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화
영혼의 투톱 (1)
아틀레티코전에서 무승부도 좋지 않은 기록인데, 패배까지 한 맨시티의 분위기가 좋을 리 없었다.
“괜찮아. 그저 운이 좋지 않았던 거야. 경기력은 나쁘지 않았어. 2차전에 더욱 공격적으로 나가면 돼.”
아틀레티코와의 1차전에서 패배한 직후 맨시티 선수들은 감독의 사자후를 당할 생각에 흙빛으로 라커룸안으로 들어왔다.
그러나 펩은 오히려 차분한 목소리로 선수들을 위로했다.
비록 아틀레티코의 토 나올 것 같은 2줄 수비에 득점하지 못하고 패배하긴 했으나, 분명 흐름을 잡고 있었고, 제대로 물꼬만 트이면 2차전에 승리할 가능성도 충분했다.
“메트로폴리타노(*아틀레티노 홈구장) 원정이 원래 어려워. 내가 바르샤 감독 시절부터 그랬으니까.”
어떻게든 오늘 선수들 플레이의 단점보다 장점을 부각시키며 다음 경기에 대한 대책과 개선점에 대해 설명하던 펩.
‘어휴, 다행이다.’
‘감독님이 화 안 났나 봐.’
‘좆 되는 줄 알았는데 다행이다 휴.’
선수들 몇몇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한창 감독의 지시를 듣고 있을 때, 갑작스레 돌변한 펩이 목에 핏대를 세우며 라커룸이 떠나가라 소리쳤다.
“다음 경기에서 더 잘······ 사실 아니야, 이 개새끼들아!”
밑도 끝도 없이 급발진하는 펩의 모습에 순식간에 움츠러드는 맨시티 선수들.
누가 싸이코패스 아니랄까 봐 순식간에 오락가락하는 모습에 선수들은 당연하고 같은 코칭 스텝들까지 공포에 질렸다.
“더 빨리 패스해야 했고, 더 많은 공간을 찾아야 했으며, 상대의 압박에서 빠르게 벗어나야 했다! 빌어먹을! 다른 팀도 아니고 알레띠 놈들에게 패배라니!”
근처에 있던 런닝화를 뻥뻥 차며 소리치며 악에 받친 듯 소리치는 펩 과르디올라.
“페르난지뉴! 넌 수아레즈를 끝까지 마크했어야 했다! 도저히 선제골 먹힌 건 용서할 수 없어! 젠장! 케빈 너 역시 마찬가지야! 네가 받고 있는 연봉을 알고도 뒤로만 패스할 거냐!!”
어찌나 매섭게 소리치는지 감히 감독을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하는 맨시티 선수들.
“복귀하고 내일 오후 훈련 늦는 놈을 죽을 줄 알아!”
선수들이 도망치듯 나가고 간만에 골을 기록하지 못한 상욱과 최악의 활약을 펼친 하디를 부르는 펩.
“진, 하디.”
“넵.”
“······.”
두 사람은 상반된 태도를 보였다.
상욱은 오늘 경기에서 해답을 찾기 위해 골똘했고, 하디는 자괴감에 빠져 차마 대답조차 못 했다.
“일단 진, 난 네가 다음 경기에서 무조건 골을 기록할 거라고 확신한다. 오늘 알레띠 수비가 강한 건 사실이지만 너 정도 선수가 못 넘을 수준은 아냐.”
“알겠습니다. 2차전은 다를 거예요.”
아틀레티코를 넘지 못하면 다음 발롱도르는 없다.
상욱 역시 이를 잘 알고 있었기에 다음 경기를 위해 이를 갈았다.
“그리고 하디.”
“······ 예.”
“왼쪽에서 더 날카로운 모습을 보였어야 했다. 네 쪽에서 공을 소유하지 못하니까 상대 압박에 계속 말려드는 거야.”
“······알고 있어요! 알고 있다고요! 젠장, 저놈들 수비가 이상한 걸 어떡해요!”
제풀에 못 이겨 속상해 몸까지 떨어 대는 모습을 본 감독은 순간 동양인 미소년과 독일 금발 청년을 번갈아 가며 바라봤다.
“천재, 창의성,“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던 감독은 이내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 다급하게 말했다.
”진, 너는 인테르에서 투톱으로 뛰어 본 적 있지?”
“어······ 그렇죠. 라우타로랑 같이 뛰었죠.
이후 뭔가 생각났는지 이번엔 하디를 보며 질문한다.
“하디, 넌 중앙 공격수로 뛴 적 있냐?”
“네? 없는데요?”
