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축구의 신이 된 저니맨-88화 (88/114)

88화

주세페 메아차의 왕

“재능 있는 유망주에서 네덜란드 리그 스타로, 월드컵 골든볼에서 월드클래스로 그리고 이제······.”

이탈리아 출장차 시간이 맞아 조용히 경기를 관람하게 된 psv의 감독 반니스텔루이.

현 유럽 최정상 팀을 상대로 넣은 제자의 골에 그는 뿌듯함과 아쉬움이 함께 담긴 표정으로 상욱을 바라봤다.

오늘 상욱은 리오넬 메시 정도, 아니 메시 이상의 활약을 보이고 있었다.

“나 같은 건 이미 애초에 넘었어. 내 최전성기 시절을 붙여도 지금 진보단 아래일 거야.”

자기애가 누구보다 강한 반니가 이렇게 평가할 정도면 오늘 전상욱의 플레이는 두말하면 입이 아플 정도였다.

마지막까지 옛 제자의 승리를 바라던 반니 앞으로 장발을 한 중년의 동양인이 나타났다.

“감독님, 처음 뵙겠습니다.”

“누구······?”

영어를 유려하게 사용하는 남성의 모습에 다소 당황한 반니가 혹시나 동양인과 구면인가 싶어 머리를 굴려 기억하기 위해 노력했다.

“우리가 아는 사이인가요? 혹시 지성의 아버지······? 아닌데? 지랑 너무 안 닮았어. 아니면 함부르크에 있던 승민의 아버지인가?”

“아뇨. 저는 선수의 가족이 아닙니다. 일단, 명함부터 드리겠습니다.”

남자가 준 명함에는 호랑이 그림과 함께 KFA(Korea Football Association)이라고 적힌 문구가 함께 있었다.

“치곤······ 김?”

“네, 감독님. 안녕하십니까. 대한축구협회 부회장직을 맡고 있는 김치곤이라고 합니다.”

명함의 뒤엔 Vice chairman(부회장)이란 단어와 함께 국가대표 감독 선임위원장이라는 직함이 함께 있었다.

“팬으로써 인사차 찾아뵀습니다. 일단은요.”

***

정규시간은 이미 지났고, 추가 시간은 2분밖에 남지 않은 상황.

[최근 몇 년간 이렇게 재미있는 경기가 또 있었나 싶습니다! 합계 스코어는 5:5 이대로 끝난다면 바르셀로나가 승리합니다.]

[진이 마지막 투혼을 발휘합니다! 완벽한 베르캄프 턴! 피케를 농락하듯 벗겨 냅니다, 그대로 슈웃!]

추가 시간 직전에 찬 슛이 골키퍼 펀칭과 함께 튕겨 나왔다. 정확도는 높았으나 체력의 한계 때문인지 강력하지 못했다.

[바로 역습에 나서는 바르샤! 인테르는 막아야겠습니다! 세메두가 길게 그리즈만에게 전달하는 공!]

그리즈만은 이미 하프라인을 넘어 질주하고 있었고, 지친 인테르는 수비수를 제외하곤 막으러 갈 수 있는 선수가 아무도 없었다.

한 명 빼고는 말이다.

[아직 인테르에 체력이 남은 선수가······ 진, 진입니다! 역습 상황에서 곧바로 수비까지 내려오는 저 투혼은 정말······ 혀를 내두를 정도네요.]

입술에 피가 날 정도로 달리던 상욱은 슬라이딩 태클로 곧장 그리즈만의 공을 빼앗고 동시에 아직 경기 종료 깃발을 올리지 않는 주심을 확인했다.

[스포츠를 예술로 만드는 선수가 여기 있습니다! 현실을 영화로 만드는 사람이 여기 있습니다! 진, 하프라인에서 길게 크로스합니다아아!]

[라우타로가 뛰어갑니다! 역전의 용사가 경기를 마무리하기 위해 달립니다!]

상욱의 길고 뱀 같은 크로스가 수비진을 넘어 뛰어 들어가는 라우타로에게 연결되고 공을 받은 라우타로는 터치 한 방에 오른쪽 구석으로 골을 집어넣는다.

[들어갔습니다! 인테르가, 인테르가! 아······! 이건 VAR을 확인해 봐야겠는데요!]

[아······ 이거 너무 애매해서 뭐라 말씀을 못 드리겠습니다. 일단 VAR 판독 후 말씀드려야 할 것 같네요.]

세리머니하던 라우타로는 문득 멈춰 서 불안한 표정으로 상황을 지켜보고, 메시를 포함한 바르샤 선수 전원이 손을 들고 오프사이드를 강력히 주장했다.

[생각보다 확인 시간이 깁니다.]

[라우타로의 돌파와 피케의 수비 위치가 정말 한 끗 차이라서 그렇지 않나 싶습니다.]

