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축구의 신이 된 저니맨-93화 (93/114)

93화

전상욱 이적사가 (2)

“로드리와 더브라위너가 버티는 중원에 실바와 마레즈가 함께하는 측면, 최전방에 진. 이거 상상만 해도 몸이 떨리는구만!”

아주 축구에 미친 축친남, 축구 오타쿠 아니랄까 봐 펩은 벌써 30분째 상욱을 앞에 두고 그가 팀에 들어왔을 때 상욱을 위한 전술을 떠들어 대고 있었다.

“난 기본적으로 공간을 활용하는 포지션 플레이를 지향하고, 이에 따라 포지션을 세분화하고, 선수 개개인의 역할을 확실히 부여합니다.”

보통 사람들이면 휴가지에서 일 얘기를 하는 감독의 모습에 진절머리 나거나, 학을 떼고 도망갈 수도 있었겠으나 상욱 역시 펩에 버금가는 축덕후였기에 흥미롭게 이를 듣고 있었다.

오직 펩과 함께 온 맨시티 스카우터만이 30분 넘게 이어지는 축구 얘기에 다소 지겨운 듯 몰래 하품을 하고 있었다.

“우리 플레이의 핵심은 우리 선수들은 끊임없는 패스와 스위칭 플레이로 상대를 혼란스럽게 하고 공간을 만들며, 압박받지 않은 ‘자유로운 한 명’을 만들 겁니다.”

“그, 한 명이라는 게.”

상욱의 말에 펩은 아마 지금까지 이 시간을 기다려 왔다는 듯 싱긋 웃으며 말을 잇는다.

“진, 당신입니다. 원래는 여러 가지 중요 임무를 부여하려고 했는데 인테르에서 보고 느꼈습니다. 당신과 레오 같은 천재들은 어디 속박시키면 안 돼요. 그저 하고 싶은 대로, 뛰고 싶은 대로 두고 싶군요.”

시티의 공격라인은 오로지 상욱을 위해서 뛸 것이며, 그의 득점을 돕고, 최대한 압박받지 않도록 노력할 것이다.

모든 전술의 중심이 전상욱이 된다는 의미였다.

“감독님 같은 분에게 이런 말을 듣는 건 정말 영광스럽군요.”

“영광? 으하하, 진! 오만한 성격이라고 들었는데, 그건 아닌 것 같군요. 오히려 겸손한 것 같기도 하고 말이오.”

상욱의 말이 퍽 재미있는지 웃어 대던 펩은 이내 진지한 표정으로 그를 지그시 바라보며 말했다.

“이 모든 게 당신의 천재성을 살리기 위해서입니다. 1년, 38라운드 긴 호흡으로 돌아가는 리그에 비해 챔스는 달라요. 한 경기, 한순간의 선택에 따라 탈락과 진출, 희비가 갈리죠.”

비슷한 전력의 최상위권 팀들 간의 경기는 전술보다 에이스의 천재적인 플레이 한 번에 갈리는 경우가 많다.

펩은 진이야말로 챔피언스리그 8강 이상, 감독의 지시가 무의미해지는 급박한 상황에서 차이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유일한 선수라 확신했다.

펩의 지루한 전술 소개가 1시간째 이어지고, 이를 듣고 있던 상욱마저 지쳐 갈 때, 이를 파악한 스카우터가 길게 한숨을 내쉬며 펩에게 말했다.

“감, 감독님 설명은 이 정도면 된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휴가 중이니까요.”

“음 그래? 아직 플랜B에 대한 설명은 하나도 드리지 않았는데······.”

A만 들어도 충분하다며 상욱이 어색하게 웃어 보이자, 감독은@펩은 돌아갈 준비와 함께 오늘 만남에 대한 답을 듣고자했다.

“좋은 만남이었습니다만, 전 아직 결정하지 않았습니다.”

“당연하죠. 저도 오늘 당신을 데려오는 건 힘들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지만 대단히 좋은 만남이었습니다. 감독님 말씀처럼 시티가 에이전트와 인테르에게 좋은 제안을 하리라 믿겠습니다.”

상욱의 말에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던 펩은 걱정하지 말라며 슬쩍 미소를 띤 뒤, 자리에서 나섰다.

“왕을 사려면 그에 맞는 대가를 지불해야 하니까요.”

***

이비자에서의 짧은 휴가가 끝난 뒤 상욱은 인테르에서의 마지막 스케줄을 소화하기 위해 이탈리아 밀라노에 도착했다.

고별식을 위해 먼저 구단주와 회장단, CEO, 단장 등 구단 수뇌부들과 만남을 가진 상욱.

