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축구의 신이 된 저니맨-103화 (103/114)

103화

그래도 안 와요

사람들은 신 앞에서 모두가 평등하다고 말하지만, 이 선수는 진지하게 그 말을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 레이 허드슨, 해설위원

***

“사실 한국이 이길 수 있는 경기가 아냐.”

반니 감독이 경기 전체를 보며 담백하게 읊조렸다.

3시즌 연속 프리미어리그 10골 이상을 기록한 윙어이자 심심찮게 월드클래스 칭호를 받는 이승민.

대표팀의 주장이자 전상욱과 함께 한국 축구를 이끌 선수로 평가받는 그였으나, 브라질을 상대로 차이를 보이는 플레이를 하기엔 역부족이었고, 이는 다른 한국 선수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브라질 선수들이 중원을 완전히 장악하고 상대에게 볼을 주지 않는 전술에 정평이 나 있다.

덕분에 한국 미들진은 중앙에서 전혀 공을 소유하지 못했으며 당연히 공격진에 볼을 전달하지도 못했다.

수비진 역시 마찬가지.

김영권, 김용 등 국내파 수비수들은 말할 것도 없고, 현 아시아 원톱이자 한국 축구 10년 수비 기둥이라 불리는 김재민마저 브라질의 강력한 압박과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밀리고 있었다.

[후반전 내내 밀리고 있습니다. 사실 브라질 같은 팀을 상대론 당연한 일인데 말이죠. 이상하게 질 것 같은 생각이 안 듭니다.]

[그렇죠, 아! 저거 보세요! 비니시우스 돌파하는데 전상욱이 끝까지 따라갑니다!]

강력한 압박으로 한국 플백들을 무력화시킨 뒤 앞으로 밀고 나서는 비니시우스. 순간 전상욱과 김재민이 동시에 달려들어 공을 빼앗은 뒤 공격 전개를 위해 전진했다.

“우리도 차이를 만들 수 있는 선수가 있군요.”

자기 진영까지 깊숙이 내려와 드리블을 해 가는 상욱을 보며 수석코치 스벤과 반니가 조용히 말했다.

“아니, 그 이상이야. 진은 흐름을 바꿀 수 있는 선수지.”

상욱이 공을 잡고 뛸 때마다 그의 발에서 황금이 쏟아지는 듯했다.

[전상욱이 왼쪽에서부터 직선으로 빠르게 뛰어들어옵니다! 브라질 선수들도 지긋지긋할 거예요!]

[카세미루, 프레드가 압박하는데요. 으아아! 무슨 장풍이라도 쓰는 것 같습니다!]

그는 혼자서 세계구급 미드필더들을 상대하고 있었으며, 그저 상대를 넘어 실제 이들을 압도하고 있었다.

그저 상욱이 그라운드 위에 있는 것만으로도 이들은 아무것도 하지 못했으며, 그가 방향 바꾸어 빠르게 드리블하자, 현 세계 최고 미드필더 카세미루가 꼼짝도 못하고 넘어졌다.

[전상욱! 지켜 줄 선수는 없습니다! 다른 선수들은 커버하러 올라올 수 없어요! 혼자 해야 해요!]

[수비 많은데요. 전상욱 돌파는 힘들 것 같습니다!]

다른 한국 선수들은 브라질의 압박에 전혀 올라오지 못했고, 오로지 상욱만이 상대 중원과 수비를 휘저으며 이들의 라인까지 올라왔다.

[전상욱, 돌파하면서 그대로 중거리 슈우우웃! 세상에! 이럴수가 있나요! 동점입니다!]

[3:3! 전상욱의 해트트릭! 전상욱이 아시아에서 나올 수 있는 선수가 아니라고 하는데, 아닙니다! 전상욱은 아시아가 아니라 전 세계에서 나올 수 없는 선숩니다!]

상욱의 인터뷰는 허풍이 아니었다. 그는 진정으로 세계 제일의 축구선수였고, 오늘 그라운드 안에 있는 그 어떤 선수들보다 대단한 활약을 보이고 있었다.

[브라질은 11명 전체가 한국을 공략하는데 우린 전상욱 혼자서! 싸웁니다! 놀라운 건 전상욱이······ 이기고 있다는 겁니다!]

후반 81분.

페널티 라인 중앙 20M 앞에서 기가 막힌 위치를 잡은 네이마르가 골키퍼 앞에서 뚝 떨어지는 프리킥으로 다시 앞서 나갔다.

[한 골 더 들어갑니다. 브라질 선수들에게서 마치 월드컵 결승과도 같은 간절함이 보이네요.]

[동감입니다. 아마 일반 평가전이었으면 우리가 이겼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치열하다 못해 피 터지는 경기. 마지막 골을 넣은 네이마르가 어설픈 영어로 상욱을 보며 외쳐 댔다.

