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화
3년 만의 휴가
시즌이 끝나고 법적으로 완전한 성인이 된 상욱은 프리시즌이 되고 한국으로 들어가는 일정을 조금 늦췄다.
지난 대건고부터 psv, 인테르까지 지난 3년간 죽을힘을 다해 살아온 그는 이적과 동시에 재충전을 위해 스페인 이비자 섬으로 향했다.
인테르에서 사귄 동료이자, 이젠 친구가 된 라우타로, 바렐라와 함께 휴양지에 온 상욱은 오늘 섬에서 빌릴 수 있는 가장 크고 가장 비싼 요트를 빌려 요트 파티에 나섰다.
“진! 너 솔직히 말해! 너 20살 아니지!?”
“이 새끼 알고 보면 인생 2회차일지도 몰라.”
전상욱의 몸이 축구의 신이라면 전생 다니엘 잭슨은 유흥의 신이었다.
상욱은 라우타로, 바렐라가 데려온 모델들과 세계 최고의 선수를 유혹하기 위해 파티를 찾은 유명 연예인과 인플루언서들과 함께 한껏 파티를 즐겼다.
보기만 해도 입이 떡 벌어지는 몸매,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여성들은 상욱에게 몸을 비비거나 가슴골을 대놓고 보여 주는 등 노골적으로 그를 유혹했고, 상욱은 수많은 여성들과 함께하며 지난 3년간 쌓아 뒀던 피로를 모두 풀었다.
“진! 당신이랑 함께하고 싶어!”
“사랑해요, 사랑해! 오늘 밤 나와 있어 줘요!”
비키니 차림의 남미, 백인 여성들 여럿이 다가와 상욱에게 구애하며 춤을 춘다. 그는 기꺼이 이들과 함께 세계구급 슈퍼스타로서의 지위를 맘껏 즐겼다.
그리고 이 장면들은 인터넷을 통해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
-아니 20살이면 한국 나이로 갓 성인 된 나이 아님? 으; 왜 저렇게 문란한 거임?
-전상욱 선수 실망입니다. 훈련만 하고 절제된 생활을 하는 줄 알았는데.
상욱의 휴가 장면은 파티 참가자들의 sns나 기자들의 가십거리가 되기 충분했고, 국내 여론은 그저 소년만화의 주인공을 원했던 몇몇 팬들이 실망하기도 했으나
-진짜 ㅋㅋ 이딴 걸로 왜 실망을 해. 축구 선수가 축구만 잘하면 됐지. 전상욱이 뭐 범죄라도 저질렀냐?
-씹선비 새끼들 개극혐. 다른 아시아 선수들이랑 다르게 파티하고 노는 거 보기 좋구만 ㅋㅋㅋ
-진짜 전상욱 ㅈㄴ 멋지다. 일주일에 버는 돈만 2억이라며?
대부분의 반응은 실력도, 유흥도 잘하는 특이하고 매력 있는 아시아 선수로 그를 옹호했다.
“진, 너도 애인 하나 만들지그래?”
“갑자기?”
3번째 거사를 치르고 나온 상욱이 지친 기색 하나 없이 다가와 보드카를 털어 마시자, 이를 지켜보고 있던 라우타로가 문득 말했다.
“이렇게 노는 거 좋아하고, 보니까 이성한테 관심없는 것도 아닌데 애인이랑 같이 지내면서 여행도 다니고, 섹스도 하고.”
유명한 스포츠 스타에게 섹시한 애인은 필수 불가결한 요소다. 게다가 몇몇 선수들은 결혼까지 빨리해 가정을 차리는 경우도 허다했다.
라우타로는 친구가 빨리 좋은 사람을 만나 안정되고, 더욱 행복해지길 바랐다.
“내가 죽이는 모델로다가 한 명 소개시켜 줄 테니까, 진 말만하라고.”
“됐어.”
이탈리아 유명 모델, 남미 출신 솔로 가수, 영국에서 최근 주목받는 여배우까지. 상욱에게 관심 있는 여성들의 SNS를 보여 주려던 라우타로를 단칼에 거절하는 상욱.
“아직 은퇴까지 15년은 넘게 남았어, 타로. 유흥이든, 여자든 이번 주가 끝이야. 지금은 피치 위에서 더 행복해.”
다니엘 잭슨 때나 지금이나 상욱의 마인드는 같았다. 벌써부터 삶의 1순위가 애인이나 가족이 될 순 없었으며, 그는 아직 누구도 책임지고 싶지 않았다.
지금 상욱이 책임지고 싶은 것은 단 하나, 오로지 축구뿐이었다.
***
Rrrrrr······.
Rrrrrr······.
