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화
세계 최고의 축구선수
메시는 이 정도로 자신을 놀라게 한 선수가 또 있었나 싶을 정도로 놀랐다.
로벤, 리베리부터 네이마르, 아자르까지 지금껏 자신의 아성에 도전했던 월드 클래스들이 몇 있었으나, 이 중 누구도 메시를 넘진 못했다.
그 잘났다는 호날두마저 어느 정도 기록은 따라왔으나 기본적인 실력은 사실 한 수 아래라고 평가받았다.
“네가 얼마나 대단한 인간인지 알겠다.”
역전골을 어시스트하고 팀원들의 축하를 받는 상욱을 보며 조용히 중얼거리는 메시. 방금 장면으로 그는 확신했다.
전상욱이야말로 새 시대의 주인이 될 만한 인물이라고 말이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지금은 자신의 시대다.
2020년이 어떻게 흘러갈지는 모르겠으나, 2019년 작금의 축구계는 누가 뭐래도 리오넬 메시의 것이었고, 전상욱에게 왕관을 물려주기에 아직 그는 너무 정정했다.
“진짜 클래스가 어떤 건지 보여 주마.”
[경기 종료가 가까워질수록 인테르는 수비에 집중하네요.]
[그럼요. 누캄프에서 1점 차라도 승리한다면, 다음 홈경기에선 절대적으로 유리하죠.]
메시는 마치 총알같이 움직였다. 터치 한번 한번을 쉽게 생각하지 않았던 그는 중원에 있는 라키티치에게 공을 받아 위로 올라갔고 상대 진영에서 공을 끌고 있던 수아레즈에게 재빨리 공을 연결했다.
[오늘 경기 부진했던 수아레즈가 볼을 끌면서 그렇죠! 공간을 만들어 냅니다! 메시가 뛰어가고요, 수아레즈가 전달합니다!]
달려오는 메시를 보고 공을 전달한 수아레즈. 본인 딴에는 수비진의 시선을 돌렸다고 생각했겠으나 이미 메시의 주변엔 덩치 큰 선수 3명이 둘러싸고 있었다.
“진짜는 이런 거야.”
조용히 읊조리던 메시가 마르세유 턴을 함과 동시에 고딘의 양쪽 다리 안으로 공을 집어넣어 알을 깐 뒤 살짝 공을 뛰어 그대로 하프발리 슛을 성공시킨다.
[메시가 왼쪽 구석으로 찹니다아! 이보다 더 잘할 수는 없을 겁니다! 리오넬- 메시! 오늘 경기 2번째 득점! 스코어는 다시 2:2 동점입니다!]
[지금부터는 재능의 영역입니다. 보통의 인간은 저 위치에서 마르세유 턴은 물론이고, 하프발리로 찰 상상조차 하지 않을 거예요!]
당했으면 바로 되갚아 줘야지- 생각했던 상욱이었으나 오늘 메시의 폼은 프로 생활을 통틀어 몇 안 되는 최상의 컨디션이었다.
[리듬감 있게 무슨 삼바 댄스라도 추는 것 같이 수비수들을 벗겨 냅니다!]
경기 종료 직전까지 왔으나, 메시는 오늘 이 경기에서 반드시 이기고 싶었다.
양발을 교차시키며 수비들을 손쉽게 벗겨 냈다.
“이번엔 진짜 막는다!”
오늘 경기 메시에게 거의 농락 당했던 슈크리니아르가 몸을 낮춘 채 전진하자, 그는 수비가 자신에게 다가오기도 전에 반대 발로 반박자 빠른 슈팅을 날렸다.
인테르 선수들은 물론 아군 선수들까지 파악하지 못한 갑작스런 슛.
들어가는 것이 당연한 상황이었으나 어느새 달려온 新 축구황제가 슬라이딩하며 극적으로 공을 걷어 냈다.
[고오오······ 아! 이런 세상에 막아 냈습니다!]
[진의 환상적인 수비입니다! 진도 그럴 겁니다. 이 경기 결코 지고 싶지 않을 거예요!]
콘테의 극단적인 수비 전술로 미드필더 지역까지 내려왔던 상욱이 극적인 상황에서 몸을 날린 수비가 성공한 뒤 그대로 경기가 끝났다.
[누캄프에서 펼쳐진 1차전이 이렇게 끝이 납니다. 진과 메시, 시대의 정점을 두고 싸운 맞대결! 일단은 무승부입니다!]
[오늘 경기는 아마 유소년 선수들에겐 교과서적인 경기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수준 높은 양 팀의 경기력과 두 감독의 지략 싸움, 마지막으로 세대를 뛰어넘는 정점들의 맞대결까지! 정말 재밌는 경기였습니다!]
***
1차전 MOM은 이례적으로 1골 1도움을 기록한 전상욱과 2골을 기록한 메시가 모두 받았다.
