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화
네이마르vs전상욱
19년 아시안컵 이후 전상욱은 한국에서 치러지는 A매치를 몇 경기 불참했다.
2년 앞으로 다가온 카타르 월드컵 예선과 아시안게임 차출 등 국내외 여러 요청사항이 있었으나, 그때마다 상욱은 부상과 소속 클럽의 차출 금지를 이유로 한국에 가지 않았다.
물론 인테르나 맨시티는 상욱이 원하면 언제든 다녀오라고 허락하였으나 상욱 본인이 싫다는 이유가 컸다.
“선수 생활 내내 비행기만 타다가 끝내고 싶진 않아.”
예전 박지성이 그랬고, 지금 이승민이 그렇다. 청소년 대표부터, 올림픽, 성인팀까지. 1년에도 수십 번씩 영국과 한국을 오가며 컨디션과 무릎을 갉아 먹는 짓은 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게다가 상욱은 그 어떤 애국심도 없었으며, 환생하자마자 겪었던 대건고에서의 4개월이 딱히 좋은 기억도 아니었다.
월드컵 예선이나 평범한 A매치는 웬만하면 참석하고 싶지 않았던 상욱이었으나, 대표팀 감독이 네덜란드에서의 은사 반니이기 때문에 싫어도 참석할 수밖에 없었고, 게다가 이번 A매치는 평범한 경기가 아니었다.
[전상욱 출전 확정! 대한민국 내달 8일 브라질과 A매치!]
[전상욱vs네이마르 상암에서 축구황제 대관식 열린다!]
영원한 우승 후보 삼바 군단 브라질과의 경기는 대표팀에 별 관심 없는 상욱의 흥미를 자극했고, 상욱이 A매치에 참석한다는 소식에 대중들은 큰 관심과 함께 상욱에 대한 여론도 반반으로 나뉘었다.
-미친 하다하다 우리나라 선수가 국가대표팀 차출되는 걸 속보로 알아야 하냐?
-전상욱도 너무하는 거 아님? 지만 해외에서 뛰나? 이승민이나 황찬희나 다른 선수들 다 해외에서 뛰면서 부르면 꼬박꼬박 오는데 왜 나이도 어린놈이 한국 안 들어오려는 건데?
-PSV에서 부상 복귀하자마자 월드컵 차출돼서 8강 오르고, 인테르에서 시즌 중에 아시안컵 출전해서 우승시키고. 이 정도면 됐지 뭘 더 바람? 막말로 우즈벡, 카타르랑 A매치 하는데 전상욱까지 부를 필요 있음?
-ㅋㅋㅋㅋ A매치 좀 안 나오면 어떰? 막상 국제대회에서 하드캐리하는데 ㅋㅋㅋ
***
인천으로 입국한 상욱.
해외파 선수들 중 가장 늦게 한국에 온 상욱은 입국을 한참 동안 기다리던 기자들의 끝없는 질문 세례를 받아야 했다.
“전상욱 선수! 이번 브라질과의 A매치는 네이마르와 전상욱의 차기 황제 대관식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동의하시나요?”
“전상욱 선수의 대표팀 개인의 차출 거부에 대한 여론이 뜨겁습니다. 이에 대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브라질전은 앞으로 한국 축구가 세계 무대 어깨를 나란히 할 자격이 되는지 실험하는 자리가 될 거라는 말이 있습니다. 브라질전, 자신 있으세요?”
2~3일 있다가 바로 영국으로 갈 거라 멘데스나 그의 회사 직원들을 데려오지 않은 것을 곧장 후회했다.
안 그래도 장시간 비행으로 피곤한데 끝없는 질문에 짜증이 솟구친 상욱의 앞으로 낯익은 얼굴의 남성이 등장해 기자들을 가로막았다.
“자자! 여러분 한 분씩 물어보세요! 인터뷰 시간은 10분! 우리 선수는 지금 지쳐 있습니다!”
안대근. 상욱의 psv 시절 네덜란드 적응을 도왔고, 국내로 올 때마다 매니저 역할을 해 온 그는 이제 아예 멘데스의 회사 소속이 되어 한국에서 상욱을 관리하기 위해 나타난 것이다.
인파를 정리하고 기자들에게 하나씩 질문을 받은 그는 최대한 상욱이 힘들지 않게 공간을 마련한 뒤 편하게 답변할 수 있도록 만든다.
“대표팀의 차출을 피한 것이 아닙니다. 인테르는 공격진이 제가 아니면 도저히 돌아가지 않을 상황이었고, 제 컨디션과 몸 상태 하나에 팀의 성적과 주가가 오락가락했습니다. 팀 단장과 구단주가 찾아와 대표팀 차출 거절을 부탁하기도 했습니다.”
