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화
영혼의 투톱 (2)
“진이야 데뷔전부터 워낙 센세이셔널하긴 했지만······.”
아틀레티코의 역습을 막는 것을 넘어 오히려 다시 공격까지 진행하는 상욱의 플레이를 보는 펩이 다시금 감탄했다.
이미 상욱의 마법을 수십 번도 더 본 그였으나 방금 플레이에 또 한번 반할 수밖에 없었다.
“PSV에서 데뷔할 때까지만 해도 아직 유망주를 벗어나지 못했어. 월드클래스로 성장했던 건 러시아 월드컵이 끝날 때쯤이었지.”
2017년 골든보이에서 2018년에 월드클래스, 2019년에는 동 포지션 세 손가락 안에 드는 선수로 발돋움한 그는 2020년 인테르 마지막 시즌이 돼서는 세계 최고의 선수가 되어 맨시티로 이적했다.
“진은 지금껏 수없이 진화했어. 그저 빠르고 골결 높은 공격수에서 득점과 조율 모두 가능한 컴플리트 포워드로, 마침내 모든 부분에서 완벽한 무결점 스트라이커로!”
이 대목에서 상욱은 단 한 번의 패스로 상대 수비진을 찢어 놓았으며, 공을 전달함과 동시에 순식간에 상대 진영으로 올라왔다.
“그게 끝인 줄 알았는데.”
지금 상욱의 모습은 또 달랐다. 결점 없는 세계 최고의 공격수를 넘어 정점이라 불리는 메시의 아우라마저 뛰어넘은 듯했다.
[더브라위너가 하디 쪽으로 패스 시도합니다만, 비톨로가 차단합니다! 아틀레티코도 정말 만만찮네요!]
[공 걷어 내······ 지 못합니다! 진이 다시 한번 공 뺏어 내면서 하디 쪽으로 로빙패스!]
공이 자신에게 있으면 골로 연결하고, 상대방에게 있으면 뺏고.
상욱은 축구를 단순하게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단순함은 분명 유럽 최정상으로 불리는 아틀레티코의 수비진을 완전히 분쇄시키고 있었다.
“감히 저게 신의 경지란 말인가!”
흐름을 스스로 주도하는 상욱을 보며 감탄하는 펩. 상욱의 로빙패스는 골대 앞에 있는 하디에게 또 한 번 연결됐다.
[진의 좋은 로빙패스가 하디 쪽으로 올라갑니다!]
[자- 하디!]
***
“스스로 구원해야 해.”
어느 때보다 연습에 집중하던 하디에게 조언하는 펩.
그는 하디가 예전 바이에른 뮌헨과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시절 실패한 경험이 족쇄가 되어 그의 창의성을 막고 있지 않을까 걱정했다.
“하디, 네 재능만큼은 어느 선수와 맞붙어도 밀리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역시 알아보시는군요.”
오만하게 끄덕이는 제자를 보며 표정을 찡그리던 펩이 솔직한 심정으로 중얼거렸다.
“근데 그게 전부야. 넌 18살 때 빛나던 재능 하나만으로 지금까지 뛰고 있어. 사실 네 재능이 워낙 뛰어나니 빅리그에서 터지는 거지, 꾸준한 발전이 없는 이상 한계가 명확해. 특히 아틀레티코 같은 단단한 팀에는 더욱 그렇고.”
화를 내지도, 빈정거리지도 않는 자신을 진심으로 걱정하는 감독의 반응에 다소 당황스러웠던 하디가 머리를 긁적였다.
“그럼······ 제가 어떡하란 겁니까.”
“알을 깨야지. 메시가 그랬고, 진이 그랬던 것처럼 하디 너도 한 단계 성장해야 한단 말이야.”
27살이면 성장이 아니라 가지고 있는 재능을 한데 모아 원숙미를 가지는 것이 보통의 경우이나, 감독은 그에게 전혀 다른, 다음 단계로의 도약을 주문했다.
“네 한계를 규정짓지 마, 하디. 네 재능은 분명 지금보다 최소 한 단계 위에 있다.”
“그걸 어떻게 해야 합니까? 어떤 연습을 해야 그걸 이룰 수 있나요?”
다른 사람의 조언이라면 단박에 무시했을 것이나 상대가 세계 최고의 명장 펩의 조언이었기에 절박하게 물어보았다.
진에게 축구로는 밀리지만 자존심만큼은 밀리긴커녕 오히려 앞서 나가던 하디.
티는 안 냈지만 이젠 더 이상 따라잡을 수 없는 상욱과의 격차를 조금이라도 줄이고 싶었다.
“보통의 경우는 피나는 연습으로 이루는 게 맞는데······.”