끝없이 울리는 전화벨 소리에 겨우 잠에서 깬 상욱.
“아······ 진짜 방금 잠들었는데 뭔데······.”
휴가 4일차.
금발 미녀들과 수영을 즐기고 꿀 같은 단잠에 빠진 상욱에게 끝없이 울리는 전화.
한국은 지금 새벽으로 전화 올 일이 없고, 시즌이 끝난 지금 구단에서 찾을 일도 없다. 남은 건 에이전트 멘데스뿐인데······ 분명 휴가 중임을 아는, 고객의 안위를(물론 자신의 이득을 위해) 누구보다 생각하는 조르제 멘데스가 통화 대기를 이렇게까지 오래 할 일이 없다.
“아······ 조르제······ 왜요······.”
졸린 눈을 비비며 겨우 전화를 받은 상욱이 다소 짜증스런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진, 쉬는데 연락해서 대단히 죄송합니다. 정말 중요한 일 때문에 연락드렸습니다.]
[하······ 영입 관련된 사항은 전권을 줬잖아요. 일주일만이라도 제대로 쉴 수 있게 해 줘요.]
멘데스 역시 쉬고 있는 고객의 심기를 거스르고 싶진 않았으나 연락해야 할 만큼 중요한 일이었다.
[이적 제안한 구단에서 사람이 직접 찾아왔습니다.]
[그게 한두 번 있었던 일이 아니잖아요. 구단 관계자나 스카우터나, 어디 뭐 구단주라도 직접 행차하셨데요?]
[감독이 직접 찾아왔습니다. 영국에서 직접 왔는데. 진, 당신을 꼭 만나고 싶다는군요.]
감독이 직접 왔다는 말에 잠결에 졸린 상욱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실제 이적이 성사된 것도 아니고, 이적 협상 중도 아니며 그저 자신을 만나기 위해 이곳까지 왔다는 사실에 흥미가 동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온 감독이 누군데요?”
완전히 잠에서 깬 듯한 고객의 목소리에 안심한 멘데스가 자신 있는 목소리로 말한다. 지금부터 만날 손님이 자신 있게 소개할 만큼 거물이라서 그런 것일수도 있겠다.
[펩 과르디올라, 멘체스터 시티 감독입니다.]
“······에? 펩이요?”
펩 과르디올라.
현역 유럽 감독들 중 가장 많은 트로피를 수집한 감독이며, 현대 축구의 전술 패러다임과 함께 ‘티키타카’로 대표되는 특유의 빌드업 전술로 세계 축구의 헤게모니를 장악한 세계 최고의 감독 중 하나다.
‘당장 어제가 FA컵 결승이지 않았나?’
어제 저녁 영국에서 아스날과 FA컵 결승을 치른 펩이 고작 12시간 만에 스페인에, 그것도 이 먼 이비자 섬까지 왔다는 것이 당최 이해가 안 되는 상욱. 그러나 대단히 흥미 있는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바로 나갈게요. 그 양반, 지금 어디 있어요?”
***
[경기 끝났습니다! 스코어 3:1! 2019-20 시즌 FA컵 챔피언은 맨체스터 시티입니다!]
[리그컵에 이어 FA컵까지! 잉글랜드에서 들 수 있는 모든 트로피를 독식하는 펩 과르디올라입니다!]
영국 웸블리 스타디움.
이번 시즌 리그컵과 FA컵을 동시에 석권하며 영국에 있는 클럽 중 유일하게 더블을 기록한 맨시티이나, 팬들과 전문가들의 평가는 불만족스럽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우선 프리미어 리그에서는 최종 2위로 준우승을 거뒀다. 피르미누-살라-마네로 이어지는 리버풀의 압도적인 공격라인이 리그를 지배한 시즌으로 우승을 놓친 것이 이해는 된다만1위와는 무려 20점이 넘는 차이로 리버풀이 리그 역사상 가장 높은 승점으로 우승하는 것을 지켜만 봐야 했다.
게다가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위해 선임됐던 펩의 지난 4년간 챔스에서의 성적은 16강-8강-4강-8강으로 우승은커녕 결승에도 오르지 못했다.
[맨시티, 리옹에게 덜미. 펩시티 결과는 실패인가?]
[챔스에 이어 리그까지 놓친 맨시티. 지금이 옳은가?]
이미 각종 언론들은 과르디올라의 시티를 실패라고 평하며 물어뜯기 바빴고, 현지 팬들 역시 펩을 비판함과 동시에 이번 시즌을 끝으로 팀을 떠나는 세르히오 아게로의 대체자를 영입하길 바랐다.