“인정한다, 인정해! 진짜 지긋지긋한 놈이구만!”

네이마르는 자신을 대놓고 아래로 평가한 상욱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이 이번 경기를 통해 완전히 사라졌다. 상욱은 자신을 무시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그저 사실을 말할 뿐이었다. 전상욱은 현 세계 최고의 선수이자 역대 최고의 재능을 가진 선수가 맞았다. 그는 칭찬이 아닌 진심 어린 투로 상욱을 보며 중얼거렸다.

“축구의 신이란 게 있다면 바로 너겠구나. 도저히 너한텐 실력으로 비비지 못하겠어.”

“사실 내가 너무 잘하는 거지, 너도 못하진 않아.”

어깨를 으쓱거리며 웃어 보이는 상욱의 모습에 헛웃음이 터진 네이마르가 질린다는 듯 손사래 치더니 동료들과 함께 마지막 공격에 나섰다.

“그래도 이 경기는······ 못 내준다!”

역전 골을 넣었지만, 더 이상 기회를 주지 않겠다는 듯, 네이마르와 비니시우스가 빠르게 올라가더니 서로에게 공을 전달하자.

동시에 선수들 전원이 라인을 빠르게 올려 위로 돌진하기 시작했다.

[저, 저, 리드미컬한 스텝 좀 보세요! 적이지만······ 와아! 진자 예술적입니다!]

툭- 투툭-

몇 번의 드리블에 한국 수비진이 전멸하고 오른쪽 끝에 있던 비니시우스가 김재민을 드리블 한 방에 무너뜨리고 슈팅하기 직전.

“이, 이익······ 절대 포기 안 해!”

오늘 경기 브라질 선수들에게 아무 대응도 못한 김재민이 넘어진 채로 아예 기어 다니며 비니시우스의 슈팅을 막아 냈다.

당장 슈팅하면 그대로 얼굴이 가격당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으나 그는 부상 따윈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김재민! 아! 저 투혼! 저런 겁니다! 저런 플레이가 국민들의 마음을 울리는 겁니다!]

[아시아 톱 수비수다운 플레이였습니다. 100번 져도 괜찮아요! 브라질이잖아요! 딱 1번, 운 좋으면 2번! 이렇게 하면 되는 겁니다!]

오늘 경기 5번이나 상대에게 공간을 내준 평점 4점짜리 최악의 활약을 보인 김재민. 그러나 방금 모습에 그를 욕하던 여론은 한순간에 사라졌다.

경기장 안에 선수들과 관중, TV로 보고 있는 시청자들까지 모두가 알고 있었다.

김재민이 오늘 경기에 얼마나 진심인지, 더불어 그가 지금 얼마나 열심히 하고 있는지 말이다.

“그 마음, 전달됐다.”

하프라인 밑에서 이 모습을 본 이승민은 지금껏 본 적 없는 속도로 순식간에 상대 진영으로 달려갔다.

[이승민 쪽으로 갑니다! 올라가야 해요, 그렇죠! 지금 기회는 우리 쪽에 있습니다!]

[전상욱! 전상욱도 올라갑니다! 아! 저거 무슨 스피드 건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속도가! 위반 수준이에요!]

지친 데다 카세미루의 압박에 돌파가 불가능했던 승민이 대충 공을 높게 뛰어 브라질 진영으로 크로스를 올렸다.

[빠르게 날아오는 공! 전상욱이 뜁니다! 그대로오!]

브라질의 양쪽 센터백을 앞에 둔 상욱은 그대로 점프하는 동시에 발을 뻗어 슈팅했고, 공은 순식간에 골대 왼쪽 그물 안으로 찢을 듯이 들어갔다.

그리고 오늘 전상욱 때문에 아시아 국가의 경기를 이례적으로 중계하고 있는 영국 방송국 중계진 역시 충격에 빠졌다.

[월드클래스! 의심할 여지가 없는 세계 최고의 공격수입니다!]

[월드클래스가 아니죠! 그 이상! 저건 진 클래스(Jin class)입니다! 브라질을 상대로 3골을 넣을 수 있는 선수가 전 세계에 또 있을까요? 메시나 마라도나조차 혼자서 저 정도를 할 수 있었을지 의문입니다!]

4:4.

다시 한번 동점을 만든 상욱을 본 브라질 선수들은 이미 질리고 소름 끼친다며 빨리 경기가 끝나길 바랐다.

“저런 건 어디에도 없었어······.”

메시, 호날두부터 호나우두, 앙리, 셰브첸코까지. 역대 위대한 공격수는 모두 상대해 본 알베스였으나, 지금 자신 앞에 있는 저 아시안은 상식을 아득히 뛰어넘는 인물이었다.

