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화
아시아 사냥꾼
[psv, 진 막아내며 1:0 신승!]
[인테르 잘 나가다가 찬물, 2차전 준비 어떻게?]
[1도움 하디 크루거“우린 2차전도 승리한다”]
psv의 1차전 승리는 꽤 반향을 일으켰다. 현재 전 세계에서 폼이 가장 좋은 공격수를 90분간 한 골도 먹히지 않은 채 꽁꽁 묶고, 올 시즌 유럽에서 성적이 가장 좋은 팀을 상대로 거둔 승리는 psv의 사기를 급격히 올리기 충분했다.
사람들은 1군 감독 경험이 1년 채 되지 않는 반니의 극단적인 수비 전술에 대해 이 전술이야말로 전상욱을 잡을 수 있는 유일한 작전이라며 극찬하면서도 2차전 역시 상욱을 막는 건 결코 쉽지 않을 것이라 말했다.
“복잡한 수는 쓰지 않기로 했다”
psv와의 2차전을 앞둔 상황에서 콘테 감독은 평소와 달리 온화한 모습으로 선수들을 격려했다. 비기면 떨어지고, 이긴다 해도 스코어에 따라 연장으로 갈 수 있는 불안한 스코어이나 이럴 때일수록 오히려 선수들을 닦달하지 않는 것이 콘테의 특징이었다.
“누구든 후방에서 공을 잡으면 앞으로 보내. 라우타로든 진이든. 어떻게든 공을 받아낼거니까”
킥앤러시는 상대의 후방에 롱볼을 다이렉트로 보내기 때문에 올코트프레싱을 전략으로 택한 psv의 압박을 벗어나기에 적합했다. 게다가 페리시치와 바렐라 같은 킥력 정확한 선수들의 크로스는 정확히 공격진까지 배송될 것이다.
게다가 빠른 스피드와 좋은 지구력을 가진 라우타로와 완성형 공격수 전상욱이 있는 투톱은 상대를 정확히 공략할 수 있을 것이다.
“이길수 있다, 아니 무조건 이긴다. 그러니까 지금 내 표정이 밝지 않느냐. 자! 나가자! 홈팬들 앞에서 네놈들이 세계 최고임을 보여줘!!”
선수들이 각자 파이팅을 외치며 라커룸에서 나가자 옆에있던 수석코치가 다가와 조심스레 묻는다.
“감독님 잠깐 질문드려도 괜찮나요?”
“뭔데?”
“이번 작전..괜찮을까요? 킥앤러시 전략이 답이 될 순 없습니다. 상대 압박을 벗어내는 것 정도는 가능하겠지만 상대는 여전히 수비적으로 나올겁니다. 그것만으로...”
“그것만으로 괜찮아”
“네?”
“상대 압박을 일시적으로 벗겨내는 것만으로도 괜찮단 말이야.”
코치의 말에 콘테 감독은 확실히 평소완 다른 모습으로 웃어보인다.
“딱 한 번만 뚫으면 돼. 나머지는 그놈이 해결할거니까”
밀리고 있음에도 콘테는 이상하리만큼 자신있었다. 오늘 자신이 부릴 선수는 리그 역사상 최고의 재능이 함께했기 때문이리라.
***
어떻게 보면 콘테의 킥앤러시는 좋은 선택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psv는 라인을 밑으로 내려 상대의 모든 패스나 공격을 차단하는 버스를 세웠고, 하디 크루거는 1차전과 같이 여전히 날카로이 골문을 노렸다.
몇몇 사람들이 이에 대해 의문을 표혔으나 여전히 콘테는 편안한 모습으로 경기를 바라보고 있었다.
[여전히 psv의 수비는 강력합니다. 주말 리그 경기에 주전 선수들을 빼서 체력을 회복하고 나온 psv. 여전히 압박이 강력합니다!]
[인테르가 어떻게 준비하고 왔을지가 궁금합니다. 후방 빌드업은 통하기 쉽지 않을텐데 말이죠. 말씀드리는 순간, 슈크리니아르가 후방에서 길게 위로 올려줍니다!]
추가골을 위해 4명의 수비와 4명의 미드필더의 psv가 다소 라인을 올려 전진하고 있을 때, 인테르가 이를 놓치지 않고 수비에서부터 롱볼로 공격한다.
인테르 선수들이 보고 있는 것은 단 한 명, 절대 에이스이자 팀을 구원으로 이끌 선수였다.
[어! 순식간에 진 쪽으로 전달됩니다! 라인은 벗겨냈지만 앞에는 수비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반니는 바보가 아니었다. 인테르의 롱볼은 순식간에 상대의 중원을 벗겨내긴 했으나 테저와 뤼카센, 수비 2명이 건재했고 오히려 상욱은 공을 받아줄 동료가 없었다.
