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화
식스 앤 더 시티
만화 드래곤볼의 팬이었던 포그바는 그중에서도 배지터를 제일 좋아했다.
오만하고, 잔혹하지만 이후 올바른 마음을 갖게 되어 이후 지구를 위해 싸우는 사이어인의 왕자 배지터.
그는 배지터를 자신에게 비유하면서 플레이했고, 오늘 시티전 역시 악의 제국과 싸운다고 생각하며 경기에 나섰다.
“아씨, 시간 얼마 안 남았는데 3골이나 더 넣어야 해.”
동시에 그는 앞에서 웃어 보이는 아시안을 보며 문득 프리더를 떠올렸다.
프리더.
드래곤볼을 넘어 소년만화 장르 전체에서도 큰 족적을 남긴 거대한 악역으로 작중에서는 우주의 제왕, 공포의 악당으로 불린다.
뭐, 주인공 손오공에게 리타이어되긴 하나 만화와 현실의 가장 큰 차이점은-.
“손오공은 여기 없어······.”
당시 배지터의 전투력이 8만인데 비해 프리더의 전투력은 53만.
거의 7배에 달하는 수치이며, 프리더가 최종 진화 단계에 들어갔을 때 전투력은 1억 2천만을 상회했다.
그러니까 배지터 따위론 상대가 안 된다는 것이다.
[로드리가 오른쪽으로 들어가는 진에게! 루크쇼가 달려나옵니다만- 안 되죠!]
[지금 전 세계 어떤 선수를 데려다 놔도 진을 막을 선수는 없을 겁니다. 심지어 말디니라도요!]
순식간에 오른쪽 풀백과 미들진을 뚫어 낸 상욱은 센터백이 자신에게 몸을 날리기도 전에 왼쪽 발로 감아 차면서 추가 골을 만들어 냈다.
[또 득점! 이젠 스코어가 벌어집니다! 4:2!]
[저 선수에게는 당최 약점이랄 게 없어요! 성경에 삼손도 머리카락이 약점이었고, 영웅 아킬레스도 발뒤꿈치가 아킬레스건이었습니다. 그런데 저 괴수는 그런 게 없어요!]
4:2.
2골 차 벌어진 상황에서 75분이 넘었다.
2골 뒤지고 있는 상황에서 경기력까지 밀리고 있으니 추가 골이 들어가는 건 생각보다 훨씬 쉬웠다.
아시아에서 온 괴물은 수비진을 한 번 더 찢어 놓으며 기어코 해트트릭을 성공시켰고, 후반 시작 직후까지 행복사하기 직전이던 맨유 팬들은 암울하다 못해 처절하게 밀리는 팀을 욕하거나 반절은 이미 경기장을 떠나기도 했다.
[진이 또 뛰어갑니다! 정말 지긋지긋한 선수네요! 포그바가 동시에 달려가면서 압박해 내는데-!]
[플립플랩! 아마 호나우지뉴도 이렇게 못했을 겁니다! 저건 지구인이 할 수 있는 테크닉이 아니에요!]
얼마 전 A매치에서 네이마르의 개인기를 카피해 온 상욱. 아니, 카피가 아니라 더욱 화려하고, 더욱 정교한 개인기를 사용하는 그의 모습에 맨유 선수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절망, 두려움, 패배의식.
포그바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전신이 떨려 왔다. 두려움과 절망에 눈물 흘러내릴 것 같았다. 당최 이런 적도 처음이었다.
자신도 천재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자신과 비슷한 수준의 천재가 팀에 몇 명이나 더 있었고, 이들의 컨디션은 가히 오늘 최고라 말할 수 있었다.
“대체, 대체 어떻게 해야 놈을 막을 수 있단 말이냐.”
공격수가 볼이 오지 않는다고 혼자 공을 몰고 들어가 골을 넣고, 중원을 완전히 장악해서 압박하니 혼자 미드필더진 전체와 싸워서 이기는 선수를 당최 어쩌란 말인가.
[추가 시간 3분 남았습니다. 맨시티가 이번 경기까지 이기게 된다면 맨시티와 2위 리버풀과의 승점 차는 7점. 더욱더 우승에 가까워집니다.]
[아직 리그가 반도 지나지 않았는데, 이미 우승팀 윤곽이 보입니다. 이미 리그는 따논 당상인 것 같네요.]
불행인지 다행인지는 몰라도 90분이 넘어가고 경기 종료 직전이 다 됐을 때쯤에야 맨유 선수들은 지친 상욱을 어느 정도 막을 수 있었다.
경기 내내 막지 못했던 괴물을 이젠 수비 전원이 붙으면 어느 정도 마크할 수 있는 수준까지 왔다.