상식적으로 경험이 없으면 그 자리에 선수를 놓지 않거나 다른 방법을 찾는 것이 일반적이나, 펩은 오히려 이것이 다행이라는 듯 빙긋 미소 짓는다.
“없으면 더 좋아. 지금부터 배우면 되니까.”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전혀 이해하지 못한 상욱과 이미 이해하길 포기한 하디가 고개를 절레절레 젓자 그는 만족스럽게 두 사람에게 전했다.
“일주일 후에 에티하드에선 우리가 이긴다. 그리고 다음 경기 행동대장은-.”
지금까지 늘 그래 왔듯 조용히 앉아 있는 상욱의 얼굴을 슬쩍 바라보는 하디. 그러나 감독의 생각은 조금 다른 것 같았다.
“하디 크루거, 너야.”
***
“생각해 보면 단순해.”
이튿날 훈련장에 나온 하디와 상욱을 보며 설명을 시작하는 펩과 그의 앞에선 하디와 진.
“제발 설명을 단순하게 해 주시죠.”
“좀 까불지 마, 하디.”
일단 저번 경기 모든 공격 전개를 담당했던 상욱의 짐을 덜기 위한 방안이 필요했다.
“다음 경기 투톱은 하디와 진이다.”
득점은 당연하고, 연계 및 찬스메이킹, 윙어와 미드필더 보조 등 공격에서 할 수 있는 모든 작업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수행할 수 있는 상욱이 공간을 만들면 하디가 공간을 이용한다.
사실 지난 경기에서 현재 팀이 할 수 있는 모든 비기를 선보였으나, 실패를 맛본 펩에게 선택지는 많지 않았다.
“양 풀백을 더 공격적으로 써서 측면을 공략할지, 아니면 지금 라볼피아나 전술을 극대화해서 더욱 점유율을 우리 쪽으로 끌어올지 수만 가지 생각을 다 했는데 말이다.”
선수단을 앞에 둔 펩이 솔직한 심정으로 선수들 앞에서 중얼거렸다.
“어떠한 정상적인 방법도 아틀레티코의 수비를 뚫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더구나.”
세계 최고의 방패를 뚫기 위해선 그저 평범한 방법으론 부족했다.
펩은 찬스 메이킹과 창의성은 단연 세계 원탑을 달리는 하디 크루거와 명실상부 세계 최고의 공격수 전상욱의 재능을 믿어 보기로 했다.
“2차전은 네놈들의 천재성에 공격의 모든 것을 맡긴다. 진이 공간을 만들면 그걸 득점으로 연결하는 게 하디, 네가 할 일이야.”
“이 천······ 드, 어······.”
펩의 말을 듣고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는 하디. 그의 표정은 어느 때보다 기쁘고 웅장한 듯했다.
“드디어 이 천재를 믿으시는군요, 감독님! 잘 생각하셨습니다! 저 허울뿐인 발롱도르 수상자보다 절 믿으세요!”
“어······ 어?”
진-하디, 하디-진.
환상의 콤비, 영혼의 단짝이란 수식어가 있었으나 하디는 늘 모든 득점과 스포트라이트가 상욱에게 돌아가는 것에 내심 질투하고 있었다.
물론 상욱은 자신에게 최고의 친구이며, 모든 것이 팀의 승리를 위해서긴 했으나 하디의 맘속 한편에선 늘 옅은 질투나 열등감이 싹트고 있었다.
“아틀레티코전 승리의 선봉장이 진 놈이 아닌 저란 말이잖아요! 으하하하! 걱정 마요!”
기분 좋은 얼굴로 감독실을 나서는 하디를 본 펩이 불안한 얼굴로 상욱을 바라봤다.
“저 자식 뭘 잘못 생각하는 거 같은데······.”
사실 펩이 하디에게 요구한 건 공격포인트를 기록하란 것이지 에이스가 되란 것이 아니었다.
사실 다음 경기 공격의 공간을 창출하고, 공격 라인 끝에 있을 하디에게 볼을 전달하는 에이스 역할은 단연 상욱의 것이었다.
“진, 네가 가진 부담감을 잘 안다.”
하디가 나간 사무실.
길게 한숨을 내쉬던 펩은 상욱을 보면서 진지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라운드 위에 있는 선수들이 너만 바라보고, 팬들은 네 발끝에서 기적을 바란다. 부담감이 엄청나겠지만 앞으로 10년간 네 시대를 만들려면······.”
이 대목에서 자신이 지도했던 위대한 선수를 언급하는 감독.
