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화
Adios, Inter (1)
세리에 역사상 최고의 선수!
-가제타 델로 스포르트(이탈리아 3대 축구 언론)
떠나는 우리의 왕에게 경배를!
-투토 스포르트(이탈리아 3대 축구 언론)
빛나는 동양의 보석에서 주세페 메아차의 왕으로!
-코리에레 델로 스포르트(이탈리아 3대 축구 언론)
***
리그 역사상 가장 충격적이었던 데뷔 시즌을 치른 전상욱의 2018-19시즌이 마무리되고, 2019-20시즌 마저 끝났을 때.
전상욱은 세리에의 탑이자 진정한 주세페 메아차의 왕으로 군림했다.
콘테와 전상욱이 함께하는 2번째 시즌, 20살이 된 전상욱은 이전보다 더욱 강력하게 돌아와 리그를 씹어먹고, 유럽을 폭격했다.
리그는 35경기에 출전해 36골 21도움을 기록해 득점왕과 도움왕을 동시에 석권했으니, 리그 최우수 선수를 받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득점은 지난 시즌보다 줄어들었으나 도움은 9개나 더 기록했고, 경기 영향력은 이전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더욱 성장했으며, 득점과 패스, 속력, 시야 등 모든 부분에서 진정한 완성형 포워드로 성장했다.
[세리에 역사상 최고의 공격수 진!]
[반바스텐, 셰브첸코, 바조를 뛰어넘는 위대한 아시안!]
[‘천재’ 진, 나폴리의 마라도나마저 능가할 수준!]
월드클래스니, 슈퍼스타니 이런 말은 이미 쏙 들어간 지 오래다.
이미 언론에서는 단 2시즌 만에 그를 세리에 역사상 최고의 공격수라 평가했다.
전상욱은 현역 선수가 아닌 산드로 미촐라, 군나르 노르달 등 1940-50년대 레전드들과 기록 경쟁을 하고 있었고, 그 인종차별 심하다는 이탈리아 언론은 상욱을 무려 이런 선수들 위에 있다고 보도했다.
전상욱과 함께한 인테르 역시 10년 만에 최고 전성기를 달렸다.
완전히 녹아든 전술, 높아진 체력, 이적 선수의 성공적인 적응.
게다가 킬러 에딘제코, 재빠른 윙어 폴리타노, 든든한 중원 라자로, 한때 월클 알렉시스 산체스 등을 영입하며 지난 시즌 가장 큰 약점이었던 얇은 스쿼드마저 보완했다.
콘테의 인테르는 당연히 2번째 시즌에 더욱 강해졌다. 이들의 더욱 단단해진 수비와 전상욱을 위시로 한 사기적인 공격진은 리그를 말 그대로 초토화시켰고, 승점 103점으로 2014-15 시즌 유벤투스가 기록했던 리그 최다승점 기록을 갈아치우고 2년 연속 스쿠데토를 들었다. 리그뿐 아니라 컵 대회도 순항 중.
비록 코파 이탈리아에서는 진을 포함한 핵심 선수를 대거 빼는 로테이션 때문에 2부리그 팀에게 기습 패배를 당해 다소 허무하게 탈락하긴 했지만 챔스는 달랐다.
16강 맨유, 8강 도르트문트, 4강 AT 마드리드를 만난 인테르는 상대를 무자비하게 살육하며 순항했고, 마침내 호날두의 유벤투스를 챔스 결승에서 만나게 됐다.
“6번째 빅이어를 위해 목숨을 바칠 것이다.”
세리에 경력 내내 전상욱을 넘지 못했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는 이번 챔스 결승에서 승리해 6번째 빅이어와 6번째 발롱도르를 획득할 수 있는 일생일대의 기회를 맞았고, 이를 통해 상욱과의 경쟁에서 단번에 승리하고자 했다.
“진은 내 감독 인생 중 단연코 최고의 선수입니다.”
세리에 최종 총평 및 챔피언스 리그 결승을 앞둔 인터뷰에서 담담하게 상욱에 대한 평가하는 콘테 감독.
아자르, 포그바, 부폰 등 여러 레전드 선수들을 지도해 본 콘테는 자신이 지도한 선수 중 최고를 단연 전상욱으로 뽑았다.
Q 항간에서는 진이 이번 시즌을 끝으로 유럽 메카클럽 다수 팀과 이적설이 도는 소문이 있던데 정말인가요?
A 사실입니다. 진은 여러 구단에서 그를 노리고 있고, 우린 지키고자 노력했지만······ 사실 어렵습니다. 더 이상 진은 세리아에서 얻을 게 없어요. 동기부여가 힘들단 얘기죠.