이 대목에서 그는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너 같은 천재의 경우는 조금 달라. 언제 깨질지 모르지. 당장 내일이라도 스텝업할 수도 있는 거고. 아니면.”
“아니면?”
“이대로 아무 발전 없이 은퇴할 수도 있겠지.”
***
2014 월드컵 MVP, 2020년 월드베스트 XI.
보통 선수들은 감히 꿈도 못 꾸는 커리어를 가진 하디였으나 ‘포스트 메시’나 ‘게르만 플라티니’로 불리던 10대 시절에 비하면 못한 것도 사실이었다.
진이 세계 최고의 선수이고, 넘을 수 없는 벽이라는 것은 애초에 인정하고 있었으나, 친구의 발목을 잡을 만큼 무기력한 인간이 되고 싶진 않았다.
진의 수준까지 올라오진 못할지라도 그의 완벽한 파트너로 남고 싶었다.
펠레 옆에 가린샤가 있었고, 메시 옆에 네이마르와 수아레즈가 있었던 것처럼 좋은 파트너가 되어 함께 세상을 호령하고 싶었다.
“아직 아냐! 여기서 끝내기엔 내 자존심이!”
날아오는 공을 보며 이를 갈며 외치는 하디. 공중에 뜬 공은 마치 슬로우 비디오처럼 천천히 밑으로 떨어지고 슈팅을 위해 발을 들었으나, 이미 상대 골키퍼와 수비는 슈팅을 막을 준비를 마쳤다.
“허락 안 했단 말이다!”
찰나의 순간, 잠시 생각에 빠진 하디.
‘내겐 진 같은 멋진 발리슛을 쏠 만한 능력은 없다. 그렇다면······.’
순간적으로 발 위치를 바꿔 슈팅이 아니라 한 번 더 공중에 볼을 띄운 하디.
[하디가 공을 띄웁니다! 아! 이건 악수인 것 같은데요! 수비수들이 동시에 달려듭니다!]
[별로 좋은 선택은 아닌 것 같습니다. 막히겠는데요!]
오블락 골키퍼가 가볍게 뛰어올라 공을 가지기 직전.
“멍청한 놈들.”
하디의 이죽거림과 동시에 세계 최고의 선수가 미친 듯 달려들며 점프하더니 무지막지한 힘으로 헤더를 내리꽂는다.
[어······ 어!? 진!]
충격은 해설만 받은 것이 아니었다.
가까이선 아틀레티코 수비들부터 멀리선 양팀의 벤치까지. 무자비한 상욱의 헤더를 눈앞에서 목도한 것이다.
[승부를 한순간에 뒤집는 골입니다! 진! 그냥 무자비하게 달려들어서 내리꽂네요! 스코어는 동점입니다!]
[방금은 하디를 칭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떨어지는 공을 그대로 발리로 찼으면 골로 연결되지 않았을 겁니다. 그 짧은 시간에 진이 달려드는 걸 확인한 뒤 공을 띄워 주다니요. 야- 이건 재능의 영역입니다.]
동점 골이 들어가고 분위기가 순식간에 맨시티 쪽으로 넘어갔으나 아틀레티코의 수비는 흔들리지 않았다.
“이런 상황을 예상 못했으리라고 생각했나?”
벤치에 앉은 시메오네가 선수단 전체를 보며 조용히 읊조렸다.
하디와 진, 월드 클래스 선수들의 멋진 골이 터지긴 했으나 아직 스코어는 1:1, 동점이었다.
“아직 동점이다! 바뀐 건 아무것도 없어! 더 강하게! 더 타이트하게 수비해!”
선수들을 보며 강하게 외치는 시메오네 감독. 그리고 펩은 이를 보며 조용히 이죽거렸다.
“바뀐 게 없긴 왜 없어?”
스코어는 아직 동점이었으나 펩은 오늘 경기에서 진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는 듯했다.
후반전에 들어서 맨시티는 더욱 상대 수비를 강하게 공격했다. 상욱이 경이적인 스피드와 개인기로 상대 압박을 어느 정도 풀어 놓으면 어느새 하디가 달려와 공을 받아 지속적으로 골문을 노렸다.
[후반 들어서 맨시티의 공격이 거세지고 있습니다. 기회가 왔을 때 승기를 잡아야 합니다!]
[포든이 공 잡고 위로 돌파하는데······ 아! 공 빠집니다!]
맨시티 풀백들이 공격 지원을 위해 중원으로 들어왔을 때 이를 놓치지 않은 코케와 모라타가 2:1 패스를 주고받으며 상대 진영으로 들어갔다.
[모라타가 압박 뚫어 내면서 앞으로 공 보냅니다! 오늘 아틀레티코의 공수 전환은 가히 경이적인 수준이네요!]