에이전트 쪽에서는 이 문제에 대해 경기 후 따로 기자회견을 갖자고 제안해 왔으나 상욱은 지금 확실히 못을 박아 둘 생각이었다.
“그럼에도 전 아시안컵을 무리해서 출전했고 우승까지 했지만, 국민 여러분께서 불편을 느끼셨다면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고작 20살밖에 안 된 선수의 신들린 인터뷰에 술렁이는 기자진.
사실 인터뷰 자체에 허점이 없는 것은 아니나 저 잘생긴 외모와 기이할 수준으로 뛰어난 축구 실력을 가진 선수가 호소력 있게 말하자, 방금까지 상욱을 죽일 듯 달려들던 기자들이 조용해졌다.
“브라질전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브라질은 대단한 강팀이죠, 지난 코파아메리카 우승팀이기도 하고요. 아시안컵과는 전혀 다른 경기 양상이 펼쳐질 겁니다. 분명 감독님은 브라질에 대한 대비책을 찾으셨을 거고요.”
상욱의 정석적이나 지루한 답변에 지쳐가던 기자진. 마지막 질문이라는 대근의 말에 기자 하나가 손을 번쩍 들며 앞으로 나섰다.
“네이마르와 전상욱 선수 간의 라이벌리도 주목받고 있습니다. 선수께서는 차기 발롱도르나 앞으로 네이마르를 뛰어넘을 수 있다고 생각하시니까?”
여긴 한국이고 이곳은 겸손을 최선의 미덕으로 삼는다.
다소 자존심 상하더라도 상대를 존중하는 것이 이기는 것이며, 허세를 부려선 안 된다.
한국 속담에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말도 있잖는가.
“어, 네이마르요?”
이 모든 것을 아는 상욱이나 그는 괜스레 꿈틀거리는 맘을 억누르고 싶진 않았다.
허세 좀 부리면 어때? 증명하면 되잖는가.
“지금 저한테 라이벌리를 댈 수 있는 선수는 메시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뭐 사실 메시도 좀 늙었죠?”
“그, 그럼 네이마르 정도의 선수는 라이벌이 될 수 없다, 그건가요?”
어느 때보다 많은 관심을 받는 상욱. 사람들은 진심으로 그의 인터뷰에 충격을 받은 듯했고, 이 엄청난 발언을 제대로 듣고자 했다.
“네이마르는 분명 위대한 선수지만······ 지금 저보단 한참 밑이라고 생각합니다. 뭐, 사실이잖아요?”
[전상욱 “네이마르는 나보다 한참 밑!”]
[맨시티 전상욱 충격 발언! 네이마르는 내 밥이다!]
상욱의 대표팀 차출 문제나 반니의 감독 데뷔전 등 국민들의 관심이 불타오른 이번 평가전은 상욱의 인터뷰로 기름을 부어 버렸다.
브라질 국가대표팀 역대 A매치 득점 1위에 빛나는 현 세계에서 가장 비싼 이적료를 기록한 네이마르.
메시를 제외하면 남미 최고의 축구 스타로 불리는 인물에게 대놓고 자신보다 밑이라고 말한 아시안 슈퍼스타의 발언은 그 파장이 꽤 컸다.
Q 진의 인터뷰를 봤는가? 당신은 자신보다 훨씬 밑에 있다고 했는데 동의하나?
A 현 시점 세계 최고의 선수가 진임은 인정하나 그는 데뷔한 지 고작 4년밖에 되지 않았다. 프로 생활 중 이렇게 오만한 선수는 처음이다. 그는 다른 선수들을 존중해야 하며······.
자유로운 분위기에 남미 선수마저 이런 말을 할 정도라면 이번 상욱의 인터뷰가 얼마나 충격적이었는지 알 수 있었다.
“전술 실험과 조직력 강화를 위해 다소 가벼운 마음으로 온 경기인데······.”
이 대목에서 그는 이를 악물고 중얼거렸다.
“우리와 한국의 전력 차가 얼마나 많이 나는지 알려 주겠습니다.”
***
“예나 지금이나 넌 정말 피곤한 녀석이야.”
파주NFC 훈련장에서 상욱을 만나자마자 짧은 인사를 나누고 곧장 한숨을 내쉬는 반니스텔루이 감독.
제자의 미친 인터뷰를 본 그는 어처구니없어서 말도 나오지 않을 지경이었다.
“진, 네 자신감도 좋은데 제발 내 생각도 좀 해 주라. 데뷔전에서 브라질 상대하는 것도 부담스러운데 그놈들 사기를 네가 올려 버리면 어떡하잔 말이냐.”