고별식 참석을 위해 한국에서 밀라노까지 온 상욱의 가족들은 인종차별이 심한 이탈리아 방문에 조금 걱정했으나.

“반갑습니다! 당신들의 아들은 우리 영웅입니다!”

“자자, 여기 1등석으로 오세요! 비행은 불편하지 않으셨습니까?”

구단에서는 퍼스트 클래스 티켓과 함께 극진한 대접으로 이들을 모셨고, 상욱의 부모는 이 먼 만리타국에서 아들의 대단한 위상을 실감할 수 있었다.

“단장님.”

“진, 마지막으로 고민해 볼 순 없겠니? 네가 남기만 한다면 우리는 리그 최고 연봉을 줄 준비가 되있어.”

간절한 표정의 마로타 단장은 마지막까지 에이스를 설득하나, 상욱은 그저 웃으며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마로타 단장은 고별식 내내 상욱의 손을 잡고 있었다.

전상욱 영입 건으로 구단 역대 최고 단장, 전 유럽 최고의 거상 소리를 들은 그이나, 실제 마로타는 그저 상욱을 잃을 생각에 걱정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단장님.”

“믹스존으로 들어가. 콘테가 널 기다리고 있어.”

단장과 인사를 나눈 상욱은 곧 자신의 부모와 웃으며 인사를 나누던 콘테 감독을 마주했다.

“젠장, 이런 날이 진짜 오는군.”

평소 싸이코패스와 분노 가득한 모습은 간데없이 그저 성격 좋은 삼촌 같은 인자한 표정으로 상욱을 바라보는 콘테.

둘은 별다른 말 없이 격하게 포옹한 뒤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감사했습니다, 감독님.”

“진, 진. 넌 내 인생 최고의 선수야.”

이 대목에서 콘테는 흐느끼고 있었으며, 이를 본 다른 사람들은 저 냉혈한이 아쉬움에 눈물을 보일 정도면 콘테가 그를 얼마나 아꼈는지 알 수 있었다.

“지도 감사했습니다. 그동안 많이 배웠습니다.”

“그 말은 정말 영광이구나. 진, 감독으로서 너 같은 선수를 지도할 수 있었던 건 내 일생일대의 영광이다.”

감독과 깊은 인사를 끝낸 상욱은 부모님을 VIP석으로 모신 뒤 자신의 마지막을 배웅하러 나온 인테르 동료들과 인사했다.

라우타로, 바렐라, 브로조비치, 페리시치 등 주전 선수들 대부분이 나왔으며 아예 라우타로는 눈물까지 흘리며 상욱을 배웅했다.

“진······ 가끔씩 날 떠올려 줘. 난 널 평생 기억할게······.”

“오버하지 마, 타로.”

라우타로의 끔찍한 사랑 고백(?)에 당황스런 상욱이 표정을 찡그리며 포옹을 피하자, 이를 보고 있던 동료들까지 타로를 발로 차거나 짜증 섞인 말을 뱉는다.

“무슨 애인 군대 보내냐? 적당히 좀 해.”

“그냥 즐겁게 보내 줘, 미친놈아······.”

동료들과 간단한 작별 인사를 나누는 상욱. 이들과는 많은 말이 필요 없었다. 이미 그라운드 위에서 몸으로 수도 없이 많은 대화를 나눴으니 말이다.

“여러분 구단 역사상 최고의 선수가 들어옵니다! 위대한 아시안! 주세페 메아차의 왕을 박수로 맞이해 주십시오!”

마침내 고별식이 시작되고 구단 아나운서의 소개를 받은 상욱이 경기장 한가운데로 들어섰다.

“진, 진, 진!”

“사랑해! 진! 우릴 잊지 마!”

“넌 영원히 우리의 왕이야!”

입단식에 1만 명 정도 왔던 관객들이 불과 2년 만의 고별식에선 총원 8만 명의 주세페 메아차가 가득 찼다.

귀가 찢어질 듯한 우레와 같은 함성과 수만 명의 관중들이 상욱의 이름을 연호한다.

관중석 중앙엔 태극기와 그의 얼굴이 박힌 현수막이 걸리고, 양 사이드엔 ‘주세페 메아차의 왕’과 ‘위대한 인테르’라는 문구가 대문짝만하게 걸려 있었다.

“여러분 감사합니다.”

주변의 함성에 입장한지 5분이 넘어서야 첫 멘트를 뜬 상욱.

“이곳에 처음 왔을 때부터 지금까지 늘 응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당신들은 늘 저와 동료들에게 엄청난 응원을 보내 주셨습니다. 당신들의 열정과 갈망이 저를 최선을 다하게 만들었습니다. 팬들이 없었더라면 저는 해내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 대목에서 상욱은 자신을 바라보는 가족과 감독, 동료들을 바라보며 눈시울을 붉힌다.

