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축구의 신이 된 저니맨-87화 (87/114)

87화

포처의 화신(化身)

“앞으로 가능한 스프린트는 2번 이하. 그마저도 달리는 순간 남은 체력을 모두 소모할 거야.”

그라운드 안으로 들어온 상욱은 절망적인 표정의 팬들과 팀 벤치를 찬찬히 바라본다.

상황이 대단히 절망적이긴 하다. 이제 승리하기 위해선 45분간 3골을 넣어야 하고, 상대의 수비적인 전술을 어떻게든 뚫어 내야 함과 더불어 팀의 에이스는 지친 나머지 더 이상 제 컨디션이 아니다.

사실 평소의 인테르 팬들이라면 이런 암울한 상황에서도 ‘진이라면 다를 거야’ ‘진은 이런 상황에서도 기적을 만들 거야’ 기대하겠으나, 상욱은 지친 데다 심지어 상대는 역사상 최고의 축구선수였다.

“타로, 잘 들어.”

후반전 들어와 패배의 절망과 불안에 몸을 떠는 동료 라우타로에게 다가가는 상욱.

“난 정상 컨디션으로 남은 45분을 다 뛰지 못해. 원래 내 스타일 대로 하면 남은 시간 동안은 평소보다 경기 수준이 낮겠지.”

“······뭐!? 그.그럼 어떡해! 지금 이 상황에서 진 너까지 퍼지면 우린 정말······.”

충격받은 라우타로의 어깨를 꽉 잡으며 귓가에 대고 조용히, 그러나 분명히 말하는 상욱.

물론 평소보다 낮은 수준이라고 하더라도 남들보다 뛰어난 수준이겠으나, 그 정도론 이 경기를 이길 수 없었다.

“난 동점, 아니 최소 첫 골이 들어갈 때까지 상대 진영 위에서 내려오지 않을 거야. 체력을 아끼겠단 얘기지. 그러니까 타로, 네가 어떻게든 돌파해서 공을 전달해야 해.”

탁월한 운동능력을 활용한 폭발적인 돌파가 강점이나 골 결정력이 좋은 편은 아닌 라우타로.

상욱은 그를 세컨드 스트라이커로 뛰게 해 중원으로부터 볼을 받고 수비수 사이를 돌파하는 역할을 부여했다.

“감독님은 남은 시간 공격의 모든 결정권을 내게 맡기셨어. 그러니까 타로, 남은 시간 에이스는 네가 되어야 해.”

“······내가 할 수 있을까······.”

걱정 가득한 표정의 라우타로를 보며 냉정하게 일갈하는 상욱.

“홈 팬들 앞에서 이렇게 무기력하게 질 순 없잖아. 뭔가 보여 주자고. 감독이 항상 그러잖아. 우리가 얼마나 강한지 똑똑히 보여 주자고.”

“정말······ 공만 연결해 주면 된다. 이거지?”

겨우 불안감을 이겨 낸 친구의 다짐을 본 상욱이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씩 웃어 보인다.

“아직도 못 믿겠어? 1년 동안 지겹게 봐 왔잖아, 타로. 꾸레 놈들 코를 납작하게 해 주자고.”

***

[전반 내내 인테르 공격을 지휘하던 진이 후반엔 바르샤 진영 위에서 내려오지 않습니다.]

[체력이 떨어진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인거죠. 다양한 포지션에서 뛸 수 있는 선수기 때문에 가능한 것으로 보이고요.]

포쳐(poacher).

영어로 사냥꾼이란 뜻을 가진 포쳐는 수비적인 역할은 거의 하지 않고, 공이 없을 때도 뛰어난 오프더볼과 창의성으로 상대가 대처하기 전에 골을 만들어 내는, 쉽게 말해 오로지 득점만을 위해 뛰는 선수를 말한다.

최근 공격수에게 수비가담이나 빌드업을 요구하는 현대 축구 흐름과는 대비된 포지션으로 수아레즈, 반니스텔루이 등 골 결정력이 역대 최고에 달하는 공격수 등을 제외하곤 현대 축구에서는 더 이상 찾아보기 희미한 포지션이다.

[오늘 바르샤 수비 폼이 너무 뛰어난데요, 진이 이걸 뚫어 낼 수 있을까요?]

인테르의 바람과는 달리 후반 역시 바르샤의 우세로 이어졌다.

메시를 제외하고도 그리즈만-수아레즈가 버티는 바르샤의 공격은 인테르를 끊임없이 괴롭혔고, 인테르는 지속적으로 위기 상황에 놓였다.

[그리즈만이 오른쪽으로 잡고 돌파합니다. 세르지에게 패스하고 동시에 다시 그리즈만이 빠르게 골라인까지!]

2:1 패스를 환상적으로 성공시킨 그리즈만이 직선에 있는 수아레즈 쪽으로 곧장 공을 연결했다.

[그대로 크로스 올라갑니다! 수아레즈가 원터치로 받았어요오오! 그대로 슈웃!]

[고딘이 뛰어들면서 막아 냅니다! 골키퍼까지 놓친 공이었는데요! 고딘이 빠르게 점프하면서 어깨로 막아 냈어요!]

