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화
밀월과 함께 춤을 (2)
“야, 소시지.”
“이 자식은 나랑 몇 년짼데, 이름 안 부르냐?”
후반전을 나서며 서로 으르렁거리는 두 사람. 특히 상욱은 상욱, 하디 둘을 합치면 3천억 넘는 가격으로 이적한 두 사람이나, 개막전 전반의 성적은 실망스럽기 그지없었다.
“나 오늘 경기 진짜 이겨야 해.”
“넌 임마, 오만함이 도를 지나쳤어.”
경기장에 입장하는 상욱을 보며 한숨 내쉬는 하디. 자신도 오만하고, 저 아시안의 성격이 괴팍하고 겸손하지 못한 건 누구보다 잘 알았으나 상대를 잘못 골랐다고 생각했다.
실력 있는 선수의 오만함을 자신감으로 여기는 PSV 코쿠 감독과는 달리 펩 과르디올라는 축구에 관해선 그 누구보다 독단적이고 자존감 강한 인물이었다.
상욱이 오늘 후반전에서 활약하여 경기를 승리로 이끈다고 하더라도 펩은 그가 천명했던 포트트릭을 하지 못하면 질책할 것이 분명했다.
팀 장악력을 대단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펩은 그에게 자율성을 준 것이지 오만을 준 것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일단 이 경기 이기고 나서 감독한테 미안하다고 해.”
그 독단적이고 괴팍한 하디 크루거마저 상욱을 말리며 오만함을 줄이라고 조언했으나, 상욱은 그럴 생각이 전혀 없었다.
“뭔 개소리야? 내가 4골 넣는 건 변하지 않아.”
하디를 보며 당최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리는 상욱.
“내 말은 좀 잘 뛰라는 거야. 지금 너 하는 거 보면 5골 먹히고 질 수도 있겠으니까.”
“허······ 허어······ 진짜 미친놈······.”
데뷔전 전반은 망쳤으나 데뷔전 자체를 망친 것은 아직 아니다.
아직 그에겐 45분이란 시간이 남아 있었고, 자신을 비싸게 사 준 맨시티에 대한 감사 표현을 아직 하지 못했다.
***
후반 49분.
[하디가 측면으로 빠집니다. 전반보단 좀 더 날카로운 하디의 드리블, 그리고 진 쪽으로 스루패스합니다!]
[진이 순식간에 돌파합니다! 중앙 수비 2명 배치되어 있는데요. 돌파가 쉽지 않아 보입니다!]
밀월의 피지컬 좋고 터프한 수비들이 전반과 마찬가지로 달려드나, 상욱은 조금도 속도를 줄이지 않은 채 이들과 정면으로 맞섰다.
뛰어 들어오는 흑인 수비수를 어깨 힘으로 밀어내 그 자리에서 내동댕이쳐 낸 상욱.
“이, 이거 무슨 돌이······.”
밀월 수비수가 경악스런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자, 지난 시즌 챔피언쉽 베스트 수비수 중 하나인 엘런이 상욱을 곧바로 도움 수비를 들어왔다.
[앨런이 쉼 없이 쫓아옵니다!]
[으아, 아! 힘으로 조금도 밀리지 않는 진! 그대로 페널티 라인까지 쫓아갑니다!]
피지컬과 힘이라면 전 세계 누구와 승부해도 이길 거라 생각했던 앨런은 상욱과의 몸싸움에서 전혀 공을 빼앗지 못했다.
그러나 위치상 여전히 엘런은 상욱의 앞에 있었고, 당장 슈팅을 쏠 위치는 보이지 않는 듯했다.
“엘런, 넌 예전이나 지금이나 수비하는 게 똑같아. 발전이란 게 없어.”
“뭐······ 뭐!?”
당최 무슨 말을 하는지 어안이 벙벙한 수비를 앞에 두고 웃어 보이던 상욱은 순식간에 반대 방향으로 위치를 바꾸어 돌파했고, 이내 머리와 몸이 제각기 노는 느낌을 받은 수비가 그 자리에서 넘어진다.
[재빠른 방향 전환! 수비 중심을 잃습니다. 골키퍼 정면! 그대로! 들어갔습니다! 데뷔전, 데뷔골!]
[이탈리아를 정복하고 온 아시안이 이번엔 잉글랜드 사냥에 나섭니다! 지이이이이인!]
압도적인 피지컬과 비정상적인 스피드와 개인기.
이탈리아에서 상욱이 자주 보여 주던 우아하고 예술적인 개인기는 아니었으나, 상욱의 플레이는 피지컬 중심인 밀월의 방어진을 치명적으로 관통했다.
[전반에 대한 복수라도 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 진은 처음 상대해 보는 선수들일 텐데, 마치 수비수의 약점을 알고 있다는 듯이 돌파해서 골까지 연결했습니다!]
“이제야 제대로 하네!”
“진! 드디어 밥값 하는구나!”