“너 스스로 구원해야 한다. 메시가 그랬던 것처럼.”
***
“나, 사실 자신 없다.”
“알고 있어, 멍청아.”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와의 2차전을 앞둔 하디의 표정이 좋지 않다.
감독에게 큰소리치고 지난 일주일간 자는 시간까지 쪼개 가며 오늘 경기를 준비했으나, 막상 다시 상대 수비진을 마주하려니 걱정부터 앞서는 듯하다.
“진, 나 정말······.”
에티하드 스타디움을 가득 채운 관중들을 보며 말꼬리를 흐리는 하디.
오늘 경기는 그에게 정말 큰 의미를 부여했다.
자신을 믿고 영입해 준 데다 에이스로 뛸 수 있도록 한 팀에게 보답할 기회이기도 했고, 자신을 매몰차게 버린 전 소속팀에게 복수할 기회이기도 했다.
그만큼 간절했으나 상대는 너무나 강했고, 1차전에서 그는 아무런 활약도 보이지 못했다.
“알아 임마. 그래도 이기고 싶지?”
누구보다 친구의 마음을 잘 알고 있는 상욱이 씩 웃으며 경기에 나섰다.
“반드시, 반드시 이긴다. 경기가 끝나고 에티하드에서 웃으며 나가는 건 반드시 우리야.”
이미 홈에서 1대0 승리를 거두었으며, 본래 전술 자체가 수비 성향이 강한 아틀레티코는 경기 시작과 동시에 완전히 내려앉아 수비에만 집중했다.
[앞서고 있는 스코어, 에티하드 원정. 아틀레티코는 공격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안 그래도 수비적인 팀인데 더욱 문을 걸어 잠그고 있습니다. 아무리 맨시티가 라인을 올려서 상대한다고 한들 결코 쉽지 않아 보이네요.]
1차전보다 더욱 정교해지고 단단한 수비에 맥을 못 추는 시티.
어려운 상황에서 팬들은 단 한 사람, 전상욱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프라인 정면에서 더브라위너가 빠르게 패스해 들어갑니다. 진 쪽으로 들어가는 공. 시티의 공격이 시작됩니다.]
[진이 특유의 리듬으로- 그렇죠. 오늘 경기 처음으로 아틀레티코의 공간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공격이 어려우나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상욱은 툭툭 공을 몰고 전진하더니 상대 미드필더 2명 사이로 공을 빼냈고, 이내 바로 뒤에서 따라오는 수비수를 크루이프 턴으로 제치며 뛰어갔다.
[저, 저저! 말도 안 되는! 상대는 유럽 최고 수비진이에요! 초등학생이 아니란 말입니다!]
순식간에 페널티 라인 안으로 돌진한 상욱. 수비들이 몰려 있는 중앙 돌파는 도저히 할 수 없었던 그는 자신을 막기 위해 뛰어나온 수비진의 뒷공간으로 빠르게 패스했다.
[혼자서 상대 수비 전체를 상대하는 진! 공간 열렸고요. 하디 쪽으로 패스! 하디!]
[오블락이 펀칭해 냅니다! 득점으로 연결되진 않았지만, 좋은 움직임이었습니다! 진의 플레이는 말할 것도 없고요. 하디의 공간 침투 후 마무리까지- 하나씩 해 나가면 됩니다!]
티를 내진 않았으나 제 혼자서 라인을 부수고 들어오는 상욱의 플레이에 적잖게 당황한 아틀레티코 선수들.
그러나 게임은 이제 시작이었다.
[전반 20분 정도 지나니까 양 팀 선수들의 컨디션이 더 올라오는 것······ 아! 로드리 공 뺏겼습니다! 아틀레티코의 빠른 역습!]
수비적인 축구를 하나 공격을 아예 않는 것은 아니었다. 맨시티의 패스 미스를 포착한 아틀레티코 선수들은 바로 공을 탈취해 역습을 시도했고, 지금껏 웅크리고 있던 선수들 대부분이 뛰어나갔다.
[카라스코가 오른쪽에서 뛰어가는 펠릭스에게 공 전달······ 와아아!]
[진이! 진이 따라붙습니다! 저 빠르다는 펠릭스를 단숨에! 태클해 내면서! 그대로 달려가는 더브라위너 쪽으로 패스합니다!]
역습이 시작되자마자 빠르게 역주행해서 다시 공을 뺏어 낸 상욱이 상대 진영으로 길게 패스했다.
“상대 역습이 무섭다고?”
이를 지켜보며 싱긋 웃어 보이는 펩 과르디올라.
“그럼 우리도 역습하면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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