후스코어드 평점 역시 10점으로 동률.
2골을 기록한 메시의 점수가 좀 더 높았으나, 경기 종료 직전 상욱의 극적인 수비 때문에 도저히 우위를 가릴 수 없었다고 했다.
[인테르vs바르샤, 1차전 무승부, 승부는 주세페 메아차에서!]
[메시 “결승에 가는 건 반드시 우리.”]
[진 “한 걸음만 더 가면 우승이 보인다. 주세페 메아차에서 모든 걸 쏟아부을 것.”]
챔피언스 리그 공식 홈페이지에서는 곧 있을 2차전을 대비해 전상욱과 메시를 함께 메인에 걸어 놓으며 라이벌리를 형성했고, 팬들의 관심은 어느 때보다 뜨거웠다.
-와 전상욱 클래스 보소. psv에서 데뷔한 게 엊그제 같은데 이젠 메시랑 비비고 있누.
-원래 메시 라이벌은 호날두 아님? 전상욱은 발롱 5개 받고 다시 오자
-ㅋㅋㅋㅋㅋ 좆두는 일단 세리에 득점왕부터 하고 오자^^ 챔스DNA ㅇㅈㄹㅋㅋ 유벤투스 챔스 8강딱 한 거 보면 웃음만 나옴ㅋㅋ
명승부로 끝났던 1차전을 본 언론은 마치 이 경기를 차기 축구황제 대관식이라도 되는 양 떠들어 댔고, 언론과 사람들의 관심이 커지면 커질수록 상욱과 메시는 더 많은 부담감과 긴장을 느꼈다.
그러나 이러한 수많은 긴장과 부담은 긍정적으로 작용해 오히려 상욱을 초연하게 만들었다.
“오늘 결과로 팀의 역사가 바뀌고, 너희들의 인생 역시 바뀐다!”
4강 2차전을 앞둔 인테르 라커룸 안에서 어느 때보다 흥분한 콘테가 투사들을 결집했다. 콘테 본인도 감독 커리어 처음으로 빅이어를 가질 수 있다는 기대감을 굳이 없애지 않았다.
“우리가 가장 잘하는 전술로, 가장 익숙한 포메이션으로 간다. 늘 그렇듯 하던 대로만 하면 어떤 상대도 이길 수 있을 거다. 하물며 메시라도!”
완전히 고조되어 있는 선수들과 한 명씩 아이컨택하던 그는 마침내 라커룸 출구를 활짝 열며 강하게 외쳤다.
“결승에 가는 건 우리다! 카탈루냐 놈들에게 보여 줘라! 주세페 메아차가 얼마나 무서운 곳인지 말이다!”
“우! 우!”
“결승으로! 결승으로!”
“가자아아아!”
비장한 표정의 인테르 선수들과 상욱이 발을 구르고 소리치며 전의를 다지고 있을 무렵, 같은 시각 메시는 조용히 명상하며 이미지 트레이닝을 진행했다.
“올해는 반드시 빅이어를 갖는다.”
***
경기 시작 직전, 선수 대기실에서 만난 메시와 상욱.
전생의 영웅이자 역대 최고의 축구 선수를 보자마자 얼어붙은 상욱이 묘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메시에게 다가간다.
“왕좌에서 내려올 준비는 되셨나?”
괜스레 심술부리며 이죽거리는 상욱. 괜히 메시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으며, 내가 당신을 좋아한다 팬이다.라는 말을 하고 싶지 않았던 그는 괜히 시비를 걸었고, 메시는 그런 상욱이 재밌는지 씩 미소 짓는다.
“애송아, 넌 아직 일러.”
어색한 영어로 함께 이죽거리는 메시. 둘의 대화가 조금 격해지기 시작했을 때, 경기가 시작됐다.
[백중지세(伯仲之勢)란 말이 왜 있는지 알겠습니다. 양 팀 1차전보다 더욱 날카롭게 대립합니다!]
쓸 수 있는 모든 비기를 다 사용하며 경기에 나서는 양 팀.
백쓰리를 중심으로 한 인테르의 빌드업으로 조금씩 상대의 목을 죄자, 바르샤는 강력한 전방 압박과 재빠른 패싱으로 유려하게 피하며 역습까지 진행했다.
[이대로 전반이 끝나면 유리해지는 건 인테르입니다.]
[그렇죠, 원정 다득점에서 앞서고 있으니까 0:0이면 결승에 가는 건 인테르입니다.]
라우타로와 진, 메시와 수아레즈. 양 선수들은 철저하게 상대의 약점을 공략했으나 전반 내내 골은 터지지 않았다.
[양 선수 모두 조금도 방심하면 안 됩니다. 이렇게 팽팽한 경기는 패스 미스 한 번에, 실책 하나에 경기가 갈릴 수 있어요!]