팬들의 우레와 같은 함성과 함께 이를 보며 어처구니없다는 듯 웃어 보이는 펩.
“진짜 적응했다고? 이렇게······ 빨리?”
첫 득점과 함께 이젠 적으로 만난 밀월 서포터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상욱.
이들은 어떻게든 상대팀 에이스의 사기를 떨어뜨리기 위해 각종 욕설과 상스러운 표현들을 써 가며 상욱에게 소리치나, 오히려 그는 이 모든 것이 자신을 향한 응원이라도 되는 양 그저 웃으며 이들의 조롱을 감상했다.
“당신들의 이런 정신 나간 문화가 그리웠어.”
상대 서포터의 공격에 쫄거나 화를 내긴커녕 기쁘고 즐거워하는 미친 모습에 3만여 명의 서포터들이 당황하기 시작했다.
[프리미어리그, 아니 전 세계에서 거칠기로 소문난 밀월 훌리건들의 욕설에도 전혀 미동도 없는 진입니다.]
[신경 쓰지 않는 걸 넘어서······ 오히려 즐기는 것 같기도 한데요? 뭐······ 뭘까요?]
당최 이해할 수 없다는 해설과 더욱 기묘한 표정으로 상욱을 바라보는 펩과 맨시티 코치들.
“천재들은 이해할 수 없는 어떤 게 있다고는 하지만······.”
“뭘 이해하기 힘들어요, 그냥 변태 같구만[email protected]그냥 다른 천재들처럼 변태구먼.”
뭐 이해하고 말고 상관없이 상욱은 감독과 약속한 다음 골을 위해 곧장 다시 뛰어나갔다.
지금 밀월의 주전 선수들 특히 수비진은 상욱이 전생에서 함께했던 선수들이 많다.
그리고 상욱은 이들의 모든 약점을 알고 있었다.
[로드리가 하디 쪽으로 연결합니다. 전반보다 맨시티 중원이 더욱 열리는 게 보이네요. 좋습니다.]
하프라인 정면에 있던 하디는 발목을 완전히 꺾은 다음 왼쪽 측면으로 달려가는 포든을 보며 빠르고 날카로운 크로스를 날렸다.
[하디의 대- 단한 크로스! 다비드 실바의 빈자리를 완벽히 채웁니다!]
[자 포든, 여기서 바로 올리는데요!]
페널티 라인 안에는 상욱이 있었으나, 밀월의 수비 숫자가 더욱 많았다.
“해리, 몇 번이나 말했냐. 내가 늘 뒤에 중심 잘 잡고 있으라고 했지?”
“뭐? 으,으악!”
동시에 자신을 마크하던 수비수를 뒤에서 몰래 밀어 버린 뒤, 수비가 넘어짐과 동시에 높게 점프한 상욱은 정확히 올라오는 크로스를 머리에 맞췄다.
[지이이이인! 그대로 내려찍습니다! 2:0!]
[멋진 바이시클 킥도, 멋진 발리슛도 아니었습니다만 그게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수비가 아무것도 하지 못했습니다. 진!]
“저 새끼가 밀었어요!”
“레프리! 눈이 씨이이발 귀에 달렸어!?”
넘어진 해리와 몇몇 밀월 수비수들이 상욱의 반칙을 주장했으나, 심판이 볼 수 없는 사각지대였으며, 확인한다 해도 주심은 이를 받아들일 생각은 없는 듯 보였다.
“충분히 정상적인 몸싸움이야. 너희가 전반에 진한테 했던 걸 생각해. 내가 그걸로 반칙 줬어?”
계속 불만을 가지면 바로 카드를 주겠다는 주심의 짜증스런 대답에 밀월 선수들은 더 이상 아무 말도 못한 채 그저 씩씩거리고 있었다.
“넌 시야를 더 넓혀야 해. 나랑 연습경기 할 때도······.”
“진짜 뭔 씹소리야!? 너 나 알아!?”
그저 옛 동료를 만났다는 사실에 시시덕거리는 상욱과 대비되게 왈칵 소리치는 해리.
대체 이 미친 아시안이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알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애초에 2골이나 넣고서 상대에게 하는 조언이 조언으로 들리겠는가?
오히려 자신을 도발한다고 열이나 받지 않으면 다행이었다.
“아, 맞다. 그래, 잘 지내라.”
옛 동료의 짜증에 이제야 정신을 차린 상욱이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로 돌아가며 다음 공격을 시작했다.
“그냥 빠르고 골만 잘 넣는 놈인줄 알았는데 반칙 존나 하네?”
“우리 팀 선수들보다 더 거친 놈이 있었다고!?”
처음에는 상욱의 플레이를 보며 짜증을 내던 밀월 팬들은 어느새 그의 거칠고, 당신들의 팀컬러에 정확히 맞는 모습이 꽤 맘에 든 듯하다.
“시벌- 조오오온나게 맘에 드네!”