콘테는 더 이상 애제자를 붙잡는 짓을 하지 않았다.
상욱은 2년 만에 이 리그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기록을 갱신했고, 더 이상 이곳에선 자신의 적수가 없다며 따분해하고 있을 것이다.
이런 상욱을 옆에서 지켜보며 그의 생각을 누구보다 잘 알았던 콘테였기에 아무리 그가 필요하다 해도 잡지 못하는 것이다.
A 진은 저나 구단이 붙잡는다고 해서 남을 선수가 아닙니다, 스스로 동기부여를 찾는 선수고, 그 마지막 동기가 빅이어일 겁니다.
Q 그 말은 이번 챔피언스 리그 타이틀을 따낸다면 진이 타 리그로 이적할 수 있다는 말씀인가요?
이 대목에서 콘테는 다소 씁쓸한 눈빛으로 중얼거린다.
A 그렇게 되지 않았으면 합니다만, 아마 이 경기가 인테르에서 진의 마지막이 될 수도 있겠죠.
***
전상욱은 아직 자신의 이적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으나 팬들과 동료들은 그의 이적이 눈앞에 다가왔다고 생각했다.
“아미고, 진.”
결승을 앞둔 와중 그의 파트너이자 가장 절친한 동료 라우타로 마르티네즈가 걱정 가득한 표정으로 상욱에게 다가왔다.
전상욱과 라우타로는 트레제게-델피에로를 잇는 세리에 대표 영혼의 투톱으로 불렸다.
거칠고 활동량 많은 라우타로가 볼 키핑과 운반을 맡으면 상욱은 환상적인 움직임으로 수비를 뚫거나 골을 만들었다.
“진, 아니지?”
“뭘?”
“떠난다는 소문 말이야. 밖에 나가면 사람들이 다 얘기해, 오늘 경기가 진의 인테르 마지막 경기라고.”
라우타로의 떨리는 목소리에 상욱은 아무 말 없이 조용히 듣고만 있었다.
“괜히 이적설 때문에 팀 분위기 해치지 않으려는 건 이해하는데······.”
이 대목에서 속상한 마음을 토로하듯 투덜대는 라우타로.
상욱 역시 하디 크루거 다음으로 가장 친해진 동료에게 끝까지 비밀을 유지하긴 힘들 거라 생각했다.
“나한테는 말할 수 있는 거 아냐?”
“알겠어, 타로. 대신 어디 가서 소문내면 안 돼.”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동료를 보며 천천히 말하는 상욱.
“오늘 유베 전이 인테르에서 마지막 경기다.”
“역시······.”
“이 경기가 우리가 함께 뛰는 마지막 경기일 거다. 앞으론 적으로 만나겠지.”
“널 적으로 만난다니 생각만 해도 두려운걸?”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며 슬쩍 웃어 보이는 두 사람.
아쉽긴 하지만 라우타로는 상욱 정도 되는 실력과 성격을 가진 선수가 한 팀에 머무르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타로, 우리 영웅으로 마무리하자. 우린 오늘 팀 역사상 최고의 투톱이 되는 거야.”
“좋아 진, 대신 최고의 공격수는 네가 가져. 나한텐 너무 부담스런 단어니깐.”
시즌 종료까지 남은 단 한 경기.
[여러분 길었습니다! 1년간의 긴 여정, 2019-20 챔피언스 리그 결승이 알리안츠 아레나에서 펼쳐지겠습니다!]
[인테르와 유벤투스, 유벤투스와 인테르! 보통 결승은 공격과 수비 각각 강점을 가진 팀들이 나오는데 말이죠. 오늘 결승에 올라온 2팀은 조금 다릅니다.]
공격과 수비 모두 완벽한 양 팀 선수들이 경기장에 나섰다. 특히 오늘 경기에 대한 호날두의 열의와 독기는 상상을 초월할 수준.
화려하게 이적한 세리에에서 그의 2시즌 동안 그는 팀 우승은 물론 어떠한 개인 수상도 하지 못했다.
스쿠데토는 2년간 인테르에게 뺏겼으며, 그나마 체면치레할 수 있었던 올해 코파 이탈리아마저 피올리 감독 아래 이번 시즌 완벽히 부활한 AC밀란에게 빼앗기고 말았다.
[세간에선 오늘 경기가 진의 인테르 마지막 경기란 말이 있습니다. 주세페 메아차의 왕이 유벤투스를 꺾고 세리에 정복을 완벽히 마무리할 수 있을지. 아님, 호날두의 유베가 복수에 성공할 수 있을지 두고 봐야겠습니다.]
***
전반 21분.
