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화
발롱도르
“진, 괜찮아?”
“걱정 많이 했어. 갑자기 쓰러졌다면서?”
이튿날 상욱이 다시 훈련에 복귀했을 때 팀 동료 몇몇이 걱정스런 얼굴로 그에게 다가왔다.
“엉?”
자신을 놀리긴커녕 오히려 자신의 컨디션과 몸 상태를 걱정하는 동료들의 모습에 펩이 언론을 넘어 선수들까지 완벽히 속였구나 생각했다.
“미안해, 진. 네 몸 상태가 안 좋은지 몰랐어. 난 그저.”
그에게 유흥을 제안했던 실바와 스톤스가 죄스러운 표정으로 그에게 사과했다.
저들 딴에는 상욱이 안 그래도 피곤한데 억지로 자신들과 술을 마신 뒤 집에서 탈진했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어······ 괜찮아, 친구들. 그럴 수도 있지.”
창피하고 어색했던 상욱이 금방 훈련에 집중하자 멀리 있던 하디가 조용히 그의 곁으로 다가와 이죽거렸다.
“어이- 아랫도리는 괜찮냐? 키킥!”
“까불지 말고 꺼져.”
“야야 그래도 걱정 마. 다른 사람들은 그냥 너 과로로 쓰러진 걸로 알고 있으니까.”
지금껏 완전무결해 보였던 상욱의 실수에 인간미를 느낀 상하디가 배를 잡고 낄낄거렸다.
“아, 진짜 어제오늘 하루 종일 웃었네- 요 건방진 어린놈이 기절할지 어떻게 알았겠어?”
훈련 중 펩의 눈치를 살피며 계속해서 상욱을 놀려 대던 하디.
주변 사람들에게 소문내지 않은 것은 고마운 일이긴 하나 계속 놀려 대던 것에 상욱이 짜증을 내기 직전.
“하디 크루거!”
“······어?”
오늘 훈련이 맘에 들지 않아 화풀이 상대가 필요했던 감독의 레이더에 까불고 있던 독일인이 걸렸다.
“훈련 태도가 왜 그따위야! 맨유전 보니까 너 필요 없겠던데 아예 챔스도 집에서 볼래!?”
***
2021년이 밝았다.
상욱은 21살이 되었고, 그의 경력은 프로 데뷔 5년 차에 접어들었다.
인테르에서 빅이어를 포함한 모든 커리어를 달성하고 잉글랜드로 입성한 상욱.
맨시티에서도 전반기 23경기 25골 10도움을 기록하며 리그 득점 1위와 챔피언스리그 득점 1위를 동시에 달리고 있었다.
말 그대로 전인미답(前人未踏)의 경지에 오른 그는 맨시티의 주포이자 에이스가 되어 팀을 이끌고 있었다.
1위 맨시티 17승 1무 1패 +40 승점 52점
2위 리버풀 14승 3무 2패 +29 승점 45점
3위 첼시 14승 1무 4패 +31 승점 43점
4위 아스날 12승 3무 3패 +28 승점 39점
승점 7점 차로 1위를 달리고 있는 파죽지세의 맨시티를 막을 수 있는 팀은 가히 아무도 없었고, 챔피언스리그 5승 1무.
압도적으로 16강 진출은 당연하고, FA컵과 리그컵에서도 순항하고 있었으며 리그에서는 역대급 성적으로 전반기를 마무리했다.
월드컵 골든볼, 리그 MVP, 득점왕, 골든부츠, 월드베스트 등 받을 수 있는 거의 모든 개인 수상을 석권한 상욱에게 남은 미션은 단 하나.
발롱도르밖에 없었다.
“2021년 발롱도르 수상자는······.”
바르셀로나의 레전드이자 현재 UEFA 기술고문직을 맡고 있는 루이스 피구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관객들을 바라본다.
리오넬 메시, 모드리치, 레반도프스키, 네이마르, 전상욱 등 전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스타들이 2020년 최고의 활약을 보인 선수 발표를 기다렸다.
“제가 예상했던 분이네요.”
수상자 쪽지를 확인한 피구가 씩 웃으며 마치 당연하다는 듯 수상자를 호명했다.
“전상욱, 축하합니다!”
시대의 지배자 리오넬 메시와 리버풀의 벽이라 불리는 반다이크를 넘고 마침내 발롱도르를 수상한 전상욱.
2019년 3위, 2020년 2위에 이어 마침내 세계 축구계에 우뚝 서게 된 것이다.
“발롱도르 역사상 역대 최다표를 받고 수상한 선수입니다. 리그, 챔피언스 리그에서 득점왕과 MVP를 모두 석권했고요. 맨시티로 이적 후에도 압도적인 성적을 보여 주고 있는 명실상부 세계 최고의 선수입니다.”