“야! 너 맘에 든다! 나중에 나이 먹고 밀월 한번 와라!”
“진! 여기 봐!”
1등석에 있는 서포터들 몇몇은 상욱이 얼굴을 익고, 이름까지 기억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들을 보며 왈칵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던 상욱은 곧장 고개를 돌려 전생에서 자신을 내버린 이들을 바라봤다.
“허친슨, 라파······.”
2017년 새로 들어온 구단주 허친슨과 같은 시기에 들어와 세대교체를 위해 자신을 내보낸 라파엘 베니테즈 감독.
상욱은 이들을 조용히 바라며 잠시 가졌던 친정 팀에 대한 분노를 되새겼다.
***
후반 84분.
[맨시티가 압도하는 상황으로 경기가 진행됩니다. 하디가 윙포워드 쪽으로, 포든이 중원으로 들어오면서 그렇죠, 빈 공간으로 진이 들어갑니다!]
[계속 위치를 바꾸면서 공간이 나오면 저 무지막지한 천재성으로 밀고 들어옵니다!]
분명 오른쪽 터치라인 끝에 있던 상욱이 순식간에 페널티 라인 정면에서 공을 받아 내자 동시에 하디를 포함한 공격수들이 밀월 진영 깊숙한 곳으로 들어간다.
사람들은 여기서 상욱의 환상적인 드리블이나 재빠른 스프린터를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했으나, 그는 대단히 강한 파워로 중거리 슛을 차 넣어 상대 골망을 갈랐다.
[그대로 찹니다! 골키퍼 위치 잘 잡았는데요오!]
뻔한 각도, 뻔한 위치. 밀월 골키퍼가 옆으로 점프하며 손을 갖다 대나 슈팅만은 뻔하지 않았다.
펀칭한 공은 손을 떠나 그대로 오른쪽 옆 그물 안으로 빨려 들어갔고, 밀월 팬들은 충격받거나 경이로운 상대 에이스에게 박수를 보내기도 했다.
[해트트릭입니다! 개막전에서 오로지 자신만을 위해 원맨쇼를 보이는 진!]
[세계 최고의 선수라는 수식어가 그냥 달린 게 아닙니다! 데뷔전에서 해트트릭! 여러분 이 리그는 현 세계 최고인 프리미어리그입니다!]
이번엔 베니테즈 감독과 허친슨 구단주가 있는 곳을 바라보며 동양식 합장 세리머니를 하는 상욱.
이에 분노한 허친슨과 베니테즈가 주심에게 무어라 따지나 심판은 어깨만 으쓱거리며 경기 진행에 방해가 되거나 비신사적인 행동은 아니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압도적! 제왕적! 온갖 환상적인 미사여구를 다 붙여도 될 만한 선수입니다!]
[혹여나 저 선수가 비싼 가격에 와서 부담감 때문에 적응이 힘들지 않을까도 생각했습니다만, 역시 기우였습니다. 진이야말로 적응이 필요 없는 재능을 가진 선수죠!]
3:0
경기 종료 직전을 앞둔 밀월의 벤치는 당연히 침울했고, 베니테즈 감독은 저 괴상한 아시안 선수를 보며 울분을 토했다.
“이미 경기는 끝났는데······ 젠장!”
경기는 이겼고, 데뷔전 해트트릭에, MOM까지 따 논 당상이다.
이 정도면 체력 안배를 위해 교체하거나 휴식하며 설렁설렁 뛸 만하나, 상욱은 잠시도 쉬지 않고, 골 사냥을 위해 뛰어다녔다.
“좀 적당히 할 만도 하잖아. 저 자식!”
왼쪽 터치라인에서 공을 잡은 상욱이 혼자 드리블하며 위로 올라갔다.
왼쪽이 약한 수비에겐 반대쪽으로 방향을 전환하여 무너뜨리고, 발밑이 약한 수비는 팬텀 드리블로 벗겨 낸 뒤 순식간에 골대 안으로 빠르게 돌파했다.
[아! 저겁니다! 우리가 원래 알던 진은 저거죠! 수비수들을 무슨 초등학생처럼······ 우와아!]
[제쳐 냅니다, 그대로 진!]
골키퍼만을 남겨 둔 상욱은 사용하는 발을 이용해 공을 인사이드 부분으로 올린 뒤. 공이 반대 다리를 타고 올라왔을 때 뒤꿈치로 차올리는 사포(*솜브레로)를 이용해 골키퍼마저 제치며 골대 안으로 공을 차 넣는다.
[와······ 와아······! 이거 무슨······!]
당최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순간 말문이 막힌 해설은 이내 대단히 흥분해 소리쳤다.
[포트트릭! 기어코 4번째 골을 성공시키는 진! 위대한 아시안이 네덜란드와 이탈리아에 이어 잉글랜드를 정복하기 위한 원정을 시작합니다!]
< 제 2의 히딩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