해설의 예언대로였다.
오버래핑을 위해 상대 진영에 있던 둠프리스가 순간 중원 압박을 잊고 있을 때, 이를 확인한 바르샤의 미드필더 부스케츠가 놓치지 않고 상대 진영으로 스루패스를 보냈다.
[부스케츠가 오른쪽 골라인 끝으로 공을 보냅니다! 둠프리스가 놓쳤어요!]
[그리즈만이 받았습니다. 메시 쪽으로 전달합니다. 슈팅하기에 위치가 좋진 않습니다!]
사실 그랬다. 페널티 라인 안에 있긴 했으나 메시가 공을 받은 위치는 골라인 앞에 있었고, 도저히 슈팅을 쏠 수 없는 위치였으며 동시에 인테르 수비수들이 씩씩거리며 그에게 달려들었다.
[그대로 감아 찹니다아아아!]
그러나 상대는 지존(至尊)이었다.
골키퍼와 수비수 사각지대를 정확히 노려 찬 감아 차기가 순식간에 골문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들어갔습니다! 메시의 오늘 경기 선제골! 합계 스코어 3:2! 다시 한번 리드를 가져오는 바르셀로나입니다!]
[감히 현대축구 선수 중 누가! 저걸 따라 할 수 있겠습니까!]
바르샤의 선제골이 들어가자마자 인테르는 곧장 반격에 나섰다.
[진이 수비수 2명을 줄 세운 뒤 뛰어갑니다! 저- 말도 안 되는 스피드!]
라키티치, 부스케츠가 이를 악물고 뛰어 들어가나 안 그래도 발 느린 이들이 전상욱을 막을 수 있을 리 없었다.
“저, 정말 보고도 믿을 수 없군. 호나우두의 재림이란 말이 허풍이 아냐.”
바르샤 감독 에르네스토 발베르데가 상욱의 돌파를 보며 어처구니없이 웃으며 혀를 내둘렀다.
지금 이 경기는 일반 리그 경기가 아니고 무려 챔피언스리그 4강 경기다.
도저히 데뷔한 지 2년밖에 되지 않은 선수라곤 믿을 수 없었다.
[순식간에 수비라인 안으로 들어갑니다! 진! 최종수비는 이제 피케 하나만 남았습니다!]
바르셀로나와 스페인의 레전드 수비수 피케. 대단한 커리어를 가진 선수이나 상욱의 말도 안 되는 질주에 겁에 질린 듯했고, 골이 들어가는 것은 당연해 보였다.
[남은 수비는 하나! 그대로······ 아······!]
해설의 탄식과 페널티 라인 앞에 있던 상욱이갑작스러운 감속에 비틀거린다.
[지쳤습니다. 진, 진이 지쳤어요! 피케가 바로 공 걷어 내고 역습 전개하는 바르샤입니다!]
[프로 데뷔 이후 풀 시즌이 처음인 19살 선수가 아시아 국제대회까지 참가하고 왔습니다. 로봇이 아닌 이상 지치는 게 당연하죠!]
상욱이 당연히 득점이나 마지막 순간에 어시스트라도 할 줄 알고 상대진영으로 뛰어 들어왔던 인테르 선수들은 순식간에 당황했다.
[그리즈만이 빠르게 올라가면서 길게 크로스 올립니다. 수아레즈가 헤더! 간신히 막아 내는 한다노비치!]
[골까지 연결되지 않았습니다만 이건 바르셀로나가 주도권을 잡은 겁니다.]
지쳐 있는 에이스, 밀리는 스코어.
인테르 선수들은 분위기 반전을 위해 애를 쓰고 압박하고 침투에 들어가나 바르샤의 집중력은 너무도 강했고, 오히려 좋은 위치에서 프리킥 찬스까지 주고 만다.
전반 막바지, 좋은 위치에서 프리킥 찬스 잡은 바르샤.
[리오넬 메시가 프리킥 준비합니다.]
[이것마저 들어가면 인테르는 정말 힘들어집니다. 메시 찼습니다아!]
25M 거리에서 부드럽게 찬 프리킥이 수비벽을 넘고, 완벽한 곡선을 그리면서 골대를 맞고 안으로 들어갔다.
스코어 2:4. 바르셀로나 원정 팬들은 이미 승리의 노래를 부르고 있었으며, 인테르 팬들은 충격에 말을 잃었다.
***
“널 교체할 생각 따윈 없다.”
전반이 끝난 라커룸 안에서 담백하게 말하는 콘테. 이에 상욱은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오랜만에 그의 눈이 분노와 오기로 가득 찼다.
“이기겠습니다. 반드시, 반드시 이 경기 잡습니다.”
그게 메시라 할지라도.
< 포처의 화신(化身)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