- 네? 무슨 말이신지......

- 자네가 수사 기록서랑 검사 기록지를 훑어보면서 알았겠지만, 이번 사건은 다른 사건과 연관되는 게 아무 것도 없지?

- 네.

- 그래서 생각한 게 수사의 혼선을 주기 위해서 그랬거나, 아니면 모방 범죄라고 결론을 내렸겠지.

- 네? 네.

박지훈은 자신의 생각을 꿰뚫어보는 박 형사의 모습에 당황했다. 자신이 생각하는 것을 이미 박 형사는 알고 있었던 것이었다.

- 그건 아닐 걸. 수사의 혼선을 주려면 좀 더 확실한 방법을 썼어야지. 그리고 내 생각엔 이 정도의 지능범이라면 좀 더 효율적으로 수사에 혼선을 주려고 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리고 모방 범죄는 더더욱 아니야. 왜냐하면 다른 건 몰라도 범죄 현장을 그대로 모방하기는 힘들어.

- 그렇다면...

- 아마도 필요했겠지. 어딘가에.

- 어디에 필요할까요?

- 음.. 내 생각엔 말야... 무언가를 만드는 것 같아.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는데?

지훈은 박 형사의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 일련의 장기 적출 살인 사건을 곰곰이 되짚어 보면서 한 가지 의문은 한 시신에서 한 가지 장기만 적출한다는 것이었다. 만약 장기 밀매였다면 쓸 만한 모든 장기를 적출했을 것이다. 그런데 범인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지훈은 박 형사의 말에 고개를 끄떡였다.

- 음... 다음은... 어쩌면 사람의 껍질을 벗겨낼지도.

지훈은 박 형사의 말에 잠시 멈칫 했다. 박 형사는 지훈을 돌아보며 말했다.

- 후후. 놀라긴. 그냥 내 생각이야. 이놈이 뭔 짓은 못하겠어.

그렇게 말하고 박 형사는 더 돌아볼 것이 없다는 듯이 문 쪽으로 향해서 걸어갔다.

- 그런데......

박 형사가 갑자기 걸음을 멈추더니 지훈에게 말했다.

- 어쩌면 내 생각이 맞는지도 모르겠군.

박 형사는 수첩을 꺼내 빼곡하게 메모해 놓은 곳에 '신원 미상, 여자'라고 적어 놓았다. 그리고는 임 박사에게 다가가 얘기를 했다.

- 혹시 죽은 사람들 부검은 했나?

장갑을 벗던 임 박사는 박 형사에게 웃으며 말했다.

- 살인사건이 일어나면 다 부검을 하지. 특히 이런 경우에는 미국에 DNA 샘플을 보내서 검사하는데. 뭐 보내서 오는 데까지는 시간이 꽤 걸리지만 말야. 왜 부검에서 뭐가 있나하고?

- 그냥.

- 일단 두 명 검사서가 왔는데 뭐가 없더군. DNA라는 게 사람마다 모두 달라서...

- 알았어.

- 하여간 이 사람도. 어려운 얘기만 하면 고개를 저어.

- 아무튼 피해자들의 유사성이 전혀 없으니까 답답해서 그래.

- 하긴. 모두 여자라는 것 외에는...

그러다가 임 박사는 뭔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박 형사는 임 박사의 특유의 갸웃거림에 그를 쳐다보았다.

- 여자라, 여자. 더 뭔가 있을 것 같은데... 흠흠. 아무튼 내 더 조사해 보고 자네한테 연락을 주겠네.

고민에 빠져 있는 임 박사에게 박 형사는 인사를 하고 지훈과 돌아 나왔다. 지훈 역시 임 박사에게 인사를 했지만, 골똘히 무언가를 생각하는지 건성으로 인사를 받았다.

- 임 박사님은 똑똑하신 분 같아요.

운전대를 잡고 있는 지훈이 박 형사에게 말했다.

- 그런가? 저 인간은 학력이 높아서 맨날 어려운 말만 해대서.

- 뉴욕 경시청에서 오셨다고 들었어요.

- 맞아. 하버든가 어딘가 아무튼 미국에 좋은 대학 나와서 하라는 의사는 안 하고 한국에서 시체나 연구하고 있으니. 내가 저 인간 부모였으면 멱살 잡고 내팽개쳤을 거야.

- 하하하.

- 좋은 놈이지. 이런 나라에서 아까운 인재야.

박 형사는 뭔가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창밖으로 눈을 돌렸다. 그건 이제 눈 좀 붙일 테니 말 걸지 말라는 신호였다. 지훈은 박 형사가 시트에 몸을 푹 넣는 것을 흘끗 보고는 액셀러레이터를 밟으며 본부로 향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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