“혼자 힘으로 11명과 맞서는 게 정말 가능하단 말인가? 그것도 전력 차가 이렇게 심하게 나는데?”

당최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리는 알베스와 마찬가지로 오늘 한국 중원 전체를 쌈 싸 먹는 데는 성공했으나, 전상욱을 제어하지 못하고 얻어맞기만 한 카세미루가 한숨을 내쉬었다.

“저놈은 재앙이야, 재앙! 전략도, 전술도 필요 없어. 진 스스로가 전술 그 자체야!”

카세미루는 월클을 넘어 유럽 No.1 칭호를 받는 미드필더고, 이렇게 쉽게 당할 선수는 아니었다.

사실 오늘 경기 몇몇 브라질 선수들은 시차 적응을 못 해서 컨디션이 낮은 것도 있었고, 상욱의 폼이 오늘 지나치게 좋은 것도 있었다.

“그럼에도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야,“

브라질의 치치 감독은 경기를 보는 내내 한숨을 내쉬며 미친 아시안의 활약을 목도했다.

역대 어느 선수가 피파 랭킹 50위권 팀에서 뛰면서 브라질을 상대로 이렇게까지 할 수 있단 말인가.

”진 하나 때문에 세계 축구판의 판도가 바뀔 거다.”

축구사 모든 기록이 바뀌고, 모든 순위가 뒤바뀔 것이다. 그리고 치치가 아직 충격에서 벗어나기도 전에 상욱은 이들의 심장에 비수를 꽂기 위해 질주했다.

[전상욱!]

***

“형. 한 번 더 뛸 수 있어요?”

“시간이······ 될까?”

남은 추가 시간은 1분도 채 남지 않은 상황.

상욱은 은사의 A매치 데뷔전에서 기어코 결승 골을 넣어서 승리를 선물하고 싶었다.

유일하게 상대 수비진을 뚫어 낼 수 있는 이승민에게 돌파를 맡긴 뒤 크로스를 올리면, 상욱이 이를 받아 드리블하거나 헤더로 골까지 마무리할 생각이었다.

[이승민이 왼쪽 끝으로 빠르게 올라갑니다! 아직도 저런 스피드가 나올 수 있나요······! 말 그대로 투혼! 그 자체입니다!]

[한번 이겨 보겠다는 겁니다! 브라질을 상대로요!]

승리에 대한 열의는 넘치는 승민이었으나 현실은 이상과 달랐다. 무승부까지는 어떻게 이해해도 패배하는 것은 얘기가 달라진다.

브라질 선수들은 가히 목숨 걸고 수비에 나섰고, 승민은 도저히 이를 뚫을 힘이 없었다.

“헤이! 여기!”

그리고 그의 앞에 다시 신이 나타났다.

상욱은 중미 프레드와 카세미루 사이를 비집고 나와 승민에게 외치고 마침내 볼을 잡아 냈다.

[전상욱! 줄 곳은 없습니다! 위치도 좋지 않구요!]

왼쪽 코너 라인 끝에서 공을 받아 낸 상욱은 어떻게든 돌파하기 위해 드리블하나, 작정하고 수비하는 브라질을 뚫을 순 없었다.

이승민이 어떻게든 공을 받기 위해 뛰어 들어오나 전혀 들어오지 못했다.

“공간이 없다. 그러면······.”

상욱의 장기인 드리블을 하거나 공간을 창출하지도 못하는 위치.

[오늘 경기 양팀 통틀어 마지막 기회! 전상욱이 코너 라인에서 크로스가 아니고······ 슛입니다아!]

[들어갔어요! 아 들어갔습니다! 경기 끝났습니다!]

골이 들어가자마자 붉은 악마들이 모여 있는 한국 서포터 쪽으로 미끄러지 듯 슬라이딩한 뒤 팔을 양팔을 뻗어 보이는 상욱.

광분한 팬들 앞으로 반니 감독이 감격한 듯 뛰어나왔다.

[진! 넌 신이다, 신! 내 인생을 구원할 신이야!]

***

사우디 아라비아 빈살람 왕세자의 최측근이자 뉴캐슬 유나이티디의 회장직을 맡고 있는 야시르 알루마얀.

업무차 한국에서 정부 수반을 만나고 초청받아 상암에서 경기를 지켜본 그는 그 자리에서 뉴캐슬 인수를 결정했다.

“뉴캐슬 인수 협상을 시작하세요. 그리고······.”

야시르의 시선은 이미 상욱에게 꽂혀 떨어질 줄 몰랐다.

“저 한국인 선수를 반드시 영입해야 합니다.”

< 오일머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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