양 팀 모두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이 골이 승부를 결정지을 것이다.

골로 인정되면 인테르가, 인정되지 않으면 바르샤가 승리하는 것이 명확한 상황.

5분 넘게 기다린 상태에서 주심이 들어오고 그는 천천히 바르샤 진영으로 다가간다.

[자, 주심 왔습니다. 네! 오프사이드 판정 나왔습니다! 득점 인정하지 않습니다!]

[바르샤 선수들이 환호합니다! 그리고- 경기 끝났습니다! 치열한 승부 끝에 바르셀로나가 결승에 진출합니다!]

승부의 세계는 냉정한 법이다.

한 끗 차이로 승리한 팀은 모든 영광을 갖고, 한 끗 차이로 패배한 팀은 모든 영애를 잃는다.

패배에 익숙지 않은 상욱이 떨어지지 않는 침을 겨우 삼키며 선수단을 격려하고 있을 때,

“진.”

시대의 지배자 메시가 그에게 다가와 유니폼 교환을 요청한다.

떨떠름하지만 세계 축구 지존의 제안인데 거절할 이유가 없었던 상욱이 곧장 옷을 벗어 교환하자 메시는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악수를 건네며 말했다.

“패배한 건 인테르지 네가 아냐.”

“갑자기 왜 이리 비행기를 태워? 됐어요, 됐어.”

“오늘 난 현역 최고의 컨디션이었다. 아마 내가 조금이라도 지쳤다면 승리를 바뀌었을 거야. 정말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이 대목에서 상욱에게 바짝 다가와 중얼거리는 메시.

“넌 오늘 잠깐이나마 나를 앞섰다. 다음 시대의 지배자는 진, 누가 뭐래도 네가 될 거야.”

“거참 고마운 말이군.”

“그러니까 진-.”

진심 어린 표정의 메시와 그와 극명히 대비되는 심드렁한 표정의 상욱.

“이번 시즌이 끝나면 바르샤로 와라. 너와 나라면 챔스 우승은 물론이고, 유럽을 정복하는 것도 무리가 아냐.”

“세계 최고의 선수에게 이런 말을 듣는 건 대단한 영광이긴 하네. 그런데 말이야. 여기 있으면서 깨달은 게 있어. 첫 번째는 네 말대로 난 위대한 선수가 될 거야. 어쩌면 너나 펠레, 마라도나와도 견줄 수 있겠지. 두 번째는 난 누구 밑에 있을 놈이 아냐. 따까리 짓은 밀월에서 충분히 했거든.”

당최 알 수 없는 말을 뱉어 대는 상욱의 모습에 의아한 메시. 곧 상욱은 의기양양한 모습으로 메시를 지나친다.

“챔스 우승이든, 유럽정복이든 왕좌는 나 혼자 오른다. 다음 시즌엔 무조건 우승은 내 차지야.”

“아쉽게 됐군, 너 혼자선 무리일 텐데.”

“그건 두고 봐야 알지.”

자신이 경기를 망쳤다며 자책하는 라우타로를 일으키고, 아쉬움에 눈물 흘리는 둠프리스를 위로하던 상욱은 곧 아쉬워 미칠 것 같으나 애써 미소 짓는 콘테에게 다가간다.

“고생했다, 진.”

“감독님, 약속 하나 드릴게요.”

약속?

의아한 표정의 콘테를 보며 의미심장하게 말하는 상욱. 새로운 목표가 생긴 것에 그의 모습은 어느 때보다 밝고 가벼운 듯 보였다.

“사실 이번 시즌 끝나고 팀을 떠나려고 했어요. 라리가나 EPL, 아예 리그를 옮길 생각이었죠.”

“그······ 래서? 나갈······ 거냐?”

팀 내 에이스이자, 리그 최고 선수이자, 최다득점왕이 나간다는 말에 대단히 큰 충격을 받은 듯 감히 말도 뱉지 못한 채 떨어 대는 콘테.

아무리 자신이 협박하고 회유해도 전상욱이란 인간은 듣지 않을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그였기에 더욱 놀라운 반응이다.

“안 갑니다.”

“으, 응?”

“PSV에서도 챔피언스 리그를 앞에 두고 떠났어요. 더 이상 도망치고 싶진 않습니다. 여기서 빅이어를 들고, 왕좌에 오르기 전까진 인테르에 남겠습니다.”

상욱의 다짐에 콘테는 정말 환상적인 결정이고, 구단과 자신은 상욱의 우승을 위해 모든 노력을 할 것이라며 웃어 보이며 라커룸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이를 보며 조용히 속삭이는 상욱.

“뭐 그래 봤자, 1년일 테지만.”