“여러분은 저를 왕으로 불러 주셨으나 저는 늘 여러분을 저의 왕이라 생각하고 뛰었습니다. 인테르에서 보낸 시간은 남은 생애 동안 제 가슴속에 영원히 간직할 것입니다.”

경기장에 있는 모든 이들이 눈물 흘리고, 마지막으로 상욱은 남은 모든 힘을 다해 팬들을 향해 외쳤다.

“영원히 잊지 않겠습니다. Pazza Inter!”

***

TOP 에이전트라 불리는 조르제 멘데스는 올 여름, 전 세계 그 어떤 이보다 바쁜 여름을 보내고 있었다.

유럽에서 돈깨나 있다는 빅클럽들은 멘데스 최고의 고객 상욱의 영입을 위해 사활을 걸었다.

“1억 4천만 유로(*한화 1,900억)에 팀 내 최고 주급 40만 유로(*한화 5억 5천) 정도면 어떻습니까. 프리미어리그 역대 최다 이적료를 갱신하는 금액입니다.”

이번엔 첼시의 단장이자 유럽 축구에서 보기 드문 여성 단장인 마리나 그라노브스카이아는 현 세계 최고 스트라이커를 영입하기 위해 진땀을 빼고 있었다.

2,000억 가까운 이적료, 팀 내 최고 주급자 캉테보다 1억원이나 더 많은 금액을 제시했으나, 멘데스는 콧방귀만 끼고 있었다.

“1억 7천 정도면 생각해 봄직하군요, 주급은 50만 유로가 적당할 듯하고요.”

“조르제, 이 가격도 이사회에 승인을 겨우 끌어낸 겁니다. 여기서 더 끌어내는 건 정말 힘들어요. 부디 구단의 입장도 생각해 주세요.”

멘데스는 하루에도 수십 개의 팀을 만나 계약을 논의하고 있었고, 하루에도 이런 요청을 몇 번 씩 듣고 있었다.

“내가 왜 당신네 구단 생각을 해야 하죠? 내 역할은 고객을 최고의 조건으로 이적시키는 것뿐입니다.”

첼시, PSG, 리버풀 등 수많은 구단이 이적 협상을 진행했으나, 멘데스가 제시한 어마어마한 가격과 무자비한 요구사항에 점점 떨어져 나갔고, 남은 팀은 맨유와 맨시티와 같은 공격수가 정말 시급한 팀들 뿐이었다.

“아까 말한 액수를 가져오세요. 그럼 진에게 첼시 이적에 대해 물어는 보겠습니다.”

오만하기 짝이 없는 모습에 마리나 단장은 멘데스를 가만 노려보더니 이내 이죽거리며 말했다.

“그 오만함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한번 두고 보죠, 조르제. 지금 진의 활약이 영원할 거라고 생각하나요?”

“네?”

“어느 선수가 부침은 있기 마련이에요. 진이 아무리 위대한 선수라해도 EPL에서 성공하리란 보장은 없죠, 세리에완 달리 잉글랜드는 더욱 빠르고 거칠어요.”

도발에 가까운 마리나의 모습을 그저 비웃기만하며 자리에서 빠져나가는 멘데스.

“진은 리그에 적응할 필요 없어요. 감히 리그가 진에게 적응해야 하죠. 마리나, 똑바로 들어요.”

“······.”

“세계 최고의 선수입니다. 돈, 더 가져와요.”

이미 협상 과정에서 중단된 팀도 많았다.

카이 하베르츠, 티모 베르너 등 이미 2,000억 가까운 돈을 쓴 첼시는 또다시 공격수에게 많은 돈을 소비할 수 없었고, PSG 역시 음바페와 네이마르에게 모든 것을 걸기로 결심한 듯했다.

리버풀은 상욱의 영입에 적극적이었고, 실제 멘데스와 마로타 단장을 만나기도 했으나, 최근 패닉바이들로 인해 구단에 자금이 없었기에 전상욱의 영입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남은 건 맨유와 맨시티입니다.”

이적시장이 얼마 남지 않았을 무렵 멘데스가 상욱에게 현 상황을 브리핑했다.

루카쿠를 인테르에게 보낼 생각이 있는 맨유는 초대형 딜을 준비하고 있었고, 맨시티는 아직 제안은 하지 않았으나 구단의 모든 자금을 끌어모으고 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내일 마로타 단장이 맨시티 소리아노 단장을 만나다고 합니다. 동시에 맨유의 우드워드와도 마지막 미팅을 진행할 거고요.”

어째됐든 이제 당신의 다음 팀이 결정될 겁니다.

< 전상욱 이적사가 (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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