그러나 맨시티에는 상욱만 있는 것이 아니었고, 상욱은 이런 압박을 역이용할 수 있는 선수였다.
[진이 빠져나가면서 뒤로 공 전달합니다. 공간 생기면서 더브라위너! 6골째! 식스 앤 더 시티!]
[방금 골은 진의 움직임이 기가 막혔습니다. 공간을 창조함과 동시에 전방에서 공을 잡게 만드는 전략! 분명 제멋대로 플레이하는데 가장 펩의 전술에 알맞은 축구를 하는 선수가 진입니다.]
이번 경기 MOM은 당연히 상욱이었으며, 후반에만 1골 2도움을 기록한 더브라위너는 전반 평점 4.0, 후반 평점 9점이 넘는 경기적인 기록을 달성했다.
[맨시티, 라이벌 맨유와 난타전 끝 6:2 대승!]
[6:2 ‘식스 앤 더 시티’ 맨시티의 무서운 파괴력!]
[진 해트트릭! 라이벌 맨유에 승리! 1위 수성!]
지역 라이벌을 상대로 4점 차 대승을 거둔 것도 모자라, 팀의 모든 득점에 관여한 상욱에 대한 찬사는 어찌 보면 당연했다.
-?: 전상욱도 맨유 수비엔 별거 없네 ㅋㅋ 전반전에 나대던 맹구들아 다 어디 갔냐?
-진짜 ㅈㄴ 잘하네, 아직도 우리나라에 저 정도 선수가 나왔다는 게 안 믿긴다. 진짜 축신 그 자체 아님?
-정보) 현재 맨유의 순위는 18위로 팀 창단 이래 최악의 성적을 기록 중이다.
끗발 다 떨어졌다고 해도 맨유는 전 세계적인 인기를 구가하는 팀 중 하나다.
이번 승리로 완전히 상욱과 사랑에 빠진 맨시티 팬들은 ‘역대 최고’니 ‘세계 제일’이니 하는 문구를 만들어 상욱의 응원가를 만들어 부르기 시작했고, 그의 유니폼 판매량은 포든과 더브라위너와 같은 기존 에이스를 넘어 팀내 최고 기록, 리그에서도 최상위권을 기록 중이었다.
“시어러나 앙리도 이 정도는 못했습니다. 아니, 앞서 말한 선수들과 견주는 것이 우스울 지경이죠.”
맨체스터 더비가 끝난 뒤 스카이스포츠 리뷰 방송에서 캐러거가 흥분해서 외쳤다.
“호날두, 앙리, 반페르시, 수아레즈, 살라. 지금까지 리그를 정복했던 그 어떤 선수보다 뛰어납니다. 의심의 여지가 없어요.”
같은 방송의 패널 마이카 리차즈 역시 상욱을 극찬하자, 이를 지켜보던 여성 아나운서가 의미심장하게 묻는다.
“그렇다면 진이, 시티의 숙원인 빅이어를 달성할 수 있을까요?”
아나운서의 말에 리차즈와 캐러거가 동시에 서로를 쳐다보며 말했다.
“틀림없이.”
“반드시 이룰 겁니다.”
***
“씨바아 마시고, 또 마셔! 오늘 나보다 덜 먹는 놈 있으면 다 죽을 줄 알아!”
더비 매치에서 대승을 거둔 뒤 대단히 만족했던 펩은 이례적으로 선수들에게 휴가를 부여했다.
“내일 훈련 없으니까 어디 네놈들 맘대로 놀아 봐.”
무슨 리그 우승이라도 한 것처럼 흥분한 펩은 잔뜩 취해 웃통을 까고 테이블을 뛰어다녔고, 이런 모습을 처음 본 상욱과 하디는 충격에 얼빠진 모습으로 그를 쳐다봤다.
“와, 진짜 깬다. 펩이 저럴 줄이야······.”
“진짜 이상한 양반이야······.”
최근 10년간 최고의 스타트를 보이는 맨체스터 시티.
외적으론 참가하는 모든 대회에서 순항 중이고, 내적으로는 좋은 팀 분위기와 최상의 조직력을 유지 중이었다.
이에 펩이 기분 좋은 것도 당연한 일이었으나, 이렇게까지 진상일 줄은 몰랐다.
“어으, 진짜 보면 볼수록 이상한 양반이네······.”
몇 번이나 자신에게 술을 권하는 감독의 손아귀를 벗어난 상욱은 이내 그에게 다가온 선수 몇몇과 마주친다.
“진, 이러고 저 빡빡이가 주는 술이나 받아먹을 거야?”
“응? 따로 갈 곳이 있어?”