“이기면 되잖아요, 감독님.”
“나도 그랬으면 좋겠는데 말이다. 휴 psv 때 하디 때문에 그렇게 피곤했는데. 진, 어떻게 너는 한술 더 뜨니.”
그러면서도 반니는 상욱의 모습을 보고 씩 웃어 보인다. 저런 오만하리만큼 자신 넘치는 모습 때문에 그를 더욱 아끼게 된 반니였다.
“어떡하겠냐, 너 같은 에이스를 둔 팀의 숙명이라고 생각해야지.”
***
“네이마르, 비니시우스, 티아고 실바, 카세미루······.”
브라질 대표팀의 명단이 하나씩 발표될 때마다 입을 떡 벌리는 한국 선수들.
선수들 하나하나가 PSG, 레알 마드리드, 첼시와 같은 메가 클럽의 에이스들이며 포지션별로 세계 제일이란 평가를 받는 선수들이다.
아무리 아시안컵에 우승해 사기 중천인 한국 선수들이긴 하나, 이건 상대가 강해도 너무 강했다.
“상대가 강하다는 것도, 우리에게 승산이 많지 않다는 것도 알고 있다.”
반니 역시 이를 알고 있었다. 감독 데뷔전부터 어처구니없는 강팀을 만났으나, 그는 경기를 포기할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어려운 경기가 되겠지만, 분명 경기 중 한두 번의 기회는 반드시 올 거다. 그리고 우리에겐 그 기회를 반드시 결과로 만들어 줄 수 있는 선수가 있다.”
라커룸 연설 중 순간 상욱에게 시선을 두는 반니.
순간 한국 대표팀 전원이 에이스를 바라봤다. 현 세계 최고의 선수이자 한국을 몇 번이나 수렁에서 구해 낸 축구사도.
“그래. 상욱이라면······.”
“어떻게든 해 줄 거야.”
감독과 선수들이 자신을 무슨 예수나 부처 보듯 바라봤고 상욱은 이런 부담을 진정으로 즐겼다.
“월드컵 때 기억을 벌써 잊은 건 아니겠지? 작년에 아시안컵도 있었고 말이야.”
걱정과 불안, 기대감 등 여러 감정 뒤섞인 동료들을 보며 슬쩍 웃어 보이는 상욱.
“걱정하지 마, 친구들. 너희들에겐 오늘 브라질 선발 11명 전체와 바꿔도 아까울 스타가 있잖아.”
***
경기 초반.
대표팀을 맡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반니의 작전은 psv 때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모든 선수들이 상대를 압박하고 이동을 막는 올 코트 프레싱 작전을 말하는 프레사우 알타(Pressao Alta)를 대 브라질전 대응책으로 가져온 반니 감독.
“승민! 밑으로 내려와서 압박해! 성재! 어떻게든 공 뺏기지 말고 버텨!”
반니의 수비 전술은 확실히 세계 레벨에서 통할 수준이고, 짧은 시간 동안 연습한 것치곤 어느 정도 선수들 합도 맞았으나 상대가 너무 강했다.
[지금 한국이 사용하는 프레사우 알타는 말이죠, 양 풀백이 상대 공격진을 중앙으로 몰아 놓고 강한 압박으로 공을 따내는 전술입니다. 대단히 효율적이고, 좋은 전술이긴 합니다만······.]
브라질의 강력한 압박에 한국은 별다른 모습을 보여 주지 못했고, 상대를 몰아넣긴커녕 공간까지 내주는 실수를 반복하며 기회를 헌납했다.
그리고 이를 브라질의 에이스가 놓칠 리 없었다.
[하프 라인에서 이성재 공 뺏어 내는 네이마르- 와! 와아- 저 드리블이 정말······!]
[예술 그 자체네요. 정말 브라질의 축구는 우리와는 참 다르긴 합니다.]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우리나라 수비수 몇몇을 벗겨 내는 네이마르.
[김진수, 이성재가 동시에 수비합니다만, 아! 확실히 클래스가 다릅니다. 그대로 전진하는데요! 위기입니다!]
농락하듯 수비진을 벗겨 낸 네이마르가 한국 진영 페널티 라인으로 질주했다.
당장이라도 골이 들어가기 직전, 이번엔 한국의 에이스가 달려와 그의 공을 갈취해 냈다.
[뒤에서 태클! 공만 건드렸습니다! 절대 파울 아니죠!]
[전상욱이! 막아 냈습니다! 우리에게도 있습니다! 오늘 브라질 선수 11명과 상대해도 절대 밀리지 않을, 아니 상대를 압도할 만한 선수가!
< vs 브라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