공을 받자마자 수비가 달려들고 슈팅이나 패스를 하긴 불가능한 상황. 테저의 발이 상욱이 갖고있는 발에 닿기까지 한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그는 2년 전 반니스텔루이에게 배웠던 베르캄프 턴을 완벽하게 구사했다.
오른발 터치 한방에 수비수 2명과 골키퍼까지 벗겨낸 상욱. 이런 기회가 오길 저번 경기부터 간절히 바랐던 그는 미끄러지듯 넘어지며 오른쪽 끝발을 이용해 골문 안으로 볼을 차넣는다.
[진이 터치 한방에! 골문 구석으로!!!]
[들어갔습니다! 친정팀을 상대로 예술적인 골을 선보이는 진! 1차전의 부진이 한 번에 씻기는 원더골입니다!]
대단한 골에 팀 동료들이 기쁨에 달려오나 상욱은 조금도 반응하지 않은 채 터치라인 쪽으로 뛰어간다.
[아- 진이 세리머니를 하지않고, 조용히 자리로 돌아갑니다. 오랜 시간뛰진 않았지만 친정팀에 대한 예우를 보이고 있습니다]
[참...어떨 때보면 저렇게 오만한 인간이 있을까 싶은데 팬들에게만큼은 최고의 선수입니다]
이런 결과를 예상 못했던 것이 아니다. 승부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으나 반니는 뛰어다니며 선수들이 당황하지 않도록 동요시켰다.
“테저, 반힝컬 괜찮아! 침착하면 돼! 이제 동점이야! 집중하면 괜찮아!”
반니 감독이 터치라인 끝을 분주히 뛰어다니며 외치자 psv 선수들의 집중력이 되살아났다. 이들은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다시 경기를 앞서나가야겠다..고 생각했으나 이번엔 인테르의 분위기가 바뀌어있었다.
백 마디 말보다 한 번의 행동으로 보이는게 낫다. 방금 골을 눈 앞에서 확인한 인테르 선수들은 이제 남은 경기를 어떻게 풀어가야할 지 확실히 알았다.
“어떻게든 공 뺏어서 진한테 보내자!”
“최대한 진에게 기회를 만들어주는거야!”
인테르 선수들은 줄 세워진 공간 밖으로 어떻게든 공을 앞으로 보내기 위해 노력했고, 최종수비가 있음에도 농락당하듯 들어간 첫 번째 골을 본 psv 선수들은 본능적으로 상욱을 막기 위해 라인을 흐트린다.
그리고 밀라노의 사냥꾼이 이를 놓칠리 없었다.
[공간 비었습니다! 브로조비치가 페리시치 쪽으로 스루패스! 순식간에 진과 둠프리스가 올라옵니다!]
페리시치가 공을 잡고 오른쪽 터치라인 끝으로 올라가 낮고 빠른 크로스를 올리자 상욱은 이를 보고 앞으로 발을 내지 않으며 상대를 속인 뒤 그대로 뒷발 라보나 슛을 시도한다.
[진이 라보나로 슈우우웃!!!]
상대편은 당연하고 아군마저 속이는 페인팅을 했으나 골까지 연결되진 못했다. 그러나 상대를 더욱 공포에 몰아넣고 위축시키는 것은 가능했다.
[골대 살짝 빗겨갑니다! 인테르가 역전할 뻔 했습니다!]
[수준이 달라요, 양팀 통틀어 진의 반만큼도 하는 선수가 없습니다!]
인테르의 우위, 스코어 동점으로 전반이 끝날만도 했으나 양 팀은 어떻게든 후반을 유리하게 선점하기 위해 애를쓰고 뛰어다녔다.
[인테르의 공세가 매섭습니다. 하디가 로자노에게 로자노가 길게 크로스-]
[어, 다소 길었는데요. 그대로오!]
로자노의 크로스를 받은 구티에레즈가 본인도 넣고 소름돋아 어쩔 줄 모르는 원더골을 성공시켰다.
1:1, 총 스코어 1:2.
“내가 이번엔 이긴다고 했지?”
전반이 끝나고 라커룸으로 돌아가고 있을 때, 하디가 상욱에게 다가와 속삭이듯 말한다.
“내가 친구라서 하는 말인데...”
그 말에 상욱은 화가나긴커녕 오히려 상대가 안타까운지 동정 가득한 눈으로 친구를 바라본다.
“그냥 인테르로 이적하거나 아님 계속 나 따라다녀”
“뭔 개소리야?”
“하디, 넌 절대 나 못 이겨. 도발이 아니라 진심이다”
오만한 것도, 짜증스런 표정도 아니었다. 상욱은 그저 이 모든 것이 당연한 일인 것 마냥 라커룸으로 들어간다.
***
“씹새들아. 지면 죽여버릴거다”
라커룸에서 콘테 감독은 전반보다 좀 더 흥분한 상태였다.
“스코어는 지고 있지만 경기력은 압도하고 있어. 이제 곧 스코어까지 따라 올거다”
상대는 1차전 같이 장기를 보이지 못하고, 계속해서 수비 약점을 노출한다. 우린 그 약점은 완전히 파고들고 있으며 동시에 골까지 넣고있는 중이다.
