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계(逐界) - 쫓겨난 이들의 세계 - 1장 - 1. 연쇄 살인 사건(2)
- 오늘까지 몇 명인지 알아?
연쇄살인 사건으로 특별 팀까지 구성되었지만, 여전히 살인범의 행방은 묘연했다. 그 와중에 오늘 아침 또 한 구의 시신이 발견되었다. 조 반장은 몹시 흥분하여 바인더로 책상을 내려치며 소리쳤다.
- 자그마치 일곱 명이야. 일곱 명. 특별 팀이 꾸려지고도 두 명이나 더 죽었어. 이러고도 특별 팀이야!
조 반장의 말에 형사들이 고개를 숙였다.
- 박 형사. 넌 맨날 어딜 그렇게 쑤시고 다니면서 실마리 하나 못 건져와?
조 반장은 베테랑 박 형사에게 퍼부었다.
- 죄송합니다.
- 이게 죄송 가지고 될 일이야? 그리고 최 형사. 너는 뭐 하는 새끼야! 잡으라는 범인은 안 잡고 애꿎은 사람은 왜 끌고 와서 뒤집어 놔. 언론에서 냄새 맡았는지 파고 들어온다잖아.
최 형사는 고개를 들지 못했다.
- 너희들 다 똑같은 새끼들이야. 당장 나가서 범인 잡아와. 당장!
조 반장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재떨이를 들었다. 그러자 형사들이 우르르 몰려 나갔다.
- 박 형사. 넌 남아!
형사들이 수군거리며 밖으로 나가고 나자 조 반장과 박 형사만이 남았다.
- 미안허다.
조 반장이 담배를 꺼내 박 형사에게 건네며 말했다. 박 형사가 담배를 받아 입에 물자 조 반장이 불을 붙여주었다.
- 씨발. 더러워서 못해 먹겠다. 오늘 들어가서 국장한테 쪼인트 까여가며 오늘 내로 못 잡으면 모가지라고 얘기 듣는데. 좆같아서.
박 형사는 묵묵히 조 반장의 말을 들었다.
- 너한테는 그렇게 말하면 안 되는데, 아까는 화가 너무 나서.
- 괜찮습니다.
박 형사가 대답하자 조 반장이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 짜식. 삐졌냐? 존댓말은.
조 반장은 친구인 박 형사에게 내심 미안했다. 얼마 전까지 같은 형사였고, 또한 경찰에 들어온 것도 거의 비슷했기 때문이다. 비록 자신이 박 형사보다 실적이 좋아 진급이 빠르긴 했지만, 능력적인 면에서는 조 반장은 자신이 박 형사보다 뒤떨어진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 아까는 애들이 있어서......
- 그럼 가보겠습니다.
- 기분 풀어. 박 형사. 저녁 때 소주나 한 잔 하자고.
박 형사가 나가자 조 반장은 가슴이 답답했다.
- 에이. 썅. 상전을 하나 모시고 사네.
박 형사가 밖으로 나오자, 다른 형사들이 우르르 몰려와서 한 마디씩 하기 시작했다.
- 형님이 이해하슈. 저 양반 원래 성격이 더럽잖아. 그리고 운 좋아서 형님보다 진급 빨리 했으면서 왜 대 놓고 지랄이야.
중간 고참격인 고 형사의 말에 박 형사가 조용히 말했다.
- 고 형사, 말조심해라.
- 형님. 사실 그렇지 않습니까. 지난 번 특진 건도 그렇고.... 컥...
박 형사는 고 형사의 목을 움켜잡았다.
- 닥치라고 했지.
박 형사는 움켜잡았던 손을 풀며 말했다.
- 한 번만 더 그따위로 지껄였다간 가만히 안 둔다. 조 반장은 우리 팀의 리더야.
고 형사는 목을 문지르며 뭐라고 말을 하려다 박 형사의 날카로운 눈을 보며 입을 다물었다.
- 형님도 참..
- 작은 박. 가자.
박 형사는 자기 파트너인 박지훈을 불렀다. 박 형사는 자신의 파트너로 배정된 신참내기 형사를 작은 박이라고 불렀다. 그만 그렇게 부른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모두 그를 작은 박이라고 불렀다. 강력 1반에 박 씨는 박 형사 혼자였는데, 지훈이 오고 난 이후 박 씨가 두 명이 되어 기존의 박 형사는 박 형사라고 부르고, 지훈은 늦게 들어온 신참이라는 의미에서 작은 박이라고 불렀던 것이다.