무려 챔피언스 리그 결승 경기이나 상욱은 ‘왕’은 긴장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아트투르, 라비오 등 유럽 정상 미드필더를 앞에 둔 상욱은 상대 진영에서 알까기, 팬텀 드리블 등 할 수 있는 모든 개인기를 다해 수비진을 뚫어 냈다.
[어떤 기술을 쓰고 있는지 다 말할 수도 없습니다. 수비수 3명을 순식간에 뚫어 내면서 현존하는 모든 개인기를 사용합니다!]
[빠르게 뛰고 있는 것도 아니고요. 대단한 조직력을 보이는 것도 아닙니다. 진 혼자서 뚫고 가는데 세리에 최고 수비수들이 무너집니다!]
간단했다.
상욱이 어떻게든 우당탕탕 수비진을 뚫고 들어가면 전방압박을 뚫은 라우타로가 달려와 마지막 순간에 공을 받은 뒤 슈팅하는 작전.
[진이 골문 앞에서 라우타로 쪽으로 스루패스! 라우타로 달려 오면서 그대로- 들어갔습니다!]
[스코어 1:0! 우리는 정말 행운입니다! 지금 진의 경기를 라이브로 보고 있으니까요!]
알레그리와 유벤투스의 생각이 틀리지 않았으며, 대전상욱전을 위해 짜 온 작전은 오히려 훌륭했다.
작년 챔피언스리그 16강에서 PSV의 작전처럼 보누치-키엘리니로 수비진을 걸어 잠근 뒤 강력한 압박을 통해 호날두를 제외한 필드 플레이어 전체가 전상욱을 막는 전술을 택한 알레그리.
인테르 공격의 90%를 담당하는 상욱을 막기 대단히 좋은 전술이며, 아마 상욱의 폼이 평소의 컨디션이거나 리그 경기였다면 막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평소의’ 폼이었다면 말이다.
[바렐라가 진에게- 아 어떻게 드리블이 저럴 수가 있을까요. 마치 중력이 없는 우주에서 움직이는 것처럼 유려합니다.]
중원에서 공을 받자마자 깔끔하게 턴하며 라비오를 제친 상욱은 이내 순식간에 페널티 라인 쪽으로 달려 나갔다.
[키엘리니가 달려옵니다! 막아야 해요! 여기서 실점하면 유벤투스는 희망을 거의 잃게 됩니다!]
이번에는 어떤 기술로 상대를 농락할까, 얼마나 빨리 수비를 벗겨 낼까- 사람들의 관심을 가득 받은 상욱. 그러나 이번에도 그의 플레이는 예상을 벗겨 갔다.
[진 그대로 중거리이이이! 들어갔습니다!]
[이건 연습경기가 아닙니다. 무려 챔피언스 리그 결승이에요! 그런데 어떻게······ 저렇게 잘할 수 있을까요!]
상욱은 전반 내내 유벤투스를 말 그대로 탈탈 털었고, 이탈리아 국가대표 수비진 키엘리니와 보누치의 수비는 상욱을 상대로 단 한 차례도 성공하지 못했다.
상황은 후반에 들어와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유벤투스는 어떻게든 상욱을 막고 호날두의 개인 능력으로 추격 골을 만들어 내려고 했으나 콘테의 쓰리백이 완벽히 이식된 인테르의 수비를 뚫긴 역부족이었다.
[호날두가 중원에서 공을 받아 위로 올라갑니다.]
[오늘 라이벌 진에 비해서 보여 준 게 하나도 없기 때문에 본인도 경기가 답답할 거예요!]
중원에서부터 공을 잡아 올라가려던 호날두와 수비를 위해 라인을 내려서 움직이던 상욱. 순간 상욱이 득달같이 달려들며 호날두의 다리 쪽으로 슬라이딩 태클을 성공시켰다.
[진의 완벽한 태클! 주심도 정당한 태클 인정합니다!]
[어떻게 저 선수는 수비까지 잘할까요?정확히 공만 노린 너무나도 깔끔한 태클입니다!]
“이런, 씨발!”
호날두의 짜증스런 외침이 필드를 벗어나 벤치까지 들렸으나, 이를 신경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드리블이 어떤 건지 보여 줄게.”
중얼거리던 상욱은 이내 단거리 육상경기라도 하는 것처럼 미칠 듯한 속도로 수비진 안을 뚫어 내며 전진했다.
[나왔습니다! 총알 탄 사나이! 2초, 3초! 체감상 얼마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페널티 라인 안으로 진출합니다!]
중원은 당연하고, 수비진까지 완전히 벗겨 낸 뒤 골키퍼까지 제친 뒤 득점에 성공했다.
[3:0! 진의, 아니! 세리에 왕의! 원맨쇼입니다!]
< Adios, Inter (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