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축계(逐界)-쫓겨난 이들의 세계-1화 (1/309)

제 1 장 깨닫지 못한 깨달음.

1. 연쇄 살인 사건

화창한 5월의 화려함이 사그라지고 밤에는 옷깃을 여미게 하는 바람이 불었다. 큰 사거리라고는 하지만, 유흥가가 아니어서 갤러리 앞 도로는 몇몇 차들만이 신호를 기다리며 서 있을 뿐 사람들의 흐름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막 재개발이 시작된 건너편에는  흉물스러운 콘크리트 구조만이 있었고, 이에 뒤질세라 길을 마주하고 있는 갤러리 역시 2000년대의 정서라고는 볼 수 없는 그로테스크한 골격을 갖고 있었다.

입구부터 왠지 음산하였고, 입구를 들어서면 누군가 굉장한 편집증을 가진 이가 공간을 설계한 것처럼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정사각형의 로비가 있었다. 보기에 따라서는 답답하고, 왠지 어색한 모습이었다.

로비 안은 일반적인 갤러리와 다르게 상당히 기온이 낮았다. 한밤중에도 에어컨을 틀어놓은 듯 반팔을 입고 들어온 사람이라면 자신도 모르게 몸을 움츠릴 정도였다.

그 곳으로 한 여인이 몽유병 환자처럼 걸어들어갔다. 경비실 안에 경비는 그런 여인을 보지 못했는지 아무런 반응이 없었고, 여인은 CCTV가 있었지만 아무 거리낌 없이 안쪽으로 걸어갔다.

정사각형 로비에서 다른 전시실로 가는 통로는 상당히 비좁았다. 다른 정사각형에 공간은 초현실적 그림들이 걸려 있는 좁은 통로를 지나야 도달할 수 있는 곳이었다.

이 갤러리는 건축가의 의도인지 아니면 갤러리의 의도인지는 모르지만, 한 전시관에 가기 위해서는 두 사람이 겨우 통과할 수 있는 좁은 공간을 지나야 조각품이나 설치 예술품을 볼 수 있었다.

이런 공간이 다섯 곳이므로 좁은 통로가 네 곳이 있었다. 좁은 통로에는 기괴하다고 할 수 있을 만한 그림들이 걸려 있었고, 그 통로를 따라 나오면 각각 하얀색, 노란색, 분홍색, 연두색, 검은색 공간이 있었다.

그리고 그 공간에는 보통 사람들이라면 눈살을 찌푸릴 것 같은 기괴한 설치 예술품들이 놓여 있었다.

분홍색 방 안에는 거대한 화병이 한 놓였다.

온통 붉은 색으로 칠해진 화병에는 사람이 거꾸로 박혀 두 팔로 화병 입구를 힘겹게 부여잡고 있는, 그리고 그 화병 안으로 들어가지 않으려는 듯이 두 다리를 활짝 벌리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두 다리 사이가 관람자의 눈에 적나라하게 보이는 다소 민망한 모습이었다. 더구나 다리 사이의 여성의 성기가 너무나도 사실적으로 보였다.

그리고 벽 쪽으로는 입이 찢어진 여인이 누런 이를 드러내고 비웃은 거대한 두상이 있었고, 그 옆으로는 거대한 조개 안에 여성의 성기만 크게 확대해 놓은 작품이 놓여 있었다.

특히나 각 작품마다 핀 조명이 설치되어 더욱 기괴해 보였다. 초현실적이고, 그로테스크한 작품들이라 누가 그것을 살까 고민되기보다 그 아래 놓인 작품 가격이 사람들의 입을 벌어지게 만들 만한 것들이었다.

작품과 작품 사이에는 넓은 공간이 있었다.

그 공간 바닥에는 한 여인이 옷이 모두 벗겨진 채 반듯하게 누워 있었고, 그 여인 옆에는 한 사람이 진지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바닥에 누워 있는 여인은 한눈에 봐도 대단한 미인이었다. 몸 어디에도 군살 하나 없이 탄탄한 몸매였고, 이목구비 또한 아주 또렷했다.