메시-호날두의 시대를 지나 2020년을 화려하게 수놓은 지금은 의심의 여지 없는 전상욱의 시대였다.
“감사합니다. 우선 저에게 투표해 주신 모든 기자님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또 저의 동료들과 코칭 스텝, 한국에서 보고 계실 부모님께도 사랑과 감사를 전합니다. 동료들이 없었다면 이 상은 절대 받지 못했을 겁니다.”
먼저 겸손하게 동료들에 대한 감사와 존중을 보인 상욱. 수상 장면을 보고 있는 전 세계 사람들은 저 오만하기 짝이 없는 아시안이 웬일로 저런 겸손한 인터뷰를 하나 싶었으나 그는 곧장 웃으며 다음 말을 잇는다.
“시대는 언제나 새로운 영웅을 필요로 합니다. 펠레와 마라도나가 그러했으며, 호나우두와 지단이 그랬고, 호날두와 메시가 있었습니다.”
겉으론 호날두와 메시를 띄워 주는 것처럼 보였으나, 아직 현역에 월드클래스 기량을 보유한 메시와 호날두를 구시대의 유물이라는 속뜻이 담겨 있었다.
“저는 단지 올해 최고의 선수에서 멈추고 싶지 않습니다. 앞선 이들과 같은 한 시대의 영웅과 주인공이 되어 오랫동안 정점의 자리에 서고 싶습니다.”
쉽게 말해 이번 발롱도르 한 번은 성에 차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그는 시즌을 마무리하는 자리에서 오히려 앞으로의 계획을 천명했고, 상욱의 무지막지한 실력을 목도해 온 경쟁자들은 공포에 떨었다.
-와 우리나라 선수가 메시 제치고 발롱도르를 받았다고? 이게 진짜 말이나 되는 소리냐? 와;
-음바페? 홀란드? ㅈㄲ~ 2020년대는 전상욱의 시대다!
-호날두가 5발롱 메시가 6발롱 아니냐? 전상욱 21살인데 지금 페이스면 10발롱도 가능하겠는데?
-10발롱은 ㅅㅂㅋㅋㅋ 정신 좀 차려라. 아시아 선수가 발롱도르 받은 거 자체가 기적인데 무슨
국내외 여론 역시 새로운 시대의 영웅을 찬양하고, 존경해 마지않았으나, 몇몇 사람들은 그가 너무나 건방지고 오만하다며 비판하기도 했다.
-잘한다 잘한다하니까 건방이 하늘을 찌르네;
-전상욱 저 새끼는 대체 나중에 폼 떨어지면 어쩌려고 저러냐? 진심 이해가 안 됨
물론 상욱은 이를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지금 그의 관심사는 오직 맨시티의 우승밖에 없었다.
***
맨시티의 오전 훈련이 끝나고, 선수들이 퇴근을 위해 에티하드 캠퍼스 밖으로 나서자, 곧 벤츠와 포르쉐와 같은 고급 스포츠카가 줄지어 보였다.
“나왔다! 진!”
“하디! 사랑해!”
“유니폼에 싸인해 줘!”
훈련장 앞에 선수들의 얼굴을 보거나 사인을 받기 위해 줄지어 서 있는 팬들.
몇몇 선수들은 창문을 내린 뒤 사인을 조금 하고 떠나거나 몇몇은 피곤함에 그대로 가 버리기도 했다.
“하디! 하디! 창문 내려 봐!”
“안에 진도 있는 거 아냐!?”
고급 세단을 타고 나선 훈련장을 나선 하디 크루거는 오전 내내 이뤄진 고강도 훈련에 당장 집에 가 침대에 드러눕고 싶었다.
“하······ 오늘은 그냥 가자.”
아직 면허가 없는 상욱을 매일 같이 픽업해서 오는 하디가 한숨 쉬며 상욱에게 애원하듯 말했다.
출퇴근 때마다 팬들에게 둘러싸여 모든 싸인을 다 해 주고 오는 상욱이 불만이었던 그는 적어도 오늘만큼은 바로 집으로 가길 바랐으나.
“좋은 말로 할 때 문 열어, 하디. 안 그러면 구단 SNS에 너 팬서비스 안 좋다고 소문낼 거야.”
“진짜 미친 새끼, 꼴도 보기 싫어!”
상욱이 그럴 리가 없었다.
그는 팬을 누구보다 사랑했다. 하나의 구단에 얽매이고 싶지 않았을 뿐이지, 자신을 응원하는 서포터들에 대한 팬서비스는 대단했다.
이것이 그가 이렇게 오만하게 살면서도 가는 곳마다 팬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는 것도 이것 때문이었다.