그나마 인테르에게 희소식이라면 팀의 수비가 어느 때보다 단단해졌다는 것.

그 뒤에도 메시와 그리즈만의 몇 번 더 슛을 쐈으나 고딘-슈크리니아르-더브레이, 세리에 최고 수비는 상대의 공격을 어떻게든 막아 냈다.

***

0:2, 후반 20분이 지나가는 상황.

초조한 눈으로 경기를 지켜보던 콘테 감독이 손톱을 깨물며 공격진을 바라본다.

“해 줄 때가 됐다, 진.”

[라우타로가 하프라인 깊은 곳에서부터 공 잡고 위로 올라갑니다. 세르지와 라키치티가 함께 압박하는데요.]

중원의 강력한 압박에 당장이라도 공을 뺏길 득한 표정을 짓던 라우타로. 겨우겨우 공을 지키며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을 때,

“타로! 여기!”

윙백 페리시치가 프레스를 뚫고 왼쪽 터치라인 끝으로 빠르게 달려온다.

이를 확인한 라우타로가 기적적으로 상대의 압박을 벗어 내며 페리시치에게 강력한 스루패스를 전달했다.

[후반 인테르의 행동대장은 라우타로인 모양입니다!]

[진은 지쳤고, 중원에서 밀리고 있는 이 상황에서 해 줄건 라우타로밖에 없으니까요. 자! 페리시치에게 전달됩니다!]

어떻게 상대 진영까지 오긴 했으나 수비가 많았다. 갑작스런 역습에 아직 인테르 선수 누구도 올라오지 못한 상황.

이러다 공을 뺏길 상황에 놓인 페리시치가 냅다 패널라인 중앙으로 크로스를 올린다.

[크로스가 다소 빠른 것 같습니다, 받아줄 수 있는 인테르 선수가······ 아아!]

피케가 크로스를 처리하기 위해 발을 갖다 대려던 순간, 갑자기 튀어나온 전상욱이 오른쪽 다리를 길게 뻗었고, 공은 골키퍼 몸을 넘어 골대 안으로 들어갔다.

[지이이이인! 들어갔습니다! 벼락 같은 골! 인테르가 한 점 만회해 냅니다!]

[좋은 슈팅도, 좋은 돌파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골 넣기 가장 좋은 곳에 있던 위치선정! 이게 골까지 연결되네요! 아주- 나이스! 나이스한 골이었습니다!]

[이 경기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세트스코어 3:4! 인테르가 한 점 차로 따라붙습니다!]

득점 후 바로 공을 잡고 중앙으로 뛰어가는 상욱과 그 모습을 불안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는 메시.

“무슨 인자기라도 보는 것 같군.”

필리포 인자기.

월드클래스 공격수임에도 약한 몸싸움과 평범한 주력, 당대 최고에 훨씬 못 미치는 개인기를 가진 그를 월드컵 우승에 세리에 득점왕까지 만들어 준 것은 신들린 위치선정 덕분이었다.

경기 내내 아무런 존재감도 보이지 않다가 갑자기 튀어나와 골을 넣는 모습에 사람들은 그를 킬러이자 포처의 화신(化身)이라 불렀다.

“피케는 유럽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센터백이야.”

방금 골을 보고 깊게 한숨 쉬는 발베르데 감독.

이런 피케가 방금 아무런 저항도 없이 실점하자 그는 어느 때보다 초조해졌다.

“진을 더욱더 철저하게 막아라. 그냥 서 있기만 해도 가서 막아. 그냥 숨만 쉬고 있어도 태클하란 말야!”

***

바르샤 선수들은 당황스러웠다.

상대방 진영에 멀찌감치 서서 그저 골대를 바라보거나 알수 없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상욱의 모습은 대체 저 선수가 현재 유럽에서 가장 많은 골을 넣은 선수가 맞는지 의심스럽게 만들었다.

“씨발 대체 네 정체가 뭐야!”

방금 추격골을 먹힌 바르샤의 수비수 피케가 두꺼운 영국식 발음의 영어로 짜증스럽게 외쳤다.

“네놈들의 왕을 왕좌에서 끌어내릴 사람이지.”

떠들어 대는 상욱의 모습에 피케가 당황하자 그는 즐거운 표정으로 말을 잇는다.

“내 장담 하나 하지.”

곧 피케에게 손가락질하며 이죽거리는 상욱.

“넌 앞으로 날 한 번도 막지 못할 거야.”

“농담이 지나치군, 아시안.”

“멍청아, 난 지금 농담하는 게 아냐.”

추격골은 대단한 효과가 있었다.

한 골만 더 넣으면 동점이 되는 상황에서 바르샤 수비들은 상욱의 의미 없는 행동에도 바짝 긴장해 그를 막기위해 줄줄이 나타났고, 그가 공을 받기 위해 조금이라도 밑으로 내려가면 함께 라인을 올리기도 했다.

[바르샤 같은 팀을 상대로 저 정도 수비 견제를 받았던 선수가 마드리드 시절 호날두를 제외하곤 또 있었나 싶습니다.]