그녀를 지켜보고 있는 한 사람은 날씬한 몸매가 그대로 드러나는 차이나식 옷을 입고 있는 여인이었다. 그리고 조금 후에 한 사람이 그녀의 곁에 섰다.

그는 한눈에 보기에도 키가 엄청나게 큰 거구의 남자였다. 그 남자는 성인용 인큐베이터와 같은 이동식 침대를 끌고 왔다.

인큐베이터 같은 침대는 옆에 여섯 개의 둥근 창문이 있었다. 그것은 세균 배양이나 인체 감염이 있을 수 있는 바이러스 실험을 할 때 쓰는 유리관에 손만 넣을 수 있는 것이었다.

그 아래에는 커다란 실린더가 놓여 있었다. 에어컨이 켜져 있는지 낮은 바람 소리만이 들려왔다.

두 사람은 여전히 침묵한 채 누워 있는 여인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여인은 낮은 숨을 쉬는 듯 가슴이 살짝 오르락내리락 할 뿐 전혀 움직임이 없었다.

- 아직 인가요?

옆에서 지켜보던 거구의 남자가 입을 열었다. 낮고 허스키한 목소리라서 그런지 방 안의 분위기를 더욱 음산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 말을 못 들었는지, 아니면 모른 척 하는 것인지 여인은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러다가 눈을 들어 벽시계를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다시 물끄러미 바닥에 누워있는 여인을 쳐다보았다. 그러자 옆에 서 있는 남자도 다시 입을 다물었다.

시간이 꽤 흘렀지만, 여자는 여전히 미동도 하지 않은 채 누워 있었다. 차이나 옷을 입은 여인은 다시 시계를 흘끗 보더니 남자를 향해 고개만 까딱했다.

그러자 남자는 누워있는 여인을 가볍게 들어 옆에 놓여 있는 침대로 옮겼다. 그리고 인큐베이터의 뚜껑을 덮었다.

첫 번째 창문으로 그녀의 얼굴이 보였다. 그녀는 여전히 너무나도 편안한 표정으로 누워 있었다. 마치 좋은 꿈이라도 꾸는 것처럼 얼굴에는 홍조를 띠운 채 미소를 짓고 있었다.

차이나 옷을 입은 여인은 인큐베이터 안에 있는 여자를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손에 수술용 장갑을 끼었다.

거구의 남자는 그런 그녀의 모습을 아무 감흥 없이 쳐다보고 있었다.

차이나 옷을 입은 여인은 침대 옆으로 가서 인큐베이터 옆에 뚫린 구멍으로 손을 밀어 넣었다.

침대의 구석에는 전동식 이발기, 메스와 거즈, 드릴, 전기톱 등이 놓여 있었고, 여인은 전동식 이발기를 들고 능숙하게 그녀의 머리카락을 밀었다.

세심한 손길로 그녀의 머리카락을 깎아 내자 머리 위에서는 진공청소기처럼 안에 있는 머리카락을 빨아들였다.

여인은 그녀의 민머리를 손으로 살짝 문질렀다. 누워 있는 여자는 여전히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차이나 옷을 입은 여인은 낮게 한숨을 쉬더니 구석에 놓인 펜으로 그녀의 머리에 선을 긋기 시작했다. 그리고 선이 다 그어지자 전기톱을 들었다.

그리고는 그녀의 두피에 손을 대고는 그어진 선을 따라 아무 고민 없이 그녀의 이마에 전기톱을 가져다 대었다.

전기톱에 버튼을 누르자 날카로운 소리가 들렸고, 손에 힘을 주자 혐오스러운 소리가 들리며 여인의 살결이 벗겨지며, 두개골이 갈려 나갔다.

다른 한 손에는 거즈를 쥐고 피가 흐르는 그녀의 머리를 닦아내었다.

그녀는 손의 힘을 조절하며, 전기톱을 이마 위쪽으로 밀었다. 차이나 옷을 입은 여인이 조금 힘이 든 듯이 얼굴이 찡그려졌고, 이마에서는 땀이 흘렀다.