@Mancityfan_Miro
리그 우승은 펠레그리니도 했던 거야. 우리는 빅이어를 원한다고! WTF! 게다가 이번엔 리그까지 못 먹었네?
@MCFC_CHAMP
이 정도 성적이면 아무리 펩이어도 실드가 안 돼. 이번 시즌 아게로 떠난다는 데 공격수 대안은 있나?
@The City Bulletin
홀란드는 도르트문트로 가고, 오시멘은 나폴리가 비싸게 사 왔는데 벌써 보낼 리가 없고, 라우타로는 진이 떠나는 마당에 인테르에서 팔 리가 없어. 남은 건······.
@Agüero No.10
우리가 다시 리그 타이틀을 가져오고, 빅이어를 들려면 아무리 비싸도 진을 잡아야 해. 무조건!
이적시장이라는 것이 참 기묘하다.
전상욱의 영입을 바랐던 바르셀로나는 거절당하자 메시의 동료이자 월클 공격수 아게로를 영입했고, 주포가 떠난 맨시티는 공격수, 아니 이번 이적시장 최대어 진을 잡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했다.
“젠장, 누군 진 잘하는지 몰라서 이래!?”
다시 이비자 섬.
원래 이적은 팀 내 단장과 스포츠 디렉터의 일이고, 지금껏 이적이나 계약을 잘 처리해 왔기에 만족하고 있던 펩은 현재 전상욱의 이적 사가가 맨시티가 아닌 PSG 쪽과 더욱 진전되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 냉큼 상욱이 쉬고 있다는 휴양지까지 대뜸 찾아온 것이다.
“감독님, 아무리 그래도 이제 막 시즌 끝났는데 이렇게 오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구단 쪽 일도 처리해야 하고 무엇보다······.”
펩과 함께 온 맨시티 총괄 스카우터가 볼멘소리로 중얼거린다.
“아무리 그래도 감독이 직접 와서 기다리고 있는 게······.”
“그게 뭐 어때서 그래?”
“체면이 떨어지지 않습니까. 선수나 에이전트가 우릴 뭐라고 생각하겠습니까. 얼마나 급하면 감독이 직접 오겠냐고······.”
스카우터의 볼멘소리에 펩은 조금도 신경 쓰지 않으며 어깨를 으쓱거린다.
“보통의 선수라면 그렇겠지.”
“네? 보통의 선수요?”
“자네, 잘 생각해 봐. 리오넬 메시가 당장 FA로 풀리고 그를 영입할 수 있다면 전 세계 어떤 팀이 가서 그를 잡으려 들지 않겠나?”
“메시······ 요? 그 리오넬 메시를 말하시는 겁니까?”
과르디올라가 지휘한 바르셀로나는 역대 최강팀 중 하나이며, 그가 지휘했던 메시는 축구사 단연 1위로 포함될 만큼 엄청난 활약을 보였다.
그와 10년 이상 함께해 온 스카우터 역시 메시의 전성기와 위대함을 똑똑히 봐 왔고 말이다.
고작 20살짜리 선수를 감히 축구사의 G.O.A.T와 비교하는 펩의 단호함에 놀랐는데 아예 그는 더 엄청난 말을 하고 있었다.
“정정하지. 진은 그 이상이야.”
“감, 감독님!”
“잘 듣게, 루시오. 진은 레오를 뛰어넘을 축구사 유일한 선수가 될 거야. 저놈이 여색에 미쳐 축구를 내던져도 메시와 비슷한 수준으로 커리어를 마칠 거고, 만약 놈이 성실하다면······ 우린 정말 축구의 신을 마주할 수도 있겠지.”
그러자 호텔 카페 안으로 들어오는 진을 보며 벌떡 일어서는 펩 과르디올라.
“아! 진! 이쪽입니다!”
***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단장님.”
“대단히 비싼 금액을 제시해야 하실 겁니다, 에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단장 에드 우드워드와 인테르의 단장 주세페 마로타가 전상욱의 이적을 두고 협상에 나섰다.
“오늘 내 손녀의 리사이틀이 열리는 날인데······ 아무런 소득 없이 끝내면 정말 속상할 것 같군요.”
그저 기세를 누르기 위해 하는 말이 아니라 마로타는 현 상황에 대단히 짜증이 나 있었다.
맨유는 이미 전상욱의 이적사가에 여러 번 참가한 바가 있었는데, 그때마다 별 같잖은 제안으로 여러 번 퇴짜를 놓았기 때문이다.
“그럼요, 단장님께서 만족해하실 만한 제안을 준비해 왔습니다.”
한껏 긴장한 표정의 우드워드가 마로타에게 새로운 이적안을 내놓았다.
< 전상욱 이적 사가 (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