[그렇습니다. 바이언의 리베리도, 첼시의 아자르도 저 정도로 수비들이 달려들진 않았죠. 지금 저 모습이 현재 진의 위상을 그대로 보여 주는 장면이라고 볼 수 있겠네요.]

남는 게 체력뿐인 라우타로는 목숨을 걸고 운동장 이쪽저쪽을 달려 공을 빼앗았다. 라키티치가 메시에게 전달하는 킬패스를 탈취한 그는 중원에서 상욱 쪽으로 공을 전달했다.

[진이 공을 잡자마자 원터치로 둠프리스에게 전달합니다. 터치라인 쪽에서 크로스 올라가는데요오오오!]

둠프리스가 감각적으로 올린 크로스가 패널티라인 쪽으로 내려 오고, 생각보다 느린 크로스에 피케와 랑글레가 동시에 막으러 달려드나, 공은 이들의 있는 방향보다 조금 더 먼 곳으로 떨어졌다.

동시에 상욱이 바닥에 머리가 내려온 채로 공중에 뜨면서 그대로 바이시클 킥을 성공시킨다.

상욱의 슛은 골대 앞에서 잠깐 바운드되더니 골키퍼가 막으러 가는 정반대 방향으로 들어갔고, 바르샤의 골리 테어슈테켄은 이를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기적이!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후반 82분! 인테르가 마침내 동점골을 터트립니다!]

[왜! 세계제일이란 말을 듣는지 알 것 같습니다! 합계 스코어 4:4! 역대 최고의 경기가 펼쳐지고 있습니다!]

상욱이 동점골에 바르샤 선수들은 완전히 질려 아무것도 못하고 있었으며, 몇몇은 저 미친 아시안 때문에 완전히 전의를 상실한 선수도 있었다.

“이러다,진짜 지겠군.”

후반 87분.

이를 악문 리오넬 메시가 간만에 공을 잡고 중앙을 빠르게 돌파해 나간다.

이미 메시조차 대단히 지친 상황, 아마 오늘처럼 컨디션이 좋은 날이 아니었다면 아무리 메시라 할지라도 지쳐 쓰러졌을 것이다.

[메시가 2명, 3명까지 제치면서 뛰어갑니다! 터치 살짝 들어가면서 그대로 수아레즈 쪽으로- 슈웃!]

[다시 바르샤가 리드를 잡습니다! 원정 다득점으로 인해 이제 인테르는 동점이 되도 경기에서 패배합니다!]

왕은 아직 내려올 생각이 없었다.

메시의 기가 막힌 패스가 순간 인테르의 중원과 수비를 바보로 만들고 동시에 뛰어 들어가던 수아레즈에게 걸려 골을 만들어 냈다.

합계 스코어 4:5.

5분이 채 남지 않은 시간 동안 인테르는 2골을 넣어야 했고, 더 이상의 기적은 일어나지 않을 것 같았다.

“이제 그냥 수비만 해!”

“아무것도 하지 마! 그냥 골대만 지켜!”

메시와 발베르데 감독이 동시에 선수들을 보며 외친다. 이 시간쯤 되면 티키타카니, 압박이니 전술이 필요 없다. 그저 수비만 하며 이기는 상황.

2골은 넘기기 힘들었다. 이대로 바르샤의 승리로 끝나는 것이 당연한 수순으로 보였다.

“포처 작전은 이제 끝이야. 고생 많이 했어.”

중원으로 내려온 상욱이 라우타로를 격려하며 수비진과 눈빛을 주고받으며 마지막 공격을 전개했다.

“뭘 어떻게 하려고, 진······.”

“뭘 어떻게 해. 이겨야지.”

다시 한번 바르샤의 공격 찬스. 이를 막아 낸 수비수 슈크리니아르가 센터서클에서 고개를 끄덕이는 에이스를 보며 냅다 길게 패스한다.

공을 받은 것은 라키티치였으나, 그가 몸을 돌리려는 찰나. 갑작스레 달려든 상욱이 공을 뺏은 뒤 미친 듯 앞으로 전진했다.

[진이! 뺏어 냈습니다! 후반전 처음 보는 진의 질주입니다! 너무나, 너무나도 빠릅니다!]

[아직,저런 힘이 남았나요!? 저거 후반전 내내 아낀 체력을 한 번에 몰아쓰는 것 같아요!]

부스케츠, 세르지, 라키티치. 세계구급 중원의 압박을 미칠듯한 스피드로 벗겨 낸 상욱은 순식간에 상대 페널티 라인까지 달려온다.

[피케가 따라붙으면서 태클하는데요! 어림없습니다! 테어 슈테켄 골문 밖으로 나와요, 그대로 진 슈우우웃!]

상욱이 목숨을 걸고 찬 슛은 골키퍼를 넘어 골대 안으로 밀려 들어갔고, 바르샤의 수비 세메두가 빠르게 들어와 공을 걷어 내려 했으나 공은 이미 골대 안에 들어가 있었다.

[1골차! 아직 이 경기 안 끝났습니다! 득점자는 월드클래스, 아니 세계 최고의 선수입니다!]

< 주세페 메아차의 왕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