그는 최대한 선수들을 독려하고 라커룸 밖으로 보낸 뒤 마지막으로 나가는 에이스를 불러세운다.
“진”
“네?”
“내가 저 말 같은 네덜란드인보다 널 훨씬 더 사랑하는거 알지?”
“...예?”
전 세계에서 가장 사나운 감독의 애정표현에 어처구니가 없는 상욱이 의아하게 바라보자 그는 다소 창피하면서도 짜증이 나는지 버럭 화낸다.
“뤼트 저 자식이 지금도 널 자기 제자인 것처럼 말하는게 짜증난단 말이다!”
질투는 콘테 같은 냉혈한도 바꿀 수 있는 놀라운 감정이다. 어처구니 없는 표정의 상욱이 그를 떨떠름하게 바라보자 감독은 창피했는지 소리를 빽 지르며 그의 등을 떠민다.
”젠장! 오늘 경기 무조건 이겨! 지면 진, 너만 다음 원정경기까지 걸어올 줄 알아라!“
”...예...예...뭐...“
스코어에서 이기고 있는 psv는 공격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게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인테르의 공격이 더 강해지고 있는 것을 확인한 지금, 하디와 더용까지 수비에 가담하며 스코어를 지키기 위해 애쓴다.
[psv 선수들이 기를 쓰고 진을 막아내고 있습니다.]
[지금 인테르에서 롱볼이 들어오면 이걸 받아줄 수 있는 선수는 진밖에 없으니까요. 어떻게든 저 선수만 막아내면..]
공을 받기 위해 하프라인 밑까지 내려온 상욱. 동시에 psv 중원과 하디가 상욱의 전담마크를 위해 달려오자 상욱이 이죽거리며 웃는다.
”하디, 네 가장 큰 약점이 뭔지 알아?“
”....뭐?“
”날 너무 의식한다는거야, 멍청아!“
발목을 완전히 꺾은 채 찬 롱패스가 하프라인부터 상대 패널티라인 까지 순식간에 연결됐다.
[라인 무너졌습니다! 방심한 틈을 타서 진이 연결합니다! 받아주는 선수는! 라우타로입니다!!]
아무리 라우타로가 부상에서 복귀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 해도 골키퍼와이 1:1도 못 넣을 만큼 부진하진 않았다.
[라우타로가 깔끔하게 처리해냅니다. 스코어 2:2! 그러나 원정다득점에 의해서 psv가 앞서고 있습니다!]
1차전 필립스 스타디온
인테르 0:1 psv
2차전 주세페 메아차
인테르 2:1 psv
원정 다득점에 따라 이대로 끝나면 psv가 진출하는 상황.
”아직 우리가 유리해! 죽어도, 죽어도 막아!“
오늘 옛 제자의 매운맛을 제대로 본 반니 감독이 마지막으로 선수들을 독려했다. 후반 80분이 넘은 상황. psv 서포터들과 벤치에서는 대어를 잡을 수 있다는 생각에 설레하고, 반대로 인테르 쪽은 어느 때보다 불안해한다.
”이길 수 있으니까 걱정하지마“
수비진까지 내려와서 공을 받은 상욱이 선수들을 보며 가볍게 말했다. 농담이 아니라 그는 진심으로 질 생각이 없었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 psv가 코너킥을 준비합니다. 코디가 옆에있는 하디에게 패스하구요, 하디가 크로스!!]
하디 크루거의 날카로운 크로스를 얼굴로 받아낸 상욱이 그대로 역습을 진행한다.
[진이 공 잡습니다. 아! 이거 너무 빨라서 오히려 아군 선수들이 쫒아오지 못합니다!]
빠르게 올라가던 상욱이 어느 순간 속도를 낮춰 같은 편 선수들이 오기까지 기다리자 동시에 함께 올라온 psv 선수들이 수비라인 안으로 들어가고, 라우타로와 페리시치를 마크한다.
”진!!!“
”씨발 때려버려!!!!!“
psv 선수들은 이번에도 상욱이 이들에게 스루패스하거나 개인기로 수비진을 뚫어낼 줄 알았으나 그는 순식간에 미친듯한 스피드로 남은 수비를 제쳐내고 그대로 캐논슛을 날린다.
[제로백!!! 진!!!!! 들어갔습니다! 월드-클래스!! 의심할 여지없는 완벽한 월드클래스입니다!!!!]
[친정팀에 악몽을 선사하는 나이트메어! 결승골이 될 것 같습니다!]
침묵에 빠진 psv 서포터들은 이내 오늘 경기 MOM이자 클럽 역사상 최고의 선수에게 기립박수를 보냈다.
애초 이길 수 없는 경기였다.
상대가 전상욱이었으니 말이다.
< 이적이냐, 잔류냐 >