인큐베이터 안의 여인은 자신의 머리가 톱으로 잘리고 있는데도 여전히 표정의 변화가 없었다.

다만 그 얼굴 위로 피와 살점, 뼈 조각이 튀어 그녀의 얼굴을 덮고 있어 공포스러운 모습이었다.

- 제가...

건장한 남자가 옆에 서 있다가 한 마디 했다. 그러자 차이나 여인은 움찔 하더니 날카롭게 남자를 노려보았다.

하지만 다시 눈을 돌려 누워 있는 여인을 보았다. 평온한 얼굴을 하고 있지만, 이마 부분부터 잘려 있는 두개골 사이로 피가 끊임없이 나오고 있었다.

차이나 옷의 여인은 거즈를 들어 잘린 부분을 닦아냈다. 전기톱으로 자른 것치고는 아주 매끄럽게 절단이 되어 있었다.

여인은 다시 전기톱을 들어 그녀의 머리에 가져다 대었다. 그리고는 힘을 주었다. '위잉'하는 낮은 기계음과 '드르르륵'하는 파열음이 인큐베이터 안에서 울렸다.

하지만 밖으로 들리는 소리는 아주 미세하였고, 차이나 옷의 여인은 그 소리에 신경을 쓰지 않은 채 두개골 절개에만 신경을 집중하였다.

두개골이 절개되자 머리 뒤에 모여 있던 뇌수가 흘러내렸고, 그 흘러내린 뇌수는 인큐베이터 안에 설치된 바스켓에 모였다. 차이나 옷의 여인은 낮게 심호흡을 한 번 하고는 메스를 들었다.

- 중요한 순간이야.

차이나 옷의 여인은 차가운 목소리로 옆에 있는 남자에게 말했다. 건장한 남자는 고개를 끄덕하더니 차이나 옷을 입은 여인의 시선 밖으로 사라졌다.

건장한 남자가 사라지자 차이나 옷의 여인은 뜻밖에도 눈물을 흘렸다.

차가운 표정이었지만, 그녀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고, 차이나 옷의 여인은 측은한 눈으로 두개골이 절단되어 있는 여인을 쳐다보았다.

- 너는...

차이나 옷의 여인은 무슨 말을 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그러고는 마음을 다잡은 듯이 눈물을 닦아내고는 인큐베이터 앞에 섰다. 인큐베이터 안의 여인은 여전히 고요하게 잠들어 있었다.

차이나 옷을 입은 여인은 메스로 뒤에 연결된 두개골의 끝부분을 마저 절단해 냈다. 뇌가 드러난, 기괴한 모습을 내려다보다가 흰 천으로 여인의 얼굴을 덮었다.

그러고는 뇌를 조심스럽게 들어 인큐베이터 안쪽 구석에 놓인 상자에 담았다. 그러고는 다시 두개골을 접합하고, 봉합을 하였다. 여인은 뇌만 없어졌을 뿐 원래의 모습 그대로였다.

아니 달라진 것이 있다면 긴 머리카락이 사라지고, 이마를 중심으로 둥글게 꿰맨 자국이 있을 뿐이었다.

차이나 옷의 여인은 낮게 한숨을 쉬다가 안에 들어간 손을 빼고 소리쳤다.

- 다 됐어.

차이나 옷을 입은 여인의 소리를 들은 건장한 사내는 살짝 고개를 숙이고는 인큐베이터를 밀고 다른 쪽 구석으로 갔다.

그리고는 다시 돌아와 핸디 청소기를 꺼내어 바닥을 구석구석 청소하기 시작했다. 차이나 옷을 입은 여인은 인큐베이터가 구석으로 있는 것을 한 번 슬쩍 쳐다보고는 고개를 돌려 출구 쪽으로 걸어갔다.

거구의 남자는 여자가 출구 쪽으로 사라지자 자리에서 일어나 전화기를 꺼내 어디론가 전화를 했다.

- 샘플 확보. 테라피 약간의 예외 반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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