제일 잘하는 선수가 제일 팬서비스 좋으니 싫어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으······ 귀찮아 진짜······.”
1시간이고, 2시간이고 정성스레 서서 팬들 전원에게 사인과 인사말을 전하는 상욱.
“진! 부상은 다 나았어요? 다음 주 챔스 나올 수 있죠?”
“그럼요, 잠깐 지쳤던 거예요.”
“진, 괜찮으면 여기도 사인해 줄래요? 친구 건데.”
“물론이죠! 이름이 어떻게 됐죠?”
상대팀에게 늘 보이던 도발적이고 오만한 모습은 간데없이 진짜 21살 아이처럼 밝게 웃으며 팬들을 대하는 모습에 그의 본모습을 알고 있는 하디가 어처구니없는 혀를 찼다.
“하디! 왜 요새 득점이 없어요?”
“진한테 패스 좀 제대로 줘요! 저번 경기 막판에 진한테 패스만 좋았어도 이길 수 있었잖아!”
진에게는 항상 귀여운 애들이나 젊은 여성 팬들이 붙고, 자신에겐 축구에 미쳐 사는 배 나온 아저씨들이나 훌리건들만 달라붙는 게 불만이었다.
그마저도-
“어 뭐야? 진이다! 진, 진!”
대부분 상욱이 있는 걸 발견하면 하디를 쳐다보지도 않고 상욱에게 가곤 했다. 싫지만 어쩔 수 없다. 현 세계 최고의 선수는 의심할 여지 없이 전상욱이니 말이다.
“아으, 진짜 짜증 나 미치겠네!”
[포토뉴스: 팬 서비스하는 진]
[포토뉴스: 마지막 팬 한 명까지 확실히!]
[포토뉴스: 진 “하디 어디가! 싸인 같이 해야지!”]
상욱의 뛰어난 팬서비스는 더선, 스카이스포츠 등 여러 기사에 실렸고 그의 평판은 갈수록 높아져만 갔으며, 그는 단순 실력만 뛰어난 선수가 아님이 증명됐다.
거기다 펩이 그의 오만함에 대해 감싸는 인터뷰를 함으로써 여론은 완전히 상욱의 편으로 바뀌었다.
[펩 “진만큼 팬을 사랑하는 선수도 없으며 그는 오로지 상대팀에게만 오만하다. 혹시 이게 잘못된 일인가?”]
***
프리미어리그 판도가 변하고 있다.
맨시티, 맨유, 첼시, 아스날, 토트넘, 리버풀. Big 6가 상위권을 이루고 뒤이어 레스터, 웨스트햄 같은 중위권 팀이 챔스권을 노리는 상황에서 판을 바꿀 수 있는 팀이 나타났다.
[오일 머니에 안긴 뉴캐슬, 사우디 자본에 인수 확정]
[뉴캐슬, 사우디 자본에 인수돼! 구단주 자산 ‘만수르 10배’]
추정 재산만 약 2조 달러(*한화 2,688조 원)에 달하는 빈 살만 왕가가 운영하는 사우디 국부펀드가 인수한 뉴캐슬은 명실상부한 세계 갑부 구단이 되었다.
역대 최고의 스코어러 호날두부터 제 2의 즐라탄이라 불리는 알렉산데르 이삭, 세리에A 탑급 풀백 둠프리스 등 벌써부터 A급 스타들과의 이적설까지 들리는 상황. 그러나 뉴캐슬을 실제 구단주 빈 살만의 목표는 따로 있었다.
[뉴캐슬, 2억 유로에 전상욱 영입!?]
[역대 최고액으로 전상욱 노리는 뉴캐슬!]
현 세계 최고의 선수이자 리그를 대표하는 공격수 전상욱을 데려와 팀의 퀄리티를 단번에 높이겠다는 생각이었다.
뉴캐슬이 진지하게 전상욱을 노린다는 소식은 꽤 큰 소문으로 퍼졌고, 당연히 맨시티와 펩에게도 들리기 시작했다.
“지금 여기서 다른 팀이 어떻게 변하는지 신경 쓰는 머저리가 있진 않겠지?”
챔피언스리그 16강을 앞두고 펩이 라커룸 안에 긴장한 선수들을 보며 외쳤다.
“우린 앞에 있는 산부터 넘을 생각을 해야 해.”
2020-21 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16강.
맨체스터 시티 vs AT 마드리드.
“절대 져선 안 된다. 특히 시메오네에겐 더더욱!”
펩의 강력한 각오와 동시에 하디 크루거가 부득부득 이를 갈며 외쳤다.
“이겨야 해! 아틀레티코 놈들한테는 절대! 지면 안 돼!”
< 시메오네의 진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