[모라타가 수아레즈 쪽으로 빠르게 패스합니다! 수아레즈!]
1차전 득점과 거의 비슷한 장면에서 수아레즈가 기회를 잡았으나 이번엔 디아스의 태클이 빨랐다.
[디아스 막아 냈습니다! 곧바로, 그렇죠! 바로 역습 해야 합니다! 진이 하프 스페이스까지 내려와 있습니다!]
[진이! 와아! 패스 보세요. 예술 작품이 따로 없습니다!]
공을 받은 상욱이 순식간에 중원으로 길게 패스를 보내자, 이를 보고 놀란 수비들이 이를 막기 위해 다리를 뻗거나 뒤늦게 질주했다.
당장 1차전이었으면 막을 수도 있었을 기회였으나 아틀레티코 수비들 몇몇은 뛰다가 지쳐서 포기하고 몇몇은 끝까지 달리긴 했으나 공 근처까지 가지도 못했다.
[순식간에 하디 쪽으로 연결됩니다! 골키퍼 1:1 상황! 골키퍼 나오는데요!]
아틀레티코의 수문장 얀 오블락은 현 축구계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최고의 골리였고, 대단한 선방 능력을 가졌으나, 이렇게 중요한 순간에서 1:1을 놓칠 만큼 하디는 무능하지 않았다.
골키퍼가 나오는 것을 확인한 하디는 공을 잡자마자 원터치로 순식간에 골대 오른쪽 구석으로 가볍게 슈팅했고, 이는 마침내 맨시티의 역전 골로 연결됐다.
[역전! 후반 65분! 역전합니다! 진과 하디의 완벽한 팀플레이가 또 한 번 득점을 만듭니다!]
[진의 패스가 너무 빠르지 않았나 생각도 들었는데요. 하디가 완벽하게 마무리했습니다. 저 두 선수, 전생에 부부였나 봅니다. 호흡이 정말 대~단하네요!]
“마냥 수비만 하는 게 좋은지 알았나? 시메오네?”
코치진과 함께 웃겨 죽겠다는 표정으로 낄낄거리며 피치 위를 바라보는 펩.
저번 1차전이 아틀레티코가 맨시티의 약점을 저격했다면 2차전은 시티가 상대를 철저하게 파악한 뒤 공략했다.
첫 번째 골이 아틀레티코가 역습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공수 간격이 벌어졌을 때 공을 뺏어 낸 뒤 짧은 역습으로 유효타를 한 방 먹였다면.
두 번째 골은 아틀레티코 스스로 자멸했다. 경기 내내 수비적인 전술로 상대 공격을 막아 내고 지속적인 역습을 시도했던 아틀레티코.
코케, 카라스코 등 체력이라면 빠지지 않는 선수들이 있었으나 1차전부터 지속적으로 상대를 압박하고 미친 듯 뛰어다니니 로봇이 아니고서야 지치는 것이 당연했을 것이다.
[아······ 지쳤어요, 아틀레티코 선수들 지쳤습니다!]
[사실 당연합니다. 시메오네 감독의 전술 자체가 선수들의 극심한 체력 소모를 야기하는데요. 이러면 맨시티에게 더욱 잡아먹히기 쉽죠.]
상대가 지치면 지칠수록 맨시티의 공격은 더욱 거세지고, 펩은 이를 보며 만족스럽게 중얼거렸다.
“진은 최고의 컨디션으로 싸워도 막지 못할 선수다. 그런데······.”
지치고 느려진 너희가 진을 1초라도 막을 수 있을까?
[라인 또 벌어졌습니다! 이번에도 진이 혼자 뛰어 들어갑니다!]
스코어에서 지고 있는 지금, 아틀레티코는 더 이상 수비를 할 수 없었다.
이들은 아예 대놓고 라인을 올려 골을 노렸으나, 급하게 바꾼 전략이 맨시티와 같은 최강 팀에게 먹혀들 리 없었다.
맨시티 진영에서 공 소유한 스톤스가 뛰어가는 상욱에게 공을 전달하자 그는 또 한 번 빠르게 질주했다.
[도대체가! 저 선수는 어떻게 막는 겁니까! 수비 뛰어가는데 속도가!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습니다!]
[진이 달려가면서 하디에게 공 전달합니다! 하디도 정말 빠르네요! 공 밑으로 전달됩니다!]
이번에도 먹히면 경기는 끝이다.
이를 알고 있던 아틀레티코 선수들이 목숨을 걸고 뛰어 들어갔으나 이미 공은 순식간에 하디의 발을 떠났다.
[결국, 들어갔습니다! 합계 스코어 3:1!]
[진-하디, 영혼의 투톱입니다!]
< 우린 최선을 다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