스톤스, 베르나르두 실바, 하디 크루거. 맨시티에 얼마 남지 않은 미혼인 선수들이 상욱에게 다가와 신세계(?)로의 여행을 제안한다.
“불태우러 가자.”
“뭘?”
“네 젊음과 양기를!”
이들과 함께 간 곳은 맨체스터 시내에 있는 최고급 클럽 VIP룸. 하루에 5천만 원씩 호가하는 클럽에 입성한 맨시티 미혼 4인방.
세계 어떤 나라보다 축구와 스타 플레이어의 인기가 높은 나라에서 현 세계 최고 선수의 클럽 방문 소식을 들은 셀럽들과 연예인들은 상욱을 유혹하기 위해 줄을 이어 도착했다.
“진! 어우, 너무 잘생겼다. 내 가슴 한번 볼래요? 사람들이 수술했다고 하는데, 아니야! 자연산이거든!”
“얼굴은 잘생겼고, 몸은 너무 섹시하고.”
영국의 유명 팝스타, 모델, 신인 배우 등 외모에 자신 있다하는 여성들 모두 다가와 상욱에게 섹스 어필을 시전했다. 거기다.
“진, 첫눈에 반했어요. 오늘 나랑 같이 있을래요?”
“여기서 말고 따로 나가서 한 잔 더 할래요? 내일 아침까지 날 죽여 줘요!”
아예 그의 외모와 몸에 홀딱 반해 대놓고 잠자리를 요구하는 여성들도 있었다.
지금껏 정열적인 이탈리아 여성들과 파티하며 몸을 섞어 온 그는 끈적한 영국 여성의 매력을 제대로 느꼈고, 평소 1~2명의 정도의 여성과 잠자리를 했던 그는 오늘 맨유전에서 나온 아드레날린이 모두 분출해 냈다.
“아으······ 죽겠다······.”
이튿날 오전 8시.
4번째 여성과 잠자리를 마친 뒤 쓰러질 듯한 기분으로 침대에서 일어나는 상욱.
환생 후 체력 훈련을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소화해 온 그는 체력으로는 그 누구와 견줘도 밀리지 않는다고 생각해 왔으나, 지금 상욱의 스케줄은 초인이 아니고서야 쓰러지더라도 이상하지 않았다.
A매치 풀타임에 곧장 더비매치 풀타임을 뛴 것도 모자라 와인과 샴페인을 때려 넣은 뒤 밤새도록 여성들과 뜨거운 밤을 보낸 상욱.
“어······ 씨······ 물 어디 갔어······.”
호텔 방 안의 냉장고 쪽으로 똑바로 걸어가던 그는 순간 어지럼증에 냉장고가 2개로, 거울이 3개로 보이면서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
[진, 개인 사정으로 훈련 불참. 부상인가?]
[맨시티 비상! 진 부상으로 리그 판도 바뀌나?]
[펩 “진 상태 심하지 않아. 주말 경기 출전 가능할 것.”]
세계 최고 선수의 부상 소식에 전 유럽이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대부분의 언론이 맨유전에서 당한 태클의 여파가 늦게 터졌다며 그의 몸 상태를 확대 보도했고, 일부는 최근 무리한 경기 일정으로 인해 컨디션 난조가 심하게 왔다는 소식도 있었다.
더선과 같은 황색 언론들은 진이 유흥 때문에 지쳐 쓰러졌다는 소문도 있었으나, 평소 철저한 프로의식과 훈련광인 상욱의 평판 때문인지 이를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잘하는 짓이다, 잘하는 짓이야-.”
이튿날, 맨시티 병동 침대에 누워 쉬고 있는 상욱을 보고 한심한 듯 혀를 차는 펩.
“내가 소문 잠재운다고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 아휴, 내 살다살다 섹스하다가 쓰러지는 놈은 또 처음 봤다. 너 복상사할 뻔했어! 알아!?”
“알겠어요, 감독님. 이제 거의 다 회복했으니까 훈련해도 돼요. 그럼 일어나 볼······.”
하루 쉬어서 몸이 근질근질했던 상욱이 침대에서 일어나려고 하자 펩은 이를 꽉 문 채 생전 처음 보는 험악한 얼굴로 그를 노려봤다.
“나오면 죽여 브른드······.”
“아, 알겠어여.”
상욱을 억지로 눕혀 휴식시키고 다시 훈련장으로 나서는 펩.
“저놈도 인간이였구나.”
펩이 가장 싫어하는 행동을 했으나 그는 오히려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저 어린 선수에게 이 정도 휴식은 줄 수 있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상욱의 스트레스가 해소될 수만 있다면 훈련을 한 달간 쉴 수도 있었다.
“빅이어다, 진. 넌 그 선봉장에 설 거야!”
< 발롱도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