***

2018-19 세리에의 모든 일정이 종료됐다.

스쿠데토의 인테르의 차지로 돌아갔다.

리그 막판 유벤투스는 5연승을 달리며 어떻게든 역전의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 갖은 수를 다 썼으나, 인테르와의 ‘데르비 델리 마돈니나’에서 2번 다 패한 유베는 결국 승점 5점 차로 우승에 실패했다.

무리뉴의 트레블 시즌 이후 9년 만에 우승을 차지한 콘테의 인테르. 이번 스쿠데토는 대단히 값진 우승이었다.

유벤투스의 리그 8연패를 막았을 뿐 아니라 리그 최소 실점, 최다 득점을 기록한 강력한 팀으로 마침내 인테르는 무리뉴 시대 이후 길었던 부진의 고리를 끊을 수 있었다.

[2018-19 세리에A 최종 리그 순위표]

1. 인테르 28승 6무 4패 95득 23실 +72 승점 90점

2. 유벤투스 25승 10무 3패 72득 21실 +51 승점 85점

3. 나폴리 24승 8무 6패 78득 41실 +37 승점 80점

4. 아탈란타 20승 12무 6패 77득 38실 +29 승점 72점

이용홍 단장의 사퇴 이후 부활의 기미를 보이던 밀란이 아탈란타와 챔피언스 리그 티켓을 두고 끝까지 경쟁했으나, 시즌 초반의 부진을 이기지 못하고 6위로 내려앉았고, 호날두라는 역대 최고의 공격수를 품은 유벤투스는 챔스는커녕 리그 우승도 실패하며 체면을 제대로 구겼다.

[2018-19 세리에A 기록]

득점왕 : 1위 전상욱 40골(인테르), 2위 치로 임모빌레 32골(라치오), 3위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31골(유벤투스)

도움왕 : 1위 니콜라 바렐라 15도움(인테르), 2위 피오트르 지엘린스키 14도움(나폴리), 3위 루이스 알베르토 13도움(라치오)

리그 베스트

FW : 전상욱(인테르), 치로 임모빌레(라치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유벤투스)

MF : 니콜로 바렐라(인테르), 제프 브로조비치(인테르), 루이스 알베르토(라치오)

DF: 이반 페리시치(인테르), 조르조 키엘리니(유벤투스), 밀란 슈크리니아르(인테르), 주앙 칸셀루(유벤투스)

GK : 사미르 한다노비치(인테르)

세리에 최우수 유망주 : 전상욱(인테르,31경기 40골 12도움)

세리에 최우수 선수 : 전상욱(인테르, 31경기 40골 12도움

- 세리에 역사상 한 경기 최다 골, 한 시즌 최다 골, 최연소 득점왕, 최연소 MVP. 120년 리그 역사를 다시 쓰고 있는 위대한 아시안의 첫 시즌이 끝났다.

- 이번 시즌 활약은 ‘일 페노메노’ 호나우두보다 위에 있으며, 팀의 전설 산드로 마촐라나 주세페 메아차의 전성기를 능가하는 수준이다. 유베의 야심작 호날두는 젊은 아시안을 결코 넘지 못했으며, 이번 시즌 리그를 포함한 그 어떤 타이틀도 따내지 못했다.

- ‘주세페 메아차의 왕’ ‘위대한 아시안’ 그 어떤 수식어를 붙여도 모자라지 않은 그의 발자취는 이제 시작이다.

***

코파 이탈리아 결승전

밀란과 인테르의 경기가 열리는 산시로이자 주세페메아차 경기장.

[세리에 최대 라이벌이라는 말이 무색해집니다.]

[일반적인 방법으론 밀란은 더 이상 인테르에게 승리할 수 없습니다. 최소 진이 있는 한은 말이죠.]

4:0.

전상욱은 오늘 경기도 해트트릭을 기록했다.

이쯤 되면 그만할 법도 하나 시즌 마지막 경기를 멋지게 마무리하기 위해 한 번 더 질주에 나섰다.

[진이 하프라인에서부터 중원까지 달려갑니다- 수비하러 나옵니다만, 진은 그냥 막을 수 있는 선수가 아니죠!]

그저 속도만으로 상대를 벗겨 내고 오른쪽으로 뛰어가는 바렐라에게 2:1 패스를 주고받은 뒤.

[들어갔습니다! 오늘 경기 4골! 시즌 58호골! 산시로의 악몽이 또 넣었습니다!]

[네, 기어코 또 넣네요. 밀란은 저 아시안을, 아니 주세페 메아차의 왕을! 놓친 걸 영원히 후회할 겁니다!]

전상욱의 2번째 시즌.

세리에A 우승, 코파 이탈리아 우승, 챔피언스리그 4강.

그리고 1년이 지났다.

< Adios, Inter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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