박 형사는 지훈을 작은 박이라고 부르면서도 한편으로는 그것이 조금 어색했다. 그도 그럴 것이 지훈은 키가 186센티미터에 몸무게가 90킬로그램 정도 나가는 거구였기 때문이다. 또한 자신이 가보지 못한 경찰 대학 출신에 유도, 태권도, 검도를 합치면 10단이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하지만 지훈은 박 형사가 작은 박이라고 불러주면 좋아했고, 또 그를 무척이나 잘 따랐다. 박 형사 역시 지훈이 항상 영리하게 일을 잘 처리하는 것을 보면서 그를 내심 맘에 들어했다.
- 형님, 밤에 소주나 한 잔 합시다!
박 형사가 지훈과 같이 차로 갈 때, 뒤에서 고 형사의 목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박 형사와 지훈이 떠나는 것을 보고 고 형사는 바닥에 침을 퉤 뱉으며 주절거렸다.
- 에휴. 저 고집불통.
차 안은 침묵만이 흘렀다. 방금 전 특별 팀 사무실 일 때문이기도 했지만, 밖으로 나와서 고 형사와의 모습이 지훈에게는 너무 낯설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같이 지내면서 단 한 번도 냉정을 잃지 않았던 박 형사였기에 지훈은 더욱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 이번 건은 어디야?
박 형사의 갑작스런 질문에 지훈은 당황하며 말했다.
- 네? 네. 인사동 그레이스 갤러리입니다.
- 쫄기는.
- 네? 아..네...
- 얼른 가자.
인사동 갤러리에는 바리케이드가 쳐져 있었다. 이미 감식반들이 와서 부산하게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있었다.
- 어이. 박 형.
임 박사 주변 정리를 하다가 박 형사를 보고 불렀다.
- 똑같아. 아주 똑같아.
지훈은 그가 하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있었다. 그 말을 듣고 지훈은 구석에 있는 갤러리 관계자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지훈이 그 쪽으로 가는 모습을 보고는 임 박사는 박 형사에게 진저리가 난다는 듯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 기가 막힌 솜씨야. 절개부터 봉합까지. 하다못해 주변 사물과 어울리게 시신을 처리한 것까지. 아주 지독한 편집증을 가진 놈이야.
임 박사의 말에 박 형사는 고개를 끄떡였다. 지난번까지 발견된 시신들 역시 그 배경과 어울리게 시신이 놓여 있었다. 여대에서 발견된 시신은 시신을 뒤집어 놓은 채, 그녀가 생전에 먹던 음식을 먹는 자세로 고정해 놓았다.
- 피해자 신원은?
- 몰라. 전혀 흔적이 없는 사람이야.
- 흔적이 없다고?
- 글쎄 정보과에서 좀 더 조사해 보면 알겠지만, 일치하는 사람이 없어.
- 그럼 외국인인가?
- 뭐 그럴 수도 있지만, 아무튼 현재까지는 신원 확인이 불가능 해.
- 별 다른 건?
- 이번 건 다른 거하고 달리 좀 특이하지.
임 박사가 시트가 덮여 있는 시신 근처로 갔으나 박 형사는 그냥 그 자리에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 안 봐?
- 봐서 뭐 해. 당신이 알아서 하겠지.
- 형사란 사람이 시체 보는 걸 싫어해서야. 원.
임 박사는 다시 박 형사 옆으로 다가 왔다. 박 형사는 옆에 있는 조각품을 보면서 말했다.
- 그래. 이번엔 뭐가 없어졌는데?
- 더 부검을 해 봐야 알겠지만, 이번엔 뇌 쪽이야. 봉합술도 기가 막혀.
- 뇌?
- 시신 몸통 쪽에는 손도 안 댔어. 머리 쪽에 봉합을 한 게 있는데. 아주 매끈해.
- 그런데 그게 뭐가 특이하지?
- 어허. 척하면 척인 사람이 왜 갑자기 무뎌졌을까?
- 딴소리 말고 뭐가 어쨌다는 거야?
- 참나. 그동안 사라진 건 모두 이식 가능한 장기들이었잖아. 그런데 이번엔 뇌라고. 그러니까 그동안 생각해 왔던 거랑 다른 것이지.
사실 그동안 수사 특별 팀에서는 전문적인 의학 지식을 가진 범인이 장기 밀매를 위해 살인을 계속 하고 있다고 수사를 해 왔었다. 다만 시신을 남겨 놓는 방식이 독특할 뿐, 시신에서는 이식 가능한 장기가 적출되었고, 그 적출한 후 말끔하게 봉합까지 해 놓았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런 장기들이 아니라 뇌가 사라진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